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  論

우리나라에 “圖書館文化”가 있는가

 

박 상 균 (한양대 교육대학원 강사ㆍ전  경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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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뿐인 “도서관문화”

21세기는 “인터넷시대”요, “문화의 세기”란 말을 화두로 떠올리고 있다. 東京大 總長 요시카와 히로유기(吉川弘之)도 20세기는 자연과학이 강세를 보였지만, 21세기에는 “문화의 힘”이 강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경제적 위기” 보다 근본적이고 심각한 것이 “문화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문화는 인간의 내적, 정신적 활동의 소산(所産)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도서관의 궁극적 존재의무는 그 사회의 문화를 전승하고 창달하는데 있는 것이다.

사회에는 여러 가지 문화가 공존(共存)하고 있다. 문명비평가 Comelius Osgood은 문화의 삼요소로 물질문화ㆍ사회문화ㆍ정신문화를 들었다. 이 세 요소는 문화변동(Cultural Change) 과정에서 상호작용 하는데, 대체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지만 그 균형을 잃었을 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황하고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 요소간의 조화로운 발전과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문화의 건전한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이 문화 삼요소 중 공공도서관은 어떤 문화를 전승, 발달시키는데 기여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문화의 형성은 사회공동의 가치체계가 문화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문화의 양식은 사회조직을 구성하는 각 집단들에 의해 결정된다.

하이데거(Heidegger, Martin)와 함께 현대 실존주의 철학의 쌍벽으로 일컬은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Jaspers, Karl)는 그 저서 《20세기의 정신적 위기》(1931)에서 말하기를 “철학이 없는 사회는 인간의 인격가치가 전락이 되고, 인간의 가치마저도 하나의 생활도구화 되어 자기자신으로서는 하등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며 자신을 믿지도 않는다. 이러한 신뢰의 결여는 정신의 황폐화를 가져와 개인과 개인 사이, 단체와 단체 사이에 불신과 갈등과 불안을 조성하게 되어 인간을 불안의식에  직면하게 한다. 이 불안의식은 그것으로부터 도피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서 도박ㆍ오락ㆍ마약ㆍ탐정극이나 모험소설 같은 엽기에서 자아를 찾아내려 한다.”라고 갈파한 바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한다. 이와 같은 “병든 문화”의 도도한 흐름은 시대적 대세이기도 하다.

“문화의 힘”이란 시민사회와 함께 창조적 사회를 이끌어나갈 때 비로소 그 힘이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그 바탕을 마련하고 사회환경을 조성하느냐가 문제이다. 문화란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망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휴먼 네트워크”는 사회가 정보화 할 수록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일제하, 1921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도서관인 「경성도서관」(종로시립도서관의 전신)을 설립한 이범승(李範昇 : 광복후 초대 서울시장)은 “독서를 않는 사회는 정체한다. 정치인이 책을 볼 줄 모르면 그 나라의 사회엔 철학이 있을 수 없다. 도의사상은 사라지고 배금사상만 팽배한 이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하고 한탄한 바 있다.

우리 국민은 도서관에 대한 문화의식이 너무 낮다. 우리 국민들은 아직 “도서관”을 발견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국민처럼 “공공도서관”은 바로 국민의 평생교육기관인 동시에 새로운 생활정보를 창출하는 지식의 산실로서, 공공도서관은 마치 학교나  법원이나 병원이나 사찰이나 교회나 관청처럼 우리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사회기구의 하나라고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과연 전체국민의 몇 %나 될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현재 공공도서관은 시민들의 생활과는 무연(無緣)한 위치에 있으며, 소수의 특수한 사람이나 학생들의 공부하는 장소로 알고 있을 정도다. 다시말하면 시민들에게 도서관은 아직 낯설은 존재이다.

우리의 공공도서관의 실상(實像)을 보라! 이름뿐인 공공도서관의 간판, 이 “유령과 같은 집”을 과연 공공도서관이라 부를 수 있는가. 선진국 도서관들을 돌아보고 온 사람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이런 절규가 나올 수밖에 없다.

