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 개관 60주년' 특집

김휘출ㆍ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 팀장


국립중앙도서관을 드나들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만약 우리나라에 테러가 예상된다고 한다면 국립중앙도서관도 출입통제 대상이 되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생각은 미국의회도서관을 방문하고 난 다음부터 생긴 의문이다. 미국의회도서관을 방문할 경우 출입카드가 없는 사람은 철저한 보안검색을 당한 다음에 출입이 허가된다. 미국의회도서관 출입구에서 보안검색을 당하는 순간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이 도서관에 들어가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도 생기지만 들어가 보면 왜 보안검색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그곳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미국재산목록 1호'라는 생각이 금방 들게 된다. 서가에 정렬되어 있는 수많은 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곳의 학문탐구를 위한 분위기가 조금 전에 보안검색을 받으면서 느낀 어색한 기분을 금방 잊게 만든다.

도서관은 인류의 지식을 보관하고 전달하는 순수한 목적도 있지만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에게 학습 분위기를 전달하는 기능도 한다. 그래서 도서관 이용자들은 도서관에 들어오는 순간, 인류가 쌓아온 지식의 풍성함에 일부분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고 나아가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게 된다. 또한 어떤 종류의 영감을 기대하기도 한다. 천장이 둥글고 크고 벽은 서가로 둘러싸여 있고 조명이 조용하면서 위엄이 있는 방에서 책을 펴고 있으면 지식의 풍족함에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를 우리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다. 글쓴이만 느끼는 감정인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국립중앙도서관은 조용하고 위엄이 있는 느낌과는 거리가 있다. 조명과 서가 배치, 바닥, 천정, 책상 배치 등에서 안정감을 찾기가 어렵고 학문탐구를 위한 분위기가 우러나지 않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 국력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학문탐구를 위한 분위기를 기대하는 것이 사치일까?

선진국들을 맹추격하고 있는 대한민국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창조성이다. 모방으로 국가 경제를 일으키는 시대는 지나갔다. 창조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 습득과 동시에 자유로운 사고가 보장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사고를 위해서 도서관만큼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신분의 차이가 있지만 도서관 안에서는 누구나 같은 책을 사용할 수 있고 어떠한 자리도 제한이 없다. 누구든지 도서관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지식을 탐구하는 탐구자로서 모두가 평등하게 대접받는다. 도서관은 지식탐구를 통하여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고차원의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사고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요구하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닐 것이다.

미국의회도서관의 내부 벽에 "In Books lies the souls of the whole past time." 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듯이 인류의 삶과 정신으로 가득한 미국의회도서관은 현재의 미국을 대표하는 건물이 되었다. 이렇게 미국의 대표적인 건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장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건물에 들어가면 학문을 탐구하고 싶은 욕망이 저절로 나오게 하는 분위기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된다.

이용자들이 책상에 앉으면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책들이 둘러싸여 있고 그 자리 옆에는 위인으로 추앙받는 분들의 흉상이나 동상이 배치되어, 조상들이 마치 내가 지금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나를 배워라' 하는 자세로 서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분위기는 조상들의 지혜를 이어받고 나의 창조성을 계발하는 최적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평생학습을 지향하는 오늘날은 정규교육을 마치고 난 후에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 온다. 특히 국립중앙도서관에 오는 이용자들은 억지로 공부를 하는 수험생들이 아니다. 공부가 좋아서 오는 사람들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바로 공부가 좋아서 오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과 분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물론 모든 도서관들에 이러한 분위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으로 모든 도서관들에 적용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한국의 상징물로서 국립중앙도서관만이라도 이러한 공간과 분위기가 필요하다.

최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도서관이 점점 첨단기술로 무장하면서 전통적인 도서관의 공간적인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도서관이 새로운 정보기술과 전통적인 지식 자원들이 서로 묶여져 있는 장소라는 개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의 지식에서 창조되기 때문에 기술이 발전할수록 조상들의 지혜가 필요하고 그 지혜를 느낄 공간은 더욱 필요해진다.

국립중앙도서관은 국가문헌의 총 집산처로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학문 탐구자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창조적인 지식이 많이 계발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이용자들이 보안검색을 당하고도 도서관에 들어가야 할 이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