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적, 문화적 오지인 산골 마을, 도서관이란 이름조차 나와는 친숙하지 않았던 곳에서 초년기를 보냈다. 학창시절에 처음 만난 시골 학교 도서관에는 겨우 100 200권 안팎의 책들이 있었다. 그것도 듬성듬성 찢어지고 빛바랜 낡은 책들이 대부분인데다 몇 권 되지 않는 책들을 돌려가며 빌려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어쩌다 운이 좋아 내 차례가 돌아오면 역사소설이나 명상시집을 쉬지 않고 호롱불빛 아래에서 밤새워 읽던 기억이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가정형편으로 보아 그것은 오히려 호사했던 기억으로서 책의 소중함과 책읽기의 고귀함을 일깨워 주는 기회였으며, 그것이 오늘의 나를 출판인으로 있게 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제 삼복더위는 물러가고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수확의 계절이요,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 왔다. 예로부터 가을이 되면 은은한 등잔불 밑에서 귀뚜라미 소리 들어가며 신선한 바람을 벗삼아 독서삼매에 빠져 본 낭만과 추억을 간직한 사람이 무척 많을 것이다.

일년 중 책읽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계절적 감각을 고려하여 오래 전부터 도서관이나 출판업계에서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정하여 다양하고 알찬 책읽기 캠페인을 연중행사로 전개해 오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여유와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가을이면 오히려 독서 열기나 책의 판매가 감소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도서관이나 책을 멀리 하는 경향이 만연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말해 준다. 이는 청소년들의 여가가 컴퓨터를 매개로 한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게임 공간들로 몰리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이제 21세기는 지식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지방분권 시대가 열리면서 정부나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도서관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학교, 군부대, 어린이 도서관 등을 비롯한 각계의 도서관 건립운동과 장서의 확충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은 선진 21세기를 지향하는 지식 문화와 정보의 보고인 대표적인 기관으로서 꾸준한 장서 확충은 물론 디지털 콘텐츠의 자료 제공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도서관으로서의 순기능과 사회 문화적 역할을 제고시켜 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 수는 437개관으로 일본 2,600여 개관, 독일 9,300여 개관, 미국 9,000여 개관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도 아득하기만 하다. 국민 1인당 공공도서관 장서의 수만 보아도 우리나라는 0.56권, 미국 2.67권, 일본 2.35권,  프랑스 독일이 2권으로 우리나라에 비하여 3 4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정부에서도 2011년경이면 공공도서관 수를 750여 개관으로 늘린다고 하니 그나마 기대하는 바가 크다.

한편 우리 국민의 공공도서관 이용 횟수는 국민 1인당 연 1.82회로 2회가 채 되지 않는다. 이는 영국의 5.42에 비한다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것은 선진문화국가에 비해 도서관 수나 장서수가 그 만큼 열악하다는 얘기이고, 도서관 이용 횟수 역시 미미한 것으로서 도서관이 국민들의 생활 속에 친숙하지 못한 결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나라 도서관의 어려운 실상을 예로 든다면 대한출판문화협회를 비롯한 많은 회원 출판사들에게 일주일이 멀다 하고 도서 기증을 요청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헌책, 반품 책은 물론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보내 달라는 간절한 요청이다. 오죽하면 그러겠느냐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예산 지원이 가능한 도서관까지 이런 요청이 올 때는 우리나라 도서관 정책이 황당하게까지 느껴질 때가 있다.

이제 도서관은 입시나 취업을 위한 공부방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지식과 정보의 갈증을 충족시켜 주는 옹달샘과 같아야 하고, 보다 많은 국민이 그 어느 곳보다도 발길을 옮기고 싶은 곳으로 여겨 내 집 드나들 듯 친숙해져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인문사회학은 물론 문화 예술도서나 실용도서를 비롯한 전문도서까지 다양하고 질 높은 장서의 확충이 더욱 절실하다.

선진 국가들은 지금 자국 국민들의 독서력 향상을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정부 지원정책을 경쟁적으로 확충하고 있으며, 국방 예산이나 정보산업 부문 못지않게 문화에 대해 전향적 인식을 갖고 많은 예산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독서가 국가, 사회적으로 일반 대중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국민 개개인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독서와 국가 발전은 떨어질 수 없는 비례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주 5일 근무제가 본격화 될 것 같다. 관련 산업별로 이에 따른 이해득실과 손님을 끌기 위해 묘안을 짜내기에 분주하다. 도서관계가 일반 국민과 친숙해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우리 출판계가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때 21세기 지식 문화 강국으로의 진입은 더욱 앞당겨질 것이다.

문화의 발전은 수동적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식과 교양이 함축된 독서 인구의 저변 확대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18세기의 계몽학자 볼테르는 '책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세계 전체가 결국은 책으로 지배되어 왔기 때문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