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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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기생 매창, 천리의 외로운 꿈을 꾸다

제가 오늘 강연할 내용은 기생 매창(梅窓), 천리의 외로운 꿈을 꾸다. 이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번에 이 강연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오래간만에 제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봤습니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때 기생, 우리가 기생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기생하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지금? 여기에 계신 선생님들이 이 이야기, 기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뭐가 떠오르나요?
-옛날 술대접하고 손님 대접하고.
-네, 술대접하던 그런 사람들. 또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지성과 미모.
-지성과 미모?
-시화에 능한...
-시화에 능한 예인. 연예인들. 그런 모습들 다양하게 듭니다만 제가 글을 쓰기 전에도 사람들한테 많이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대부분 이런 3가지로 요약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들만 생각하면 나는 너무너무 가슴이 아파. 그들이 너무너무 불쌍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황진이 봐, 얼마나 멋있어. 그 시대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어라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아까 여러 분들이 말씀을 해 주신 것처럼 높은 예술 세계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 바로 그렇다고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걸 딱 두 가지로 다시 정리를 해본다면 하나는 뭐냐 하면 너무너무 가련하고 불쌍한 존재. 그러니까 중제 질서에 주저앉은 여인이라고 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황진이처럼 중세 질서에 맞선 거기의 여인이다라고 이야기들을 하고 있죠. 그런데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우리가 잊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기생은 국가의 공물(貢物)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He나 She가 아니라 그들은 It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었다는 겁니다. 그걸 우리가 잊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국가의 공물이기 때문에 이들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국가에서 마음대로 좌지우지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컨대 우리가 듣고 있는 이야기 중에 나주 기생 명화라는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은 수청을 들기가 너무너무 싫었나 봐요. 그래서 수청을 거부했어요. 그랬더니 그 관장한테서 맞아죽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그 거절을 해야 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이유는 하나도 설명을 하지 않고서 그저 맞아죽었다는 걸로 끝나게 됩니다. 반면에 곽연성이라는 사람은 기생을 첩으로 들였어요. 기생을 첩으로 들였는데 자기가 죽게 될 무렵에 이 기생을 자기가 첩으로 들였지만 이 기생이 어딘가 다른 데 시집을 갈 것 같다는 말이에요. 도망을 갈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곽연성은 잠깐 이리로 오라고 해서 칼로 찔러 죽이려고 합니다. 나랑 같이 죽자 이 말이죠. 그런데 이제 기생이 피해서 이마가 쫙 나가는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기생은 무엇이었냐 하면 사물이었다는 겁니다. 그저 소유물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정승명이라는 사람은 아주 비참한 이야기를 하나 써놓습니다. 정승명이 한 고을에 갔더니 기생이 얼굴이 온통 화상을 다 입고 있어요. 그래서 너 왜 그러냐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 기생이 뭐라고 얘기를 하느냐면 여기 왔던 사또가 나를 범하고 가서 나를 사랑을 해줬는데 떠나면서 내가 분명히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할까 두려워서 촛불로 나의 얼굴을 지져버렸다는 것이죠. 그렇게 돼서 이 꼴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얘기를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생이라는 것은 곧 무엇이냐 하면 그때 당시 기생이라는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애련한 존재라든가 그런 중세 질서에 맞설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기생은 그저 뭐냐, 남자의 성적인 욕구를 해소해 주는 우리가 이제 화장실이 급하면 가서 볼일을 보고 끝내는 그런 공중화장실과 같은 존재가 바로 기생이었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너무너무 다 잊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기생 스스로 자기들이 뭐라고 자기들이 생각하는 기생은 무엇이었겠느냐는 것이죠. 그런데 이 기생들은 자기의 이름을 지우고 싶었어요. 정말 나는 기생이기가 싫었던 거예요. 그래서 김지묵이라는 사람이 만난 향애라는 사람이 지은 시가 있어요. 그 향애라는 사람은 김지묵한테 이런 시를 하나 써줍니다. 손으로 대동강 위에 물을 이렇게 떠요. 그렇게 떠서 그거를 꺼낼 수 있는 것처럼 내게 붙어있는 기생이라는 이름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대동강 물에 있는 이 물을 한 움큼 떠서 이렇게 쫙 버릴 수 있는 것처럼 자기 이름도 내가 붙어있는 이 기생이라는 이름도 싹 잘라내서 버리고 싶다는 것이죠. 그렇게 기생들 스스로도 자기가 기생이라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그걸 지우고 싶어 했었던,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었던 사람들이 바로 기생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유별나게 우리는 황진이와 이매창이라는 사람은 지금까지 우리한테도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죠. 그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느냐라는 것이죠. 왜 이들은 사랑을 받고 있을까?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바로 어떤 아까 같은 성적 공중화장실과 같은 성적 노리개가 아니라 이들에게는 또 다른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걸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무엇이냐면 홍만종이라는 사람이 내린 평가에서부터 비롯되게 됩니다. 홍만종은 뭐라고 얘기하느냐면 근래에 송도, 개성의 황진이와 부안의 이매창은 그 글 쓰는 것이 남자들과 비교해서 문인들과 비교해서 서로 비슷하다 이거예요. 그만큼 이들이 재주가 있으니까 이 둘은 우리가 기억해야 될 사람이다라고 홍만종은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모르는데 지금까지도 홍만종에 따라서 황진이와 이매창은 정말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황진이와 이매창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살았어요. 그러면서 역사의 라이벌처럼 보이고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시 보게 되면 황진이가 이 두 기생이 사랑을 받는 이유가 뭘까, 오늘날까지. 그저 기생이었을 뿐인데. 공물이었을 뿐인데. 기생이 조금 시 좀 했다고 뭐, 그럴 수도 있지, 뭐. 이렇게 넘어갈 수 있는데 왜 이 둘에 대해서 우리는 그렇게 애처롭게 사랑을 하고 그들을 이야기하고 있고 지금처럼 문화콘텐츠로 만들고 있을까라는 거예요. 북한처럼 폐쇄적인 데서도 황진이라는 소설이 나와요. 홍석중에 의해서 황진이라는 소설이 만들어져요. 그리고 황진이의 무덤까지 만들어놓습니다. 그게 가묘예요, 가묘, 가짜 무덤인데도 그 무덤까지 만들어놓는 것이 바로 지금 현실이다라는 거예요. 그러면 황진이는 그렇다고 합시다. 황진이는 그때 보면 중세적 삶의 질서에 도전적인 행위를 해요. 그러니까 재상(宰相)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내 심부름꾼이다라고 얘기를 하고 뭐라고 얘기를 할까요? 어디를 가서도 너무 당당하게 하면서 그들과 맞서면서 음식도 빌어먹고 계약결혼도 하고 할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황진이였죠. 지금으로 친다면 당시의 최고였던 가수, 가수는 아니지만 박보검과 같은 사람과 계약 연애를 하기도 한다는 말이에요, 황진이는. 이사종이라는 사람과 3년씩 계약 연애를 하기도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매창은 도대체 뭐냐라는 거예요. 중세적 질서에 도전도 안 한 이매창은 왜 우리의 사랑을 받을까라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뭐냐 하면 유희경과의 순백색의 지고지순한 사랑, 그걸 이야기하게 된다는 것이죠. 순백색의 그 사랑. 유희경만을 사랑한 기생. 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다시 한 번 물어봅시다. 과연 매창은 유희경만 사랑했는가, 매창은 유희경만 사랑했는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라는 겁니다. 불행하게고 그건 아니다라는 겁니다. 아까 얘기처럼 기생, 우리가 왜 아까 얘기처럼 공물이라는 걸 얘기를 해보라고 했던 것처럼 기생은 공물이이란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매창 역시 국가에 예속돼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국가에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수령이나 그 지방에 있는 수령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단 말이에요. 수청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느냐면 아까 명화처럼 맞아죽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 정말 유희경만을 사랑할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게 첫 번째 우리가 묻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유희경이 이 기록이 이매창이 유희경만을 사랑했다는 기록은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했냐면 조선 후기에 와야 처음 나오기 시작을 합니다, 조선 후기에 와야. 그것도 누구냐면 박효관과 안민영이 만들어놓은 그 시조집에 잠깐 언급된 것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그것은 뭐냐 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열녀담론(烈女談論)이 아주 왕성해지던 그런 시기였다는 것이죠. 그 틀에 과연 이매창과 유희경을 맞춘 것이 아니겠느냐라는 게 두 번째 우리가 묻게 되는 질문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로 이 이매창에 대한 연구가 언제부터 시작이 되느냐면 1970년대부터 시작이 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볼 수 있는 자료가 별로 없었어요. 그들이 볼 수 있었던 자료들은 이때 만들어진 얘기들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1970년대를 한번 생각해보시면 지금보다 훨씬 더 열녀담론이 열녀이야기가 강했던 시기죠. 1970년대만 해도 재혼 이야기 나와도 막 불쾌해하고 했었던 시기가 바로 그때란 말입니다. 그런 때에 이매창이 여러 사람을 사랑했다는 논의는 나올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러면서 이매창이라는 사람은 유희경만을 정말로 사랑했던. 하나만을 사랑했던 정말로 열녀였다는 형태로 우리는 만들어갔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제가 여기에 대해서 간단하게 책을 썼습니다만 그 책에 대해서 그 소설가 장정일 씨가 여기에 대해서 서평을 몇 번을 해 줍니다. 서평을 몇 번을 해 주는데 그때 바로 했던 말이 바로 이 이야기가 돼요. 이것은 그야말로 이매창은 유희경만을 사랑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 그 시대의 제도와 관습을 완전히 무시해놓은 보통 사람을 위한 또 하나의 영웅신화, 영웅사관을 만들고 있었다고 그렇게 단정을 지어서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이 말이 맞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무엇인가 영웅을 만들어버린 거예요, 보통 사람을 위해서. 이매창이라는 그 본질을 잊어먹고서 무엇인가 하면 본질이 아닌 또 다른 어떤 신화를 만들어놓은 것이 바로 이매창과 유희경의 사랑이야기였다라는 겁니다. 약간 서운하시죠? 이매창이. 이 이야기가 정말 진짜인 줄 알았는데 이게 무너지다니라고 얘기를 하면서 서운해 하실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조금 있다가 다시 얘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매창은 유희경만을 사랑했는가는 다시 한 번 물어보자고 하게 되면 실제로 이 신화는 거짓이라는 겁니다. 매창이 만난 사람은 정말로 많아요. 심지어 기생첩으로까지 들어가기도 합니다. 유희경만을 사랑한 게 아니라. 그리고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요. 그리고 다시 한 번만 또 물어봅시다. 과연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어떨 것 같습니까? 제가 볼 때는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조선시대에 보면 조선시대에 보면 사람들이 남편이 죽으면 어떻게 했어요? 따라 죽은 사람들이 있었죠. 그 사람들은 전부 다 그 남편만을 위해서 목숨까지 버린 사람들이에요. 한 사람만을 사랑한 거예요. 그리고 여기에도 계시겠지만 남편이 돌아가신 후에 혼자 지나는 분들, 그분도 한 사람만을 사랑하면서 살아온 거죠. 그런데 왜 매창은 유희경을 사랑했다는 것에 대해서 저렇게 높게 평가를 하고 있을까? 우리가 이제 궁금해지는 것이죠. 도대체 별거 아닌데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매창이 유희경을 사랑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저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저렇게 많은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느냐는 것이죠. 그러면 다시 한 번 물어봅시다. 우리는 왜 정말 매창을 사랑하고 있고 왜 매창에 대해서 지금껏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궁금해지는 것이죠. 그것은 우리가 해답을 먼저 이야기하고 갑시다. 그것은 뭐냐 하면 한 사람을 사랑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더 매창이 아름다울 수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죠. 이제 질문이 역이 되는 것이죠. 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가 않아요, 조선 시대에는 더구나. 조선시대에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을 위해서 죽으면 돼요.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그 사람을 위해서 절개를 지키면서 살아가면 돼요. 그 내면이야 어땠는지 몰라도 그 바깥에서 볼 때는 정말로 한 사람만을 위해서 사랑한 사람들이 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겁니다. 그러지 않나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거는 쉬워요.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모든 사람들까지 그 사람들 모두를 안고 갈 수 있다는 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죠. 이거는 누구냐면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성녀들을 이야기를 하게 되죠. 테레사 수녀라든가 그 모든 사람들을 그 적진에 가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나이팅게일 같은 사람. 다들 뭐냐 하면 많은 사람을 사랑했기에 그들은 더 위대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라는 이 전제를 다시 한 번 우리가 이제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제 그 동인(動因)을 한번 찾아가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기생이 매창이 어떻게 살았던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한번 간단하게 살펴보자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다음에 그런 이후에 매창이라는 사람이 왜 우리가 정말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사랑을 받고 있고 그다음에 우리가 지금껏 이야기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들을 해보자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매창이라는 사람, 매창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매창이라는 기록은 지금 제가 책 한 권을 냈습니다만 이매창 평전이라는 책 한 권을 냈지만 매창에 대한 기록은 이게 전부입니다. 이거 하나 가지고 책 한 권을 냈던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딱 뭐라고 돼 있냐면 계생의 자는 천향이고 스스로 매창이라고 호를 지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아전(亞銓) 이탕종의 딸이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1573년 태어나서 1610년에 38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리고 노래 잘했다는 것이죠. 그러다가 숭정 후 무신 1668에 그러니까 58년이 지난 이때에 아전들이 시를 구해서 개암사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뒤에는 이렇게 다 으깨져서 확인을 할 수가 없습니다. 뒤의 내용도 없습니다. 고작 이 내용이 전부입니다, 매창에 관련된 기록들은. 그러면 매창의 어린 시절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이거는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기생이 어린 시절에 어떻게 살았는가 알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기생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거의 99%가 다 추정입니다. 그런데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 책 하나가 발견이 되게 됩니다. 소수록(消愁錄)이라는 책이에요. 근심을 덜어내는 이야기, 근심을 씻는 이야기라고 붙어있는 소수록인데 여기에 보면 여러 개의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에 보면 가사 하나가 실려요, 가사. 그런데 이거 누가 썼냐 하면 여기에 보면 창 해영, 명기, 명화, 명선이라고 쓰여 있죠. 이거 글을 쓴 사람은 누구냐면 해주 관영(官營)이니까 이제 해영이라고 쓴 거죠? 혜주 관영에 있는 기생 명선이가 썼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내용이 무슨 내용이냐 하면 자기가 살았던 이제까지 살아왔던 내용을 쭉 쓴 겁니다. 그러니까 기생이 쓴 자서전이라고 보면 되겠죠. 그런 이야기들을 쓸 수가 있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아주 당혹스럽게 해요. 학계에 많이 당혹스럽게 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보게 되면 기생이 어떻게 살았던가 어린 시절부터 어떻게 살았던가 하는 내용을 써놨기 때문에 우리가 이제 이 책을 통해서 매창도 어떻게 살았을 것인가 하는 그런 추정을 할 수가 있겠다라는 겁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면 기생의 삶. 하역을 했던 사람들. 하층민에 속해서 부역을 했던 사람들의 삶은 어느 누구도 기록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기 스스로 이걸 써놨는데 그 사람들은 조선 초기나 조선 중기나 조선 후기나 똑같아요, 사는 삶들이. 바뀌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기생의 삶이라고 해서 불과 한 200년 뒤에 이 명선이가 쓴 이때의 삶이나 그보다 200년 전에 살았던 매창이 살았던 기생의 삶이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우리가 추정해볼 수 있는 것이죠. 그게 만약 바뀌었더라면 어디엔가 역사 기록에 남아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기록조차 없는 걸 봐서는 그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니까 이 명선이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가 매창이 어린 시절 어떻게 살았던가 혹은 매창을 포함한 기생들은 어떻게 살다던가 하는 거를 다 생각해볼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제 알고 있는 어린 시절의 존재는 기존 통설과 다르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보통 기생은 언제부터냐면 15살 무렵이 되면 기생이 된다고 생각들을 했었던 겁니다. 왜냐하면 이때가 돼야 어느 정도 성인이 되고 해서 사람들을 받고 사람들한테 춤을 추고 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명선이의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어느 정도. 뭐냐 하면 태어나자마자 얘네들은 교육을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서너 살 되면 그때부터 뭘 배우느냐면 춤과 노래를 배웠다고 얘기를 써놓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게 맞죠. 기생이 될 애라면 어린 시절부터 뭘 해두는 게 낫겠어요? 그걸 익히게 하는 것이 맞다는 겁니다. 얘네들은 천민이에요, 천민. 공물이에요, 공물. 공물이기 때문에 얘네들을 그렇게 부릴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 되면 노래를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춤을 배운 것이 바로 기생들의 삶이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보면 근대에도 보면 얘네들이 기생이 됐잖아요. 기생들 사진 몇 살 같습니까? 8~9살입니다. 이때 이미 기생이 되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서너 살 때부터 교육을 받았던 것이죠. 기생 교육을. 그러다가 뭐가 되냐면 7~8살이 되면 그때부터는 뭐냐 하면 기생 시작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때 이름을 새로 받게 되죠. 그걸 우리가 기명이라고 하는 것이죠. 아까 얘기를 했던 계생이라는 이름도 바로 여기에서 나오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제 알고 있던 15살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7~8살에 시작을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양인들, 그러니까 평민들은 몇 살까지 부역을 하게 되느냐면 예순 살까지 부역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방의 의무도 예순 살까지 있는 것이고 세금을 내야 될 의무도 예순 살까지 있었던 거예요. 다 예순 살까지 있는데 유독 기생만 50세에 퇴역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이유를 우리가 잘 설명을 못했는데 이걸 보면 분명히 알 수가 있다는 것이죠. 왜 그러겠어요? 일찍 시작했으니까 일찍 끝난 거예요. 10년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10년 일찍 끝났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7~8때부터는 뭘 하기 시작하냐면 대충 수령의 수청(守廳)을 들게 됩니다. 그러니까 수청이라는 것이 살수청만 생각하는데 원래 수청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잔심부름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여기 와서 먹을 갈아라 하면 먹을 갈게 되는 것이고 여기서 물 좀 떠와라 하면 물을 떠오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뭘 지키는 거예요? '지킬 수(守)' 자에 '마루 청(廳)' 자를 쓰는 거죠. 마루에 앉아서 수령이 뭔가 시키면 즉각 즉각 거기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수청을 든다고 얘기를 하는 되는 거죠. 그러니까 7~8살 때는 바로 그런 일들을 얘네들은 시작을 하게 됐던 겁니다. 그리고 안주인 마님이 어디 간다고 하면 그 앞에서 길잡이 역할을 했던 아이들도 이때 기생들이 했던 역할들이다라고 봐두면 될 겁니다. 그런데 이제 명선이는 12살에 성인을 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 12살 무렵에 어떤 첫날밤을 보내게 됐다는 것이죠. 여기 신윤복의 그림에도 나오지만 첫날밤을 파는 그림이거든요. 첫날밤 하는 그림인데 아마 이렇게 명선이는 어린 시절을 퇴고(推敲)를 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매창도 똑같았을 것이다라고 볼 수가 있게 됩니다. 매창도 아마 분명히 3~4살 무렵에 아버지가 분명히 아전이라고 했잖아요. 아전은 뭐냐 하면 아전인데 아마 이탕종은 호조(戶曹)에 속한 아전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는 아마도 관기(官妓)였을 겁니다. 왜냐하면 호조에 속한 아전과 관기가 자식을 낳게 되면 그 애는 기생이 되는 경우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아마도 그렇게 시작이 됐고 3~4살부터 어머니를 통해서 기술을 배웠고 그다음에 7~8살에 기역(妓役)을 시작을 하게 됩니다. 이때 계생이라는 이름도 지어지게 됩니다. 이건 어떻게 지어지느냐 하면 글자의 맨 앞에 것을 얘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계수나무가 떠오른다라고 하면서 계생이라고 아마 떠올랐을 겁니다. 이 이름을 이렇게 지은 걸 보면 분명히 거기에는 특징을 짚어내거든요. 아마도 계생은 약간 보름달처럼 통통한 얼굴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걸 보게 되면. 그리고 기생이 되기 위해서 교방(敎坊)에 가서 교육을 받게 돼요.

