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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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으로 피는 꽃 매화

현재 꽃이나 나무, 이런 자연물과 관련해서 국내에서는 일련의 몇 가지 열풍이 불고 있죠. 조금 있으면 매화가 핀다고 해서 광양 마을로 사람들이 몰려가서 광양 일대는, 섬진강 일대 그 도로가 꼭 막히고 조금 지나면 산수유는 아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그렇죠? 그다음에 조금 더 지나면 벚꽃축제라고 해서 여의도를 비롯해서 진해, 곳곳에 벚꽃축제가 있습니다. 그렇죠? 그다음에 저는 개나리나 이런 꽃들이 사실 더 좋기는 한데 벚꽃이 워낙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그런 부분들이 있고요. 그다음에 가을이 되면 또 이제 단풍철이 들면 단풍철은 전국이 난리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아마 다른 나라도 대개 그런 꽃과 관련한 것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시선을 조금 더 위로 올려서 조선시대로 넘어가면 어땠느냐? 그때는 안 그랬을까? 그 당시는 경제도 안 좋고 멀리 가기도 힘들고 하니까 그런 문화가 없었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그렇지 않습니다.

단풍철이 되면 역시 단풍 구경하러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요. 서울에서만 놓고 보면 서울에서 사람들이 꽃에 미쳐 날뛰던 시기가 언제냐 하면 복숭아꽃이죠. 복사꽃 필 때였습니다. 어디가 제일 유명했느냐면 지금 성균관대 뒤쪽 있지 않습니까? 명륜동에서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성북동으로 가는. 여기가 최고였고요. 거기뿐만이 아니라 곳곳에 복숭아가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때가 되면 기록들이 굉장히 많이 나타나는데 뭐가 나타났냐면 온 도시가 사람들이 정신을 잃고 있다고 할 정도로 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그것은 신분고하(身分高下)를 따지지 않고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전 시민들이 그랬던 것이고요. 지방은 지방대로 그런 것이 있었겠죠. 그런데 그 이전에 또 고급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열풍을 가지고 했던 것이 뭐냐면 바로 매화였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지금은 과거와 같은 매화 열풍이 조금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을 중심으로 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매화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많습니다. 개별적인 차이도 많고 집단에 따라서, 신분에 따라서, 남녀에 따라서 또 가장 큰 것은 젊은 사람, 또 연세 지긋하신 분에 따라서 생각이 참 많은데요. 크게 보자면 저런 정도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화는 모든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게 가장 어떤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그런 거다. 그래서 천기(天機)를 나타내는 것이고 만물을 나게 하고 생생하는 그런 이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저거는 아마 대부분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뭐냐 하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그때 다른 어떤 초목보다도 먼저 꽃이 피고 하기 때문에 어떤 생명력을 드러내주는 가장 대표적인 꽃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고요. 그다음에 가장 흔한 이미지중의 하나가 지조. 매화는 지조(志操)의 상징으로 고고한 군자(君子)나 또는 지사(知事), 은자(隱者)를 상징해 주는 그런 것들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매화에 관련한 상징들이 굉장히 많은데 심지어 도둑인 일지매조차도 일지매 도둑도 매화 한 가지 딱 걸어놓고 가거나 또는 그려놓고 가거나 문화에 따라 다릅니다. 매화 한 가지를 던져놓고 가는데 그 당시에는 매화 한 가지를 어느 시기나 다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벽에다가 묵매(墨梅)로, 붓으로 딱 한 가지 그려놓고 가는. 도둑조차도 매화를 자신의 상징으로 삼는 이런 것이 있고요. 굉장히 다양한 쪽에서 고고한 그런 것으로 저렇게 드러내고 있고요.

그다음에 또 한 가지가 지조하고 서로 연결되기는 합니다만 순결한 덕. 그래서 담담하고도 고결한 것. 저것은 무엇에 대한 반대냐 하면 화려함에 대한 반대로 저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순결함은. 그런데 매화는 사실 화려한 부분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저렇게 순결을 상징하는 걸로 많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기생의 이름으로 '매화 매' 자를 많이 썼습니다. 춘향이 어머니, 월매를 비롯해서 매화를 가져다 하는 게. 그건 뭐냐 하면 자기는 너희가 상상하는 것보다, 남자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사실은 굉장히 순결하다. 그런 것을 상징하기 위해서 매화를 많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매화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중국과 일본, 동아시아. 매화는 동아시아 전체에 다 퍼져있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꽃입니다만 거기에 각 나라마다 매화에 대한 이론이나 문학이나 이런 것들이 정말 정말 많습니다. 그중에 우리나라의 18세기에 유명한 유박이라고 하는 분이 화품수록(花菴隨錄)이라고 하는 꽃에 관한 단행본을 냈는데요. 거기 꽃 가운데 가장 1등을 매화로 삼고 매화로 뭐라고 했냐면 '강산의 정신이요. 태고의 면목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강과 산의 정신이 어디에 담겨있느냐면 바로 저 매화가 표현해 주고 있고 그다음에 태곳적 면모. 태곳적 면목이라고 하는 것이 일종의 순결을 상징을 하는 것이죠. 태고로 올라가면 이 현대 사람들은 천박한데 저 산고적 사람들은 굉장히 순수하고 덕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태고의 면목을 가지고 있는 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생명체나 인간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덕망을 저 매화에다가 다 투영시켜서 매화는 그중에 가장 고결한 것을 다 가지고 있겠다. 이런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그중에 한두 가지 정도는 예전에 매화를 좋아하던 분들은 다 표현하고 있는데요. 그중에 한 가지를 보신다고 다면 김창욱이라고 하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의 학자인데요. 굉장히 유명한 그런 분입니다, 옛날에는. 저분이 어떻게 매화를 보는 관점을 한 몇 가지로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요. 제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하고 다 관련이 있습니다. 뒷부분에 좀 있으니까 한번 같이 보시면. '매화를 보는 법도 여러 가지다. 천기를 드러냄을 좋아해 낱낱의 꽃송이가 태극(太極)임을 즐기니 주렴계(周濂溪), 소옹(邵雍)과 같은 이가 그들이다.' 앞에 맨 처음에 얘기했듯이 저거는 매화라고 하는 것은 생명을 가지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매화를 느끼면 뭔가 불끈불끈 생명에 대한 의지. 살고 싶은 욕망을 갖는, 그런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저 고결하며 맑고 차가운 운치(韻致)를 취하여 지기(知己)라고.' 매화는 나를 인정해 주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라고 생각을 한다고는 거죠.' 여기며 즐기는 임포(林逋)의 무리가 그들이다.' 뒤에 가면 나오지만 퇴계 선생 있잖아요. 조선 중기에 매화를 가장 사랑했다고 하는 분을 한 사람 꼽으라고 하면 퇴계를 드는데요. 퇴계는 매화하고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까? 이유는 내 친구니까.

그다음에 퇴계에게 다른 친구가 있느냐? 없습니다. 매화하고 대화를 나눌 적에 가장 자기가 말이 통한다.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로 매화를 친구로 생각하는데 이를 '지기'라고 여기는 겁니다. 사실은 나는 대단히 고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드러내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굉장히 많습니다, 저런 부분들이. 매화를 친구라고 하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뒷부분에 가면 아까 유박이라고 하는 분도 매화를 친구라고 하는 것이 또 나올 겁니다. 그다음에 '참된 빛깔을 감상하고 맑은 향기를 취하여 시흥을 북돋으며 즐기니 시인묵객(詩人墨客)이 그들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 그건 매화다. 꽃 가운데는 최고고 꽃을 포함해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해도 이것이 가장 천연적인 것이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매화를 보면 뭐가 생각나요? 바로 시 짓고 싶은 그런 생각이 나고 그다음에 술 한 잔 곁들여서 놀고 싶은.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다음에 ‘나라에 으뜸가는 미인을 가까이 두고 풍유(諷諭)를 견딜 수 없어 금빛 휘장을 걷어 올리고 좋은 술을 따르며 즐기니 공자와 왕손이 그들이다.’ 이건 뭐냐 하면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조차도 뭐예요? 옆에 아름다운 미인이 있고 좋은 술이 있어도 매화가 없으면 분위기가 안 뜬다.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정말 멋있게 놀려고 하면 매화가 필요하다. 그런 거고요. 그다음에 저는 여기에 속합니다. ‘눈 속에서도 봄을 누리고 잎이 없는데도 꽃이 핀다고 기이하게 여기니 평범한 사내들의 속된 안목이 그러하다.’ 저는 여기에 속합니다. 아니, 다른 꽃이 없을 때 매화가 이렇게 피어있는 것을 보고 이파리가 없는데도 꽃이 피는 게 매화지 않습니까? 그걸 보고 즐기는데 이게 가장 어떻게 보면 평범한 거고 우리가 느끼는 가장 그런 건데 이분은 이걸 평범한 남자들의 것이라고 했는데요. 사실은 여기서부터 다 출발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매화에 대해서 관점을, 매화를 보는 법을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은 이 안에 매화를 즐기는 다양한 목적들이 그대로 다 들어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보는 분들에 따라서 성리학자들은 대체로 이걸 이야기를 합니다. 성리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주렴계나 소옹이 성리학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퇴계 같은 것은 분도 매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겠지만 이 부분에 가서 많이 취하고 그러는 거죠. 그래서 매화가 저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요.