1994년 4월 제정, 공포된 「도서관및독서진흥법」에는 정부가 도서관 발전과 독서진흥에 필요한 기금을 조성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6년이 되도록 기금은 단 돈 십원이 없다. 당초 계획은 정부출연금 850억원, 민간출연 90억원, 기타 수익금 1억원 등 1천억원. 문화관광부는 예산배정의 칼자루를 쥔 재정경제부를 탓하며 민간은 정부를 탓하며 세월만 보냈다.

5천년 역사와 문화를 지닌 대한민국 하지만 국민 1인당 장서수는 낯부끄럽다. 핀란드가 7권, 미국과 영국이 2.7권, 캐나다 2.3권, 일본 1.5권에  비해 한국은 0.34권, 정부는 2천년 0.5권, 2011년 1권 수준으로 올린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지만, 현재처럼 경직된 예산구조하에서 아무도 실현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구색 갖추기식의 문화행정이 빚어낸 결과란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서관의 사회적 존재이유는 선진국 도서관의 발생과 발전과정으로 볼 때, 지역사회주민들의 현실적 요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시민사회의 내재적 요청에 의하여 존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시민의 요구에 의해서 설립되었다기 보다 거의 관료적 행정기관의 일기구로서 생겨난 것이다.

필자는 어느 해인가 학생들에게 공공도서관의 인식도 조사를 위한 설문지를 만들어 소위 문화의식이 높다는 성남시 분당구 아파트단지 한 구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지역 사회 도서관의 육성을 위해 「도서관세」라도 신설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물었더니, 거의 전부가 반대였다.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지역사회의 주민들은 도서관을 요구하기 위해 주민들이 서명한 문서를 시장이나 시의회 의장에게 제출할 만큼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강하다고 한다. 도서관을 더 많이 설립해 달라는 시민운동은 이제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격렬한 세력으로 번져가고 있고, 전국으로 파급되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도서관 설치운동은 해를 거듭할수록 급속히 고조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도서관이 문화적 장식품이 아니라 시민생활에 필요불가결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1970년초에 東京都 日野市立도서관은 대출책수가 그 지역인구의 6배 정도에 달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 Winsconsin주의 주도(州都)인 Madison시의 공공도서관 사례를 하나 들겠다. 1996년 현재 20만명이 채 안되는 Madison시의 주민 중 50% 정도인 약 10만명이 “도서카드”를 발급 받아 등록된 이용자 자격으로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 대출카드 소유자의 연간 대출 권수는 1인당 28권에 이른다.

생각하면 우리 국민처럼 독서를 하지 않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우리 사회에 “도서관문화”가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도서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정부안에도 국회 안에도 단 한 사람도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동아일보 1998년 5월 8일자 신문에 의하면 申樂均 문화관광부장관은 공공도서관 자료구입비를 1999년 45억원에서 2천년 이후, 매년 1백억원대로 증액하겠다고 발표해 놓고, 그후 월드컵을 위해 삭제하기로 했다고 한다.

45억도 마련 못하는국력으로 우리는 OECD에 가입한 일등국 운운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대구나 대전보다 훨씬 작은 시립도서관인 “우라야스(浦安)사립도서관”의 연간도서구입비가 8억원이 넘는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위 「국립」하고도 「중앙」의 도서관의 도서구입비가 얼마인지는 알고 싶지도 않다.

미국의회도서관은 직원이 5천명이 넘고, 연간예산이 2억5천만불이 넘는다. 선진국에서는 이상하게도 그 어느나라에서도 도서관의 경비에 대해 트집 잡는 국회의원은 없다고 한다. 도서관에는 아무리 돈을 많이 써도 아깝지 않다고들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2. 왜 우리는 도서관문화의식이 없는가

필자 나름대로 그 이유를 네가지로 분석해 보았다.

첫째, 어느 글에서 읽은 내용 중, 일부가 그 으뜸 이유일 것 같아 이를 요약하여 옮겨 본다.

