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 개관 60주년' 특집

윤인현ㆍ대진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국립중앙도서관 개관 60주년을 축하하는 글을 쓰면서 제목을 '물'이라 붙인 것은 독자의 시선을 끌어보려는 의도이다. 정보의 홍수라는 시대에, 또 한 잔의 물을 생산하는 것 같아서 기왕에 생산하는 물이라면 내 것을 한번 마셔 보시라는 뜻이다. 한 모금 입에 넣었다 뱉어버릴지, 아니면 향긋한 차를 마시듯 코로 입으로 음미하면서 마실지, 혹은 단숨에 다 마셔버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은 도서관이나 책과는 상극처럼 느껴진다. 도서관에 습기가 차거나 책이 물에 젖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는 평소에 문헌정보학이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설명하면서 물을 정보나 지식 또는 책과 비유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 편의 글을 한 잔의 물과 비유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권의 책은 한 바가지의 물이라 할까.

Hydrology라고 일컫는 학문이 있다. 이는 水文學으로 번역되어 '물의 순환을 중심적 개념으로 하여 자연계의 물을 연구하는 과학'이다. 이에 빗대어 문헌정보학이란 '정보의 순환을 중심적 개념으로 하여 인간 사회의 정보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은 그냥 증발하기도 하고 흘러가면서 증발하기도 하고 바다에 이르러 증발하기도 한다. 구름이 되기도, 이슬이 되기도, 비나 눈이 되기도 한다. 그랬다가 다시 땅으로 되돌아 와, 땅속으로 깊이 흐르는 지하수도 되고 지표수도 되며, 어디서 흘러나오는지도 모르는 샘물이 되는가 하면, 동식물을 키우거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물이 되기도 한다.

일상 생활하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은 눈에 보이지도 않게 증발하고 있는 물과 같을 것이다. 어느 학자가 연구를 거듭했으나 그 결과가 출판되지도 못한 채 죽었다면, 또는 어떤 수도자가 깊은 산속에서 도통하여 진리의 깨달음이 있었다면, 이는 깊은 산 신선한 숲 속에서 영롱하게 맺혔다가 사라져간 신선한 이슬방울과도 같을 것이다.

매스컴을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나 심금을 울리는 노래나 춤사위는 무슨 물에 비길까. 갈증이 날 때 마시는 생수이거나 운동을 마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의 수분과 견주면 어떨까? 우리가 고전은 마음의 양식이라 하여 독서 권장의 기본으로 삼는데, 이는 오염 없는 산속에서 사시사철 유량의 변화 없이 샘솟는 약수라 한다면 어색한 대응일까?

바닷물도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샘물이 되고 이슬이 되듯 세상을 순환하는 것이다. 생각ㆍ지식ㆍ정보도 마찬가지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이다. 생명체가 자라고 생명을 유지하도록 물이 끊임없이 순환하듯이.

그러면 국립중앙도서관은 우리나라의 소양강댐이라고 비기면 될까. 아니 그보다 더 큰 댐이라야 할 것이다. 곳곳에 있는 공공도서관은 저수지라 하고, 대학도서관은 큰 마을에 위생적인 시설을 잘 갖춘 공동 우물, 마을문고는 아쉬운 대로 파놓은 우물, 도심에 있는 독서실은 유료 샤워실, 도서와 비디오 대여점은 공중목욕탕으로 비유하면 어떨까?

국립중앙도서관이 큰 댐이라고 한다면 이 수자원을 다목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물이라면 수질을 관리하여 우리들에게 좋은 물이 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상수원이 깨끗해야 수돗물도 깨끗하고 몸에도 좋을 것이다. 상수원의 수질을 개선해야 한다. 물을 운반하는 관도 깨끗해야 한다. 오늘날 이를 운반하는 관은 인터넷 선로이다. 분류와 편목이 잘된 자료를 식수라 하자. 그 식수에도 여러 수준의 계층이 있을 수 있다.

나라가 수자원을 관리하기 위해서 수자원공사를 두었다면 국립중앙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정보자료는 수자원이고 이를 관리하는 행정조직은 수자원공사인 셈이다. 그래서 국립중앙도서관은 국가의 대표적인 댐인 동시에 이에 유입되어 있는 수자원을 관리하는 수자원공사이기도 하다.

수십 명의 분류편목 전문가가 앉아서 매일 같이 고뇌하면서 수시로 KDC와 KCR의 보완 재료를 축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과 협력하는 전산전문사서가 있어서 KORMARC 형식과 기술규칙을 더 명쾌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도서관협회는 국립중앙도서관이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변함없는 지지자가 되어 정치적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KDC니 KCR이니 KORMARC는 학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학자처럼 연구하는 실무자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댐에서부터 수질관리가 잘된 물이 공급되어야 하지 않을까?

도서관인이 아닌 보통사람들이 도서관을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예컨대 학교도서관 운영에 관련이 있는 학교 선생님 중에서는 간혹 도서를 외관상 보기 좋게 책의 색깔이나 크기별로 배열할 수는 없는가 하는 제의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감독 관청의 시각을 염두에 두어.

그런데 이 수준이 우리 국가가 국립중앙도서관을 보는 수준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아마도 우수한 인력과 재정적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고 해도 국가는 꿈쩍도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좋은 물만 마셔도 사회는 건강해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단백질과 지방과 탄수화물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도서관이라는 댐의 수질관리의 중요성은 항상 열량을 계산하는 건강상식에 밀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힘겨운 환경에서 우리 도서관인은 항상 물이 삼라만상을 윤택하게 하는 근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삼대 영양소가 인간의 활력을 내는 요소인 줄은 안다. 그러나 인간은 적당한 양의 영양소를 섭취하되 좋은 물을 섭취하여, 혈관의 피가 원활히 순환되고 맑은 정신이 나도록 해야 하며, 7~80%가 수분으로 이루어졌다는 인체가 깨끗한 수분으로 가득하도록 해야 하리라.

경제도 건전하게 살리면서 환경과 수질을 중요시하는 위정자가 나타나고 물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행정가가 수두룩하게 포진하는 그날을 기대하면서, 60년간 고군분투한 국립중앙도서관의 노력에 감사드리며, 비록 메아리 없는 함성일지라도 우리의 임무가 수질개선과 원활한 순환일진대, 우리들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