그러니까 서울에서는 6개월간 교육을 받게 됩니다. 6개월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일주일에 몇 번 가서 수업을 받는 방식인데 지방에 있던 기생들은 뭐냐 하면 지방부가 있는 전주부가 있었던 거기에 가서 두 달 남짓 동안 열심히 한꺼번에 공부를 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기생이 되었을 것 같다고 우리가 추정을 해볼 수가 있을 겁니다. 이건 기생이 어렸을 때는 분명히 이렇게 살아왔다는 걸 우리가 확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기생이 아까 봤던 것처럼 12살 무렵에 혹은 매창이 살았을 무렵에는 아마도 15살 무렵에 성인식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 무렵에 매창에게도 사랑이 찾아왔겠죠. 이제 선생님들이 궁금해하는 유희경과의 사랑이야기가 바로 이때 벌어졌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매창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보통 알려진 거는 1591년 19살과 47살 이때 매창과 유희경이 만났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거는 근거가 없어요, 미안한 얘기지만. 이거는 근거가 없는 내용입니다. 그 점은 뭐냐 하면 매창 집에 있는 시 그거 하나만 가지고서 추정을 한 거예요. 그렇다면 이때에 이때가 되면 유희경이 부안에 왔었는가 하는 걸 확인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것도 확인이 안 된 상황입니다. 이때는 유희경이 부안에 온 적이 없어요. 전라도 쪽에 온 적이 없어요. 그리고 이때는 매창도 기생첩으로 살고 있을 때예요. 기첩(妓妾)으로 살고 있을 때예요. 그러니까 이때 유희경과 매창이 만날 수가 있는 때가 아니에요. 그러면 이 유희경이 쓴 문집을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뭐가 되느냐면 42살이 되던 1586년 이때에 유희경이 전주에 내려오게 됩니다. 왜 내려오느냐면 스승, 남원경이 그때 당시 전라도 도지사로 있을 때예요. 관찰사로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스승님한테 뭔가 물어보기 위해서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에 누구를 만나게 되느냐면 어사로 파견된 송원신을 만나게 돼요. 그래서 그거를 이 유희경한테 촌은집(村隱集)에는 유희경 문집에는 그게 실려 있어요. 그러니까 유희경은 언제? 1586년에 분명히 전라도에 내려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송원신과 함께 부안을 가게 돼요. 그러니까 유희경은 그때 매창을 만난 게 맞는 거예요. 그때 나이가 몇 살이냐면 유희경이 42세고 매창이 14살이에요. 그러니까 이때에 이들은 처음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유희경은 매창한테 촌은집에 보면 매창한테 남긴 시가 7편이나 됩니다. 7편을 남기게 돼요. 그런데 이걸 갖고 그것밖에 안되나라고 얘기를 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보면 기생한테 이렇게 7편이나 되는 시를 남겨주는 경우가 없습니다. 거의 한두 편 정도면 족해요. 특히 한 사람한테 이렇게 몰아서 시를 쓰는 경우들은 없습니다. 그것은 곧 뭐냐 하면 유희경이라는 사람은 정말로 매창을 사랑했던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문집에 그렇게 얘기를 하게 됩니다. 이 유희경이라는 사람은 아주 예학(禮學)에 밝았던 사람이에요. 예학에 밝았다는 건 뭐냐 하면 이게 예인지 아닌지 분명하게 판가름 내렸던 사람이 바로 유희경이었다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양희수라는 사람이 나가게 되면 유희경이가 와서 그 모든 걸 관리를 했다고 얘기를 해요. 양희수라는 사람은 뭐냐 하면 그때 당시에 장례절차를 장례를 치르던 사람이에요. 사람이 죽어서 장례를 치르면 그 나머지 절차의 모든 것들을 다 묶기 위해서는 유희경을 찾아가라고 했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유희경이 그 어느 누구랑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유희경은 정말로 지고지순한 사랑을 했던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유희경이 매창을 만나서 처음으로 파계했다고 얘기를 해요. 파계(破戒)했다는 말을 처음 씁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처음으로 다른 여자한테 눈을 돌린 게 매창이 처음이었다는 것이죠. 그만큼 매창한테는 무엇인가 아주 독특한 매력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시집에도 이렇게 7편이나 남겨뒀던 것이죠. 그런데 그 시들을 보다 보면 어떤 내용들이 나오냐면 길을 가다가도 문득 떠올라요. 그리고 뭐라 하느냐면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요. 매창은 이미 유희경의 머릿속 한켠에 꽉 잡혀있었던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유희경이 아까 그때 얘기했던 14살 매창을 만났을 때 이런 시 한 편을 주게 됩니다. 일찍이 남쪽지방에서 네 이름을 들었는데 서울에까지 네 이름이 퍼져있더구나. 그래서 오늘 네 얼굴을 봤더니 선녀가 내려온 것처럼 예쁘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아마도 유희경이 매창을 만나서 처음으로 준 시 맞을 겁니다. 그런데 이 시가 그렇게 애틋해 보이나요? 저는 이게 다들 애틋하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애틋해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거는 뭐냐 하면 너 정말 네 얘기 많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봤더니 정말 예쁘구나 이 얘기잖아요. 그런데 이걸 가지고 정말로 유희경이 매창을 사랑했던 증거다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그러면 제가 정말로 유희경이 매창을 사랑했다는 걸 느낀 거는 정말 저도 이 시를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던 건데 바로 이 시입니다. 이건 정말 제가 좋아하는 시입니다. 나한테 신선이 갖고 있는 약 그거 하나 있으면 네 그 얼굴 찡그린 것 치료해 주고 싶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건 비단 주머니 속에 깊이 간직해두었다가 이제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주고 싶다고 얘기를 하게 되죠. 그러니까 둘이 이렇게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죠. 바라보는데 매창은 뭔가 약간 화가 났었나 봐요. 그래서 얼굴을 어떻게 했겠어요? 어우~ 하면서 얼굴을 약간 찡그렸겠죠. 그러니까 유희경은 그 찡그린 모습이 너무너무 예쁜 거예요. 그게 너무너무 예뻐서 나한테 그런 약 하나 있으면 뭐 한데? 너한테 줘서 그 찡그린 얼굴을 펴게 하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그거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너를 위해서만 쓰고 싶다는 게 바로 이 내용입니다. 되게 예쁘잖아요. 노시인이, 늙은 노시인이 42살이나 되는. 그때는 42살이면 어마어마한 나이입니다. 42살이나 되는 노시인이 14살 애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이런 시를 넣어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이거는 정말 애틋하죠. 여기 혹시 은교 보신 적 있으시겠지만 그 은교에 보면 그 노시인이 고등학생 애를 보면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표정이 여기서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정말로 유희경은 매창을 사랑했고 매창도 정말로 유희경을 사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만남이 그렇게 길지가 않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송원신이 올라갈 때 유희경도 분명히 같이 올라갔을 것이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어느 가을이 됐나 봐요. 그해 가을이 됐겠죠. 가을이 된 날 매창은 시조 한 수를 읊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 그 노래죠.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시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는 이런 맛들을 잘 몰라서 그런데 한번 가만히 이 그림을 그려보면 돼요. 혹시 배꽃 보신 적 있죠? 배꽃 너무 예쁘잖아요. 그런데 그 천지에서 그게 바람에 날릴 때 벚꽃보다는 더 예쁘잖아요. 배꽃이 날리는 건 벚꽃이 날리는 것보다 비할 수 없이 예뻐요. 그렇게 이제 꽃잎이 막 떨어질 때 헤어지는 것이죠. 그렇게 아름다운 날 헤어지는 건 너무너무 가슴이 아파요. 정말 가슴이 아픈 게 바로 그때가 되게 된 겁니다. 그걸 떠올리는 것이죠, 매창은.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지나서 가을이 됐어요. 그런데 가을에 바람이 불어요. 그런데 낙엽이 날리는 것이 그 옛날 이렇게 꽃잎이 떨어지는 것처럼 비춰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보면서 나는 당신을 떠올리는데 당신도 나를 기억하시나요라고 묻는 것이죠. 그러면서 우리가 이 천리에 떨어져 있는 외로운 꿈. 이런 것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것이 가물가물하다는 것이죠. 만날 수 있을까? 그래, 만날 수 있을 거야. 아니야, 못 만나 하는 그런 자기에 대한 물음들이 계속 던져지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이 시조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시조가 어디에 실리느냐면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박효관과 안민영의 가곡원류(歌曲源流)라는 여기에 실려 있어요. 이것이 어마어마한 우리가 지금까지도 매창과 유희경 그리고 매창을 읽어내는데 장애요인으로 작동을 하게 됩니다. 그때 뭐라고 쓰여 있냐면 이 가곡원류에는 계랑은 부안의 이름난 기생으로 시를 지었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매창집이 세상에 나와 있다. 촌은 유희경의 오른 벗으로 촌은이 서울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이에 이 시를 지어서 수절했다는 이 내용이 전부가 되어 버린 거예요.