“선진국 국민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가정교육을 시킬 때, 도서관은 ‘즐거움이 있는 곳’, ‘꿈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부모들이 넣어준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도서관에 와서 「견학」을 시키기 시작한다. 도서관은 생활교육의 장(場)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학습되는 생활교육공간이라는 것을 부모들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통한 즐거움과 아울러 책을 옆에 놓고 상상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어서, 책은 그림책, 그 그림속에는 공상으로 이끌어 들이는 요술쟁이가 가득하다. 이렇게 한 인간은 그 유년기에 도서관에 대한 즐거운 학습을 시작한다. 아주 어려서 머리보다 가슴에 입력된 도서관에 관한 선유경향(先有傾向)은 그 인간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삶의 등대로 인식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입력이다. 도서관은 즐거움이 있는 곳이라는 기초인식이 바탕이 되면, 보다 높은 차원의 정의가 탑처럼 올라 쌓이게 된다. 도서관은 이런 낭만적인 정의만 내릴 수 있는 곳은 아니고, 누구에게나 미래에 대한 설계가 가능한 그런 곳으로 점차 자리잡게 된다.

이 설계를 위한 기본작업, 곧 꿈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나눌 수 있는 만남을 가슴 밑바닥에 한 장 벽돌 놓기와 같이 고귀한 것으로 얻게 되는 곳이다. 이 만남은 책과의 만남일 수도 있고 또 사람과의 만남일 수도 있다. 누군가와 그리고 어떤 가능성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도서관 가기가 즐겁다. 만남이 이루어질 의자들과 아늑한 전기불빛과 그림이 있는 따뜻한 벽돌, 그리고 그 안에 괴어 있는 조용함 이런 것들이 모두 어울어져 있는 공간이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책만 있으면 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게 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런 조건들을 학습하는 시기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처음으로 도서관이 어떤 곳인가를 배우는 일이 시작되는 아주 어린 나이의 견학기(見學期)이다. 대강 7세 전후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을 구경시키면서 도서관의 공공체의식을 가르친다. 책과 인생과 그리고 보다 나은 삶. 이런 세가지의 연관성이 막연하게나마 어린이의 머리 속에 입력된다. 이것이 도서관 내부시설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주어지는 학습의 전부일지라도 대단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건」이 된다. 어린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방황하게 되는 시기에 ‘도서관’을 찾아서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하는 것은 아주 고귀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어찌 된 일이지 뚜렷한 것으로는 국민전체와 사회전체가 ‘도서관’에 대한 인식이 지극히 희박하다는 사실이다. 김정근교수가 절규한 저 “유령의 집”같은 공공도서관을 보라!! 그것마저 집 가까운 곳에 있으면 또 몰라도 변두리에 아무렇게나 서 있는, 특별한 사람 이외에는 시민들과는 무관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국방방곡곡 어디를 가나 교회는 없는 곳이 없지만 공공도서관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머니가 어린이의 손을 잡고 가 볼만한 문화공간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둘째, 정치와 공공도서관은 무관한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공도서관에 등을 돌리게 되면 공공도서관은 죽는다. 정치는 공공도서관 운영의 골격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부서와 장관ㆍ공무원ㆍ국회의원ㆍ지방의회의원들은 모두가 공공도서관 서비스에 대한 자금지원의 정도와 방향의 우선순위의 결정과정에서 각기 어떤 영향을 수행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현실은 공공도서관의 목적과 기능에 대한 행정당국의 인식부족으로 그나마 사서들조차 봉사의욕이 극히 저하된 상태에 놓여 있다. 더구나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는 있지만, 지방문화정책 우선 순위로의 획기적인 전환이 없거나 지역주민들이 지역문화중심기관으로서 지역사회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주요기관으로 인식하고, 그 기능확대에 대한 요구도가 높아지지 않고는 현실수준 이상의 재정지원도 기대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IMF이후에는 그나마 예산이 삭감되거나 동결된 상태이다.

