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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1500년전의 숨결을 품고 있는 부여.공주를 다녀와서
작성자 김옥란 작성일 2017.11.12 조회수 233
이메일 dhrfks512@daum.net
<백제 1500년의 숨결을 품고 있는 부여 공주를 다녀와서>
 
                            <여      는     글>
 
집을 나서니 간밤에 늦가을을 보내기 아쉬운 비바람이 알록달록 예쁘게 치장한
나뭇잎들을 발가벗겨 거리가 온통 떨어진 나뭇잎들로 바스락 거렸고
삽상한 가을바람에 볼이 시렸지만 옷깃을 여미며 올해의 마지막 인문열차에
탑승하여 1500년의 백제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부여.공주의 인문적비의와
속살을 보기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용산역에 도착하니 마지막 가을을 만끽하려는 나들이 인파들로 북적거렸고
인문열차에 탑승하려는 우리 일행들중에 그동안 길위에서 인연을 맺은 지인을
뵈니 더욱 반가웠다.
 
우리는 호남선 KTX에 탑승해서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을 감상하며
마주않은 일행들과 오순도순 행복한 마음으로 담소을 나눴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벼밑둥이만 남겨진 논에
하얀 비니루로 돌돌 말린 짚덩이가 퍽이나 인상적이었고 정겨웠으며
초록으로 무성하게 치장했던 옷을 벗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사위어 가는 알록달록하고 오밀조밀한 예쁜 산야를 뒤로하고 공주역에 도착했다.
 
<웅진시기 백제왕과 왕족들이 묻혀 있는 송산리 고분군>
 
공주역앞에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를 타고 송산리 고분군을 향해 출발했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삽상한 늦가을 바람이 솔향과 함께 우리를 맞이했다.
공주시 금성동과 웅진동의 경계에 있는 송산의 남쪽경사면의 자리 잡고 있는
송산리 고분군은 웅진시대 백제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다
원래 17기의 무덤이 조사되었지만 현재는 무령왕릉을 포함하여 1~6호분까지
7기만 복원되어있다.
 
무령왕릉을 제외한 나머지 무덤들은 도굴로 인하여 부장품이 남아 있지 않다.
이곳 송산리 고분군은 2015년 7월 8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 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네스코 백제역사 유적지구의 하나로
그중에서도 무령왕릉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송산리 고분군에는 두가지 무덤형태가 확인되는데 돌을 쌓아 만든 굴식돌방무덤과
벽돌을 쌓아 만든 벽돌무덤이 있는데 1호분에서 5호분까지는 굴식돌방무덤이고
6호분과 무령왕릉은 벽돌무덤이다.
 
인솔하신 이해준 교수님께서 간단하게 고분군 모형 전시관 앞에서 설명을 해주셨다.
항상 탐방할 때는 그 지형을 파악하라고 하셨는데 탐방 때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못보는 우리들의 좁은 시야를 지적하신 것같다. 교수님은 70학번으로
운좋게 학생신분으로 1972년 무령왕릉 발굴현장에 참석하셔서 그 경험이 지금까지 오고
있으며 20년전에는 왕릉안에 들어가서 관람했는데 지금은 고분군의 보존상의 문제로
1997년 7월 15일 문화재청의 영구 비공개 결정에 따라 내부관람이 중지되고 현재는
모형전시관을 만들어서 관람객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고분중에서도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1971년 배수로를 공사하던중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1500년 상태로 백제시대 무덤중 도굴되지 않고 온전히
발굴 되었다.
 
묘지석을 통해 무령왕의 생애와 매장시기를 알 수 있고 피장자의 신분을 알 수 있는
한국 고대의 유일한 왕릉으로 화려하고 세련된 미의식 수준과 높은 공예기술을 통해
찬란한 백제의 사회와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모형전시관에는 무령왕과 왕비의 출토유물이 4.600점 이상으로, 백제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진품들과 국보 12점 등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물들은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고분에 직접 들어가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모형전시관을 통해 보는 것으로 달래며
솔향의 배웅을 받으며 웅진시기의 방어성이자 왕성이었던 공산성으로 향했다.
 
