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국립중앙도서관 개관 60주년을 축하한다. 굴절 많은 우리 근현대사와 함께해 온 도서관의 역사가 어느새 60년이 되었다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도서관을 지켜온 많은 분들께 격려의 인사를 전한다. 앞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모습에 대해, 외국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하던 시절의 소회를 더듬어 보며 축사에 갈음하고자 한다.      

1980년대 초에 처음으로 해외에 나갔던 필자는 해외에 있는 한국 관련 자료 수집에 열중해 본 적이 있다. 그 중에는 물론 한국사 관련 자료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한국교회사 관련 자료였다. 이것은, 그 무렵 한국교회가 1984년에 선교 100주년을 맞는다 해서 거기에 발맞춰 역사 연구열이 한참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한국교회사 관련 자료를 수집한다는 것이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유가 있다. 그 때만 해도 한국교회사 관련 자료는 한국인이 남긴 자료보다는 한국에 선교하러 왔던 외국인이 남긴 자료가 많았다. 그런 자료들은 주로 해외 선교기관이나 도서관ㆍ문서보관소 등에 소장되어 있었다.

필자가 해외에 나가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몇 년간 대학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럴 때에 마침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의 초청을 받아 유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필자가 돌아본 곳은 주로 교회사 관련 자료를 소장한 곳이었지만 일반 대학도서관도 있었다. 프린스턴 신학교 도서관을 비롯하여 필라델피아 소재의 미국 북장로회 소속 장로교사료협회(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와 노스캐롤라이나 소재 남장로회의 역사재단(Historical Foundation), 드류 대학의 감리교고문서관(Methodist Archives), 예일대학 신과대학의 도서관(Day Mission Library), 캐나다 토론토대학 안의 연합교회고문서보관소(United Church Archives), 대영성서공회(BFBS)고문서관과 스코틀랜드성서공회(NBSS)고문서관 등 교회사 관련 자료가 소장된 곳과, 미국 의회도서관을 비롯한 하버드ㆍ예일ㆍ프린스턴ㆍ하와이ㆍ버클리ㆍ스탠포드 대학 도서관 등과 뉴욕공공도서관(Public Library)과 영국의 캠브리지대학 도서관 등 그 밖에 여러 도서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우선 필자는 외국의 도서관이나 문서보관소가 우리나라와 관련된 문서들을 그렇게 많이 보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매우 놀랐다. '장로교사료협회'는 현지에 파송된 선교사들과 선교본부의 총무 사이에 오간 편지ㆍ보고서 등의 문서들은 물론이고 당시 현지에서 간행되었던 팸플릿 등을 거의 보관하고 있었다. 간혹 눈에 띄는 것은 선교사들이 자기 가족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들도 이런 공공기관에 보관해 놓았다는 것이다. 선교사로 나간 자식이나 친척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잘 모아두었다가 더 이상 보관하기가 힘들게 되자 그것들을 공공기관에 기탁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가져온 여러 종류의 물품들도 간혹 보였다.

한국 관련 문서들은 선교사들이 보낸 것만 보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을 방문하거나 한국에 관해 쓴 기록들도 그런 곳에 가서 발견할 수 있었다. 가령 1832년 한국을 방문한 귀츨라프의 기록이 담긴 당시의 잡지가 있었던 것도 한 예다. 이런 책들은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 정도로 마모가 심한 형편이어서 복사하는 것은 더구나 힘든 상태에 있었다. 또 뉴욕 공공도서관에는 한국에 처음으로 공사관 공의로 왔다가 수년 후에 미국공사로 승격했던 알렌(H.N.Allen)의 문서가 있었다. 그걸 복사하려다가 1매당 3달러를 내라는 바람에 몇 장밖에 복사하지 못한 기억도 선하다.

최근에 몇 번 들렀던 미국 문서관리청(National Archives)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아마도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가장 활용도가 높은 기관의 하나일 것이다. 19세기 말 한미관계가 이뤄진 이후의 공식적인 문서가 이 곳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한국전쟁 때에 노획한 북한문서들이 소장되어 있어서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 북진 때에 미군이 북한의 관공서 등에 보관되어 있는 이들 문서들을 트럭채로 옮겨 미국으로 가져간 것이다. 전시 중에 일어난 일이라 항의도 못하고 돌려달라는 소리는 더구나 못 하는 형편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문서를 비싼 예산을 들여가며 한국의 여러 정부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복사해 오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예산의 낭비는 물론이고 외국인에게 비친 국가의 질서가 어땠을까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걸 보면서 느낀 것이 많다. 가끔 한국전쟁 때에 무용담을 자랑하는 장군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북진 때에 자기가 어느 곳을 먼저 공격했고 먼저 '점령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앞 다투어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 곳에 들어가 앞으로의 행정을 위해서는 그곳 문서를 잘 보관해야 한다거나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아야 한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미군들은 그런 문서와 문화재를 반출했던 것이다. 작전권이 미군에 귀속되어 있었던 저간의 사정을 감안한다면 얼마든지 변명이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허술하게 문서가 반출되었다는 것은 냉엄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지만, 독일이 2차대전 중에 아예 문화재 약탈을 목적으로 침략군을 부대 편성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한국 전쟁 때에 북한군도 남측의 중요한 서적과 문화재급 물품들을 북쪽으로 옮기려다가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도 알고 있다. 전세가 갑자기 역전되어 준비를 못한 채 물러나야 했기 때문에 그나마 중요한 문화재들이 남쪽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남북한은 당시 나름대로 통일을 의식하면서 그런 문서나 문화재들을 제자리에 그냥 두려고 했던 것 같았지만, 미군은 이들을 전리품으로 생각하고 그것들을 반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외국 도서관과 문서보관소를 돌아보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것은 사서들의 전문성과 그 역할이라고 할 것이다. 필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목록을 통해 원하는 것을 찾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서들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친절하게 이 도서관 안에 그 자료의 소재 여부를 먼저 알려 주고, 이 도서관의 어느 자리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소상하게 말해 주었다. 그들은 그 넓은 도서관의 구도와 내용물을 머릿속에 다 넣어 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만약 그런 자료가 그 도서관에 없을 경우에는 다른 곳의 소재처를 가르쳐 주고 꼭 필요하다고 하면 자기들이 구해서 수요자에게 건네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그것을 보면서 사서의 전문성이란 바로 저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이들 도서관과 문서보관소 및 사서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덕분에 필자는 당시 많은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었고 그 자료들을 토대로 학문적인 성과도 크게 거둘 수 있었다. 필자의 학문적인 성과를 거두게 된 이면에는 그들 도서관과 사서들의 역할이 일정하게 있었음을 생각하면서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 문화가 발전하면서 문서의 종류는 아주 다양해지고 급변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도서관과 사서의 기능 또한 거기에 따라 다양해지고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런 때에 수요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켜 준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다양화하고 급변하는 변화 속에서도 우리 사회의 발전과 창조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도서관의 기능과 사서들의 전문성은 더욱 더 빛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