그런데 이거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거예요. 반만 사실이라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여기까지는 사실이에요. 여기까지는 분명한 사실이고 그다음에 여기까지는 반사실이고 그다음 여기는 거짓이에요. 그런데 이걸 우리는 너무나도 신뢰를 했던 것이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가곡원류에 실려 있는 바로 그 내용이에요. 그러면서 매창과 유희경의 신화가 둘만의 관계로 이야기들이 되어 버린 거예요. 그런데 궁금하죠. 아니, 둘만 사랑했다면 둘만 사랑했다면 왜 그때 매창이 죽은 후에 그 나무꾼과 그 길을 가고 있는 일종의 농부들 같은 사람들이 왜 그 앞에 꼭 무덤을 지키려고 표지석(標識石)을 만들어둘까. 그리고 아전들은 도대체 이 사랑이 뭐였길래 자기네 돈들 그렇게 내가면서 시집을 만들어낼까. 선생님들한테 이 두 사람이 사랑했기 때문에 돈을 내서 시집 만들자. 한 사람당 500만 원씩 내라고 하면 내겠습니까? 그 사랑이 얼마나 간절했길래. 이거는 있을 수가 없는 형상이 나오게 된 겁니다. 이건 뭔가 우리가 분명히 매창을 잘못 읽게 한 하나의 큰 장애요인으로 작동을 하게 됐다는 것이죠. 그리고 더 한 번 얘기를 해봅시다. 더 한 번 얘기를 해보면 매창은 유희경과 다시 만나요 이것도 우리 학계에서는 이때 만났다고 얘기를 하게 되지만 분명한 건 거의 대부분이 아마 이때 만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이때 전주에 내려왔기 때문에. 유희경의 촌은집에는 뭐라고 쓰여 있느냐면 매창과 내가 어디서 만났다. 전주에서 만났다 이거예요. 그런데 매창이 나한테 와서 뭐라고 했느냐면 우리 집에 와서 한 열흘 동안 시 이야기 좀 해봅시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부안으로 갔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뭐라고 썼느냐? 쓴 시가 바로 이겁니다. 예부터 꽃을 찾는 것도 때가 있는데 번천(樊川)은 무엇 때문에 이리 더디 왔는가. 자기를 매창이 두목을 좋아했기 때문에 두목질을 좋아했기 때문에 두목이라고 비유를 한 겁니다. 그러니까 옛날부터 꽃을 찾는 것은 때가 있다고 한 거죠. 젊은 때 그런 때인데 나는 왜 이렇게 늦게 왔을까 이 정도죠. 그런 다음 뭘 하느냐면 나는 꽃을 찾으러 온 게 아니다. 나는 너를 보러 온 게 아니라 뭐다? 오직 열흘 동안 시를 논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왔다는 게 이 시입니다. 그런데 뭔가 다르죠. 아까 우리가 선약(仙藥) 이야기를 했잖아요. 좀 길게 선약 이야기를 했는데 그저 그 찡그린 얼굴 보면서 뭐 했던 거예요? 나한테 신선이 준 약이 있으면 너 줘서 그걸 치료하고 싶다라고 하면서 애틋하게 바라보던 그 눈길이 여기에는 없어요. 이건 뭐예요? 너무 철저하게 사무적인 형태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겁니다. 아니, 너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면 안 되나? 정말 너 보고 싶어서 왔을 텐데. 그만큼 세월이라는 것은 그 사람을 비켜가게 했다는 것이죠.

