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호


 

 도서관과 나, 그리고 사서직

이 경 구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 前 국립중앙도서관 열람관리부장)*

 

우리들 사서에게는 도서관이 바로 삶의 현장이다. 나 역시 사서직 공무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도서관 현장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 왔다.

이젠 그 꼬리표를 떼고 도서관협회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새로운 생활이라는 것도 비록 사서직 공무원은 아니지만 넓은 의미에서 사서의 생활이기에 그리 생경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70년대에는 도서관이나 사서라는 단어가 그리 익숙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특히 사서라는 직업은 매우 생소한 것이어서 내 소개를 할 때에는 으레 약간의 설명이 필요했고, 그래서 당시의 사서들은 직접적으로 도서관 근무를 밝히기 보다는 모(母)기관 즉, ○○대학, ○○교육청, ○○연구소 등으로 말하곤 했었다. 그렇게 말하는 가슴 속에는 사서라는 직업을 감추고 싶어하는 심리도 조금은 작용했었음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나 자신 역시 지나간 세월 동안 여느 사서와 똑같은 패턴으로 행동해 왔음을 고백하며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발을 들여 놓은 지도 20여년이 지났다.

80년대에도 국가대표도서관이라는 국립중앙도서관의 모습은 초라하고 황량함 바로 그것이었다. 남산 중턱에, 도저히 도서관이 들어설 수 없는 위치에, 도서관 건물이라고 할 수 없는 구(舊) 어린이 회관 건물에서 재수생들과 더불어 복닥거리며 살던 시절, 그곳에 어떻게 사서의 꿈이 있었겠는가?

다행히 ’88년 반포동의 현 건물로 이전함으로써 외형적으로 어느 정도 반듯한 도서관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개가자료실이 생겨나고, 정보화의 물결이 도입되고, 자료의 양과 사서의 수가 늘어난 이곳에서도 공부방 이용자와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가슴앓이를 하는 사서의 입장에서 현실을 개탄하기도 하고, 때로는 현장을 지휘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 몸부림치곤 하였다.

’96년 일거(一擧)에 국내 최초로 공부방을 폐쇄하고 모든 이용 공간을 자료실화 하였을 때, 비로소 나는 새로운 도서관 건설에 대한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90년대 이후 불어닥친 도서관을 둘러싼 끊임없는 문제들... 도서관정책의 문화부 이관, 공공도서관의 민간위탁 및 명칭 변경, 행정체제일원화, 시설과 자료의 낙후성, 도서관장의 전문직화 문제 등, 이 모든 것들은 정책 당국이나 그릇된 사회적 시각에 기인했음을 우리는 안다. 또한 도서관의 모든 가치가 좌석 수에 의하여 평가되어지고, 공부방으로 전락한 황폐화 된 풍경속에서 우리들 사서는 견디기 어려운 혼란과 좌절, 그리고 울분을 곱씹어야 했다.

하지만 말이다. 정말 우리들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자긍심을 갖고 사서라는 직업의 세계에서 살아왔다면 그러한 문제들이 과연 절대로 풀 수 없는 숙제였을까?

지금은 많이 알려진 사서라는 직업!

그래서 사서라는 직업에 대해 새삼 부연 설명할 필요는 없어졌다.

이제 우리 사서들이 보다 당당히 변화하는 현실에 대처해 나가고, 전문직으로서의 품격을 갖추는 노력을 계속해 나간다면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바람직한 도서관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 생활 30여년...

이제 공무원 신분을 벗으면서, 그리고 임오년 한 해를 보내면서 지나온 세월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그리고 사서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되새기며, 새로운 도서관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마음을 굳게 다짐해 본다.

*이경구 사무총장은 중앙대학교 도서관학 졸업(1971),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도서관학 석사(1980)를 거쳐 서울대학교, 국사편찬위원회, 국립중앙도서관 등에서 31년간 사서로 근무하였다. 특히 21년간 근무한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정리과, 협력연구과, 열람과의 사서관, 열람봉사과장을 역임했으며, 1999년 9월부터 2002년 12월 4일까지 국립중앙도서관 열람관리부장으로 재직하였다. 2002년 12월 16일자로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에 취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