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은 지난해까지 혁신의 소용돌이에 빠졌다가 최근 들어 조금 안정을 찾은 듯하다. 국립중앙도서관의 혁신은 누구를 위한 혁신이며, 무엇을 위한 혁신인가? 또한 그 혁신이 자율적인지 아니면 타율적인지? 이러한 혁신의 광풍은 중앙정부에서 사업기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몰아쳐오고 있다.

지금도 아니 아직도 ‘혁신 중’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는 기관들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문제가 많으면 혁신하고 또 혁신해야 하고 또다시 혁신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것인가?

혁신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를 빌미로 혁신의 주체가 혁신하지 않아도 될 것을 혁신하는 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더 나아가 혁신의 주체가 상부의 입맛에 맞춰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하거나 조직 내부의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혁신까지 추진하는 것이라면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혁신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냐를 스스로 설정하는 것이 선행되어져야 한다. 우리 국민은 물론, 국제도서관연맹 행사가 금년 서울에서 개최됨으로써, 세계인들도 이를 지켜보고 있다. 그동안 국립중앙도서관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개선ㆍ개혁ㆍ혁신하여 왔는가?

분명 국립중앙도서관은 기관 차원에서 이런저런 혁신 업무를 추진하여 왔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도서관 내ㆍ외부 사람들을 위원으로 위촉하여 혁신 과제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모색하여 왔다.

여기서 ‘개선’, ‘개혁’, ‘혁신’이란 용어는 사전적인 정의보다 다음과 같은 뜻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개선’이란 단어는 사람은 그대로 두고 시스템만 일부 보완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고자 할 때 사용하며, ‘개혁’은 사람과 시스템 모두 부분적으로 고쳐 업무의 효율성을 증대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혁신’은 기존의 사람과 시스템을 모두 바꾸어 업무의 효율성을 증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내부적으로 추진한 여러 가지 혁신 사업 가운데 긍정적인 결과도 있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국가 서지통정 업무인 도서관자료의 분류 및 목록 작업을 아웃소싱으로 처리한 문제는 국가대표도서관으로서 주요한 사명을 방기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국가대표도서관이 국가 서지통정 기능을 수행하지 않거나 그 업무를 아웃소싱으로 처리하는 나라가 있는가? 그동안 우리 도서관 현장 사서들은 정리업무를 수행하면서 국립중앙도서관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여 서지정보를 이용하여 왔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사서들이 국립중앙도서관이 아닌 다른 기관의 서지정보를 이용한다는 사실은 시사해주는 바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기존 업무를 변화시키는 혁신에도 결단이 필요하지만, 혁신으로 인한 잘못된 결과를 신속히 되돌리는 데에도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결단은 빠를수록 좋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있을 고통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요사이 우리 도서관계에서는 인어아가씨와 같이 정체성이 모호하면서, 새로운 유형으로 포장하여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도서관이 출현하고 있다. 인어는 물고기도 사람도 아니다. 이와 같은 도서관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도서관이란 단어 앞에 그럴듯한 형용사나 형용사구를 붙여 뭔가 다른 도서관이란 느낌을 주고, 다른 하나는 도서관이란 단어를 새로운 보자기로 싸서 겉으로는 도서관이 아닌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현행 법규를 피하면서 각기 소속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서직과 관계없는 사람들은 도서관의 발전보다는 ‘내 자리’라는 생각과 ‘영역확장’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이러한 집단을 영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직ㆍ간접적으로 지원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할 수도 있다. 이는 대학에서 사서를 양성하는 일부 교수들조차 어린이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이 아니고 전문도서관이라는 주장에 동조하여 도서관 관련 법규를 피해 비사서직을 관장으로 임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사실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제 두 달 정도 지나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도서관인 축제가 서울에서 열릴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이 행사의 주인 노릇을 수행해야 할 기관 가운데 하나다. 국립중앙도서관은 행사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열악한 도서관의 발전과 사서의 권익 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은 국내외의 귀한 손님을 맞이하여 국립디지털도서관이나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건설 현장을 통해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이외에도 국립중앙도서관이 국가적 차원의 도서관 정책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각 관종별 도서관 육성 정책을 제대로 수립하여 공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국립중앙도서관은 국가대표도서관으로서 우리나라 기록문화유산의 보전을 통해 국내적으로는 서로 다른 관종의 도서관을 지도 및 선도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하고, 국외적으로는 우리나라 도서관을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국립중앙도서관이 나가야 할 길을 잃는다면, 대들보가 흔들리면서 서까래 모두가 요동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도서관계나 문헌정보학계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문화관광부의 조직개편에 따라 국가도서관 정책 관련 업무가 이관되면서, 그 산하에 도서관정책과를 설치하여 운영해오고 있다.

그 이후 국립중앙도서관이 추진한 업무를 살펴보면,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 관련 업무 외에 추진한 사업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금부터라도 국립중앙도서관의 도서관정책과는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만을 위한 부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국립중앙도서관은 ‘장서 500만 권 달성 기념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보여주었던 각 관종별 도서관을 아우르고 각각의 대안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그런 모습으로 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 국립중앙도서관은 도서관계를 사랑하고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인어아가씨처럼 혼란스런 도서관의 출현을 직시하면서 도서관 관련 법규와 제도 속으로 유도하고, 벼랑으로 떨어지려는 각 관종별 도서관을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문헌보국의 대오를 형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나아가 대통령의 지시와 전면 개정중인 도서관법에 따라 신설될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와 국립중앙도서관이 쌍두마차가 되어 우리 도서관계의 발전과 사서의 권익 향상에 큰 획을 긋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