매창은 여기에 대해서 아마 유희경한테 쓴 시, 다 유희경으로 해석을 합니다만 유희경한테 쓴 시라고 추정해볼 수 있는 건 딱 한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추정입니다. 유희경한테 쓴 시는 없어요. 유희경한테 썼다고 밝힌 시는 없는데 아마 이 시 정도의 이 정도가 화답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만 할 뿐입니다. 이게 뭐냐 하면 지난 옛날에 우리 둘은 뭐에서? 요지연에서 만나서 나는 당신 앞에서 춤을 추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거죠. 얼마나 예뻤길래 당신 앞에서 나는 너무너무 좋아서 춤을 추고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그 사람은 어디 갔느냐 이 말이에요. 그 사람은 어디 가고 그저 앞에 떨어진 꽃잎만이 오랜 세월이 지났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둘이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 예전에 서로 사랑했던 그 모습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미 시간이라는 것은 그 열정마저도 모두 지워버린 것이죠. 그러니까 나이를 든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에요. 그 내가 가졌던 그 젊은 시절의 열정마저 모두 잃어버리게 한 것이죠. 지금 이 시를 보면 매창과 유희경이 주고받은 시를 보면 참 가슴이 아파요. 그들의 사랑도 이렇게 지워지고 있었구나라는 것이죠. 이때는 매창도 언제냐면 기생첩 생활을 접고 다시 부안에 왔을 때입니다. 그러면 매창은 이제 기생첩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거를 자꾸 기생첩으로 살았다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오해를 많이 해요. 그게 어떤 오해냐면 어떻게 첩으로 살 수가 있나라고 하지만 기생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첩자리입니다. 기생은 최고의 자리가 돼 봐야 무엇을 하냐면 지금으로 생각하면 페트병 10개, 페트병 10개 정도 되는 좁쌀을 한 달 월급으로 받았어요, 그것도 어느 정도 돼야. 나머지는 다 뭘 하느냐면 자기가 어떤 식으로든 먹고 살아야 할 그걸 만들어야 해요. 그러니까 그런 걱정이 없는 기생첩으로 간다는 건 모두가 행복한 일이에요. 아까 우리가 봤던 명선이라는 사람도 왜 그 가사를 남겼냐면 나 이제 이 모든 걸 청산하고 뭐로 간다? 기생첩으로 가게 됐다. 그러니까 너희 모두 나를 본받아서 첩이 되도록 하여라 하는 걸 드러내기 위해서 그 가사를 썼던 거예요. 그러니까 매창도 아마도 분명히 먹고 살기 위해서 기생첩을 요구를 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때가 이제 언제가 되느냐면 이 기생첩으로 갔다는 건 여러 군데에서 증명이 되게 됩니다. 이건 빼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설명을 않고 가겠는데 어디에 가장 정확하게 나와 있느냐면 이 임서라는 사람이 쓴 석촌유고(石村遺稿) 라는 책에 보면 어떤 내용이 나오느냐면 낭자의 이름은 계생이다. 계유년에 태어나서 그렇다는 것이죠. 그다음에 노래와 거문고를 잘했고 또한 시에도 능했다. 그리고 뭐라고 돼 있나요? 지금 옛날에 내 친구의 첩이 되었다가 지금은 다시 기생집으로 나왔다. 이건 분명한 기록이죠. 그리고 여러 가지 설명을 다 해봐도 나옵니다만 어찌되었든지 간에 매창이 기생이 되었다는 기록은 여기저기서도 확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 매창이 쓴 시에도 분명히 나옵니다. 뭐라고 돼 있냐면 서울에서 보낸 꿈같은 삼 년. 내가 서울에서 삼 년간 기생 생활을 했던 거예요. 그리고 호남에서 다시 새 봄을 맞이한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뭐냐 하면 그 사람과 헤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죠. 황금 때문에 옛 마음을 버리고 한밤중에 홀로 마음 아파한다는 것이죠.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이것은 뭐냐 하면 황금 때문에 했다는 것은 우리가 보는 돈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에요. 이건 다른 사람의 시를 비유해서 한 건데 뭐냐 하면 신의를 잃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매창은 이때 당시 기생첩으로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당신과 나는 오랜 친구로 지내고 싶었던 것 같아. 친구로 지내고 싶었는데 이 사람이 그 신의를 배반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버려진 사람이 되었던 것이죠. 그랬기 때문에 매창은 거기를 털고 다시 고향 부안으로 왔던 것이죠. 그러면서 세태에 따라서 변하는 사랑. 그러면서 매창은 묻죠. 사랑이라는 것도 변하는 구나. 그래서 다시 부안으로 오게 된 겁니다. 그러면 이때 당시 매창을 기생첩으로 삼은 사람이 누구냐라는 건데 참 불행하게도 제가 여러 군데 다 찾아보고 이것저것을 다 살펴봤습니다만 이건 확인을 못했습니다. 누구인지 찾지를 못했어요. 아마도 유도일 개연성이 상당히 높아요. 그때 당시에 상당히 중세 질서와 흐트러져 지냈던 유도라는 사람일 개연성이 상당히 높습니다만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어찌 되었든지 간에 매창은 이제 이 얘기를 묻게 되죠. 내가 이렇게 아픈 것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나인가, 그인가. 그 사람이 나한테 아픔을 주는 것인가, 내가 스스로를 아픔이라는 걸 만들어가는 것인가 하는 시가 바로 이 시 안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죠.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제 1601년 임진왜란 그런 것들이 다 거치고 난 다음에 1601년 문제의 허균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이냐면 지금까지 우리가 본 이야기, 그러니까 매창이 태어나서 이 허균을 만나기 전까지는 다른 기생들이 살았던 것과는 크게 다르지가 않아요. 그저 뭘 한 거예요? 유희경이라는 사람의 문집에 매창의 시가 들어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을 하고 있을 뿐이지 실질적으로 매창이 살았던 흔적은 크게 다른 기생들과 크게 다르지가 않다는 겁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러면 매창이 매창일 수 있게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는 것이죠. 그게 무엇이냐라는 것이죠. 그리고 매창집(梅窓集)에 있는 시들이 여러 편이 있어요. 58편이 들어 있습니다, 매창집에는. 정확하게 얘기하면 하나는 다른 사람이 쓴 것이기 때문에 57편이에요. 57편이 들어있는데 이걸 모두가 유희경으로만 해석을 하고 있는데 매창집에 실려 있는 이 시 57편은 거의 모두가 1600년 이후에 나오게 되는 거예요. 정확하게 얘기하면 1603년 이후부터 1610년 사이. 그 7년 사이에 쓰인 시들이 거의 대부분 매창집에 실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희경과는 상관이 없는 거예요. 유희경과 상관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건 아까 시 하나인데 그게 쓰인 시기가 1603년입니다. 그래서 1603년부터 매창집에 있는 시들이 대부분 실려 있으면 그러면 도대체 그 무렵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라는 거예요. 매창이. 그걸 이제 우리가 물어봐야 하는 것이 가장 먼저였던 거예요. 그러니까 유희경과의 이야기보다도 1600년 무렵에 도대체 매창은 무슨 일이 벌어져 있었느냐는 거예요. 그 이전까지 뭘 했느냐면 기생수업을 받았고 그를 찾아온 사람과 사랑을 나누었고 그다음에 기생첩으로 갔다가 파혼을 당해서 다시 부안으로 왔고 전쟁 중에 약간 휴식을 취했고. 이 이야기밖에 나온 게 없죠. 그러면 1600년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라고 여기에서 질문을 던져야 하고 여기에서 우리가 도대체 매창이 왜 우리한테 이야기가 되고 우리가 매창을 사랑하고 우리가 왜 매창을 이야기하느냐라는 걸 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서부터 비롯돼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부분부터가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이후에 가장 중심에 누가 있었느냐면 바로 허균이라는 사람이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매창이 지금 매창일 수 있게 된 가장 큰 동인(動因)은 누구 때문이다? 유희경이 아니라 허균 때문이었다라는 겁니다. 이 양상을 이제부터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허균은 어떻게 오느냐? 1601년이에요. 전쟁이 다 끝난 다음에 1601년에 조관기행(漕官紀行)이라는 글을 남기게 됩니다. 이때 1601년에 그러니까 조관기행이라는 글을 남기는데 여기에 보면 1601년에 허균이 부안에 왔던 기록이 나옵니다. 뭐냐 하면 세금 잘 내고 있는가 하는 걸 감시하기 위해서 허균이 왔던 거예요. 허균은 아버지가 허엽입니다, 허엽. 지금으로 얘기하면 그때 당시 여당 총수예요, 여당 대표입니다. 동인의 대표가 허엽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형이 바로 위에 있던 형이 허봉인데 허봉은 누구냐면 율곡 이이랑 제일 친해요. 거의 나이도 비슷하고. 그러면서 이 허봉은 또 상당히 벼슬도 높고 호방(豪放)했던 사람이죠. 그런데 율곡과는 사이가 안 좋았어요. 그래서 이제 울화병으로 죽게 되고 그다음에 바로 그 위의 누나가 누구냐면 난설헌이에요. 허난설헌이에요. 그러니까 이 허균은 그 정말 잘나가는 부잣집 도령님의 막내였어요. 정말 철모르고 정말로 뭐냐 하면 좋은 걸 꿈꾸고 있는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 지금으로 보면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까요? 의식을 좀 갖고 있는 그때 당시의 최고의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난봉꾼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형태였죠. 그러니까 이 허균은 정말 말썽을 많이 피워요. 그런데도 이게 다 무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냐 하면 그 집안이 너무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래요. 다 아버지 친구고 다 형 친구인데. 그랬기 때문에 허균은 세상에 거리낄 게 별로 없었던 사람이 바로 허균입니다. 그런 허균이 바로 부안에 오게 된 거예요. 그래서 딱 그날 보면 1601년 여기 7월 23일 부안에 도착했다. 비가 내려서 거기에서 머물러 잘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홍달이 인사를 와서 만나보았다. 이 고홍달이라는 사람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 기생 계생은 이옥여, 이귀라는 사람이에요. 인조반정(仁祖反正)했던 이귀입니다. 이귀의 정인(情人)이었다.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조리는데 모습은 비록 대단치 않았으나 그러니까 얼굴 봤을 때 뭐예요? 별로 예쁘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재주가 정감 있어서 함께 이야기할만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술잔을 나누고 시 읊기를 주고받고 하였다. 그리고 밤에 자기가 들어오지 않고 누구를 보냈어요? 조카를 들여보내니 그것은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였다라고 이렇게 써놨습니다.

허균은 이 일기에 보면 자기랑 잠자리한 기생들 이름 다 적어놓고 어땠다는 걸 다 써놔요. 그만큼 이제 자유분방했던 사람이 허균입니다. 그러니까 이때 바로 문제의 매창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매창을 만났을 때 첫 인상이 어땠대요? 얘 별로다 이거예요. 얘 얼굴도 못생기고 나이도 이때는 27~28이란 말이에요. 그때 30이면 노기, 퇴역으로 치던 그런 시대인데 27~28살 기생을 누가 허균이 그렇게 그 아까 같은 최고의 난봉꾼이 좋아할 리는 없겠죠. 그래서 에이 얘 별로네 하면서 하고 있는데 그때 뭘 해요? 그런데 얘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뭐 하는 거예요? 완전히 자기를 끌어들이는 게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밤새도록 술을 나누면서 주고받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밤이 깊어지자 침소에 조카를 들였다는 것이죠. 매창이 여기에 아마 형제가 있었고 아마 얘는 언니 딸이었을 개연성이 높아요. 아무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제 이런 저런 돌아다닐 때 그때 형이 바로 허균의 큰형인 허성이 전라도 관찰사, 지금으로 하면 전라도 도지사가 돼서 내려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때 당시에 이제 사람들이 전부 다 이 허성을 가서 맞이를 해야겠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도지사가 오게 되면 그 고을에 군수들이나 시장들은 가서 얼굴을 들이밀고 인사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이때 당시에 하게 되고 그때 매창도 다시 여기에 가서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에 있었던 그 뒤에 있었던 사람이 허성을 이어서 온 사람이 누구냐면 그때 당시 부지사였던 한준겸이 바로 도지사가 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기억을 해야 할 사람입니다. 한준겸. 왜 그러느냐 하면 이 한준겸이라는 사람은 매창을 최고의 기생으로 알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러니까 지금 한준겸은 허균과도 잘 아는 사람이에요. 나중에 부마(駙馬)까지 됩니다만 허균과도 상당히 잘 아는 사람인데 이 한준겸은 매창을 어떻게 바라봤을까요? 이미 허균과 관련이 된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조심스러웠을 거예요. 아까 여기도 나오잖아요. 허균도 마찬가지로 이 이귀도 자기랑 인척이 되기 때문에 이귀가 사랑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를 그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조카를 들여보냈던 것처럼. 그러니까 한 여인을 두고 같이 잠자리를 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알고 있는 사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요. 그래도 옛날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두면 그 기생을 두고서 누가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그 기생이 나랑 친한 사람, 혹은 나랑 관련이 된 사람과 정분이 있다고 하면 다른 사람은 그 기생을 건들지 않아요. 그건 예의입니다, 옛날 당시에. 그런 것처럼 아마도 한준겸도 이때 당시에 허균이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 혹은 뭐 했던. 허균은 건들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는 없지만 한준겸은 분명히 매창을 다르게 봤을 것이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매창이 한준겸이 도지사가 됐을 때 허성에 이어서 허균의 형에 의해서 그다음에 도지사가 되었을 때 바로 잔치를 열게 되는데 이때 당시에 매창이 가서 시를 이제 지어주게 됩니다. 이게 매창집에 남아있습니다.

이거는 다른 사람 유희경과 관련시켜서 얘기합니다만 다 이게 아니에요. 이게 누구 때문에 누구한테 쓴 거냐면 한준겸한테 쓰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한준겸이 그때 당시에 생일이에요. 생일이어서 시 한 수 지어보세요 하니까 한준겸이 시를 지어요. 그게 뭐냐 하면 문자규유감(聞子規有感)이라는 거예요. 소쩍새 소리를 듣고서 나는 무슨 울림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 시 내용이 어떤 내용이냐면 내가 이렇게 즐겁게 생일잔치를 하고 있지만 저 애절픈 소리를 듣다 보니까 내가 임금님한테 너무 못한 것 같아서 임금님이 그리워서 눈물이 막 쏟아진다고 하면서 갑자기 분위기를 확 깨는 그런 시를 짓게 됩니다. 어쩌겠어요. 막 잔치하고 한창 즐거운 상황에 주인공이 행사 당사자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임금님! 하고 있는데 그 잔치가 좋아질 리가 없겠죠. 그런데 매창이 거기에 시를 짓게 된 게 바로 이 시가 되게 되는 거예요. 복차한순상수연시운伏次韓巡相壽宴時韻)이거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순상 생일잔치에 지은 시. 이 사람이 지은 시에 내가 그걸 본떠서 짓는다고 하는데 이 시가 정말로 선생님들이 한번 대비해서 보면 알겠지만 분위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라는 걸 상당히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위기를 확 바꾸어놓은 게 매창이었다는 것이죠. 그만큼 매창이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분위기라든가 그런 건 상당히 잘 맞췄던 사람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죠. 그래서 그랬는지 한준겸은 이 매창을 너무너무 사랑해요. 그러면서 자기가 도지사가 돼서 여행을 떠날 때 바로 매창도 데리고 가게 됩니다. 그게 김제 모악산 쪽으로 가게 되는데 용안대라는 데가 있어요. 그러면서 한준겸은 매창한테 이런 시를 써서 주게 됩니다. 뭐냐 하면 변산의 맑은 기운이 온갖 훌륭한 남자를 태어나게 할 줄 알았다라는 것이죠. 변산의 기운이 한번 우리도 답사 가보면 알겠지만 그 변산에 가보면 여기에서 정말로 영웅호걸들이 나올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만큼 이제 그 기운이 정말로 호걸들을 뿜어낼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기운이 이런 남자들을 내지 않고 누구를 만들어낸 거예요? 천년의 중국의 최고의 시인 동심초 아시죠? 꽃잎은 한 잎 두 잎 지고 있는데 내 마음은 어쩌고저쩌고 하는 얘기가 있는데 그 시를 쓴 사람이 바로 설도입니다. 그 설도가 우리나라에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죠. 설도에 매창을 비유한 거예요. 그것은 뭐냐 하면 조선 최고의 시인이 여성 시인이 여기서 나타났다고 매창을 평가를 내리겠죠. 한준겸은 매창을 그렇게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매창도 마찬가지로 여기에 대해서 답시를 보내게 되죠. 그만큼 한준겸과 매창 간의 관계는 상당히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리고 또 어느 날 이 한준겸이 일이 다 끝나서 떠나게 됩니다. 일이 다 끝나서 떠났을 때 매창은 한준겸을 그리워하면서 시를 쓰게 됩니다. 이게 바로 석고(惜古)라는 얘기예요. 이것이 그 다시 지금 아마 선생님들 책들 보다 보면 이게 유희경을 그리워하면서 했고 그리고 유희경을 만난 게 만났던 때가 임계년을 해서 1592년 1593년 이렇게 해석들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유희경한테 보낸 시가 아니라 누구한테 보낸 거예요? 그때 당시 도지사로 있었던 한준겸한테 보낸 시예요. 그래서 뭐라고 돼 있냐면 당신이 신선 같은 몸으로 내려오신 그때에 나는 당신과 더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님을 그리워하는 이 노래를 부르고 있자니 그저 당신이 그리울 뿐입니다라는 이런 시를 여기에 남겨두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때에 이 매창과 한준겸 사이에는 상당히 어떻게 보면 둘 사이에는 좋은 인연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생각해볼 때 허균을 통해서 만난 이 한준겸과 이 매창 사이에는 분명히 아주 절친한 어떤 신의의 그게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 한준겸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느냐면 이후에 딸을 왕비로 간택하는 부원군이 되기도 합니다만 그리고 이 사람이 왜 중요하냐면 매창한테 중요하냐면 매창이 죽고 난 뒤에 매창집이 간행이 돼요. 이때 매창집이 간행되는데 이때 당시에 도지사가 누구였느냐라고 얘기하면 전라도 관찰사가 누구였냐면 바로 한준겸의 외손자예요. 이제 이해들이 됐죠? 그러니까 한준겸이 자신의 딸한테 자기의 딸한테 뭘 한 거예요? 늘 이 얘기를 했기 때문에 이 사람도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도지사가 이 사람이 허락을 해 주지 않았다면 그때 당시에 문집을 내는 건 모두 도지사가 허락을 해줘야 해요. 그랬기 때문에 이 사람이 허락을 해줬기 때문에 이 시집이 나올 수가 있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한준겸을 만남으로써 매창집이 오늘날 볼 수가 있게 된 겁니다, 엄밀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이 양상은 그래서 우리가 한준겸이라는 이 사람을 우리가 기억을 해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더 중요한 이야기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누구냐? 바로 이 매창이 지금까지 매창일 수 있게 한 바로 그 요인이 되게 됩니다. 바로 허균, 그리고 극우들과 만났던 그 동지들. 이때 매창은 이들과 만나게 됩니다. 정말 매창이 허균을 만난 게 저는 항상 생각을 합니다만 매창이 허균을 만난 게 행복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이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오늘날 매창이 최고의 기생이 되게 된 이유는 바로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허균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죠. 허균과 관련이 없었더라면 매창은 그저 하나의 잊힌 시, 기생으로 남아있었을 겁니다. 그런 매창이 아마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고서 과연 허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지금까지 매창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강연까지 해가면서 이 최고의 지성들을 모시고 해서 이런 이야기까지 할 수 있는 이런 시기가 마련이 된 것은 이런 계기가 마련이 된 것은 전부 다 허균이라는 이 사람이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양상을 우리가 더 집중적으로 살펴보자는 것이죠. 그러니까 1600년 이후에 부안으로 온 현감이 있죠. 부안을 다스리는 현감. 그러니까 매창을 통솔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누구였느냐라는 건데 이게 전부 다 허균과 관련된 인물들이었다는 겁니다. 이게 제일 먼저가 됩니다.