매화를 이야기하는 것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게 문학에서는 매화가 너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19세기 초에 유명한 시인은 뭐라고 했느냐면 글에다 내놓은 게 있습니다. 나는 절대로 매화에 관한 시를 쓰지 않겠다. 왜냐하면 이른바 시인이라고 깝죽대는 인간들은 전부 매화 시를 쓰니까 나도 그 깝죽대는 인간 가운데 하나로 포함되고 싶지 않다. 라고 해서 매화 시를 안 썼어요. 그런데 워낙 친구들에게 매화 시가 좋은 것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은 꾹 참고 하나 쓴다고 하면서 그걸 밝혀놨습니다. 그 정도로 매화 시가 많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매화 시를 많이 쓸 경우에는 백매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건 뭐냐 하면 매화 시를 한 번 썼다 하면 수시 수 정도는 기본적으로 쓰는 거죠. 그 정도로 매화는 계속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거리들이 매화 속에 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많은 문제를 매화 속에다 다 투영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정도로 다양하게 볼 수 있다. 그런 얘기입니다. 매화 이미지인데요. 이 두 가지가 이렇게 다릅니다. 인상의 야매도(夜梅圖). 밤에 핀 매화들. 이 불빛이 있으니까 정확히 잘 보이지는 않지만 여러분은 가서 인터넷 쳐보시면 바로 나옵니다. 신명연은 신위의 아들로 유명한 화가입니다. 홍백매도(紅白梅圖)인데요. 이게 매화를 보는 관점의 큰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고결하고 지조적인 것의 상징이고 이것은 아름답고 순수한 그런 매화의 상징입니다. 이것은 겨울에 핀, 겨울에 밤에 핀 모습인데요. 뭐라고 할까? 화려하지 않고 보통 조선 17세기를 중심으로 해서 그 이전에는 매화를 그릴 적에 저렇게 분홍빛, 홍매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주로 이렇게 백매를 그리고 그것도 먹으로 간단하게 터치를 하는 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데 화려하게 그릴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17, 18세기로 넘어가면서는 이렇게 화려하게 그리는 것이 함께 나옵니다. 이거는 백매하고 홍매를 함께 그렸습니다. 그런데 이거는 어떻게 보면 담백한 맛이 나지만 이거는 상당히 화려한 느낌도 많이 납니다. 이거는 이분이 19세기 사람이기 때문에 18세기를 넘어서면서 매화를 보되 화려함 부분에 대한 그런 부분을 굉장히 강조해서 그립니다. 매화를 보더라도 시기마다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 고결한 이미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면 워낙 많은 사연들이 있습니다만 그중에 한 3가지 정도만 간단하게 이야기를 할게요. 이거는 많이 알려진 겁니다. 퇴계 이황 선생이 매화를 워낙에 좋아해서 매화 시첩도 있고 단행본으로 있지 않습니까? 이분이 돌아가실 때 적에 임종 전에 괄약근이 약해서 설사를 좀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매화를 좋아하니까 매화를 키우고 있었는데 뭐라고 이야기를 하느냐면 이분이 이게 임종 마지막 말씀이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매화 형에게 부끄러우니, 자기가 설사를 해서 냄새나지 않느냐. 매화 형에게 부끄러우니, 여기도 형이라고 했잖아요. 매형이라고 합니다. '매화 형에게 부끄러우니 마음이 절로 미안하다.' 그러니까 내가 움직일 수는 없고 임종에 있으니까. 매화를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이거는 뭐냐 하면 매화를 마치 자기 형인 것처럼 대화상대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뭐냐 하면 더럽지 않게 산 나의 인생 마지막을 형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이니까 매화를 얼마만큼 순수한 어떤 이미지로 생각을 했느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건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고요. 그런데 이옥의 연경(烟經) 같은. 이건 담배에 관한 책이거든요.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될 곳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 화재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불 위에서 피우지 마라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중에 마지막 대목이 '매화 앞에서 담배를 피어선 안 된다. ' 이겁니다. 담배 연기 때문에 매화가 죽어서 그러느냐? 절대로 그거 아닙니다. 뭐냐 하면 매화와 같이 향이 순수하고 고결한 것 앞에서 담배와 같이 더러운 것을 피워서 되겠느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우리나라 사람인데 이렇게 얘기를 했잖아요. 중국에도 이와 같은 책이 있는데 거기에도 한 가지가 뭐냐 하면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피워도, 다른 꽃 앞에서는 피워도 됩니다. 하지만 매화 앞에서는 피워선 안 된다. 왜냐하면 나의 가장 고결한 친구이기 때문에. 그 사람한테 담배 냄새를 맡게 해서는 안 된다. 요즘에 그렇잖아요. 할아버지가 담배 골초라서 담배를 피우더라고 손자 앞에서는 잘 안 피우잖아요. 그렇죠? 귀여운 손자한테 담배 연기 맡게 할 수 없으니까.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데요. 저는 이것까지는 아마 보셨을 텐데 이거는 별로 못 보셨을 거예요. 제가 작년에 번역한 이 책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명한 정치가인 이숭호하고 이재협이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집에 화재가 났습니다. 참판(參判)인 이숭호의 집에 불이 났는데 불이 매화 화분까지 옮겨 붙었습니다. 옛날에 매화는 분재를 많이 피워서 방 안에다 놓아두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조카인 이재협이 삼촌 불났다고 하니까 찾아가서 불이 나도 싸다고 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이겁니다. '삼촌은 좋은 매화를 가지고 계시면서 술상을 마련해서 조카로 하여금 시를 짓게 한 적 없었지요.' 좋은 매화 있으면 나한테 오라고 해서 매화 구경도 시켜 주고 시도 한번 짓게 해야 하는데. 그게 굉장히 고상하고 운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삼촌은 뭐했느냐? '날마다 매화 곁에서 속된 일만 하셨으니, 매화가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관계를 끊으려고 스스로 불살라 죽은 것이니, 불은 매화 때문에 난 것입니다.'

불 왜 났느냐? 실수해서 난 게 아니라 매화가 스스로 불탄 거다. 이유는 삼촌이 뭐예요? 매화 옆에서 매일 한다는 이야기가 미인하고 딴 짓이나 하고, 그렇죠? 그다음에 친구들 불러 모아다가 무슨 이야기해요? 정치, 정조를 죽이느니, 살리느니, 벼슬을 남한테 파느니, 마느니 이런 얘기 하고 돈 버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런 천박한 짓을 매화 앞에서 했으니 매화가 열 받지 않겠느냐? 그래서 스스로 불타 죽은 것이다. 그런 얘기거든요. 이 이야기가 얘기 하는 건 뭐냐 하면 이 당시에 사람들이 매화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보여주는 겁니다. 얼마만큼 매화를 고결하고 순수한 자기 영혼의 동반자로 생각했느냐? 그런 거죠.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후대 사람들이 계속 하는 이야기는 그럴 법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저런 이야기들이 여러 군데서 나오는 겁니다. 동아시아에서 매화에 관한 기록이 가장 빠른 것이 바로 시경(詩經)에 있는 이 시입니다. 이거는 표유매(摽有梅)라고 해서 매실을 던진다. 이 '표(摽)' 자는 '떨어질 낙' 자로는 제일 유명한 게 매화가 떨어지니, 매실이 떨어지니. 그런 이야기인데요. 이거는 '나무 표' 자로 나뭇가지에 매실이 열렸다. 그런 의미로도 쓰이고요. 제가 가장 의미 있다고 보는 학설은 매실을 던진다. 이게 '던질 표' 자입니다. 매화나무에 매실이 열렸으니까 매화를 따서 던지는 건데 이게 무엇을 의미하냐면 앞부분만 보면 이렇습니다. '매실을 던지니 그 열매 일곱 개 남았다. 여러 남자 분들께 간구하오니 길일을 틈타 빨리 오세요' 그런 겁니다. 이건 뭐냐 하면 중국 고대에는 남녀들이 모이면 매실을 따서 또는 매실 아닌 다른 과일을 따서 자기가 마음에 드는 남자한테 딱 던지면서 '너 나 따라 와.'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거거든요. 그런데 그중에 매화의 일곱 개를 따서 딱 던지는 겁니다. 그리고 이거는 여러 남자 분들께 간구(懇求)한다고 했잖아요.