더욱이 공공도서관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조직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것은 공공도서관이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연구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공도서관은 장기적이며 종합적인 지방자치단체 조직계획의 하나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공공도서관은 지방자치단체 내부에서조차 이해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시민단체들이 나설 때라고 생각한다. 도서관설립운동과 함께 도서관 살리기운동 캠페인을 벌리는 방법밖에 없다.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범국민운동으로 확산시켜야한다. 시민단체들이 시장님을 찾아가 「당신은 행정중에 도서관을 몇번째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해 보라! 「지방자치가 전진하느냐는 도서관의 육성만이 지방자치의 장래를 좌우하는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되어야 한다」라고 설득해 보라!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지역 시민단체들마저 전혀 “도서관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일찍이 1961년 2월, 嚴大燮은 혼자서 사재(私財)를 털어, 도서관 설립을 촉진하고 주민들의 알 권리를 찾기 위해 주민 스스로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 운동이 시작되어 30여년간 국민독서풍토조성을 위해 노력해온 “마을문고운동”은 도서관 예산지원이 거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도서관계의 뜻 있는 인사들의 힘을 입어 추진되어 왔으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1980년 8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여 국제적으로 그 노력을 인정 받기도 했다. 이 운동은 현재 〈새마을문고중앙회〉로 바꾸어 계속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작은도서관’운동은 사회전반에 확산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처럼 공공도서관운동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그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영국의 경우, 1979년에 Hertfordshire의 지방정치가들이 이 지방의 공공도서관예산을 삭감하게 되자, 지방의 사서들이 이른바, “자유공개도서관(LOAF= Libraries Open and Free)을 결성하였다. 이 단체에서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편지쓰기운동의 활동을 벌인 바 있다. 또한 LOAF의 대표자들이 여러 회의에 나가 강연을 하고, 시민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몇 종의 포스터와 배지도 제작하였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사서들에게 큰 교훈이 되리라 생각한다.

셋째, “유령의 집”같은 공공도서관을 선진국의 공공도서관처럼 진정한 지역문화중심지로 탈바꿈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예ㆍ한문ㆍ꽃꽂이ㆍ외국어ㆍ동양화ㆍ공예ㆍ컴퓨터ㆍ문학ㆍ생활예절ㆍ건강(수지침ㆍ지압 등)ㆍ음악ㆍ사진ㆍ레크리에이션(어린이 수영ㆍ바둑 등) 기타 족보(族譜)교실 등 다양한 문화행사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강좌를 실시해야한다. 그러나 재정ㆍ시설ㆍ직원 등 부족으로 문화행사 활성화가 어렵다.

선진국의 도서관문화의식이 얼마나 높은가를 프랑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파리시는 「파리시의 도서관 안내도」까지 제작하여, 시민들의 도서관 이용에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파리시의 상세한 지도와 함께 도서관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고, 다른 한 면에는 각 도서관의 정확한 주소와 가까운 전철역, 그리고 전화번호와 함께 그 도서관에 대한 간략한 안내가 실려 있다. 그리고 자료의 전문영역이 어학관계인가, 여행인가, 아니면 영화 혹은 미술인가 등의 사항이 간략이 소개되어 있다.

넷째, 도서관은 시장처럼 위치가 생명이다. 한 나라의 국력의 상징이라고 할 우리의 국립중앙도서관을 보라! 그리고 변두리에 아무데나 들어서 있는 공공도서관의 초라한 모습을 보라! 그나마 도서관이 절대 부족한 실정인데 있는 도서관마저 주민의 접근이 어려운 변두리에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경우, 명동 롯데백화점 자리에 있던 것을, 1974년 남산꼭대기에 있던 남산어린이회관 건물로 몰아내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1988년 지금의 서초구 반포동 산 60-1 언덕으로 밀려나가 있다.