그리고 1600년에 누구였냐면 민인길이에요. 이 민인길은 누구냐 하면 나중에 허균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아까 1601년에 허균이 부안에 오게 되죠. 그런데 그때 누가 있었냐면 율곡 이이의 동생 이우가 거기에 살고 있었어요, 부안에. 그래서 그 집에 찾아가다가 이 민인길을 만나요. 민인길은 뭘 했느냐면 그때 당시 직무정지가 되어 있었던 상태예요. 부정행위가 발각이 돼서 그 검사 과정에서 지금 유배를 당한 상황이었죠. 좌천을 갈 것이냐 아니면 유배를 갈 것이냐 하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었던 상황에 허균이 얘를 만나게 됩니다. 처음 만나는 거죠. 그래서 허균은 걔가 너무 불쌍했었나 봐요, 민인길이가. 그래서 술도 사주고 밥도 사주고 하면서 자기를 따라다니게 합니다. 그만큼 허균은 민인길을 좋아했는데 민인길이 나중에 그 모든 걸 부정하면서 허균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이 사람이 바로 민인길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임정.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조운(漕運) 판관으로 왔을 때 그때 당시 수령은 바로 임정이 되게 됩니다. 민인길이 직무정지를 당했고 임정이 바로 내려오게 되는데 이 임정은 허균이 아까 얘기했잖아요. 허균은 정말 천둥벌거숭이였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무작정 밀어붙여요. 그런데 얘는 지금 무작정 밀어붙이면 안 된단 말이에요. 이거 이렇게 해놓으라고 허균은 했는데 임정은 그게 안 돼요. 그런데 허균은 어땠을 것 같아요? 양보가 없죠. 해 하니까 결국 이걸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파직이 돼요. 그 사람이 바로 임정이 되게 됩니다. 아까 허성이 형이 도지사로 왔을 때 매창을 데리고 간 사람도 이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문제가 되는 이 윤선, 그다음에 온 사람이 바로 윤선이 되게 됩니다. 이 사람 때문에 매창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게 됩니다. 그리고 허균도 이 사람 때문에 심문을 받기도 해요. 이게 상당히 허균을 괴롭히는 사건으로 자리하게 된 그 중심에 윤선이라는 사람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뒤를 이어서 온 사람이 바로 허균과 정말 친한 친구 심광세가 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바로 매창의 동지이기도 하죠. 이때 당시에 우리가 주목을 해야 한다. 이 시기가 바로 오늘날 매창이라는 이름을 만들게 한 가장 큰 요인이 되게 됩니다. 아까 얘기했던 심광세가 부안에 와요. 부안에 오게 되는데 부안 현감으로 오게 되면서 시 한 수를 이렇게 쓰게 됩니다. 시를 쓴 게 아니라 심광세가 일단 매창은 여행을 떠나요. 변산 유람을 떠납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쓰게 되는데 이 매창과 심광세가 얼마나 절친했는가 하는 걸 보여주는 게 바로 이 시가 있습니다.

매창이 한가로웠나 봐요. 날이 한가로워서 이런 시를 쓰게 돼요. 봄날 어느 봄날 대숲에 새들은 지저귀고 그런데 날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날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뚝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그 눈물이 떨어지는 게 부끄러워요. 그래서 나는 갑자기 커튼 뒤에 가서 숨었어요. 그리고 님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르다 보니까 꽃은 떨어지고 제비는 날아가고 있더라 하면서 아주 운치 있는 시 한편을 쓰게 되죠. 그런데 심광세는 그 시를 듣고서 여기 에다가 시운을 남겨줍니다. 여기에 운을 남겨두게 되죠. 이것이 바로 어디에 들어있느냐면 심광세의 문집 휴옹집(休翁集)에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뭐냐 하면 지금 유희경과 관련된 시들이 없죠? 다 이런 관련돼서 만들어진 시가 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이 이제 여기서부터 비롯되게 됩니다. 허균이 1607년 허균은 삼척부사로 임명이 돼요. 문제가 되는 1607년. 아까 1607년에 심광세가 부안 현감으로 온 때예요. 그러면서 심광세는 매창, 허균이 좋아했던 허균과 친하게 지냈던 친구라고 해서 아주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이렇게 서로 시도 주고받으면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던 바로 그런 식이었죠. 그때 허균은 어떻게 하고 있었느냐, 허균은 삼척부사로 임명이 되게 됩니다. 강원도 삼척부사로 가게 돼요. 그런데 가자마자 술 먹고 온갖 잡동사니 일들을 벌여요. 그래서 불과 13일 만에 파직이 됩니다. 현감으로서의 자격을 얻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가자마자 파직이 돼서 쫓겨나게 돼요. 그런데 아까 말씀을 드린 것처럼 허균은 뭐한 집안이라고? 아주 든든한 집안이었다는 거죠. 얘를 아무도 못해요. 그래서 허균이 간 데가 어디냐면 내자시정(內資寺正). 왕실의 물품을 담당하는 거기로 들여보내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방관으로 보냈다가 파직이 되자마자 뭘 한 거예요? 중앙부처로 옮겨가게 된 거예요. 그런데 허균은 늘 생각했던 게 뭐냐 하면 나는 서울에 있는 게 싫은 거예요. 그래서 어디를 가고 싶었던 거예요? 늘 나는 지방에 가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특히 허균은 회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막 회 먹고 싶은 거예요. 회가 막 끌린 거예요. 그런데 회가 어디가 유명한가 했더니 어디가 유명하냐면 부여가 그 당시에 유명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나 부여 현감 줘라고 얘기를 해요. 이제 뒷배경으로 뒷백을 이용해서 나 부여 현감으로 보내줘라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이제 성사가 안 되고 허균은 어디로 가냐면 공주목사(公州牧使) 그 근처인 공주목사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좀 아쉽긴 해도 회를 아주 먹을 수 없어도 그래도 가까운 데잖아요, 공주와 부여는. 그래서 여기로 부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 가서 정말 짧은 기간이에요. 한 열 달 동안 공주에 있게 되는데 그때 당시 허균은 누나의 시를 모은 난설헌집(蘭雪軒集)을 간행을 하게 됩니다. 그때 당시 수령이 모든 걸 문집들을 내는 걸 총 책임제를 하기 때문에 누나의 시도 여기서 낼 수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때 허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면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인 권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허균은 이 친구 아버지 권벽이에요. 권벽이 이제 시집을 낼 돈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친구가 뭐 한 거예요? 지금 지방관으로 내려간 거예요. 그러니까 권필이 허균한테 얘기를 하죠. 우리 아버지 문집 좀 거기서 내줘. 허균은 어땠을 것 같아요? 내주지 뭐, 그까짓 거 하면서 허균은 내주게 됩니다. 그리고 허균은 거기에서 자기 친구들을 다 부르게 됩니다. 이재영이라는 사람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지내는 친구예요. 그랬더니 뭐라고 부르느냐면 너 편지를 써서 보내게 됩니다. 너 이 공주로 내려와라. 그러면 내 월급 얼마 안 되지만 이 월급 반을 가지고 네 어머니 모시면서 여기서 지내라라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이재영은 힘들 때 계속 도와주게 됩니다, 허균이. 허균은 정말로 이재영을 좋아하고 그 사람의 뒷바라지를 다 해 줍니다. 왜 제가 이 얘기를 하느냐면 끝내 나중에 허균이 궁지에 몰렸을 때 이재영은 허균을 배반함으로써 허균이 죽음을 바로 겪게 하게 한 핵심인물이 바로 이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도움을 받은 사람한테 허균은 다 팽 당한 거죠.