그다음에 이건 뭐냐 하면 열매가 세 개밖에 안 남았어. 급하잖아요. 나도 나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 여러분 오늘 걷자. 길일을 택해서 오지 말고 당장 오늘 곧 오라. 그런 얘기고요. 이건 뭐냐 하면 여러 남자들한테 얘기하노니 그냥 말만 하세요, 내가 갈 테니까. 그러니까 뭐냐 하면 옛날에는 저 매화꽃이 아름답다. 이런 개념이 없는 겁니다. 뭐냐 하면 매실, 그건 먹는 거잖아요. 그렇게 하고 여성들이 그걸 따서 그걸 매실로 먹고 하는 게 저장을 하고 온갖 것들을 하지 않습니까? 그 열매를 남자들에게 주면서 내 마음에 드니까 나를 따라 오라. 그런 얘기입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결혼하는 방식. 또 남녀가 어울리는 방식 중에 하나가 바로 저런 거였다는데 여기에서 바로 뭐냐 하면 매화에 관한 최초를 기록은 뭐냐 하면 꽃을 이야기하지 않고 열매를 이야기했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연암 박지원 같은 경우도 그런 얘기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숱하게 매화꽃이 아름다우니 뭐니 정신이 고결하니 뭐니 그런 얘기를 하는데 쓸데없는 이야기다. 핵심은 뭐냐? 매실을 먹어서 좋으냐, 나쁘냐? 이걸 가지고 얘기를 해야지. 왜 꽃만 이야기하느냐. 그거는 그만큼 매화에 대한 열풍이 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어떤 반성의 의미로써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사실은 이 시가 매화에 관한 이미지에 가장 핵심적인 것 중의 하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매화 감상, 매화를 어떻게 보느냐의 역사로 넘어가 보면 이렇습니다.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이런 것들이 형성돼 왔지만 우리하고 비슷한 그런 부분들이 있고.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역사에서 삼국시대 매화. 매화의 본산지는 중국 남방지역이라고 합니다마는 삼국시대부터 있었습니다. 삼국시대 매화의 흔적은 최광유라고 분이 정원에 심은 매화를 읊은 시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통일신라 말엽의 시인인데요. 그래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면 왕건 등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도 보면 매화 그림이 능에 그려져 있다고 하고요. 후기로 가면 갈수록 시문에 매화가 많이 등장합니다. 이 시에 매화가 등장한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많이 감상됐다하는 것의 의미거든요. 후대에 가면 이숭인 이라든지 이색 이런 분들의 시에 보면 매화 이야기가 10수, 20수 이렇게 많이 쓰입니다. 끊이지 않고 계속 나오는데요. 거기에서 묘사하는 것들은 대부분 매실 이야기 안 합니다.매화꽃이 아름답다. 이런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고려시대 때 유명했던,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꽃들은 화려한 꽃들입니다. 대표적인 게 모란꽃, 백일홍 이런 화려한 꽃들인데 그중에도 이런 꽃의 화려하지 않은 고결한 꽃에 대한 감상이 있었다는 거죠. 이건 무엇하고 같으냐면 중국에서도 매화가 사람들이 많이 감상하고 매화라고 하면 대단히 높이 평가하던 시기는 사실은 송대입니다. 그래서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하는 고사가 있지 않습니까? 혼자 살면서 매화는 자기 아내로 삼고 학은 자기의 자식처럼 생각한다는. 이분이 나중에 중국의 항저우로 가게 되면 서호(西湖)에 임포의 유적지가 남아 있는데요. 거기에 바로 이 매화가 유명하거든요. 그런 것하고 다 관련됩니다.

그런데 송대(宋代)에 특히 저 고결한 이미지의 매화하고 또 하나는 은일군자(隱逸君子)를 상징하는 국화가 송대에 감상용 꽃으로는 아주 대단히 인기를 얻는데 다 그것하고 관련이 있다. 그런 생각입니다. 고려시대에 매화에 대한 감상이 매화를 꽃으로써 감상하는 풍이 유행했다고는 하지만 본격적인 것은 조선시대로 들어와서입니다. 그래서 매화에 대한 얘기가 시작됐고 이것도 조선전기부터 조금씩 조금씩 더 좋아하기 시작해서 중기 때 와서 아까 말씀드린 퇴계에 와서 매화를 본격적으로 좋아했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저런 것을 뭐를 보면 알 수 있냐면 문집에 매화 시가 얼마나 남아 있냐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가면 갈수록 늘어납니다. 그래서 최극성기(最極盛期)는 언제냐고 하면 18, 19세기, 20세기 초반까지 유지됩니다. 지금도 매화 좋아하는 분이 많지만 극성기는 이미 지났다. 워낙 다양한 꽃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매란국죽(梅蘭菊竹)의 사군자 개념이 그 이전부터 형성되어서 갈수록 그림들이 많아지고요. 후대로 가면 매화 사랑의 열기가 대단히 심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증거들이 있는데 아까 매화에 대한 이미지와 관련해서 말씀을 드린다면 이런 그림들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이게 오달제라고 하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 때 끌려가서 거기서 여진족이 죽인 유명한 열사(烈士)이지 않습니까?

오달제가 젊은 시절에 그린 그림입니다. 보면 현실 속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매화인데 여기도 보면 굉장히 선이 반듯반듯한 그림입니다. 이건 뭐를 상징하느냐 하면 지조를 상징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시도 썼는데 이거는 숙종 임금이 이 그림에다가 써준 겁니다. 역시 지조 있는 사람은 그림도 지조 있는, 사물도 지조 있는 것을 그림으로 그린다고 한 그런 의미의 시입니다. 이 그림을 굳이 여러분에게 보여드린 것은 조선 전기부터 후기 때까지 지조와 고결함을 상징하는 매화 그림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 이전에 묵매도(墨梅圖)가 다양하게 있지만 그런 그림들의 모습들하고 상당히 비슷한 그림입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화가만 저렇게 매화를 많이 그린 것은 아니고요. 일반 사대부들도 그림을 친다고 하죠. 그럼을 좀 치면 매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대표적인 분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도 부인의 치마에다가 그려준 것이 매화 그림에다가 꽃과 새를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많이 나와 있다, 이렇게 보시면 되고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지금은 여러분은 매화를 집에다가 분재를 해서 기르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실제로 매화를 구경하는 분들은 대부분 매화 명산지. 대표적으로 섬진강가의 광양이라든지 이런 곳에 가서 구경을 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런 유명한 곳 아니라고 하더라도 곳곳에 있습니다.

저는 아까 소개하듯이 연세대에서 공부를 했는데요. 지금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 요즘은 공사를 많이 해서 거기 모양이 형편없을 텐데요. 중앙도서관 앞에 매화나무 큰 게 있습니다. 저희 학교 다닐 때부터 그게 매화가 아름다웠었어요. 그런데 서울에 있는 매화 가운데 그게 제일 유명한 것 중에 하나입니다. 나중에 연세대 가실 때 거기 가셔서 한번 보세요. 중앙도서관 앞에 있는 굉장히 큰 매화가 아주 탐스럽습니다. 그런데 연세대에 그 매화만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곳곳에 매화가 있지만 연세대 와서 매화 구경할 때 꼭 그걸 봐야 합니다. 물론 그걸 볼 적에 정문으로 들어가서 공대가 왼편에 있는데요. 거기에 바위가 있습니다. 그 바위는 시가로 억대 이상입니다. 한 2~3억 하는 겁니다. 그 당시에 벌써. 쌍벽을 이루는 두 개인데요. 그리고 곳곳에 대학마다 다 매화나무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명한 매화가 중요하거든요. 그러니까 한번 가서 구경을 해보시는데요. 조선시대는 어땠느냐면 조선시대는 곳곳에 매화가 있지만 야생의 매화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땅에다 심는 것도 있었지만 매화를 감상하는 가장 기본은 뭐냐 하면 화분에다가 키우는 매화입니다. 그래서 분매(盆梅)라고 하죠. 예전에 꽃을 감상할 적에 분경법(盆景法)이라고 해서 '경치 경' 자를 씁니다. 화분에 있는 풍경의 법이라고 해서 화분에다가 꽃을 기르는 겁니다. 매화만 그러는 게 아니라 사실은 소나무도 거기에다가 꽂아서 감상을 하는 그런 게 있습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가 뭐냐 하면 병화병(甁花法). 이건 병에다가 물 줘서 올려놓는 겁니다. 조선시대에 꽃을 감상하는 두 가지 방법.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이겁니다.