즉 자가용 없이는 가기 어려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전철을 타더라도 내려서 십여분 이상, 그것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하는 위치 설정에 문제가 있다. 전철을 빨리 연결시켜야 한다. 또 서울시내 버스들 가운데 국립중앙도서관 앞으로 지나가는 노선이 어디에 있는지, 전연 강북지역 주민에겐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뿐인가, 유일한 한국사회과학 도서관도 사직터널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지방의 공공도서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역주민들이 손쉽게 독서자료를 입수할 수 있는 봉사거점망도 구축되어 있지 않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東京都 中野區에 구립도서관이 네 개가 있는데, 1관당 봉사권은 반경 8백m이다. 이처럼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기타 공공도서관들이 외국의 선진국도서관처럼 시민들 가까이에 위치하지 않고 변두리로 밀려나게 된 그 원인에 대해, 먼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무지만을 언제까지 탓하고 만 있을 것이 아니라, 공공도서관에 대한 지역사회주민들의 무관심이 보다 더 큰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겠다.

 

3. 인터넷 신드롬과 전통도서관 해체론

요즈음 한국의 도서관현장에 불어닥친 전산화바람은 어디까지 밀어붙일지 모른다. 일부 교수들은 “앞으로 도서관을 평가할 때, 전산화 정도로 기준을 삼아야 한다”고까지 역설하고 있다. 오늘날 인터넷을 모르면 ‘정보화된 미래사회의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기사가 언론에 넘쳐나고 있다. 한국의 도서관의 경우도 디지탈도서관(Digital Library)을 축으로 하는 미래도서관의 광기에 들떠 있다. 그래서 책과 도서관이 이제 쓸모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서도 「정보전문가」로 탈바꿈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서를 ‘정보전문가’로 부른다는 것은 전자도서관으로 전환될 경우를 염두에 두고한 암시인 것 같다.

이것은 미국의 일부학자들이 주장한 미래도서관에 대한 혁명적 발상을 우리 국내 일부 교수들이 우리의 도서관의 참담한 실상은 외면한 채, 성급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데서 기인한 것 같다. 도서관이 존재하는 근본이유는 인간적인 봉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책과 도서관이 쓸모없게 될 그럴 날이 멀지 않았을까. 그래서 ‘전통도서관 해체론’까지 나오는 것일까.

우리 보다 디지털 문화가 훨씬 발달된 영국에서는 ‘영국국립도서관’이 240년만에 세인트판크라스에 신축한 건물로 이전한다. 새로 신축한 건물은 1982년 착공하여 1999년 여름에 공식적으로 개관하였으며, 1천2백만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인문부부터 이전 작업을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1996년 12월부터 시작된 이전작업은 책을 옮기는데 2년반 이상 걸릴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영국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1억5천만점에 달하는 특허문서ㆍ우표ㆍ지도ㆍ악보ㆍ원고ㆍ사진ㆍ레코드 등도 3단계에 걸쳐 새 도서관으로 이전될 계획이다.

특히 6층 높이 유리탑 안에 보관될 6만권 분량의 킹스 라이브러리(조지3세 소장서적)에는 1215년 마그나 카르타 원본, 1×1.83cm의 초소형 지도, 엄지손톱 크기의 신약성서 등이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새 도서관은 2만㎡의 면적에 11개 열람실을 갖추고 동시에 1,216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서가의 길이는 300km에 달한다.

이 장엄하고 호화로운 영국국립도서관 신축건물과 그 안에 소장될 어마어마한 자료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까.

우리 독서성향은 월간지ㆍ스포츠지ㆍ베스트셀러 인기소설 등 시류적 흥행물에 큰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런 독서분위기 속에서 “책은 죽었는가”하는 ‘위기감’이 팽배해진다. 정말 가치 있는 책은 ‘고전’(古典)이기 때문이다. 즉 오래되고 앎과 삶의 향기가 먼지에 덮인 채 알알이 숨쉬고 있는 것은 바로 고전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오늘처럼 빨리 바뀌고 매스컴을 비롯한 시청각매개체, 그런 독서가 판을 치는 때일수록 그보다 책이 아닌 수많은 시청각물들의 유혹이 심할수록 뿌리를 튼튼히 하고 뼈를 살찌울 자양분이 절실한 법이다.