        <웅진시기의 방어성이자 왕성이었던 공산성>
 
공산성에 도착하니 성곽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구절초와 송산리 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깃발이 펄럭이며 우리를 맞이했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상징적인 동물로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어조로 말씀하시는 해설사님께서 간략한 백제의 역사를 말씀하셨다.
백제는 한강유역에서 자리 잡아 성장하였는데 475년 고구려의 침략으로 수도인
한성이 함락되어 웅진 지금의 공주로 수도를 옮기게 되었다.
 
475년에서 538년 사비 지금의 부여로 옮기기 전까지 64년간을 웅진시기라로 한다.
웅진은 동.서.남쪽으로는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에는 금강이 흐르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입지였다. 또한 금강은 바다와 만나 백제가 중국등 동아시아 각국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는 웅진이 사비로 수도를 옮기기 전인 538년 까지 백제가 다시 힘을 기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음을 말해준다.
웅진에서 힘을 기른 백제는 중대한 결심을 하여 수도를 사비로 옮길 준비를 하였다.
웅진은 방어에 유리하지만 지역이 협소하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백제의 발전을 위해
538년 사비로 천도를 하였다.
백제는 새로운 수도 사비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하였다.
538년 사비로 수도를 옮긴 이후부터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할 때 까지의
123년간을 사비시기라고 한다.
 
공주공산성은 사적 제 12호로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성벽을 쌓은
웅진시기의 방어성이자 왕성이었다.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동.서.남쪽은 가파른 성벽이 자리하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이점을 가진다.
공산성은 성안에 왕궁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어 백제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산성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왕궁지에는 여러기의 백제건물지와
백제시대 왕궁내에서 발견된 인공연못이 있고 이곳에서 확인된 건물지 가운데
벽주건물은 위계가 높은 건물들에 사용되는 건축 양식으로 건물의 상부를
꾸미는 다양한 기와들이 발견되었다.
 
그밖에도 왕궁 부속시설지와 식품이나 물품등을 저장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저장시설인 목곽고터가 있었고 이괄의 반란을 피해 공산성에 머물렀던 일을 기록하여
세운 쌍수정사적비가 있었다. 비문을 통해 이괄의 반란 때 인조가 난을 피하여
공산성에 머물렀던 6일동안의 행적, 공산성의 모습등이 적혀 있다.
 
피난온 인조임금과 연관이 있는 쌍수정과 인절미에 대한 유래가 전해지고 있었다.
성루에 올라서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천년 넘어 지금까지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펼쳐져 있고 옛날에 배다리가 있는 자리에는 금강철교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서문에서 바라본 공주시가지를 바라보면 많은 유적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공산성 정면으로 조선시대 천주교인들의 순교지인 황새바위가 있고 그 뒤편이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 고분군이고 우측 강가 언덕에는 백제시대 제사유적인 정지산 유적이 있고
고려시대에 공주로 온 어떤 안렴사가 금강가의 정자에 들러 금강의 물줄기와 산세에
감탄하여 자신도 모르게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지는데 그 정자가
바로 ‘안무정’ 이라고 한다.
 
안무정은 지금의 정지산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자취가 없다.
‘안무정’ 자리에 정자가 만들어져 금강과, 공산성, 공주 시가지를 함께 보면
우리도 그 안렴사처럼 덩실덩실 어깨춤이 추어 지리라고 상상해 본다.
그 주변의 금강변에 공주의 옛 이름인 ‘고마‘ 의 유래가 담기고, 배가 닿았던
’고마나루‘가 있다. 또 공산성 서문 앞 광장은 지금은 음식점과 상점이 가득 메우고
있지만 본래 공주 특산물이었던 미나리를 재배한 ‘미나리꽝’ 지대였다고 한다.
 
펄럭이는 사신도 깃발의 배웅을 받으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맛있는 점심식사가
준비 된 ‘고마나루 돌쌈밥집’으로 가서 식당이름 만큼이나 옛스럽게 꾸며진 공간에서
맜있는 식사를 했다.
 
<사비도성에 위치하였던 정림사지와 정림사지5층석탑 정림사지 박물관>
 
정림사지는 사적 제 301호로 불교의 교리를 완전하게 구현한 사찰이자 사비도성의 중앙에 위치하였던 절터로 도심에 세워진
절로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사례중 하나라고 한다.
백제말 123년의 도읍기를 통털어 남아있는 유일한 백제유적으로 백제 사비도성 건설과
함께 세워진 왕실의 흥망성쇠와 함께 한 곳이다.
 