그래서 예전에 궁궐에 가시면 예전에 국왕들을 꽃을 어떻게 감상했느냐면 한 70%는 화분에 있는 꽃을 감상하는 겁니다. 그리고 궁궐 곳곳에 화단을 만들어서 거기다 심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꼭 궁궐을 장식하는 꽃이 대부분 다 화분입니다. 그래서 별감(別監)이 따로 있습니다. 민간에 가서 화분을 사오는. 가을이 되면 국화꽃을 감상해야 하는데 그 국화꽃을, 땅에 심어져 있는 국화꽃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화분을 사다 놓는 겁니다. 그래서 곳곳을 장식해서 국왕이나 궁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감상하는 그런 겁니다. 그런데 하여튼 이게 대단히 유행을 해서 이거는 조일호라고 19세기 추사의 제자입니다. 계매리어(戒梅俚語)라고 해서 매화한테 경계하는 상말. 좀 쉬운 이야기 그런 얘기죠. 좀 읽어보시면 '세상에 매화 보는 풍속이 형성되어 열 집에 아홉 집이 매화를 키운다. 아! 그들의 매화 감상법은 가지도 아니고 등걸로 아니라 화분에 꽃아 위치 좋은 곳에 두고 마음을 온통 꽃에만 기울이네. 이게 19세기 중반 시기에 서울의 명문가 양반 사대부가의 풍류입니다. 열 집에 아홉 집이 매화 화분을 키우는 겁니다. 매화를 키우지 않으면 돈만 아는 인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이분만 그런 얘기를 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 윤기라고 하는 분이 18세기 남인 학자인데요.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18세기 후반에 서울 부귀가에서 유행하는 유행 네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그중에 첫 번째가 뭐냐 하면 매화분재(梅花盆栽)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가 뭐냐 하면 창경궁에 있는 생나무로 하는 울타리 있죠. 그거고 세 번째가 뭐냐 하면 비둘기 사육입니다. 요즘 볼 때는 애완용 개 기르는 거죠. 그게 서울에 이 당시의 가장 기본적인 가장 유행했던 것인데 그중에 하나가 제일 첫 번째가 매화분재입니다. 그래서 매화분재를 집에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저속하다. 그런 얘기죠. 그래서 이런 것에 대한 반대로 추사 김정희 선생이 감매탄(龕梅歎)이라고 하는 장편의 시를 썼습니다. 감매의 감은 감실(龕室)이라고 해서 조그마한 집입니다. 요즘 개념으로 하면 골방쯤 될까 그런 겁니다. 매화를 키워서 골방에 넣는데 매화를 골방에서 키우는 이유는 밖에도 두면 매화가 늦게 피잖아요. 그러니까 안에 따뜻하게. 요즘 개념으로 하면 일종의 온실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매화만 그런 게 아니라 국화니 다양한 꽃을 온실에다가 키워서 옛날에도 겨울에도 국화를 피우고 했습니다. 사시사계절. 온도를 상온으로 만들어서 키우는데 조선시대에 그게 굉장히 발달했고요. 이 매화는 값이 비싸서, 워낙 수요가 많으니까. 매화를 재배를 해서 파는 전문 화훼업자가 생깁니다. 유명한 전문 화훼업자 이름도 남아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디서 살아서 했느냐면 역시나 성균관대 뒤쪽에 있는 명륜동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이런 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이 시는 제 스타일대로 번역을 해야 하는데 제가 예전에 배운 유명하신 선생님이 번역한 거라서 번역 자체를 고치지 않았습니다. 어렵긴 합니다. '정원이라 잡목 속엔 복사 오얏 하 많으니' 조선시대 제일 유행했던 인기 있었던 꽃이 복사꽃, 오얏꽃입니다. '동녘 사람 꽃 심는 법 퍽이나 촌스럽다. 천 그루 만 그루의 매화를 듣지는 못했다.'사실은 매화 감상은 어디 가서 해야 해요? 매화 산지 가서 해야 실컷 보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뭐해요? '등걸을 깎고 가지를 휘어서 천진이 상코말고.' 이렇게 했습니다. '인교로써 천리 침해보다 더 미울 수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건 뭐냐 하면 매화를 화분에다가 꽂아놓고 어떻게 하는 거예요? 멋스럽게 보이려고 휘고 자르고 해서 분재를 하는 겁니다. 우리들이 여러분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게 우리나라는 꽃을 감상할 때 꽃을 심을 때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놔둬서 감상한다. 반면에 일본 아이들은 온갖 못된 짓을 다 해서 자르고 굽히고 해서 기기묘묘하게 만드는 것으로 알고 계시잖아요. 이거 보시면 알겠지만 안 그렇습니다. 조선시대도 이렇게 온갖 못된 짓을 하는 거예요. 사실은 그렇게 못된 해야 매화가 꽃을 많이 피우지 않고 좋은 꽃 몇 개만 피우지 않습니까? 그걸 보고 좋다고 하는데 우리 앞에 나온 꽃들을 보시면 고상하다고 하는 꽃들은 대부분 꽃이 많지 않습니다. 다 그런 식으로 한 겁니다.

그런데 매화만 그러느냐? 그렇지 않고요. 소나무 있지 않습니까? 소나무도 온갖 형식으로 비틀어놓고 그걸 감상하는 게 바로 언제 시기의 유행이냐면 18, 19세기의 유행입니다. 거기에 대한 비판도 곳곳에서 많이 있습니다. 추사 선생이 그런 것에 대해서 비판을 했는데 그러면 추사 김정희 선생은 매화나무를 있는 그대로 딱 내버려뒀느냐? 저는 안 그렇다고 봅니다. 추사 선생이야말로 그런 것들을 가장 좋아한 그런 분이기 때문에 이건 전체적으로 그렇게 하면 옳지 않다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한 것일 뿐입니다.
조희룡의 매화 시입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 지금도 그렇고요, 지금도 매화 전문가들이 몇 분이 있습니다. 이상희 선생, 전에 장관도 지내신 분이고, 안영재 라고 하는 분이 매화 전문가이시고 곳곳에 많습니다. 그리고 또 책을 쓰지 않아도 이중에도 분명히 매화에 관해서는 나도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 실제로 그런 분도 많이 계실 겁니다.

조선시대를 놓고 보자면 조선 후기에 매화의 가장 전문가라고 하면 조희룡 선생이 있습니다. 이분은 시, 그림, 글씨를 통해서 매화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는데 저분이 중요한 이유는 뭐냐 하면 매화의 감상법에 있어서 그 이전에 뭐라고 할까? 고고하고 그다음에 아주 섬세하고 그런 것을 벗어나서 매화를 있는 그대로 화려한 매화의 가치를 드러낸 대표적인 분이 바로 저분입니다. 추사가 세한도(歲寒圖)에서 고고한 소나무 하나 그린 것하고 이분은 완전히 달라요. 매화를 온통 화려하게 그린 분인데 그런 그림을 상징하는 게 바로 이 그림입니다.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이건 아까 추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하고 보면 이건 뭐냐 하면 온통 천지가 매화 그루가 100그루, 1,000그루 되는 곳에 앉아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매화 감상은 원래 이렇게 해야 한다. 아마 여러분도 광양에 가서 보시면 광양 매화마을 쭉 보면 바라보면 이런 형식일 겁니다. 조희룡이 좋아했던 매화는 바로 이런 식의 매화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동안에는 안 알려졌던 시인데요. 작년에 매화 한창 필 적에 조선일보에 기사 쓰시는 어수웅 기자가 우리 이것과 관련해서 대화하던 중에 저한테 매화 관련한 시 좀 하나 소개해달라고 해서 제가 찾아서 번역해서 작년 조선일보 한 달 뒤쯤에 실었던 시입니다.

매화에 관한 시 가운데 저는 가장 아름다운 시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조희룡의 매화 사랑. 조희룡은 호도 매화와 관련한 호가 굉장히 많습니다. 조희룡은 매화를 형이라고 부르지 않고. 퇴계는 형이라고 불렀잖아요. 이분은 매화를 선생이라고 불렀어요, 매화 선생. '오생하처산한수(吾生何處散閑愁)' 한수는 한가로운 수심인데 여기의 한 자는 단순히 한가롭다는 게 아니라 괜한 시름. 왜 밑도 끝도 없이 걱정거리가 생기지? 그런 겁니다. 우리 인생 그 어느 곳에서. 이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나는 시름을 흘려보내지? 그런 거예요. 사실 봄 되면 싱숭생숭하잖아요, 그렇죠? 싱숭생숭하고 이건 뭐 내가 잘 사는지 어떤지 모르는 이런 시름을 어디서 한바탕 확 풀어버릴까? 그런 얘기입니다. 나는 딱 있다. 어디냐? '향설해중의범루(香雪海中宜泛樓)' 향설해, 향기로운 바다. 눈 같은 바다. 이게 뭐냐 하면 매화입니다. 향설이라고 하는 것이 매화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향설 딱 나오면 아, 저거 매화구나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향기롭고 눈 같은 매화의 바다에 루는 누각이지만 다락배입니다. 사람이 들어가서 갈 수 있는 그런 배를 다락배라고 하는데 다락배 하나 띄우는 그건 다 해결 돼. 걱정거리 있고 인생의 온갖 고민 있고 할 적에 특히 봄에 있으면 어디가면 돼요? 매화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거기 딱 들어가면 인생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거기에서 즐기면 모든 근심, 걱정 다 사라진다. 매화 마니아다운 그런 표현을 첫 번째 구절에서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앞부분이 멋있어요. 우리 인생, 어디 가면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나는. 근심, 걱정 없는 사람 없잖아요. 그런 근심, 걱정을 한번 딱 흘려버리려면 매화, 거기만 가면 된다. 그다음에 이건 번역 넘어가겠습니다.

