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발자취


글 ㅣ 조재순ㆍ국립중앙도서관 사서

  

오늘날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는 책, 마이크로필름 및 피시,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CD, CD-ROM, DVD 등 다양한 매체로 구성되어 있다. 새로운 매체가 기억 용량의 대량화, 간편한 휴대성 등 다양한 장점을 무기로 계속 발명되고 있으며, 도서관에서는 그러한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그것을 어떻게 수집하여 소장하고 이용자에게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인터넷 등 온라인 디지털 자원의 보존을 위한 웹 아카이빙에 대한 논의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에는 네트워크의 눈부신 발전으로 도서관 장서에 대해 소장의 개념보다 접근을 중시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도서관 소장 자료의 대부분은 종이에 인쇄된 책자이다. 종이는 AD 105년 중국의 채륜에 의해 발명되었고 서양에 종이가 전해진 것은 이른바 '종이의 천년 여행'이 지난 12세기에 들어서였다. 종이 이외의 다른 매체들의 수명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10년, 30년까지 보존 가능하다느니, 그 수명이 5년으로 단명하기 때문에 다른 매체에 그 컨텐츠를 옮겨 담아 보존해야 한다는 등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한다. 사실 어림잡아 추정한다 하더라도 종이만큼 수명이 긴 매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종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매체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사용된 서사 재료는 매우 다양하다. 아주 오랜 옛날 중국인들은 죽간(竹簡), 목독(木牘)이라 불리는 대나무나 나무에 글을 썼다. 죽간, 목독은 종이가 발명되기 전 중국에서 약 2000여 년 동안이나 보편적으로 사용된 서사 재료이다. 서양에서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점토판(clay tablet), 파피루스(papyrus), 납판(蠟板), 양피지(parchment) 등이 주요 서사 재료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점토판은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그 주변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설형문자를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기원전 4천년부터 2~3세기까지 사용되었다.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 나일강의 비옥한 델타에서 많이 자라던 갈대의 일종으로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는 기원전 3500년경의 미이라에서 발견되었다. 고대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70만 권의 파피루스 문서가 소장되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양피지(parchment)는 양, 염소, 소 등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재료로 기원전 500년경에 최초로 사용되었으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그 밖의 서사 재료로, 동양에서는 귀갑(龜甲), 수골(獸骨), 동(銅), 철(鐵), 연(鉛), 석각(石刻), 옥(玉), 도기(陶器) 등을, 서양에서는 수엽(樹葉), 수피(樹皮), 심지어는 인피(人皮)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독일의 드레스덴 도서관에는 인피로 된 한 권의 역서(歷書)가 있고, 비엔나에서도 한 권의 인피본(Mexico 歷書)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현재 약 50권의 인피본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종이 발명 이전의 이러한 서사 재료들은 보존성은 뛰어나나 내구성과 운반성이 약하다든지, 값이 비싸고 한정된 재료로 구하기 어렵다든지 하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종이의 발명에 앞서 인류가 사용해 오던 서사 재료는 모두 서사 재료로서의 필요조건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 것으로 인류는 끊임없이 우수한 서사 재료 개발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마침내 획기적인 종이의 발명으로 인류 문화 발전에 절대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난 9월 2일, 제1회 유네스코 직지상(UNESCO / Jikji Memory of the World Prize) 시상식이 청주에서 열렸다. 그 첫 번째 영예는 체코국립도서관에 돌아갔고, 청주시는 '직지'의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그 상장 제작에도 심혈을 기울여 제작비만 약 600만원을 투입했다고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직지'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으로 그 정식 명칭은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로 흔히 '직지' 또는 '직지심체요절'이라 불린다. '직지'는 고려 우왕 3년(1377년) 7월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책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한 권의 책이 197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도서의 해"에 출품되면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서 세계적 공인을 받게 된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활판 인쇄술은 독일 마인쯔의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에 의해 1455년경에 발명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 있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구텐베르크보다 약 70년이나 앞서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활판 인쇄술이 발명되었고 우리나라가 인쇄문화의 선진국이었음이 입증되었으며, 이른바 구텐베르크의 발명은 엄밀히 말해서 발명이 아닌 '보급'으로 새로이 자리매김 되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은 결국 일부층의 이용에만 한정된 종교서적이었을 뿐 대량생산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였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본 또한 처음에는 성서와 같은 종교서적을 인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필사본처럼 보이도록 교묘하게 인쇄하기 시작한 구텐베르크의 성서는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성서를 보급하면서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었던 문자해독 능력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인류의 정보혁명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한 종교개혁을 자극하는 촉매 역할을 하였으며, 인쇄의 대상을 종교서적만이 아닌 성(聖)에서 속(俗)으로 전환시켜 세계적인 인쇄혁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종이 매체 이전에도 여러 가지 서사 재료들은 많았다. 그러나 종이의 발명과 더불어 인쇄술의 발명이 '근대' 사회의 형성과 도서관에 미친 영향은 가히 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도서관에서는 종이 이후에 마이크로자료, 전자자료 등 새로운 매체가 출현할 때마다 종이는 소멸하게 될 거라는 예측과 위협에 늘 직면해야 했으나 종이 매체는 여전히 건재하다. 정보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인터넷과 네트워크의 보급으로 도서관에서의 종이 매체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이 당대 세계 최고의 인쇄문화 선진국이었고 그 문화 인프라의 기초가 오늘날 IT강국의 뿌리로 이어져 오고 있음을 생각할 때, 우리 도서관 문화에서 종이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매체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매체와 함께 공존해 나갈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