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아는 영화 중 ‘쇼생크 탈출’은 스티븐 킹의 연작소설 사계(four seasons) 중에서 봄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스티븐 킹은 우리에게 흔히 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매력은 사계와 같은 보다 서정적인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특히 이 연작소설은 그 소재와 작품성으로 인해 영화화된 것이 많아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스티븐 킹은 어릴 적 집 주변에 있는 공공도서관을 자주 다녔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의 작품 곳곳에서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단상들을 만날 수 있으며, 도서관에서 겪은 체험이 상상력과 결합하여 만들어낸 판타지가 독자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어릴 적 읽고 싶었던 성인책을 맘껏 빌리게 되었을 때의 즐거움, 항상 무뚝뚝해 보이는 할머니 사서에 대한 느낌, 연체한 도서를 받으러 집을 찾아 온 ‘도서관 경찰’에 대한 두려움 등은 이러한 경험이 아니고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공공도서관을 이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곳에 가서 책을 대출하고 읽음에 그치지 않는다. 어린 아이가 느끼고 체험하는 것은 성인이 된 후에 경험하는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크기와 무게로 다가와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이 되며 큰 영향을 준다. 독서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자 간접 체험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주는 훌륭한 스승이 되어준다.

얼마 전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구당 월별 도서구입비가 1만원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독서의 몰락이라고 한탄하는 소리도 높다. 그렇지만 공공도서관에서 보는 상황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도서관의 여러 가지 이용률 중에서 도서를 대출해가는 대출이용률이 한 해가 다르게 늘어나는 것은 분명 독서에 대한 열의가 존재함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은평구립도서관은 개관한 지 5년이 되었다. 은평구에 단 하나뿐인 도서관이라는 특성상 개관 후부터 이용률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무엇보다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요즘 같은 방학기간에는 자료실, 열람실이 무척이나 붐비며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도서관 이용자가 늘어난다. 학생뿐 아니라 학교에서 배포하는 도서목록을 들고 찾아오는 학부모들도 많기 때문이다.

은평구립도서관에는 주민들에게 책을 대출해 주는 종합자료실과 어린이열람실이 있다. 종합자료실은 성인과 청소년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고 대출해주며 올해부터는 청소년 코너를 만드는 등 이용자의 편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어린이열람실은 모자열람코너를 만들어 유아들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소장 자료 모두 대출이 가능하다. 여느 공공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도서관의 열기는 가히 놀랄 만큼 뜨겁다.

이렇듯 독서와 도서관의 중요성을 알고는 있지만 현재 많은 보완점들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흥미를 느끼는 바를 찾기 위해서는 특정한 책을 구입해서 읽는 것도 좋겠지만 먼저 다양한 책을 접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접하면서 책을 선택하는 안목이 길러지고, 이런 과정들 속에서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경험들을 간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체험을 위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은 당연히 공공도서관이 되어야 할 것이나 우리의 현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우리 도서관을 찾는 주민들 중에는 난생 처음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닌 듯싶다. 나도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도서관이란 곳을 경험하지 못했고, 공공도서관도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면서 이용하기 시작했으니 도서관을 접하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닌 듯싶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도서관을 경험할 수 없다면 부모님이 공공도서관을 이용하게 지도해 주어야 하지만 우리의 여건은 도서관을 엄마, 아빠 손을 붙잡고 산책하듯 이용한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공공도서관이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서관을 방문하기가 매우 어렵다. 더구나 공공도서관의 위치는 어떠한가? 우리 도서관부터도 최근 설립된 도서관 중 접근성이 낮은 도서관으로 꼽힐 만큼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다. 또 좁은 골목을 꾸불꾸불 돌아서 도착하는 곳이기 때문에 차량을 이용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그런데도 도서관의 이용이 점점 증가하는 것은 그동안 주민들이 독서에 목말랐다는 반증일 것이라 여겨진다.

방학기간에 서점을 찾으면 일단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숫자에 놀라곤 한다. 물론 서점들이 독자들의 편의를 고려하여 안락한 의자를 갖추는 등 안락함을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서점은 도서관이 아닌 책을 구입하는 곳이다. 공공도서관이 태부족한 상황에서 책을 마음 놓고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이 아닌 서점이라는 현실이 공공도서관에서 근무하는 한 사람으로써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

공공도서관의 자료구입을 보더라도 예산은 한정되어 있지만 현재 도서관에서 제공해야 하는 자료는 예전처럼 책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멀티미디어의 경우 단순히 콘텐츠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 기기가 수반되어야 한다. 예산이 집행될 수 없으면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개발한다고 해도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 도서관계에서 예전부터 끊임없이 역설하고 있는 사서직원의 부족문제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자료가 갖춰져 있어도 이용자가 자료를 이용하기까지 도서관에서 얼마의 수고가 필요한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수행해 낼 사서의 부재는 부실한 도서관을 만들게 되고 이는 바로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이용자가 부실한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는 것이다.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에서 정해 놓은 사서 수는 가이드라인으로 가장 최소한의 직원 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 지켜지는 경우가 드물고 서울보다 지방의 여건은 더욱 열악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해결되어 책이 읽고 싶다면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고, 산책을 나갔다가 혹은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책 한 권 빌려올 수 있는 도서관이 동네 곳곳에 있는 날이 온다면 더욱 행복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날은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을 기울여야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공공도서관이 지역민에게 마음의 양식을 공급하고,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평생교육의 역할을 해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아마도 한동안은 공공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명감을 무기로 힘든 여정을 헤쳐 나가야겠지만, 이 길이 결코 외롭지만은 않은 것은 공공도서관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의 후원자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