시청각물들은 순간성과 공간적 대체적 매혹으로  우리를 유도한다. 신문ㆍ잡지ㆍ베스트셀러 또한 시한적 자극과 센세이셔널리즘 즉 순간적 자극을 목표로 한다.  

도서관의 많은 책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의 혼백이 숨쉬는 장소다. 이광수(李光洙)는 죽었지만 그의 논문 「민족개조론」과 그의 한국최초의 장편소설 「무정」(無情)이라든가, 심훈(沈熏)은 죽었지만 그의 농촌계몽소설 「상록수」, 老子는 죽었지만 그의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이퇴계(李退溪)는 죽었지만 그의 「理氣二元論」 등 그리고 로망 로랭은 죽었지만 그 대작인 「장크리스토프」 「베토벤의 생애」라든가, 헤밍웨이는 죽었지만 그의 걸작인 「킬리만자로의 눈」 「노인과 바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죽은 사람들의 책들은 도서관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서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고, 우리의 헐벗은 영혼을 달래줄 것이며, 우리를 미혹(迷惑)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이다.

어느 도서관에 가도 거의 죽은 사람들로 꽉 차있다. 그들 책속에서 옛숨결을 되짚고 같이 느끼고 감격하고 괴로워하고 사색할 수 있는 그런 장소이다.

전자도서관(digital library)이란 이름으로 섣불리 “책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독서문화습관을 무시하는 분석일 뿐이다. 컴퓨터를 통해 자료를 입수하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그 자료를 여유있게 자세히 읽거나 간직하기 위해서는 ‘프린터로 출력’하기를 선호한다.

사람들은 도서관에 가서 책으로 이루어진 벽, 녹색공간, 각종 전시관, 감상실 등으로 어울어진 기품 있는 분위기에서 무한한 독서욕을 충족하고자 한 것이다.

1996년 4월 27일자, 조선일보에 의하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21세기형 첨단 hi-tech기술로 무장한 ‘전자도서관’이 문을 열었다고 했는데, ‘종이 없는 도서관’(paperless library)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1백만권이라는 ‘종이책’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본자료(原本資料)는 원본자료대로의 실적가치나 이용자를 가지며, 이것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이용자의 다양성에 비추어 반드시 갖추어야할 실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한다고 할 때, 그 비용이나 선별 없이 무작정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이기 때문에 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재택검색’이 가능한 미래의 모습은 도서관에서 받아들이는 자료가 모두 완벽한 ‘서평’이나 ‘가치’가 있는 정보라는 전제를 깔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학계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서평다운 서평이 없다. 그것은 학문에 대한 ‘비평정신’이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서중 문헌의 ‘서평’이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전문사서’나 ‘학자사서’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재택검색”으로 ‘가치있는 정보’의 검색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한편 미국의 ARL(Association of Research Libraries)의 모든 회원도서관이 전산화를 이미 완료했었는데, 저마다 거대한 규모의 책과 저널 중심의 장서를 유지하고 있으며, 더 많은 종이책과 저널을 사들이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한국의 도서관계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종이 없는 디지털도서관’ 구축에만 오로지 일로매진할려고 하는지―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 학계는 ‘정보전문가’ 양성에만 전력을 기울일 작정인지. 현재 문헌정보학의 커리큐럼을 가지고 ‘정보전문가’양성이 가능한지가 궁금하다. 필자의 견해로는 ‘정보전문가’가 되려면 인터넷을 통해 날아드는 여러 외국어로 된 ‘정보’(영어로 된 것이 거의 95%임)에 대한 해독능력(解讀能力 : English literacy)이 있을 때 비로소 ‘정보’의 원활한 분석 평가가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최근 일고 있는 영어공용화에 대한 논쟁과 관계없이 영어해독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정보부자(information rich)와 정보빈자(information poor)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도서관’은 처음 도서관을 설립할 당시 ‘도서관설치기준령’에만 맞추려고 잡동사니, 심하게 말하면 쓰레기더미같은 자료들을 트럭으로 실어와 도서관에 채워놓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후 3-40년이 지나도 한번도 그런 ‘불용도서(不用圖書)’들을 걸러내지 않고 있다.