그리고 이때 당시에 부른 사람이 바로 심우영이랑 서양갑 그리고 이경준 같은 사람들을 부르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이 사람들이 누구냐면 이재영은 좀 빼고 심우영, 서양갑, 이경준 같은 사람들은 다 조선사회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뭘 하느냐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실천가들이에요. 그러니까 이론가들이 아니라 이 사람들은 몸소 그 실천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대원군을 몰아내고 영창대군을 옹위하려고 한 사건이 벌어지게 되죠. 그게 계축옥사(癸丑獄事)예요. 계축옥사의 핵심이 누구냐 하면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지금 좀 무섭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이 사람들은 전부 다 그때 당시에 죽음을 당해요. 그러면서 사람들은 다 누구를 지목하라. 온갖 고문을 하면서 네 배후를 지목해라. 배후가 누구냐? 누구 때문에 배후를 캐내려고 했을 것 같아요? 허균을 잡으려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죽어가면서도 끝내 허균을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게 그 허균이 살아남게 된 이때 한 죽게 된 동인이 되죠. 그만큼 이제 아마 이 사람들은 허균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리고 허균은 신분을 초월해서. 이 사람들은 다 서얼(庶孼)들이거든요. 그러면서 이 사람들은 서얼허통(庶孼許通)까지 해요. 우리가 서얼이라고 합니다만 양인들, 그러니까 양반이 양민, 평민과 결혼해서 낳은 자식은 서자(庶子)라고 해요. 그리고 천민과 결혼해서 낳은 자식은 얼자(孽子)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서얼이라고 하는데 이런 걸 이제 필요 없이 다 허통을 하자. 이렇게 했던 사람들도 바로 이 그룹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들은 정말로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사람이고 허균은 바로 그 중심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당시에 허균은 잔치를 벌여요, 백마강에서. 부여에 아마 회 먹으러 갔겠죠, 회 좋아했으니까. 그때 백마강에서 부르게 되는데 그때 당시 심광세, 부안 현감(縣監)으로 있었던 심광세도 부르고 자기의 친구 조희 이런 사람들을 다 부르게 됩니다. 이 조희는 나중에 허균 때문에 온갖 고초를 당하다가 유배에 가서 지내게 될 정도로 상당히 슬픈 운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정말 잘못한 거 없이 허균 때문에 고문도 받고 유배도 간 사람들인데 이때 당시 이런 사람들하고 바로 백마강에서의 모임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1608년 결국 허균은 지방행정을 엉망으로 했다고 해서 파직(罷職)을 당하게 됩니다. 허균은 늘 파직당하는 게 일상이었죠. 그러니까 뭐 그러면 허균은 늘 얘기를 해요. 너희는 너희 법대로 해라. 나는 내 법대로 하겠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거든요. 아까 13일 만에 파직됐을 때도 그 얘기를 하거든요. 너희는 너희 법 따라라 나는 내 법 따르련다라고 할 만큼 그렇게 자유분방했던 사람이 이 사람이죠. 그런데 파직이 됐으면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파직이 됐으면 어디로 가야겠어요? 집으로 가야죠. 분명 집으로 가서 든든한 백 갖고 있기 때문에 뭐 하면 되는 거예요? 다시 거기서 준비를 하면 되는데 허균은 서울이 아니라 이때 부안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이게 정말 미스터리한 일인데 이때 당시에 허균이 왜 서울이 아니라 부안으로 갔을까? 이게 여전히 궁금증으로 남게 됩니다. 그런데 허균은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과 지방이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던 거예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는데 그래서 사람들 모두가 서울로 향해갈 때 그러니까 지방으로 안 가려고 할 때 이때 허균은 바로 지방으로 내려간 거예요, 부안으로. 허균 자체가 여기서도 보면 중앙에 있다면 지방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해서 지방을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서울로 가야 하는데 서울이 아니라 부안으로 가게 된다라는 겁니다. 이게 이제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되게 됩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얘기를 하게 되느냐. 허균이 부안으로 가게 되면서 심광세한테 편지를 보내요. 거기에 있는 고을 수령이기 때문에 심광세가 있었죠. 그 수령한테 편지를 보내는 게 남도를 맡고 있는 주인. 나는 당신만 믿고 간다 이 말이에요. 나는 너만 믿고 간다. 산속에 나 들어가 살 테니까 종 두어 명만 부역에서 덜어줘라. 나한테 일할 사람 두 사람 정도만 붙여줘라 이 말이죠. 그러한즉 내 마땅히 그 사람을 기뻐하면서 받아들이겠대. 자네의 성의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이겠네 이렇게 한 것이죠. 상당히 허균 특유의 위트예요, 이게. 지금 보면 별로 위트로 안 느낄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위트죠. 어이, 그쪽 지방 주인, 나는 당신 믿고 가네. 그러니까 당신 거기에 두 사람만 나한테 붙여줘. 그러면 당신 선물이라고 생각해서 나 즐겁게 받아들이겠네. 그러니까 나 당신만 믿고 가오 하면서 얘기를 하는 것이죠. 그리고 나 당신 말 안 듣고 뭐 하겠다? 산속에 들어가서 살겠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서 뭐냐고 하냐면 가을바람이 산들 불고, 귀뚜라미가 울어대네. 남쪽 하늘을 바라보니 저 기러기와 함께 날고 싶구려라고 뒤에 뭔가 무엇인가 모를 애절함이 들어있어요. 상당히 위트로 가다가 뭐하냐면 가을바람이 산들 불고 귀뚜라미가 울어대는데 그리고 이제 내가 내려갈 남쪽 나라를 바라보니까 그저 나도 하늘을 날고 싶다고 얘기를 하는 거죠.

허균은 뭔가 지쳐있었던 건 분명한 것 같아요. 도대체 세상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친한 친구였던 권필에게 보낸 편지. 아니, 조위한에게 보낸 편지에도 이 얘기가 나옵니다. 이제부터 나는 오후(五侯)의 문에는 향하지 않으려네. 이 오후라는 것은 이제 부귀와 권력을 가진 5명의 제후예요. 그냥 나는 뭐하겠다? 부귀와 권력을 이제는 더 이상 탐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어떻게 해야 형화 화산(華山)을 반으로 나눠 살 수 있을까? 이 화산은 청렴결백한 사람들을 의미하게 되는 거죠. 중국 고사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서 종이를 대하니 탄식만 나온다는 거죠. 당신에게 편지를 쓰자니 깊은 시름만 나온다는 겁니다. 분명히 허균은 여기에서 분명히 무슨 상처를 받았고 그것 때문에 부안으로 내려가려고 했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허균은 부안으로 오게 됩니다. 부안에 와서 뭘 하게 되느냐면 그때 당시 매창과 아주 친하게 지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뭘 하게 되느냐면 유교가 아니라 참선(參禪). 청담(淸談) 같은 도교 이야기라든가 불교 이야기라든가 상당한 이야기들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매창도 이때 허균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으면서 그런 식으로 흘러갔던 것이 아닌가 하고 우리는 추정을 해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허균이 왔을 때 뭘 하느냐면 여기에 정사암중수기(靜思菴重修記)를 쓰게 됩니다. 변산을 유람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변산을 단순히 아까 심광세는 놀러갔지만 이 허균은 놀러간 게 아니에요. 내가 살 곳을 찾아서 가는 건데 거기 가서 뭘 하느냐면 아주 쪼그마한 집 하나를 지었다고 허균이 쓰게 됩니다. 거기가 어디냐면 우반골이에요, 우반골. 거기가 나중에 이게 문제가 되게 됩니다. 아주 쪼끄마한 데라고 얘기를 합니다마는 조정에서 여기서 문제를 걸어요. 거기가 너무 넓은 곳인 데다가 거기서 군사훈련까지 할 수 있는 양상까지 나오게 됩니다. 바로 그곳에 허균이 갔던 것이죠. 그리고 여기에 온 사람들이 누구냐면 아까 그 멤버들이 다 오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부안은 시끄러운 동네가 되어 버렸어요. 거기에 허균이 있었고 매창이 있었던 겁니다.

그게 오늘날 우리 책자에 보니까 다음 갈 때 보니까 우반골이 나와 있는데 반계서원(盤溪書院), 맨 끝에 보면 반계서원이 나오는데 유형원이 거기에 서원을 짓게 되는데 거기가 바로 허균이 머물러 있었던 데입니다. 어디인지 정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그 위쪽이 아마 그보다 조금 위쪽에 있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거기서 아마 우리가 이야기되고 있는 홍길동전도 어기서 지어졌을 개연성이 있어요. 엄밀하게 따져보게 되면. 그만큼 거기는 중요한 이곳에 허균이 위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누구를 만나게 되냐면 남궁 두라는 허균의 다른 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이라는 전 작품이 있어요. 그 작품을 쓴 사람도 바로 허균인데 바로 거기서 그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신선 같은 사람. 그러면서 아주 허균은 무엇인가 모를 다른 세상을 분명히 여기서 꿈꾸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허균은 이 난설헌이 왜 허균한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느냐면 여기 보면 난설헌의 시들을 모방한 시들이 매창집에는 2편이나 나와요. 지금 이 시를 보면 똑같은 시죠? 기승전결 하면 이 두 연하고 이 두 연이 바뀌었을 뿐이지 시는 똑같아요. 그러면 왜 매창은 특히 이제 이건 잘 눈으로 잘 못 느끼시겠지만 이런 걸 보면 이건 거의 같잖아요, 글자까지. 그렇죠? 글자가 거의 같잖아요, 낡은 풍경 내려 앉아 별빛만 맑은데. 이게 매창이 지은 시인데 이게 뭐냐 하면 맑은 풍경 내려앉아 별빛만 차가운데. 매창은 분명히 난설헌집을 봤어요. 보지 않고서 이렇게 쓰기가 어려워요. 그러면 이걸 누가 어떤 식으로 봤을까요? 아마 허균은 매창에게 난설헌집을 주지는 않았을 거예요. 책이 하도 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생한테 그렇게 주기는 어려웠을 거고 단지 허균은 너무너무 똑똑했던 사람이잖아요. 한 번 보면 그걸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 그래서 난설헌집을 낸 것도 내 머릿속에 있던 걸 그대로 끄집어내서 낸 거잖아요. 누나가 옛날에 썼다더라라고 해서 해놓은 건데 그런 것처럼 이렇게 들려줬으니까 매창은 분명히 그걸 받아들였을 것이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구조차 저렇게 매창은 허균의 영향을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아까 사상이나 그런 것들은 어땠을까? 이런 흐름으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런 매창과 허균과의 관계가 상당히 어떻게 보면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뭔가 다른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부안에는 완전히 어느 순간부터 시끄러운 동네가 돼요. 그러면서 조정에서까지 이게 문제가 되게 됩니다. 조정에서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사간원에서 국가의 정책들에 대해서 간하는 사간원에서 뭐라고 했냐면 부안 현감 심광세는 식견이 있는 조정의 인사들로 식솔들을 너무나 많이 거느리고 가서 폐를 갖가지로 끼치고 있다. 그러니까 징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파직을 내려달라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이건 정말 당혹스러운 의견제기입니다, 사간원(司諫院)에서 하는 건. 아니, 식솔 데려가 봐야 얼마나 데려가겠어요. 그리고 옛날 현감으로 가면서 식솔이라는 건 자기 형제, 가족들인데 가족들을 데리고 가봐야 얼마나 데리고 간다고 이걸 갖고 문제를 삼겠어요. 그런데 이 심광세한테 온 건 분명히 뭐겠어요? 이 식솔은 분명히 가족이 아니죠. 뭐냐 하면 심광세가 거기에 데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누구를 향한 사간원의 상소겠느냐라는 거예요. 부안이 왜 저렇게 시끄러워졌느냐, 이거를 묻고 있잖아요. 그러면 이게 누구를 향한, 누구를 공격하기 위해서 이들은 궁극적으로 누구를 공격하기 위해서 이런 말들을 했겠느냐는 거예요. 누구겠어요? 바로 그때 당시 이들의 핵심 중 가장 선두에 있었던 허균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이런 말을 할 리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특히 이제 우반동에 지은 허균의 정사암 얘기가 계속 나오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거기는 무슨 동네였을까? 그게 이제 우리가 궁금해지는 하나의 문제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 허균은 거기에서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나는 다시는 뭐 하겠다. 오후의 문에는 들어가지 않겠다. 나는 평생 여기서만 살겠다고 이렇게 얘기했던 사람이 하도 위에서 많이 불러서 결국 허균은 부안을 떠나게 됩니다. 1608년 12월. 그리고 매창에게 뭐라고 얘기를 하느냐면 올해 가지만 가을 낙엽이 질 때 그 무렵까지는 내 꼭 돌아옴세 하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매창과 편지를 주고받게 되죠. 그런데 허균이 떠나면서 사람들이 부안에서 쫙 빠져나갑니다. 허균이라는 사람이 상당히 중요했던 인물이었죠. 그런데 그때 또 허균이 떠났을 때 바로 얼마 안 지나서 권필이 오게 됩니다. 최고의 대시인 권필이 부안이 오게 되죠. 그리고 바로 권필이 온 다음 달에 심광세도 허균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심광세도 사직을 하면서 떠나버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안은 텅 비게 되죠. 그런데 이들이 이때 당시에 여전히 하나의 권력으로 만났다는 걸 볼 수 있는 게 각각의 시집들, 문집들을 보다보면 시들이 쓰여 있는데 그게 다 하나로 연결이 된 시가 됩니다. 이걸 보면 권필이 고홍달의 집에 와서 이렇게 시를 한 편을 써줘요. 이건 시를 할 때 운을 맞춘다고 하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운을 맞춰요. 이 시를 하게 되는데 그런데 심광세도 권필이 고홍달에게 주는 시를 차운(次韻)해서 이 시를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심광세는 또 너무나도 서운했는지 또 시 한 편을 이렇게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매창집에 들어있는 이 시, 이것도 바로 거기에 화답한 시죠. 분명하죠? 이렇게 이제 증거가 되게 되는 것이죠. 이 시는 뭐냐 하면 심광세가 떠나면서 가졌던 마지막 잔치에서 불렀던 시들이 되게 됩니다. 지금 부안은 그렇게 되면서 그 시끌벅적했던 부안이 어느 순간 조용한 세상이 되어 가기 시작을 합니다. 단지 거기에 누가 남아있던 거예요? 유일하게 권필이 남아있었던 것이죠. 조선최고의 시인 권필이 거기에 남아있게 됩니다. 권필은 왜 왔느냐면 아까 얘기했던 허균이 아버지 문집을 내주잖아요. 그걸 이제 감독하러 왔다가 이왕 온 김에 여행을 떠난 거예요. 그러다가 다시 부안을 오게 되면서 시를 주고받게 됩니다.