'책을 펼치면 복이 오는 것쯤이야 예전부터 잘 알고 있지만' 책 파서 하면 책 공부하면 시험 합격하는 거 있잖아요. 복이 드는 거 알지만 나 그거 필요 없어, 그런 얘기입니다. '꽃을 본다고 그 위에 다시 어떤 복이 얻어질까?' 그렇잖아요, 그렇죠? 내가 매화꽃 그렇게 감상한다고 해서 돈이 나와요? 무슨 지위가 생겨요? 먹을 게 생겨요? 아무것도 없지만 꽃을 보면 뭐가 치유돼요? 내 마음이 치유가 된다. 나는 그 꽃 안에 있으면 나는 행복해. 그런 얘기입니다. 그다음에 '자비수상유퇴경(自非壽相留頹景)' 이라 '위애청화도백두(爲愛淸華到白頭)' 라. 퇴경, 이거는 무너지는 풍경입니다. 연세 드신 분이 있으신데 그때가 퇴경입니다. 이제 서서의 저물어가는 풍경. 인생의 노년을 잡아당길 만큼 수상, 내가 오래 살 그런 운명은 아닌 거 잘 알지만 '위애청화도백두(爲愛淸華到白頭)' 이 맑고도 고운 청화, 이건 매화입니다. '맑고도 고운 그 꽃을 사랑해서 이 흰머리까지 나 이르렀다.' 내 평생은 뭐예요? 매화 감상이 인생이다, 그런 얘기죠. 그다음에 '가희역풍귀비합(可喜逆風歸閤)', '불령일편부동류(不令一片付東流)' 정말 좋은 거는 뭐냐? 그래도 기뻐할 만한 것은 뭐냐 하면 순풍이 아니라 역풍이 내 골방으로 불어와서. 일편, 매화 한 꽃잎이라도 동쪽으로 흐르는 물. 동쪽으로 흐르는 동류수는 중국의 모든 물은 동쪽으로 흐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강물에 한번 딱 잎이 떨어지면 다시는 못 돌아오는 것. 그것을 동류수하는 거예요.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생을 보통 옛날에 동류수라고 하는데요. 이 매화꽃 한 잎도 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한다. 뭐예요? 지금 매화꽃잎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는데 고맙게도 역풍이 불어서 그 바람을 딴 데로 보내지 않고 자기 방 안으로 딱 꽃잎이 들어오게 한다. 꽃잎 하나라도 자기는 사랑하겠다. 그런 표현입니다. 이게 매화 시인데요. 매화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정말 절절하게 나타나는 그런 시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매화 마니아의 심경 같은 것을 잘 보여준 그런 시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한번 인터넷 쳐보세요. 그 당시 탐매라고 해서 매화를 찾아 더듬어 다니는 그런 것에 대한 어수웅 기자의 글이 있는데요. 아주 재미있는 쓴 글입니다. 비

이건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입니다. 아까도 말씀하신 것처럼 감매라고 해서 매화 매자를 이렇게 씁니다. 옛날 분들은 이렇게 쓰는데 이게 뭐냐 하면 매화 나뭇가지 위에 이 입구 자 하나. 꽃잎 하나 있는 겁니다. 이 위에 매화가 꽃잎이 하나가 아니니까 매화를 두 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실제 매화의 상형문자 스타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감매인데 보통 매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분매로 매화를 즐기지만 18세기 후반부터 뭐냐 하면 화려한 매화를 좋아하는 풍이 있었는데 그게 뭐로 등장을 하냐면 매화서옥도로 등장을 합니다. 이 당시 중국에서도 매화서옥도가 유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매화 숲에 파묻힌 서재의 모습을 많이 그리는데 대표적으로 바로 조희룡, 전기, 안중식 등 여러 분들이 있습니다. 이걸 보면 전체가 다 매화입니다. 여기에 별 볼일 없을 것 같은 집에 매화 숲에 휩싸여서 앉아 있습니다. 여기에서 책을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이 안에 또 뭐가 있느냐면 확대를 해보면 매화 화분이 또 있어요. 그래서 이분 전기는 유명한 회화 그림인데 매화서옥도에는 원래 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조희룡 선생이 그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평생토록 매화 결을 알지 못하여 가슴 속 읽힌 마음 괴롭게도 줄어들지 않았지. '내가 매화를 제대로 감상을 못해서 내 마음속 이런 온갖 걱정, 시름 이걸 해소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 매화를 보니까 내 인생에 쌓인 거정, 이제 다 해결됐어.' 그런 정도의 의미입니다. 이것도 매화서옥도예요. 이건 조희룡이 그린 겁니다. 이렇게 하니까 그림이 멋이 없는데요. 실제 그림은 굉장히 멋있습니다. 이 전체가 다 매화입니다. 옛날에 퇴계 선생 같은 분은 매화를 이렇게 부리면 천박하다고 했어요. 꽃잎 몇 개, 그다음에 가지도 앙상한 가지. 이런 식으로 그려야 하는데 조희룡은 그렇지 않아요. 아까 향설해(香雪海)라고 했지 않습니까? 온갖 꽃이 바다처럼 있는 그곳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감상을 해야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러면서 여기 매화서옥도 있지 않습니까? 이 서옥도가 추사의 세한도에 나오는 집하고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건 그냥 상징으로 이렇게 해놓은 거예요. 제주도의 추사 유적지에 가면 세한도에 있는 집처럼 해놓은 유사 이래 어떤 집이 그런지 이상한 집을 해놨는데 그건 난센스입니다. 그거는 현실 속에 있는 집이 아니라 정말 단순화시킨 집. 창고처럼 짓지 않았습니까? 옛날에 이런 집에서 살았다는 보시면 안 되고요. 기와집이나 초가집이 있었다는 거죠.

여기에도 지금 그림이 확대가 안 되서 그런데요. 이분이 사람입니다. 이 앞에 분재가 있습니다. 이거는 분재가 아니라 꽃병 속에 매화를 딱 그려놨습니다. 밖에는 매화 천지도 안에서도 매화 한 가지를 딱 보면서 우리 앞에 있지 않습니까? 천기를 감상하는. 생생지(生生之), 우주 자연의 생생한 이치가 담겨있는 꽃망울 하나 감상하는 거죠. 그래서 조희룡은 글에 보면 매화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나옵니다. 그 중의 하나인데요. 미불이죠, 미불은 돌을 장인이라 부르는데 나는 매를 선생이라고 부른다. 이분은 유명한 돌에 미친 바보죠. '옛사람과 지금 삼의 어리석음이 비슷하다.' 이 미불은 돌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어리석고 자기는 매화를 너무 좋아하니까 어리석다. 이런 얘기입니다. '그러나 나는 감히 뒤지고 싶지 않다.' 나는 바보라면 최고의 바보가 되겠다. 무슨 바보? 매화 바보. ' 이 뜻을 선생에게 물어보고자 하였으나 선생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이 없다.' 여기에서 선생님은 누구냐면 매화입니다. 매화가 무슨 대답을 해요? 대답이 없죠. 하지만 자기는 승낙을 했다는 거죠.'주위 사람 중에 이 노선생을 알아보고 싶다면 여기에 들어가 보라.' 뭐 이런 얘기입니다.

이 비슷한 시기에 몽관 이정주라고 하는 중인입니다. 중인 분이 이렇게 시를 썼어요. 여러 편의 시를 썼는데 그중에 하나입니다. 나는 인생에 친구 딱 하나밖에 없어. 누구? 매화라면서 하는 겁니다.' 쓸쓸한 매화나무 아래에 앉아. '소슬매수하(蕭瑟梅樹下)', 쓸쓸한 매화나무 아래에서. '낭독이소경(朗讀離騷經)', 이소경을 낭랑하게 읊는다. 이소경은 굴원이 지은 유명한 기원전에 시인데요. 이 이소경의 특징은 뭐냐 하면 그 당시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온갖 금수초명이 다 나옵니다. 그래서 제일 많은 게 유명한 풀과 나무입니다. 그런데 2,000년 동안 시인 묵객들이 정말 유감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이소경 안에서는 매화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게 그렇게 아쉽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소경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슬픔 같은 것을 담아내는 그런 시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기의 쓸쓸함을 매화를 낭랑하게 읊는데. '세무독성자(世無獨醒者)', 세상에는 홀로 깨어있는 자 아무도 없는 세상이기에. '요사매화청(要使梅花聽)', 매화에게 들려주는 길밖에 없다. 그런 얘기입니다. 깨어있는 자는 뭐예요? 자기 혼자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잖아요. 세상에는 그런 사람 없다. 그럼 그걸로 대화할 사람 없으니까 누구하고만 얘기해야 해요? 매화하고만. 매화는 정의를 안다. 그런 얘기죠.