비록 수입당시에는 엄선(嚴選)되어 이용가치가 많았던 것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같은 책의 보다 유용(有用)한 내용의 새로운 도서, 개정된 새로운 판이 출현, 기존의 그것은 이미 그 이용가치를 상실한 책들까지 방치된채 제한된 서고공간의 서가의 스페이스만 차지하여, 배열과정에 노력을 더하게되고 유용한 도서의 검색마저 불편을 주고 있다.

현재 학문의 진보속도는, 수십년전과는 비교가 안될 지경이다. 항상 up to date가 되어야할 응용과학분야의 자료들은 5년내지 10년을 기한으로 하여 제거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수학의 입문서를 현재 발간된 것과 10년전의 것과 비교해보면, 목차가 전부 다르다. 체계도 다르게 되어 있다. 사회과학분야도 대부분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므로, 빈번히 개정판을 필요로 한다. 특히 경제, 무역, 정치, 행정, 외교  등에 관한 도서는 시대에 즉흥해서 교체하여야  한다.

도서관 현장사서들은 ‘불용도서’ 제거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불용도서 결정의 일반준칙」도 마련하지 못하고, 도서관관리책임자는 자기 도서관 장서수  부풀리기에만 급급한 것 같다.

한편 우리 도서관계는 ‘불용도서’ 처리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오로지 이처럼 유령집 같은 공공도서관을 디지털화하지 못해 안달이다. 전산화 만능주의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먼저 「불용도서 결정의 일반준칙」을 마련하여, 서가에서 몇 년이 되어도 한번도 움직이지 않는 ‘죽은 도서’부터, 이를 주제별로 일일이 점검하여 제거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서고’가 살아 움직이도록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지방화시대인 만큼 선진국에 비해, 지역사회마다 절대부족한 문화공간으로서의 공공도서관설치와 살리기운동에 힘쓰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당면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시장, 의회의장을 찾아가 도서관의 육성을 호소하고, 시민들을 상대로 강연회의 개최, 독서회 등 각종 행사를 통해 지역사회 주민들의 도서관문화의식을 높이는 한편 각 언론기관을 방문하여, ‘도서관설치와 도서관 살리기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지면을 크게 할애해 주도록 언론의 협조를, 매체를 통한 도서관 캠페인을 벌려서 종국엔 시민단체들과 연계시켜 이를 시민운동으로까지 확산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는 한국도서관협회가 주축이 되고, 지역사회  도서관의 적극적인 의지와 행동이 뒤따라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 3월 14일자 문화일보 기사를 보면, 朴智元 문화관광부장관은 앞으로 도서관을 지식정보화의 핵심시설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도서관정보화종합계획”을 발표했는데, 정부는 올해부터 2002년까지 총 3,068억원을 연차 투입, 2003년 이후에는 각  가정에서 PC를 통해 전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 목록은  물론 목차ㆍ원문 내용까지 열람할 수 있는 디지털도서관시대가 열린다고 공언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안방자료실”을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 안에 381개 공공도서관을 포함한  전국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9,700만권의 목록과 주요문헌 100만권의 목차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하며, 2001년부터는 학술자료 및 보존가치가 높은 자료 30만권에 관한 자료와 원문도 찾아볼 수 있도록 한다고, 그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시하고 있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는 국민정부의 “도서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데 대해서는 도서관인의 한 사람으로서 크게 환영할 말이기는 하나, 한편 필자는 이 기사를 읽고,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 시급한 것은 각 지역사회마다 문화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을 많이 세우는 일이 우선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유령의 집 같은 공공도서관을 선진국의 도서관처럼 쾌적한 환경과 내실을 기해 ‘문화공간’답게 정부예산의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은 정보나 터뜨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1세기를 선도하려면 단지 정보를 빨리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 분산되어 있는 정보를 “의미 있는 지식으로 결합”시키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창조성(Creativity)과 독창성(Originality)의 바탕이 있어야 한다.