그런데 권필의 문집에 보면 이런 시가 하나가 들어가 있어요. 증천향여반(贈天香女伴) 이러한 시. 그러니까 이건 뭐냐 하면 이 천향은 아까 우리 매창집 거기에서 나왔지만 계자가 매창의 자가 천향이었다고 돼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 뒤에 있는 여반이라는 말이 아주 의미심장하죠. 매창은 뭐였어요? 아까 얘기했던 공물이었죠, 기생이었죠. 그것인데 권필은 얘를 어떻게 얘기를 한 거예요? 내 여자친구라고 얘기를 했던 거예요. 우리의 여자친구, 우리의 친구라고 얘기를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권필한테 매창은 이들과 어떤 기생의 관계가 아니라 이들과 동지였다라는 겁니다. 이렇게 시를 써준 경우가 없습니다. 그런데 권필은 뭐라고 돼 있냐면 우리의 벗, 우리들의 친구 매창에게 이렇게 쓴 것이죠. 이런 시를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또 여기에는 이게 또 권필의 시집에 보면 이런 시가 있어요. 제목이 없이 돼 있다는 시. 그러면서 여기도 보면 나 지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금 이런 상황에서 살구꽃은 떨어지고 두견새만 울고 있다는 것이죠. 권필은 너무너무 이때 가슴이 아팠나 봐요. 아까 2월에 왔으니까 아마 3월, 이제 지금과 같은 이 무렵에 지금보다 조금 이른 시기겠죠? 지금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모르겠다고 권필은 이야기를 하게 돼요. 그러면서 이 봄은 이런 상황에서 봄은 쓸쓸한데 살구꽃은 떨어지고 두견새만 울고 있고. 도대체 이런 아름다운 시절에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권필은 묻고 있죠. 그러자 매창집의 '봄날의 시름'이라는 시를 보면 이런 얘기를 하게 되죠. 답을 하게 돼요. 이것도 시가 같죠? 권필이 쓴 것에 대해서 운을 했죠. 그러면서 옛 임 오시다가 길을 잃었나 하겠네. 당신 어떤 사람이지 오다가 길을 잃었다고 했는데 당신은 길을 잃은 게 아니랍니다. 뭐 하고 있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하면서 그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분명히 이 사람을 달래줄 줄 아는 그런 요인이 있었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아까 얘기가 됐는데 이제 매창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지금 앞서 다시 한 번 보게 되면 이때는 언제냐면 1609년 2월입니다. 그리고 권필이 만났을 때만 해도 매창은 여전히 건강했어요. 그런데 매창은 갑자기 죽게 됩니다. 1609년 1월 여기에는 왜 죽었는가 하는 물음이 나오게 됩니다.

허균이 편지을 보내요, 매창에게. 낭자가 달을 보고 거문고를 따면서 ‘산자고’를 지었다고 하더군.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데서. 그렇다면 그 시를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데서 부를 일이지 어쩌자고 윤공의 비석 앞에서 불러서 다른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느냐. 백성들이 만들어놓은 석 자 높이의 비석을 더럽혔다니 이는 자네의 잘못이네. 그 욕이 내게 돌아왔으니 원통할 뿐이네. 그리고 이제 묻죠. 이제 근래에도 참선을 하는가? 그리움이 더욱 깊어진다. 이건 늘 하던 것이죠. 허균과 매창이 늘 하던 그 모습을 그대로 담았죠. 그런데 이게 하도 희한해요. 내용이 희한해요. 낭자가 달을 보면서 거문고를 타면서 님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그러면 왜 조용하고 사람들 없는 데서 부르면 되지 왜 꼭 윤공 시비 앞에서 불렀냐. 이게 아까 얘기했던 윤선이라는 사람입니다. 부안 현감으로 왔었던 사람 기억나시죠? 민인길 다음에 인정 다음에 윤선 나오고 심광세죠. 심광세 이전에 왔던 부안 현감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느냐. 그러면서 그런데 더 황당한 건 그 욕이 왜 허균한테 돌아왔느냐라는 거예요. 하도 희한한 이 편지 하나가 오게 됩니다. 이건 분명히 두 사람은 이제 알게 되죠. 그러면 다시 한 번 가봅시다. 그런데 이거에 대한 얘기가 허균이 지은 성수시화(惺搜詩話)에 이런 얘기가 나와요. 부안의 기생 계생은 시를 잘 짓고 노래와 거문고에도 뛰어났다. 어떤 태수가 아까 얘기했던 윤선이죠. 그녀와 가깝게 지냈다. 그녀의 연인이었다는 것이죠. 태수가 떠나자 마을사람들은 비석을 세워서 그를 그리워했다. 윤선의 선정비(善政碑)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밤 달이 곱게 떠오르자 계생은 그 비석 옆에서 거문고를 타며 하소연하듯이 길게 노래를 했다. 그리고 이원형이라는 자가 지나가다 이를 보고 시를 지었다. 그런데 그게 뭐냐 하면 한 곡조 거문고 뜯으며 자고새를 원망하는 데 황량한 비석은 이 없고 휘영청 둥근 달만 외로워라. 현산 땅 그때 양호의 비석 앞에서도 또한 고운 님이 눈물을 떨어뜨린 적이 있었던가. 당시 사람들은 잘 지은 시다라고 되어 있다. 이원형은 우리 집에 드나드는 관객이었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가르치는 식객이었다. 내가 먹여 살리고 있는 사람이었다라는 거예요. 어릴 적부터 나와 이귀와 함께 지낸 까닭에 시를 지을 수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석주 권필이 그를 좋아해서 칭찬했다. 뜬금없이 권필은 왜 등장을 하고 있고.

그런데 아까 분명한 것은 뭐냐 하면 아까 매창이 지었다는 시가 실제 누가 지었다는 거예요? 이원형이라는 사람이 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이건 아주 중요한 얘기가 되는데 매창은 지금 시를 지었어요. 윤선이 그리워서 윤선이라는 사람이 그리워서 그 옆에서 가야금을 타면서 거문고를 타면서 시를 지었죠. 그러자 그 시를 지었는데 그게 허균이 지었다고 하면서 이야기가 되기 시작을 해서 허균을 고초를 받았다, 이 얘기를 앞에서 써놨어요. 그런데 여기를 보게 되면 어느 날 매창이 거문고를 타며 시를 지었어요. 그런데 자기가 데리고 있던 사람이 그 옆에서 이런 시를 지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시가 아주 중요한 시가 무엇이냐면 이건 뭐 앞에 건 그렇고 그런 얘기니까 그렇다고 봅시다. 거문고를 뜯으면서 님을 그리워한다는 거죠. 그런데 님은 없고 달만 휘영청하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뒤에 나온 이야기예요. 이 현산 땅에 양호의 비석에도 고운 님이 눈물을 떨어뜨린 적이 있었는가. 그런데 이거는 뭐냐 하면 상당히 비꼬는 이야기 같아요. 무슨 이야기냐면 중국 고사인데 현산 지방을 다스리던 사람이 그때 양호라는 사람이에요. 그때 당시 고을 수령이 양호예요. 그런데 너무너무 고을을 잘 다스려요. 그래서 그때 백성들이 이 사람의 선정비를 세워주게 됩니다. 너무너무 정치를 잘했다고 해서 선정비를 세워줘요. 그리고 사람들이 나와서 늘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근 사람을 그리워하는 거예요. 그런 고사가 있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윤선이라는 사람도 부안의 현감으로 있다가 떠나게 됩니다. 떠난 다음에 백성들이 그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선정비를 세워둬요. 그런데 매창이 시를 노래한 데가 어디냐 하면 바로 그 비석 옆에서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아까 여기에 이 시로 다시 와봅시다. 그런데 양호는 아까 누가 이 비석 앞에서 눈물을 흘렸어요? 백성들이 흘렸는데 여기서는 누가 흘리고 있는 거예요? 기생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뭐한 거예요? 윤선은 졸지에 호색한이 되어 버린 거예요. 그러면서 이 윤선을 상당히 조롱하는 그런 시가 되어버린 거죠. 그러니까 윤선 입장에서 보면 졸지에 나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얻어맞은 꼴이 되어 버린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이 윤선을 둘러싸고 있는 이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이 이 시를 매창이 지은 게 아니다. 이건 누가 지었다고 얘기를 한 거예요? 허균 네가 지은 게 아니냐는 거예요. 그래서 화가 허균한테 돌아왔다고 하는 겁니다. 더 조용한 데서 지을 것이지 왜 거기서 지어서 나한테 이렇게 괴롭게 하는 거냐는 겁니다. 그런데 이 시집은 매창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매창시집에 수록된 게 58수가 아니라 57수라는 게 이건 다른 사람의 시다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허균이 이런 상황이에요. 이때 매창에게 보낸 편지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같이 읽어보겠는데 봉래산 가을빛이 한창 무르익었으리니 돌아가고픈 흥을 가눌 길이 없네. 나 돌아가고 싶어요, 이거죠. 낭자는 내가 구학의 맹세. 그러니까 이 땅에서 부안에서 오래 살겠다는 맹세를 저버렸다고 비웃겠지. 그때 만약 한 생각이라도 어긋났다면 나와 낭자의 사귐이 어찌 10년간 끈끈하게 이어질 수 있겠냐는 거죠. 이게 10년이라면 언제겠어요? 1601년에 내가 당신과 연인 관계가 되었더라면 당신과 나는 이런 사이는 아니었을 것이다라는 것이죠. 우리는 정신적인 친구가 되어 있다라는 것이죠, 육체적인 관계가 아니라. 이제야 진회해가 사내가 아니었음을 알겠다는 거죠. 이 진회해는 뭐냐 하면 한 여성을 너무너무 좋아해요. 불보살처럼 지내면서 여성을 좋아하지만 그 여성한테 계속 요청하지만 그게 실패를 해요. 그래서 나중에 그 사람이 친구가 돼서 잘 지낸다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그런 적조차 없었으니까 뭐다? 나는 훨씬 더 이 사람보다 위대한 사람이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허균은 얘기를 하는 거죠. 마음껏 선관을 지님이 몸과 마음에도 유익함도 있지. 그러니까 내가 없더라도 너는 열심히 우리가 있던 것처럼 참선을 열심히 하고 있어라. 그래야 언제나 함께하고픈 날 그런 걸 만나서 마음껏 나눌 수 있을지. 종이를 대하고 있으니 당신 생각에 눈물이 서글퍼진다라고 허균이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까 그 사건이 벌어지고 있던 그 무렵에 지금 여기에는 아까 그 사건과 전혀 얘기가 없죠.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달 이원형. 아까 시를 썼다라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바로 이사람이죠, 이원형. 이 사람한테 쓴 편지도 남아 있습니다.

그 편지에는 뭐라고 썼냐하면 자네가 지은 시 ‘윤선의 비에서’ 이건 어떤 시인 줄 알겠죠? 참으로 멋진 시네. 풍자를 잘했네. 하지만 나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 너무도 많네. 그 시 때문에 내가 많이 피해를 입었다는 거죠. 그대가 지은 것이라고 말을 하지만 권필 말고는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거에요. 또 권필이 나왔죠? 앞으로 어떻게 이걸 해명하려고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도 이 시 때문에 세 차례나 뭐 했다. 대간들의 의론에 걸려들어야 했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지금 뭐 했다? 검찰청에 가서 3번씩이나 조사를 받았다는 거예요, 이 시 때문에. 여러 사람의 도움을 입어서, 집이 원체 백이 좋았던 사람이니까 도움을 입어서 가까스로 그래도 빠져나왔다. 구속되지 않고 빠져 나왔다 이 말이에요. 그 시 때문에 내가 비방 받은 게 적지 않으니. 거기에서 내가 비판을 받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게 적지 않으니 다음부터는 삼가 이런 일을 하지 말게. 아무리 저 상대편이 미워도 이런 시들은 짓지 말라 이 말이죠.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어무적이가 도끼로 찍히는 매화나무를 시로 읊었던 일에 대해서 말이네. 이무적이가 뭐냐 하면 어떤 매화나무 때문에 세금이 너무 많이 나오니까 평민이 그거를 도끼로 찍어버려요. 없애버리면 좋으니까. 그런데 어무적이 그걸 풍자하는 시를 썼다가 죽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나도 여차하면 뭐할 뻔했다? 죽을 뻔했다는 것이죠. 그게 나는 정말 두려웠다는 거예요. 지금 보면 지금 이 매창한테 보낼 때는 지금 분명히 나는 어떤 상황이었어요? 지금 검찰청 계속 불려 다니면서 이야기가 되고 있고 나 지금 죽을 둥 살 둥 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에요. 그런데 매창에게만큼은 허균은 그런 내색을 한 번 하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너무 이제 거기에 대한 동지였기 때문에 그랬겠죠.

