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그녀를 도서관계의 ‘작은 거인’이라고 부른다. 작고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그녀가 우리나라 도서관계에 남긴 족적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무후무하게 장기집권한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30여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장을 맡았다. 그러나 그녀가 도서관에 바친 열정은 단지 일개 대학도서관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전쟁 이후 엄대섭 선생과 함께 한국도서관협회를 다시 일으켜 세웠으며, 근대적 도서관 학문을 도입하고 한국도서관학회를 창설하였으며, 국제적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도서관계의 위상을 향상시켰다.

이봉순 선생은 삼일운동이 일어난 1919년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용정 명신여학교와 함흥 영생고녀에서 모윤숙, 임옥인 선생 등에게 사사하고,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그녀가 도서관과 첫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사서가 되면서부터였다. 1951년 미국무성 교환 유학생 자격으로 인디애나대학에 유학, 도서관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그녀는 신재숙 선생에 이어 우리나라 도서관학 석사 2호가 되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녀가 기억하는 말이 있다.
 

“도서관인이 되려거든 책을 좋아한다고 하지 말고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라”
 

이것은 당시 오리엔테이션 과정에서 만난 일리노이대학의 로버트 다운즈 학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다운즈는 문헌정보학이라는 미지의 학문을 배우러 온 아시아의 작은 여학생에게 도서관 기능 중에서 독자에게 봉사하는 기능이 가장 으뜸이라는 것을 이렇게 일깨워 준 것이다.

귀국 후인 1954년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재건을 맡으면서, 시인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던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도서관쟁이’의 길로 바뀌게 되었다.

그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해도 좋을 만큼 한국전쟁으로 피폐된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을 재건하였다. 장서 확충과 이용서비스 개선에 노력하는 한편, 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사서 양성교육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총장을 설득하여 대학과정에 도서관학 강의를 개설하는데 성공하였다.

1955년 신학기부터 도서관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3학년생 20명을 대상으로 2년간 12학점을 취득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이화여자대학교는 우리나라에서 도서관학을 대학의 정규과목으로 채택한 국내 최초의 대학이 되었다.

이 과정은 연세대학교의 정규학과 개설에 이어, 1959년 학부에 4년제 도서관학과와 대학원과정이 신설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녀는 도서관사에 길이 남을 이러한 역사적 사실조차, 학문적인 것이라기보다 도서관을 운영하려다 보니 사람이 필요하여 “단지 필요에 의해서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 한다.

선생은 1954년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장직을 맡으면서 1996년 사회과학도서관장직을 마지막으로 도서관 현장에서 은퇴하기까지 도서관인으로서 이 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나 도서관인으로의 삶뿐 아니라 번역가이며 시인이자 한국 여성들의 본보기가 되는 현모양처로서도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녀가 번역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당시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였으며, 시집 『반딧불』로 문단에 데뷔하여 문인으로서도 폭넓게 활동하였다. 1984년에는, 학문에 조예가 깊고 서화에도 능한 천부의 예인(藝人) 사임당 신씨의 부덕을 기리는 사임당상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한국 도서관사에서, 특히 현대적인 도서관 개념이 도입되고 발전된 20세기 중후반기에 그녀가 우리나라 도서관에 미친 영향은 지극히 크다. 국내 최초로 도서관학을 대학의 정규과목으로 도입하여 위상을 높였고, 당신은 미국에서 도서관학을 배웠지만 수입된 언어로 논하는 학문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 맞는, 우리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학문으로서 한국적인 도서관학을 모색할 것을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도서관의 현대화에 기여하고, 도서관은 이러해야 한다며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본보기로서 ‘책 100권을 쓰는 것보다 나은’ 대학도서관을 건립하였다.

이는 기능이 형식에 우선해야 한다는 도서관 건축에 대한 뚜렷한 철학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80년대 후반 대학도서관 개혁운동을 벌이던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이대 도서관 견학 후 잔디밭에 나와 앉아 부러움과 억울함, 분노가 섞인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사실이다.

지난 2005년에는 선생의 이러한 업적을 기리어 보관문화훈장이 수여되었다. 도서관인으로서 문화훈장을 받는 것은 박봉석, 엄대섭 선생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이다.

앞으로 이봉순 선생이 우리를 이끌며 꾸짖어 주기는 어려울지라도 그 분이 후배 도서관인들을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영원한 ‘도서관할머니’가 뜨거운 열정으로 지핀 도서관을 위한 불씨가 영원히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