 

4. 결어 및 제언

IMF이후, 도서관마다 예산은 삭감되거나 동결되어 더욱 침체의 늪에 빠져있고, 지역사회마다 도서관은 절대 부족하여 그 설치에 힘써야할 시기에 그런 것엔 아랑곳하지 않고, 무슨 비용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도서관 전산화만능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도서관계의 현실이 안타깝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도서관문화’는 아직 사회전반에 〈대문화〉로 자리를 잡지도 못한 채 시들어가고만 있는 마당에, 디지털문화의 강풍으로 더욱 〈소문화〉로 밀려나고 있는 추세이다.

김구선생은 “우리가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현재 불행한 근본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정신을 배양하는 길은 오직 문화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김구선생의 말씀처럼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의 ‘도서관문화의식’을 높이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도서관문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한국도서관협회 기관지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圖書館文化’란 간행물이 엄연히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 ‘도서관문화’가 없다고 하는가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 ‘圖書館文化’ 간판은, 국민속에 〈大文化〉로 자리잡지 못하고 〈小文化〉로 겨우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서관협회」만 해도, 1946년 「조선도서관협회」로 발족했으나, 6?5전쟁으로 해산되었다가 1955년 4월에 「한국도서관협회」라는 명칭으로 창립총회를 갖게 되었는데, 사무실이 없어 국립중앙도서관내에 두었다. 그후 4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국립중앙도서관 셋방살이 신세를 면치 못한 초라한 모습이다.
전국도서관계의 대표기관인 한국도서관협회가 아직까지 독립건물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겹살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만 봐도 우리 도서관계의 무기력하고 침체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상징물이기도하다.

「미국도서관협회」(ALA)는 1876년에 창립, 록펠러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의 원조 뿐 아니라 여러 재벌들의 후원을 얻어, 미국 도서관 문화의 상징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이것은 미국인의 높은 도서관에 대한 문화의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인터넷 신드롬에 빠져있는 사람들에 의해 “전통도서관해체론”까지 나왔다는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과연 그럴까.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는 모든 자료가 활자매체에서 전자매체로 될 것인가. 읽고 쓰기로 대표되는 고전적시대의 종말을 가져올까. 마치 책의 전성시대가 끝나고 읽기와 쓰기를 통해 어떤 최종적 진리에 도달할 것이라는 오랜 꿈마저 깨질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 독서는 Computer Screen을 통해 읽는 사람과 종이책을 통해 읽는 사람에 따라 종국엔 지식격차를 낳는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이다.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우리 도서관계는 전통도서관문화와 디지털도서관문화와의 충돌로 삐걱거리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엔 디지털도서관문화가 〈소문화〉로 끼어들더니, 어느새 전통도서관문화를 밀치고 〈대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서관문화의 변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전통도서관문화와는 상호 공존공영(共存共榮)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마이클 버클렌드(Michael Buckland)는 도서관을 ‘종이매체도서관’(The Paper Library), ‘자동화도서관’(The Automated Library), ‘전자도서관’(The Electronic Library)으로 구분하였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종이매체도서관’은 자료와 서비스가 모두 종이 Technology로 이루어지는 도서관을 말하며, ‘자동화도서관’은 자료는 기본적으로 종이매체이지만 서비스는 컴퓨터화된 도서관으로 운영하며, 그리고 ‘전자도서관’은 자료가 전자형태로 저장되어 있고, 서비스는 컴퓨터화된 도서관으로 운영하는 체계를 말한다.

마이클 버클랜드의 주장처럼 모든 도서관을 세가지 형태로 경계선을 긋고 구분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 도서관도 이러한 세가지 형태의 기본 틀을 가지고 각 도서관의 목적과 규모, 특성에 따라 도서관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모든 도서관이 디지털 도서관이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전통적인 종이매체도서관을 유지하는가? 왜 우리는 디지털도서관으로 가야만 하는가? 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할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테두리 위에서 상호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