그런데 다시 한 번 물어봅시다. 이랬을 때 매창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런 편지를 받았을 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이 사람, 내 친구가 내 정말로 내 사랑하는 연인이 정말 지금 죽을 둥 살 둥 하고 있는데 나한테는 뭐 하는 거예요? 잘 지내고 있냐? 나는 네가 늘 그립구나. 우리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런 편지를 보냈을 때 나 죽겠소 하고 쓴 것보다는 훨씬 더 가슴 아프겠죠. 매창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그러면서 매창집에는 이런 시들이 있어요. 잘못되게 헛소문을 입었는데 도리어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구나. 공연히 시름겹고 한스러워지니 차라리 병 핑계 삼고 사립문을 닫겠다. 그리고 다시 뭐? 독수공방 오래 지내다 보니까 병에 지침 몸만 남아서 어느 순간 살다보니 이제 마흔 살이 되었다는 거예요. 인생을 살아야 얼마나 산다고 그 생각을 하고 있으니 뭐예요? 눈물로 옷깃이 마를 날이 없다. 늘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거예요. 이게 아마 매창이 갖고 있었던 그때 하나의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시를 이제 쓰게 되죠. 바로 이제 이게 마지막에 쓴 시가 될 거로 짐작을 합니다. 이게 아마 유시(遺詩)시였을 겁니다. 새장 속에 갇힌 뒤로 돌아갈 길 막혔으니 곤륜산 어느 곳에 낭풍이 솟았던가. 푸른 들판에 해 지고 푸른 하늘도 끊어진 곳. 그 신선들이 논다는 달을 쫓아 꿈속, 내가 이렇게 사는 게 꿈조차도 모든 게 고달프다는 거예요.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으니 그 황혼녘에는 저 까마귀만 날고 있다는 거죠. 이때 바라보는 까마귀는 다르겠죠. 내가 죽고 난 뒤 저 까마귀가 내 위를 날 거다. 병든 긴 털 병든 날개, 죽음을 재촉하니 슬피 울며 해마다 놀던 언덕 그리워한다. 이렇게 시를 남기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드디어 1610년 매창은 죽게 됩니다.

그리고 허균은 매창과 그 해에 사명당까지 잃게 되죠. 사명당은 형 친구입니다. 사명당이 형 친구예요, 허봉 친구예요. 그래서 선생님들 보면 해인사에 가보면 사명당 비가 있는데 그걸 쓴 사람이 허균이에요. 그러니까 허균하고 사명당하고도 되게 친해요. 그런데 사영당이 허균한테 쓴 시도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너 행동 조심하고 말조심해라, 그 얘기예요. 그런데 그거에 결국 허균은 그것 때문에 죽게 됩니다. 그런데 허균이 이렇게 지내고 난 다음에 1611년에 허균은 희한하게도 그때 천추사(千秋使), 그러니까 중국 황제한테 가서 인사를 드리는, 새해 인사를 드리는 그거를 거절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제 그때 몸이 아팠다고 얘기를 하지만 허균이 왜 그걸 거절했는지 여전히 미스터리죠. 너무 가슴이 아팠던 것일 수도 있고 허균은 분명히 뭔가 다 지쳐있었던 그런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해에 과거 시험 부정 사건으로 인해서 유배를 가게 되죠. 거기가 어디냐면 함산. 지금의 함열 익산 있고 부안하고 가까운 그쪽 전라북도 지방으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부정시험이라고 하지만 과거에 부정을 했다고 하지만 그게 크게 문제될 건 아니었던 거예요. 그런데 허균이니까 문제가 됐던 거예요. 그래서 거기 가서도, 유배 가서도 허균은 잘 지내요. 객사 중건하니까 거기에 시도 써주고 음식도 잘 먹고 합니다. 나 원래 부잣집 자식이어서 이것저것 잘 먹는다고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때 해배(解配)가 돼요. 이때 해배가 되죠. 11월에 유배에서 풀리게 되는데 이때 당시도 허균은 어디를 가느냐면 부안을 가게 됩니다. 허균이 다 불태워버려요. 그러니까 그 기간에 무엇이 있었는지 우리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왜 그걸 지워버렸는지. 그것은 뒷날 역모 죄가 밝혀지면서 그 부분이 걸리거든요. 그래서 허균이 그걸 지우고 나머지만 남겨둔 게 아니겠느냐라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허균은 이때 부안에 가서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이게 너무너무 궁금해지는 상황이 됩니다. 이건 놔두겠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정리를 해봅시다. 허균은 아까 얘기처럼 부안으로 다시 가서 매창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매창은 도대체 우리가 왜 기억을 해야 하는가 하는 그 부분이죠. 매창의 시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시죠. 취하신 손님, 비난 저고리 잡으니 비단 저고리, 손길 따라 찢어지네요. 비단 저고리 하나쯤이야 아까울 게 없지만 임과의 사랑 끊어질 게 두려워요. 이건 뭐냐 하면 어떤 술 취한 손님이 내 옷을 잡은 거예요. 그런데 매창은 어떤 사람이었느냐면 이 옷 찢어지는 건 상관없지만 뭐가? 당신과의 그 애틋한 인연이 끊어질 것.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 사이가 생길 것을 더 걱정했던 사람이죠. 이건 국문학계에서는 요즘에는 이걸 분노로 읽어내려고 해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그 술 취한 사람에 대해서 온건하게 얘기하면서 이건 분노를 담아내고 있다. 맞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는 것은 자꾸 저는 무엇이냐면 매창에게서 황진이를 읽어내려고 하는 것 같다라는 거죠. 매창은 결코 중세 질서에 도전하지 않아요. 덤비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제가 매창이라는 사람을 애틋해하는 이유가 되게 됩니다.

이 시 저는 제일 좋아하는 시입니다. 봄 기운 차가워 엷은 옷 기워요. 날씨가 참 차가워서 옷을 살짝살짝 기워보는 거예요. 그런데 그 창가로 햇빛이 비쳐요. 그런데 내가 이 옷깃을 달면 그게 환해지는 거죠. 그래서 순간 이걸 맡겨두는 것이죠. 그런데 그 자리에 눈물이 뚝 떨어지는 거예요. 왜 나는 눈물이 떨어졌을까요? 아마 여기는 연세 드신 분 많이 계셔서 알겠지만 그냥 갑자기 이유 없이 슬퍼질 때 있잖아요.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라는 겁니다. 바느질하다가 갑자기 햇빛이 딱 비쳐서 그 햇빛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떨어진 거예요. 그 햇빛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떨어지는 거예요. 이게 바로 매창이에요. 그런데 매창이 그렇게 저항하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매창은 결국 어떤 사람이냐?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무지 아파했던 사람이에요. 아까 우리가 봤던 권필도 그랬고 심광세도 그랬고 허균도 그랬고. 그다음에 유희경도 그랬고 한준겸도 그랬죠. 여기에 이제 언급은 안 했지만 윤선도 그랬고 김지수도 그랬고. 다 매창을 만나면 편안했던 것이죠. 유희경 어떤 사람이었나요? 정말로 예(禮)라고 하면 껌뻑 죽는 사람이 유희경이었죠. 허균은 어땠나요? 럭비공과 같은 사람이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봐도 뭘 하느냐? 매창한테서만큼은 다 고분고분했다는 것이죠. 왜 그랬을까요? 매창은 분명히 그들을 껴안을 수 있는 힘들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이죠. 그래서였을까요? 다시 매창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매창이 죽으니까 매창은 공동묘지. 매창뜸이라고 하는 공동묘지에 매창이 묻힙니다. 그때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유언이 뭐였냐면 거문고와 같이 묻어달라고 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거문고와 같이 묻힙니다. 자기가 늘 썼던 그 거문고를 같이 묻게 되죠. 그만큼 그렇기 때문에 매창이 가는 길은 결코 외롭지가 않았어요. 그만큼 그 거문고를 거기에 넣어줄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은 매창의 유언을 들어줬다는 것이죠.

그런데 더 희한한 일이 이제부터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뭐냐 하면 이로부터 45년이 지난 뒤에 그 길을 가던 나무꾼과 농사꾼들이 이게 매창의 무덤이다. 기생 무덤인데 기생 무덤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그저 사라지는 건데 거기에다가 이게 매창의 무덤이다라고 기억을 해야 한다면서 비석을 세워놓은 겁니다. 이들은 45년이 됐는데 왜? 사람들에게 매창을 잊힐까 봐. 잊을까 봐 그게 두려워서 거기다가 비석을 세워놓게 되죠. 그런데 이 비석이 시간이 많이 지났어요. 그러자 1917년 부안 지방에서는 이 무덤에 비석을 새로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1997년에는 부안문화개조사업으로 거기 공동묘지에 있던 모든 걸 다 치워요. 그리고 매창무덤만 남기고 그걸 매창공원으로 만들어놓게 됩니다. 우리가 가보게 될 여기가 바로 처음으로 가보게 될 곳이 예전 공동묘지입니다. 그리고 예전 이 나무꾼들과 농사꾼들이 지었던 것처럼 지금은 부안문화원이 들어와서 이걸 다 돌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여전히 부안 사람들의 가장 좋아하는 공원이 되어 있죠. 그리고 그 앞의 길들은 전부 다 매창길이에요. 그리고 2010년부터 해서는 향교(鄕校)에서 제사를 지내요. 기생한테 일개 기생한테 누구예요? 유림(儒林)들이 고개를 숙이는 거예요. 이런 희한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1668년 죽고 난 뒤 그 아전들이 매창집을 간행을 해줘요. 저게 16장밖에 안 되지만 그 한 장을 만드는데 요즘 돈으로 어느 정도 드냐면 500만 원이에요, 500만 원. 그러니까 그 큰돈을 다 자기들이 아전들이 손수 내서 만들어준다는 것이죠.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죠. 그리고 이런 시비(詩碑)들이 여기에 다 하나하나씩 세워지기 시작을 합니다. 매창공원 가보면 아시겠지만 사방을 다 둘러싸고 이런 시비들이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매년 5월이 되면 매창 이름을 딴 매창문화제가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걸 전국 규모로 확산할 생각을 가지고 있죠. 그러면 이걸 황진이랑 비교해보면 어떠냐. 너무너무 당혹스러운 일들이죠. 황진이는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가묘(假墓)란 말이에요.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이 사람들은 왜 매창을 그렇게 기리고 있느냐.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놓는 것은 여전히 유희경이라는 것이죠,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그런데 다시 한 번 물어봅시다. 다시 한 번 물어보는데 우리는 왜 매창을 사랑하고 있고 그리고 왜 매창을 이야기하는가. 고작 유희경 때문에? 유희경도 중요한 이야기죠.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허균과 같이했던 그 매창이었다는 거예요. 핵심을 봐야 할 것은. 그리고 그 허균 일파에서 만들어졌었던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 우리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분명히 이 중심에 매창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랬기 때문에 다시 앞으로 가서 이들은 뭘 했냐면 매창에게 거문고를 넣어준 것이고 그 가난한 사람이 매창에게 거문고를 넣어준 거고. 농사꾼이나 나무꾼들이 이거는 매창의 무덤이다라고 굳이 이야기를 해야 했고 그 아전들이 그들이 자기 돈을 내어가면서라도 매창은 기억해야 한다면서 시집을 내어준 것이 아니겠느냐라는 것이죠. 다시 얘기를 해봅시다. 우리는 왜 매창을 사랑하고 이야기하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없습니다. 그거는 선생님들이 여기 앉아계신 분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일개 기생을 통해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을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겁니다. 자, 제 강연은 여기까지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