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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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과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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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짜리 꼬맹이부터 82살 할머니까지, 도서관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도서관이란 곳이 인간의 전생애을 꿰뚫는 하나의 축으로서, 모든 이가 공통된 공간을 동시에 접하는 굉장히 의미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이 각자 머리 속에 든 보이지 않는 생각들을 책과 각종 자료를 통해 현실화시키는 곳 ─ 얼마나 신기하고 중요한 공간인가? 도서관의 사회적 기능, 역사적 사명 등의 거창한 이론이 아니더라도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내 맘속에 나름대로 긍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서로서 제일 처음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기억이 있다. 굉장히 건강하게 생긴 학생이 와서 다짜고짜 책을 대출해 갈 거라고 대출목록대장에 도서명을 기입하고 있었다. 그 책은 전문도서로, 밑에 따로 노란 테이프가 부착되어 관외대출이 안 되는 책이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죄송하다고, 이 책은 관외대출이 안 되니 관내에서 열람하든지 아니면 필요한 부분을 복사하라고 안내해 주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눈만 껌벅껌벅, 날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손사래를 치면서 “어버버버”하는 것이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그 사람은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었다. ‘진작 수화를 배워둘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학생은 다행히 내 말을 알아듣고 금방 다른 책을 교환해 빌려 갔지만, 마음 한 구석이 찡해져 오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책 한 권 빌려가고 빌려주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대하지 못하고 경직된 채 어색한 미소만이 오가는 답답한 상황이 연출되었던 것이었다. 그 후 찬찬히 생각해 보니 이런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다리를 심하게 저는 이용자가 들어설 때마다 우리 도서관의 수많은 계단이 생각나고 미안한 마음에 괜히 울적해 지곤 했다. 옛날 학교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우리 도서관을 잘도 이용해 주시는구나 싶어서... 현관에 들어서기 전까지의 계단, 경비실까지의 또 계단, 각 자료실로 통하는 층마다의 계단, 계단, 계단... 내려가는 길은 또 얼마나 힘든가. 보조 바(bar)도 없이... 몸이 꼬여 걸음이 힘든 또 다른 이용자는 왜 그리 성실한지! 학생인 거 같은데 꼬박꼬박 책을 대출해 가면서도 무척 명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 사람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려고 하지만, 저 많은 계단과 문턱들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기본적으로 도서관이야말로 누구에게나 가장 평등한 물리적 공간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성별, 나이, 직업 등을 가릴 것 없이 누구나 편리하고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곳! 그런 도서관을 오는 그 길 자체가 힘들고 험하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엘리베이터 하나 없는 도서관, 자동문 없는 도서관, 좁은 화장실, 장애자를 위한 배려가 턱없이 부족한 도서관. 다른 행정관공서 건물이라면 몰라도 도서관이기 때문에오히려 더 특별히 배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낡고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밝고 넓고 깨끗한 공간! 꿈과 미래가 있는 공간! 약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한껏 개방된 그런 도서관이 되어서 자라나는 청소년, 집안에만 있을 수 밖에 없는 장애인, 시장 가는 주부들, 모두 다 편하게 이용하는 공간이 언젠가는 만들어지겠지 하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그 때까지 난 늘 미안한 마음으로 그래서 더욱 더 친절하게 우리 이용자들을 대할 것이다. 저 많은 계단들에 머리 숙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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