매화는 인간 세상에서의 온갖 고결하고 순수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다. 그런 얘기입니다. 예전에 매화 시를 썼다고 하면 한두 편 쓰지 않습니다. 엄청 많이 쓰는데요. 그리고 보통 백매라고 합니다. 백매, 백매 시. 그래서 백화를 백 가지로 노래한다. 그런 얘기입니다. 신의 아까 신명현의 아버지입니다. 조선시대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을 들으라면 신의를 들어야 합니다. 정말 감성적인 시인이에요. 정학연은 다산 정약용의 맏아들입니다. 유명한 시인인데 유명한 의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때문에 평생 벼슬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 우울함을 이분은 무슨 주제로 시를 썼느냐면 가을이라고 하는 주제로 시를 썼습니다. 가을이 조락(凋落)의 계절이잖아요. 그래서 추수, 가을 나무, 추화, 가을 꽃, 가을 추류, 가을 버드나무. 그래서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시를 수백 수를 썼어요, 이분이. 가을 시, 정말 시가 좋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36종의 매화를 가지고 시를 쓴 게 있어요. 거기 보면 강매, 강의 매화, 신의 매화, 고개의 매화, 들의 매화. 관하의 매화, 서재 앞의 매화, 거문고에 있는 매화, 나무하는 길가에 피어있는 매화, 승사매, 절에 있는 매화, 도사들의 집에 있는 매화, 앞마을의 매화, 역 있는 곳의 매화. 작은 다리 옆에 피어있는 매화. 온갖 것들, 주렴 너머에 피어 있는 매화. 쭉 나와 있습니다. 물에 비친 매화, 분경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분재에 있는 매화. 온갖 게 다 있습니다. 억매, 그리움의 매화, 몽매, 꿈속에 있는 매화, 신매, 매화를 찾아간다. 별매, 매화와의 이별. 성매, 매화를 안타까워하며. 매화와 헤어져야 하잖아요. 태매, 이끼낀 길 위의 매화. 대나무, 산다매, 설매, 월매, 풍매, 연매, 미개매, 아직 피지 않은 매화, 반쯤 핀 매화, 홀로 핀 매화. 온갖 매화. 녹왕매의 연지매는 연지꽃처럼 예쁜 매화. 여기도 있습니다. 이거는 여기에 있는데요. 이게 선음(鮮音)이라고 장서각(藏書閣)에 있는 책인데요. 이게 바로 매화를 읊은 전체 시입니다. 이런 정도로 매화가 곳곳에 있습니다. 시가 대단히 좋습니다. 매화를 이런 형식으로 읊고 저런 형식으로 읊고. 이거 전체를 번역하면 많은 양이 될 겁니다.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이렇게 시를 써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조희룡이나 몽관의 시를 보면 매화하고 자기하고 혼자라고 해서 매화하고 자기 혼자 매화를 감상하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그런데 옛날 분들은 기본적으로 뭐냐 하면 매화가 피면 친구들을 부릅니다. 좋은 술을 마련해놓고. 매화가 피었으니까. 그래서 함께 감상하는 겁니다. 그래서 '매화가 필적에 가지는 술자리를 매화음(梅花飮)이라고 한다.' 마실 음자를 써서. 그래서 그걸 매화음이라고 합니다. 매화가 필적에 술을 갖다 놓고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술 한 잔 하는 것. 이게 매화음입니다. 그리고 '매화가 필적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같이 시를 쓰는 모임. 그걸 매사(梅社)라고 합니다. 이 매사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다산 정약용이 서울에 유배가기 전에 친구들하고 함께 했던 시사(詩社)가 무슨 시사냐면 죽란시사(竹欄詩社)라고 있습니다. 그 집이 명동이었는데 현재 명동입니다. 명동에 대나무 울타리를 만들어놓고 거기에서 시를 짓고 있는데 그중에 친구들이 모이는 때가 딱 정해져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매화가 피었을 적에 술을 마련해놓고 와서 같이 시 짓고 하는 겁니다. 또 국화가 피었을 적에 또 친구 생일잔치 또 아들을 낳았을 적에 또 승진했을 적에 등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매화가 피었을 적에. 이런 식의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댈 수는 없고요.

근대 있지 않습니까? 근대에도 보면 일제 강점기에도 보면 가람 이병기 선생이 매화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시조에도 보면 가람 이병기 선생이 매화를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가람 이병기 선생의 일기가 가람일기입니다. 거기에도 보면 자기 집에 매화가 피었다고 하니까 친구한테 편지를, 엽서를 보내는 겁니다. 엽서를 보내서 내 집에 드디어 매화가 피었다. 와야 하지 않겠니? 하고 부르는 겁니다. 그때 모여서 술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감상하고 술 놓고 함께 웃으면서 또 시 짓고 그림 그리고 하는 것들이 일제 강점기까지 명사들 사이에서는 있었습니다. 그중에 영조 시대에 매화 탐닉하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그 시사의 동인이 누구냐면 조재호, 조유진, 채희범, 남옥, 이봉환입니다. 여러분 아마 잘 모르시는 분일 텐데 조재호가 누구냐면 소론(少論)으로서 재상(宰相)입니다. 정승을 지냈는데 이분이 어떤 역할을 했냐면 노론(老論)에 반대해서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지키는 신하 그룹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결국은 실패를 해서 저분이 춘천 쪽에 물러나 있다가 지키지 못하고 이 사람들이 전부 다 처형당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즐긴 것이 매화고. 또 하나가 뭐냐 하면 이분들이 즐겨 지은 시들 중에 하나가 낙화 시가 있습니다. 꽃이 진다. 그래서 후대에는 무슨 이야기가 있었냐면 꽃이 진다. 지는 것에 대해서 읊으면 상서롭지 못하다고 해서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집단들이 낙화 시를 많이 지었다. 이봉환 유명한 분이고 남옥 다 이분들은 다 일본에 사신 갔던 사람들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대단 높은 평가했던 사람들입니다. 조재호, 대단히 아쉽죠.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해서는 참 할 말이 많은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하겠습니다. 사도세자는 왜 죽었느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이 매화하고는 상관이 없지만. 그런데 단 사도세자가 명을 내려서 그린 그림 가운데 일지매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일지매 그림이. 1754년입니다. 이분들이 매사에서 매사 5역. 다섯 명의 시인들이 읊었다. 그 책이 뭐냐 하면 제가 원본을 가져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 책인데 이런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전체가 다 매화를 읊은 시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유본정이라고 하는 분이에요. 유본정은 유득공의 자제뻘, 조카뻘입니다. 매사본말(梅史本末)이라고 해서 역시 매사를 만들고 자초지종을 다 기록을 한 겁니다. 아까 거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있고 이거는 영남대에 있습니다. 영남대에 있는데 시집이 아주 좋습니다. 아주 좋은데요. 여기도 전체가 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매화 이야기입니다. 매사본말의 맨 앞을 열면 이게 있습니다. 이게 뭐죠? 분재이지 않습니까? 이분들이 감상한 거는 사실 지금은 매화 보고 싶다고 하고 볼 거 없습니다. 차 타고 가면 금방 갈 수 있잖아요. 옛날에는 말 타고 가도 쉽지 않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집에서 분재를 감상을 하는 거거든요. 매화 역시 별로 구부러뜨리지 않았잖아요. 이렇게 해서 매화를 했는데. 여기 보면 매 자죠. 매부인소상(梅夫人小像). 매를 뭐라고 본 거예요? 나의 부인으로 본 겁니다. 매 부인의 초상화, 사진, 그런 뜻입니다, 옛날에. 사진 맞지 않습니까. 옛날에는 그림으로 그릴 수밖에 없잖아요. 이렇게 그린 겁니다. 원본은 굉장히 예뻐요. 예쁘게 그린 겁니다. 마치 자기 부인인 것처럼 매화를 그린 겁니다. 이건 또 뭔가요? 매부인소상찬, 매부인의 초상화를 그려놓고 거기에 대해서 예찬하는 글을 쓴 겁니다. 보면 제가 이걸 다 읽을 수는 없고요. 방보현원이요 향국의기매라, 군방보. 그러니까 꽃의 계보를 써놓은 것 중에서는 어진규수요, 향국. 향기의 나라 가운데 돌아가는 누이동생이다. 순수기상이요, 그 모습은 순수하고. 유한기태라, 그 태도는, 그 자체는 그윽하고도 아름답다. 이게 한가로울 한 자인데요.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빙설능이 우이부요, 빙설, 얼음과 눈으로 눈이 응고되어서 피부가 되었고, 보배 같은 가지가 끊어져서 패물로 삼고. 수색은 표옥이요, 정말 특별한 그 빛깔은 그 바깥에서 빛나고. 정심, 정결한 그 마음은 그 안에 감춰져 있다. 그다음에 무어이은약유정이요, 말은 없어도 은근히 정이 담뿍 담긴 듯하고, 함께 웃지만 찬연가망이라. 사랑할 만하다. 이렇게 해놨습니다. 매화를 마치 자기의 아름다운 연인처럼 묘사를 해놨으니. 옛날 분들이 이렇게 모여서 매화 감상하면서 시 쓴 것들을 보는데 이걸 보면 두 가지입니다. 매화에 대한 이미지와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서로 겹쳐지는, 오버랩 되는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꽃을 보면 그냥 예쁘구나 하고 지나가면 되는데 이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인이기 때문에 저렇게 곰살맞게 묘사를 하는 거죠.

