전국적으로 많은 관심과 호응 속에 세워진 순천 ‘기적의도서관’에서 근무한 지 벌써 3년째가 되어간다. 그동안 다양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수많은 이용자들을 맞이하다 보니 숨 돌릴 틈도 없이 지나갔다.

지금도 해야 할 일과 진행해야 할 프로그램이 쌓여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 기저귀 찬 아이가 알지도 못하는 그림책 한 권을 들고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음 지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저 꼭 해야 한다는 책임감보다는 다가오는 일을 받아들이다 보니 여유가 없었을까?
 

그러나 사서가 아닌 이용자들은 도서관에 오면 어떤 한가로움을 느낄 것이다. 아늑함이 있는 이곳은 나부터도 누워서 책을 읽고 싶고, 책 보다가 잠시 쉬고 싶으면 천장 유리창 사이로 지나가는 구름을 보면서 두 눈 감고 살포시 미소 지을 만한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열람실 한 가운데 만들어놓은 대나무정원 아래 맥문동 야생초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이곳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찾아내고 보완하려는 사서이기보다는 우리 아이의 손을 잡고 이용하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바닥이 따뜻해 아랫목 같은 열람실과 별장 같은 2층 열람실에서 책 속에 빠져보는 여유를 마음껏 누려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사서들은 이런 도서관을 만들고 그에 해당하는 운영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고민하는 사서의 직업적 숙명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숨 쉬고 즐기면서 공감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도서관이 된다면 더 아름답지 않을까?

봄볕이 따스한 어느 날 도서관 정원에서 조그만 아이가 “왜, 하필 기적의도서관이냐?”는 질문을 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좋은 열람공간에서 좋은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독서환경이 전국으로 기적처럼 퍼져나가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데……”라고 대답해주었다.

모든 사물에는 ‘왜’라는 존재이유가 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사물을 판단하기 시작할 때 ‘왜’라는 말로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듯이 우리 아이들이 자주 이용하는 도서관 시설, 운영에 ‘왜 이렇게 했을까?’라는 의문은 당연한 것이다. 어쩌면 그 명백한 답을 우리 사서들은 반드시 준비해야 하며 모든 공간을 ‘왜’라는 의문이 들도록 기획, 설계, 운영해야 할 것이다.

도서관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도서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명백한 운영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아이들의 단계별 성향도 반드시 조사ㆍ분석하여 그 분석을 토대로 운영방향을 정하여 어떤 프로그램으로 운영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저 적당한 부지에 몇 평의 건물을 세울 것인지만 고민한다. ‘왜’ 세워야 하고 어떻게 운영해야 할 것인지는 나중 문제로 인식한다. 도서관이 보여주는 외형만을 중시하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도서관 속 풍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왜’라는 의문을 멀리한 채 말이다.

오늘도 순천 기적의도서관을 향해서 오는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견학담당 사서는 ‘왜’ 이렇게 만들었으며 어느 건물에도 있음직한 유리창 하나부터 건물외벽에 ‘왜’ 나무를 붙였으며 천장유리, 심지어 조명 하나하나까지 설명하여 오신 분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서들이 늦었지만 이제는 ‘왜’라는 의문을 갖고 도서관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말이다.

오늘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작은도서관 운영자가 다녀갔다. 운영자의 의문은 책을 어떻게 구입하는지, 그에 대한 수서목록은 어떤 방법으로 만드는지, 예산은 어떻게 조달하는지 등등이었다. 일반인이 도서관을 운영하려고 보니 막막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동네에 작은도서관이 ‘왜’ 있어야 하며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를 지역주민 스스로 고민하고 토론하면 답은 나올 것이다.

나는 그분들께 두 가지를 전해주었다. 작은도서관 역할과 반드시 있어야 할 일관성 있는 도서관 운영방향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두 가지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시며 ‘조금 빨리 올 것을……’ 하시면서 발길을 돌렸다.

이제 곧 국립중앙도서관이 추진한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소박한 마음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은 이런 ‘왜’라는 절차를 거쳐서 개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어야 하며, 건물은 ‘왜’ 이렇게 건축되어야 하고, 운영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그곳에 계시는 사서들과 기획자들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나도 개구쟁이 아이처럼 장난스럽게 물어보고 그 대답을 듣고 싶다.

“왜,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죠?”,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