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도서관계를 클릭하시면 목차로 돌아갑니다△

한국십진분류법(KDC)의 역사

조 재 순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세계 각국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도서분류법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한국십진분류법(이하 KDC)은 현재 국내의 거의 모든 도서관에서 동양서 분류에 채택하고 있는,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도서분류법이다. KDC는 1964년 5월 31일에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초판이 발행된 이후, 1966년, 1980년에 이어 1996년 8월에 제4판이 발행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KDC는 그 성격상 듀이십진분류법(DDC)이나 국제십진분류법(UDC)과 같이 열거형 분류법(계층분류법)이자 십진분류법에 속한다.

KDC의 역사는 40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표준 분류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해방직후부터 줄곧 있었다. 국립도서관의 박봉석 선생을 중심으로 한 조선도서관협회의 초창기 주요활동 중의 하나는 전국적인 통일 분류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결과, 1947년에 열린 도서관협회 총회에서 전국통일분류표의 제정이 결의되었고, 박봉석은 국립도서관의 장서 분류를 위해 만들었던 「東書圖書分類表」에 약간의 수정 및 첨삭을 가하여 같은 해 「조선십진분류표」를 발행하게 되었다. KDCP의 분류체계와 전개방식은 주류배열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조선총독부도서관 분류법과 가장 유사하며 그밖에 DDC, 일본십진분류법(NDC), 그리고 조선총독부도서관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정되는 교토(京都)대학도서관 분류법이 복합적으로 참조되었다고 한다.

현재 박봉석의 성을 딴 이니셜 P를 붙여 KDCP라 명명되고 있는 이 분류법은, 1957년도 한국도서관협회의 통계에 의하면, 당시 공공도서관의 71%, 대학도서관의 35%, 특수도서관의 14%가 사용할 정도로 그 채택률은 전국적으로 상당히 높았다. 그 후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초판 발행 이후 18년이 경과된 1965년에 이르러 KDCP를 수정·보완한 증보판을 발행하면서 그 이름도 「한국십진분류표」로 개제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1946년부터 동양서 자료에 KDCP를 적용해 왔으나 1983년을 기점으로 그 이후에 수입된 자료에 대해서는 KDC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동안 수정·보완한 KDCP를 동양서 분류에 오랫동안 적용해왔던 고려대학교중앙도서관이 2000년 7월부터 DDC를 수정한 분류표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현재 우리나라에서 KDCP를 사용하고 있는 도서관은 사라지고 말았다. 어떤 연구자는 KDCP를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적인 분류법으로서 평가하면서, KDCP가 초간된 지 불과 10년이 채 안 되어 그 채택률이 격감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하고, KDCP 자체의 기능적 결함, 초판 이후 개정작업을 하지 않아 발전하는 새로운 학문의 새 주제를 분류할 수 없었다는 점, 도서관학과나 도서관강습 등에서 DDC나 KDC만 교육하고 KDCP에 대한 교육은 등한시했다는 점의 세 가지를 이유로 지적하고 있다.  

한편, KDC의 제정은 한국전쟁 후 재결성된 한국도서관협회의 중심과제 중 하나였다. 도협은 분류위원회를 구성하고 1955년부터 KDC의 제정 작업에 착수하여 각종 분류법을 참고한 끝에 1964년에 출판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분류위원회의 보고에 의하면, KDC는 DDC를 비롯하여, NDC, 커터의 전개분류법(EC), 미국의회도서관분류법(LCC), 주제분류법(SC)과 KDCP 등을 참고로 하였다고 한다. 당시 도협 회장 민영규 박사는, KDC의 제정동기를 듀이의 十進分類法이 갖는 長點을 最大限으로 살리고, 分類記號의 配定과 順位의 次序에 있어, 그것이 우리에게 적용될 경우에 생길 不得已한 矛盾을 最小限으로 是正해서, 하나의 標準을 만들어 보고자 한 것이라고 그 초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분류의 역사는 도서의 역사와 거의 같다고 한다. 분류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700년경 앗시리아의 점토판 문서에도 나타난다고 하며, 기원전 260~240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의 칼리마코스(Callimachus)가 작성했다고 알려져 있는 피나케스(pinakes)는 저자별 분류목록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동양권에서는 기원전 6년에 중국 한나라의 해제서지 「七略」(劉歆 撰)이 주제별 분류목록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지식을 분류하고자 하는 시도는 고대부터 있었으나, 서지분류가 아닌 서가분류가 탄생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1870년 해리스(W. T. Harris)는 베이컨의 지식분류를 역순으로 전개하여 자료배가를 위한 분류표를 발표하였다.

그 후 1876년에 듀이는 0~9의 십진기호에 해리스의 분류체계를 적용시켜 DDC를 창안하였다. 1905년에는 DDC를 확충 전개한 UDC가 성립되었고,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DDC에서 아이디어를 빌린 각종 십진분류법이 등장하였다. 일본의 NDC나 우리나라의 KDC 또한 마찬가지이다. 1933년 인도의 랑가나단에 의해 분석합성형 분류표인 콜론분류법(CC)이 창안되기도 하였으나 근대 자료분류법은 DDC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KDC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분류법 또한 DDC이다. DDC는 LCC와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인 분류법으로 꼽힌다.
DDC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는 분류표로 현재 22판까지 간행되었으며, 지리구분에서 우리나라는 -5195(북한은 -5193)에 분류되어 있다. LCC는 1904년 EC를 기초로 하여 A(총류)~Z(서지, 문헌정보학)까지 20개로 분류한 세계 최대의 서가분류표이다. DDC와 더불어 KDC 제정에 많은 참고가 된 NDC는 일본국립국회도서관분류법(NDLC)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분류표이다. NDC는 1929년 모리 키요시(森淸, 1906~1990)에 의해 DDC와 EC를 참조하여 만들어졌다. 000(총류)~900(문학)으로 십진분류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지리구분은 -21인데 북한을 의식해서인지 「조선」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재 일본도서관협회에서는 2008년 제10판 발행을 목표로 개정작업을 추진 중이다. NDLC는 1967년에 서가분류를 위하여 만들어진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의 독자적인 분류표로 종전의 NDC를 대신하여 1969년부터 전면적으로 채용되었다. LCC처럼 로마자와 아라비아숫자를 조합한 혼합기호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날 온라인 또는 네트워크 환경하에서 분류는 필요없다는 주장이 간혹 들려온다. 그러나, 분류는 자료배가 역할 이외에도 주제검색의 중요한 수단이며 자료와 정보의 주제를 체계적으로 배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도구라 할 수 있으므로 그 필요성이 사라진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주제명이나 키워드에 의한 검색과, 분류에 의한 체계적 브라우징 검색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학문발전의 추세를 충분히 반영시킨 분류법의 개정 또는 전개 작업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