이건 한동아집첩(漢衕雅集帖)이라고 하는 것인데 국립중앙박물관인가? 거기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한동의 동(衕)은 골목길이라는 뜻입니다. 한은 한경, 서울이라는 뜻입니다. 서울 골목길에서 아집을 한 그런 시첩, 그런 뜻입니다. 이게 언제 것이냐면 1912~1913년인가? 그러니까 한일합방 되고 나서 몇 년 지나지 않아서. 1912~1913년쯤 됩니다. 누구냐 하면 주인공들이 오세창, 당대에 유명한 분이죠. 그다음에 이기, 그다음에 최남선. 이런 분들입니다. 당대에 시, 그다음에 서화, 전각, 이런 쪽에서 유명하던 분이고 그다음에 승려이자 시인으로 유명한 박한영이라고 하는 분도 여기에 참여를 했습니다. 이유는 뭐냐 하면 나라도 망하고 슬픔에 빠져있는데 앞에서 이야기했던 매사, 매화꽃이 피면 사람들이 모여서 술 한 잔 하면서 매화 감상하며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던 그런 조선 전통이 다 사라졌다. 우리라도 다시 한 번 하자고 하면서 모여서 했는데 단순히 그런 것만 있었겠어요? 그 안에서 다양한 토론들이 있고 했었는데 이분들이 거기에 모여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여기에 있는 걸 보면 이게 아마 전기인지 뭔지 모르겠어요, 촛불인지. 벌써 약간 근대적인 느낌이 좀 들어요. 당기는 것 같은 게 있는 것 같죠? 전기 같죠? 벌써 전기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건 먹이나 술잔, 자세하진 않아서 그런데요. 벼루도 있고 아마 담배도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그다음에 이게 뭔가요? 매화 분재입니다, 매화 분재. 이분도 밖에 매화를 해놓은 게 아니라 집 안에 분재를 해놓고 꽃이 피면 다 보내서 매화 폈으니까 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해서 모여서 이분 술 드시고 계시네요, 그렇죠? 이분은 담배 피우고 있는 것 같고. 이건 시중드는 것 같고. 이렇게 담소를 나누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 참여했던 분 중에 한 분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화가인 고희동 선생이 있습니다. 이게 바로 그분이 그린 그림입니다. 춘곡 고희동입니다. 이분이 최초의 근대 화가이지만 이 안에 담겨있는 그림에는 전통적인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거 보면 이게 뭐예요? 매화입니다, 매화. 다른 수선화나 이런 것하고 함께 이렇게 매화가 딱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은 전통적인 그런 기법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굉장히 곱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이 뒤에 보면 매화에 관한 시, 신년을 맞이한 그런 느낌 같은 것들을 자세하게 썼는데 저는 매화 그림 가운데 이 그림이 굉장히 아름답게 느껴져서 특별히 했고요. 또 한편으로는 뭐냐 하면 이 매화 열기라고 하는 것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상당한 기간 동안에 계속 유지됐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태준 선생의 수필이나 이런 거 보면 매화가 피었을 적에 유명한 소설가이지 않습니까? 친구들 불러 모아서 하는 그런 이야기도 나오고 그다음에 유명한 시인인 정지용이라든지 그다음에 근원 김용준 선생 있잖아요. 김용준 선생의 수필을 보면 매화 사랑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분이 매화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렇죠? 그런 이야기들이 나와서 조선 시대의 매화 열기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1945년 그 이후까지 계속 지속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이런 그림들이 실물로써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겁니다.

앞에서 한 분들이 사실은 다 매화광입니다. 조선시대 매화광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예전에 매화 찾으러 가는 게 이분이 지금 매화 구경하러 가는 거예요. 눈 덮여 있는 산에 매화가 어디 피어있다고. 어딘가 매화가 있을 겁니다. 이것만 보니까 잘 안 보이는데요. 저기인가? 지금 당나귀 타고 가지 않습니까?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옛날 그림을 보면 이런 형식으로 딱 있다고 하면 아, 저거 맹호연이 나귀타고 매화 구경하러가는 탐매도(探梅圖)구나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저런 그림은 저런 분들이 꽃을 구경하러 간다고 하면 무슨 꽃이겠느냐? 그냥 짚으세요, 매화. 그러면 대개 맞습니다. 매화광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그중에 하나가 김홍도입니다. 김홍도도 매화 그림이 여러 폭이 있습니다. 이분은 기이한 매화를 보고 그림 값을 30냥을 받았습니다. 그림 값을 30냥을 받았으면 저건 거액을 받은 겁니다. 요즘으로 하면 몇 천만 원을 받았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받아서 20냥으로 매화 값을 치르고 나머지 10냥 가운데 8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매화 감상 술자리를 열었습니다. 살림은 2냥. 그러니까 매화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수준이 되죠. 그런데 이런 분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중에 대표가 게 바로 김홍도 선생인데 이 글이 누가 쓴 글이냐 하면 조희룡 선생이 쓴 글입니다. 조희룡이 워낙 매화를 좋아하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니고 그 유명한 김홍도 선생도 그랬다고 하면서 나만 바보가 아니다. 그런 얘기를 스스로 한 겁니다.

이 글은 연암 박지원 선생의 연암집에 나오는 글입니다. 석치라고 하는 유명한 정철조라고 하는 화가이자 과학자이자 벼루 제작자이자 시인인 당대의 천재한테 보낸 편지입니다. 워낙 친한 친구였죠. 물론 술 마시고 죽었습니다만 이런 편지 전체입니다, 엽서에다가. 옛날에 원민손이 부 상시의 청덕(淸德)을 칭송하면서. 이건 중국에서 당나라 이전 분들입니다. 부 상시라고 하는 분이 정말 맑은 덕을 지녔다고 칭찬을 하면서 이렇게 한 겁니다. 그 문을 지날 때면 고요하여 사람이 없는 듯하다. 막상 그 휘장을 걷고 보면 그 사람이 거기에 있다. 자기의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누가 있나 하고 딱 열어보면 거기에 바로 그 훌륭하던 분이 딱 앉아있다. 그런데 '나는 매양 눈 속을 걸어가서 쪽문을 열고 매화를 찾을 때면 문득 부 상시의 청덕을 느낀다오.' 이분도 쪽문을 바라보는 이유가 뭐예요? 친구 집에 분매가 있기 때문에. 누구한테? 석치한테. 석치 집에 뭐가 있었겠어요? 분매가 있으니까 당신 집을 지나가다가 눈 속을 헤집고 가는데 왜 가요? 혹시 친구 집에 매화가 피었나. 친구가 초청하기를 못 기다리는 겁니다. 딱 가서 보면 거기에 맑은 덕이 있는 게 딱 보인다. 너 왜 지금 매화 필 때가 됐는데 나한테 지금 사람을 안 보내는 거야라고 하면서 이렇게 보채는 겁니다. 피었냐, 안 피었냐 계속 묻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도 아마 전시를 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 서울역사박물관에서도 백답화에 대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요.

사실 전시 기획을 저하고 몇 분하고 같이 했는데요. 가서 보시면 거기에 뭐가 만들어져 있느냐면 이덕무의 방이 만들어져 있어요. 이덕무하고 서상수. 다 박지원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뭐를 했냐면 윤회매(輪回梅)라고 하는 매화를 만들었어요. 윤회는 뭐냐 하면 불교의 윤회설, 그 윤회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매화를 공예품으로 만든 겁니다. 밀랍을 해서 밀랍 안에 공기를 넣으면 매화 꽃잎 모양이 되거든요. 탁 펴진 것이 아니라 매화 꽃망울. 그거를 가지를 만들어서 거기에다 꽃을 다 얹어놓는 겁니다. 그래서 생화는 아니지만 조화로써 매화를 딱 만들어서 화분에다고 딱 꽂는 그런 것을 해서 친구들한테 팔았어요. 그래서 매화를 파는 겁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저런 매화를 판 집단으로써는 유일하다고 해서 그걸 복원해놨습니다. 가서 한번 보세요. 옛날의 매화는 어떻게 했느냐. 한 4~5년 전에 KBS인가? MBC에서 윤회매 만드는 거를 1시간인가 정도 방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역시 백답화 이야기를 해서 저도 그때 자문을 해 준 기억이 납니다. 윤회매 만드는 작법이 단행본으로도 만들어져서 지금 미국에도 가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매화가 워낙 인기다 보니까 그런 공예품으로 만드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거죠.

화암수록(花菴隨錄)이라고 하는 책인데요. 이것도 역시 한문으로 돼 있습니다. 유박이라고 이분이 유득공의 삼촌뻘 되든가 그럴 겁니다. 삼촌뻘 되든가 그런 분인데. 이분이 화암수록이라고 하는 단행본을 냈습니다. 이 소장자는 매화라고 하는 단행본을 쓰신 이상희 전 장관이 소장하고 있는 건데요. 이분은 호가 백화암입니다. 여기서 백은 모든 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꽃으로 둘러싸인 암자, 그런 뜻인데 어디에 살았냐면 개성 쪽에 살았습니다. 이분이 꽃에 관한 것을 다양하게 쓰면서 이게 그중의 일부입니다. 꽃을 등급을 배겼습니다. 1등, 2등, 3등 이런 식으로. 그중에 1등의 맨 앞에 뭐가 있냐면 매화가 있습니다. 위에 설명한 것 같은데 여기서 보면 매화에 대해서 가장 다양하게 많이 썼는데. 춘매(春梅) 고우(古友)요, 봄에 피는 매화는 예스러운 친구이고, 고우이고. 납매(臘梅), 동짓달 납일 이전에 피는. 동짓달 이전에 피는 거죠. 이전에 피는 매화는 기우(奇友), 너무 신기한 친구라고 하면서 매화의 특징을 이렇게 쭉 써놓고 있습니다.

매화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던 분들 중의 하나인데 이분이 시조도 많이 썼어요. 시조 그다음에 산문, 온갖 것들을 써서 유명한 시조입니다. 매화를 사랑한 것을 드러내는 거죠. 풍설산재야(風雪山齋夜)에, 바람 불고 눈 내리는 산의 서재에 밤이 들었을 때. 상대일수매(相對一樹梅)라, 한 그루 매화를 상대, 마주하고 있다. 여기 상대 보이죠? '웃고 저를 보니 저도 나를 웃는구나.' 저는 매화죠? 내가 웃으면서 매화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미소가 나온다, 그런 의미입니다. 웃고 저를 보니 저도 나를 웃는구나.' 웃어라 매즉농혜(梅則儂兮) 농즉매(儂則梅)인가 하노라.' 농즉매, 농은 여기 나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농은 보통 누가 쓰는 표현이냐면 나라는 표면 인데 애인한테 쓸 때 쓰는 겁니다. 애인한테 쓸 때 농이라는 표현을 써요. 주로 여자들이 많이 쓰는 겁니다. 중국 남방지역의 용어로. 요즘 용어로 하자면 honey, 그런 뜻입니다. 우리말은 자기, 그런 듯인데. 매화가 곧 나고 내가 곧 매화야, 분리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런 정도로 매화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 것이고요.

조희룡의 시입니다. 운의부지창해(雲意不知蒼海). 역시 매화입니다. 구름 뜻이 있어서, 이건 뭐냐 하면 지금 하늘에 구름이 자욱해서 저 푸른 바다가 어딘지 알지 못하겠는데 춘광욕상취미(春光欲上翠薇)라. 봄빛이 산꼭대기에 오르려고 한다. 봄이 이제 무르익으려고 하는 거죠. 인간일타천겁(人間一墮千劫)인데 인간 세상에 한 번 떨어져 벌써 천겁의 세월을 지났지만 유애매화미귀(猶愛梅花未歸)니라. 아직도 매화를 사랑해서 돌아가지 못한다. 어디로 돌아가지 못해요? 창해(滄海). 이 사람 지금 이 시 속의 주인공은 신분이 신선입니다. 신선이니까 하늘에 살잖아요, 바다에 살고. 그래서 이 더러운 인간 세상에 딱 내려왔는데 천겁이 되도록 돌아가지를 못해요. 이유는? 매화 때문에. 하늘로 가야 하는데 저놈의 매화가 발목을 잡아서. 신선들이 사는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조희룡이 어떻게 보면 참 턱도 없는 시를 쓰고 있는데 매화가 너무 아름다우면 저런 정도의 이야기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런 걸 매화에다 쓰지 말고 사랑하는 분들한테 쓰면... 한 번쯤 써보세요. 내가 빨리 가고 싶은데 너 때문에 못 간다 하면서.

그다음에 매화 좋아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매화시광(梅花詩狂)이라고 하는 김석손이라고 하는 분이 있어요. 원래 평양 분인데 이분은 뭐냐 하면 매화광이었어요. 매화벽이 있어서 매화 수십 그루를 집에도 심어놓고 그 사이에서 시를 읊조렸는데요. 시를 잘 짓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매화 시 하나 써달라고 했는데 써준 사람들이 수천 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큰 두루마리에다가 시를 받아서 그걸 다 집어넣었는데 그걸 옥으로 장식을 해서 보관한 유명한 분입니다. 이때 시를 써준 분이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연암은 워낙 시를 안 쓰고요. 당내의 명사들이 저 사람한테 다 시를 써줬습니다. 그래서 김석손이 안 찾아오면 어떤 의미냐면 시를 잘 못 짓는다는 거죠. 그런 정도로 유명했던. 곳곳에 이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이 양반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 서민이었어요. 하지만 너무너무 매화를 좋아해서 이렇게 했던 분입니다.

이유신이라고 하는 19세기 전반기에 유명한 화가인데요. 가헌관매도(可軒觀梅圖)라고 있습니다. 가헌은 이분의 집입니다. 관매는 매화를 본다는 뜻입니다. 가헌, 관매 이렇게 되죠. 석당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보시면 전체가 다 눈이 뒤덮여 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게 괴석이고요. 집입니다. 초가집이죠. 큰 나무가 있는데 마치 꽃이 좀 피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해놨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여기 보시면 밖에 매화가 있는 게 아닙니다. 이건 대나무잖아요, 그렇죠? 대나무를 이렇게 묘사한 겁니다. 대나무가에 이렇게. 보면 문제는 이 안에 문을 열어놓고 있어요, 그렇죠? 문을 열어놓고 이게 뭐예요? 매화 분재입니다. 분재를 해놓고 여기 지금 그림이 자세하지 않아서 그런데 이 안에 술도 있고, 책도 놓여 있고, 담배도 있고. 사람들이 여기 저기 걸터앉아서 여기도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도 꽃이 있는 것 같아요. 매화가 있습니다. 꽃이 피어 있으니까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꽃을 감상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관매, 매화를 구경한다고 하는 겁니다. 밖에는 눈이 있는데 그 안에는 뭐예요? 이 우주 자연이 새롭게 뭔가 탄생하고 있고 생명의 움을 트고 있다는 것을 서로 감상을 하면서 즐기는 겁니다. 이게 관매입니다. 옛날 분들이 뭐냐 하면 매화를 어떻게 감상하느냐? 혼자 쓸쓸하게 감상하지 않는다. 친구 불러 모아서 한다는 것을 조선후기의 법을 이렇게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전국에 꽃이 많이 피어 있습니다. 정리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우리나라에도 매화가 지금 전국 어디 할 것 없이 다 있습니다. 물론 매화 명산지도 있고요. 간혹 가다 보면 유명하지 않은 곳인데도 매화가 좋은 것들이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역사가 오래된 매화를 보통 고매(古梅)라고 합니다. 옛 고 자를 써서 고매라고 하는데요. 고매 가운데 품질이나 품종이 좋은 거를 천연기념물로 2007년에 만들었는데. 제가 저런 것하고는 전혀 무관하지만 저도 문화재청에서 임명한 문화재 전문위원입니다. 제가 천연기념물 지정하는 부분에서 전문적인 일을 맡고 있는 전문위원인데요. 제가 저런 걸 잘 알아서 그러냐? 그런 건 아니고요. 주로 문헌 쪽의 일을... 천연기념물을 정할 적에 단순히 지금 모습이 아름답다고 해서 천연기념물로 정하지 않습니다. 저것이 어느 정도 역사가 있느냐? 라고 하는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고증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문헌에 저것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그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그쪽으로 하다 보니까 하고 있는데 이건 2007년에 지정된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앞으로 이런 유명한 나무나 이런 것들을 지정을 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삼척 죽서루(竹西樓) 있지 않습니까? 죽서루에도 아주 역사가 오래된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도 중요한 것들은 해야 합니다. 중국은 1천 년된 나무들이 있어요. 지금 용문사의 은행나무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죠? 그다음에 명륜당에 있는, 성균관대 옆에 있는. 거기도 역사가 600년입니다, 은행나무가. 이런 것들의 다 지정을 해놨는데 매화는 너무 늦게 지정됐어요. 이거 한 300~400년 정도의 역사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좋은 것들은 일본 사람들이 막 가져가서 일본에 가면 일본 천연기념물들이 사실은 우리나라 임진왜란 때 가져간 것들, 근대에 가져간 것들이 있습니다. 중국은 1천 년입니다. 중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기 때문에 1천 년 된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있는데요. 이것 말고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유명한 것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올봄에 여기 가시면 뭐가 천연기념물인지 거기 아마 팻말 다 있을 겁니다. 꼭 확인하시고 가면 가서 아는 체도 좀 하시고 그렇게 하세요. 순천 선암사에 선암매(仙巖梅)가 있습니다. 선암매는 홍매(紅梅)도 있고 백매(白梅)도 있는데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한 400년쯤 된 걸로. 우리나라에 유명한 매화가 어디에 제일 많느냐 하면 전라도 지역에 제일 많습니다. 경상도 지역에도 일부 있고요.

그다음에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華嚴梅)입니다. 그런데 여기의 화엄매는 지금 말씀하신 홍매 있지 않습니까? 홍매가 아닙니다. 홍매는 굉장히 흑매(黑梅)라고도 할 정도로 굉장히 선홍빛인데 그거는 역사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너무 그걸 좋아하는데 실제로 역사가 오래된 매화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가서 한번 살펴보시고요. 장성 백양사에 있는 고불매(古佛梅)라고 하는 것도 굉장히 유명한 것이고요. 그다음에 강릉 오죽헌에 있는 율곡매(栗谷梅). 율곡이 심었다고 하는 율곡매도 아주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으니까 이건 다 이유가 있긴 하겠지만 이것 말고도 100, 200년 된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대명매(大明梅), 지금 사실 선릉, 강남 지역에 있었던 유명한 매화가 있습니다. 명나라에서 가져온. 명나라에서 가져왔으니까 임진왜란 이전에 가져왔을 확률이 높지 않습니까? 그 어름에 가져왔으니까 역사가 한 400년쯤 됐을 텐데 그거는 사라져서 다시 접붙여서 하는 매화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감상을 해보시고요. 그것 말고도 역사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아름답다고 하는 것들이 곳곳에 있으니까 한번 감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너무 잡다하게 현재 이전의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해서 매화를 어떤 부분을 감상하려고 노력을 했었고 매화 감상하는 방식들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매화 전문서들이 우리나라에는 많지 않습니다. 매화에 관한 책들 많이 뒤져봤자 한 10종 정도 내외이고 아마 다 절판 된 것도 많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매화에 관한 책들은 외국에 나가면 특히 중국이나 일본은 굉장히 많습니다. 매화가 아름다운 것은 한 · 중 · 일 이 세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중국으로 가시더라고 매화를 어떻게 구경했느냐 라는 관점을 가지고 보시면 또 새로운 것을 감상하실 수 있고 일본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그렇게 풍부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 다른 지역에 가서도 살펴보시고 곧 아마 3주 정도 지나면 매화 철이 다가올 텐데 한번 이번 기회를 통해서 감상을 하시고 또 가능하면 많은 분들이 당첨이 되셔서 함께 열차를 타고 감상할 수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으로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