목탑의 한계를 극복한 높이 8.3m의 석탑이 남아 있으며 조사결과 금당지, 강당지, 승당지
등이 확인되어 불.법.승의 불교의 3보를 모두 구비한 백제 고유의 사찰 건축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의 사찰은 탑과 금당이 일직선상으로 배치된 모습이 특징인데 정림사지
역시 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전통은 고려시대가지 이어진다.
정림사라는 절의 이름은 고문헌 기록에도 없었는데 1942년에 발굴된 고려시대에
제작된 기와가 발견되어서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국보 제 9호인 정림사지 5층석탑은 백제시대 석탑으로 탑의 원형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목탑의 구조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완벽한 균형미와 비례미를
보여주며 정돈된 형식미와 세련되고 완숙한 미를 보여준다.
 
백제의 장인들은 기존의 목조가 가진 문제을 해결하기 위해 석재를 택했다.
세부구성 형식이 정형화 되지 못한 미륵사지석탑에 반하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또한 좁고 낮은 단층기단과 층우주에 보이는 민흘림, 살짝 들린 옥개석 기단부
낙수면의 내림마루 등에서 목탑적인 기법을 볼 수 있지만 목조의 모방을 벗어나
창의적 변화를 시도하여 완벽한 구조미를 확립하였고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양식으로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한다.
 
이렇게 훌륭하고 아름다운 탑이 과거에는 평제탑이라고 불렸는데 거기에는 백제의
슬픈이야기로 탑의 1층 탑신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승전기공문인 대당평백제국비명’을
세워 백제 정복을 기념하는 글귀를 사방에 새겨 놓았기 때문이다. 당나라와 신라가 힘을
합쳐 백제를 공격한 이야기, 포로를 압송한 이야기등 치욕적인 내용이 적혀있고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660년 7월 18일에 항복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림사지석불좌상> 정림사지의 강당지 한복판에 있는 고려시대 불상으로 보물 제108호로높이 562㎝. 거불로 오른팔과 왼쪽 무릎이 떨어져나갔고 몸체의 마멸이 심한 편이다. 또한 머리 부분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전체적인 양식고찰이 어려우며, 왼손의
윤곽으로 보아 지권인을 취한 비로자나불로 추정된다고 한다. 대좌는 불상에 비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며, 3단의 팔각연화대좌이다. 상대에는 앙련이 조각되어 있고, 팔각의 간석에는 큼직한 안상이 표현되어 있다. 하대의 윗부분에는 복련이 있고, 아래의 기단석에는 각 면에 안상이 3개씩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명문 기와를 통해 이 불상은 고려시대 절을 고쳐 지을 때 세운
본존불로 추정된다고 했다.
 
<백제의 꿈과 땀이 담긴 정림사지 박물관>은 백제 사비시기 불교와 그 중심에 있었던 정림사를 주제로 백제 불교문화를 재조명하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고취시키고자 건립 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의 건물형태는 불교의 상징인 ‘절’자 모양으로 중앙홀를 중심으로 진입로,
전시실 관리실등이 사방으로 뻗은 날개 모양으로 상호 연계하여 박물관을 구성하고 있다.
백제시대중 가장 화려했던 사비시기의 불교유적등 백제의 꿈과 땀이 담긴 정림사지
박물관을 보니 타임머신속의 백제을 경험하게 되어 기뻤다.
 
<눈과 마음을 황홀케하는 백제금동대향로가 있는 국립부여 박물관>
 
백제사비도성의 정림사지와 불교예술의 극치인 삼보를 뒤로하고 국립 부여박물관으로
향했다. 나른하고 다리가 아팠지만 여러번 보아도 매료되는 백제금동대향로를
보기위해 힘을 내본다.
 
제1전시실에는 부여의 선사와 고대문화 살펴 볼 수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였고
중국의 랴오닝지역과 한강유역의 문화를 받아들인 부여 송국리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확인 할 수 있으며 백제 성립의 기반이 되었던 마한의 문화를 감상할 수 있다.
그중 대쪽모양동기는 동기의 넓은 쪽 가운데 공간에 사람의 손 모양이 새겨져
제사장과 관련된 유물로 여겨진다고 한다.
 
제 2전시실에는 백제 사비시기의 생활문화를 중심으로 ‘사비천도와 왕경문화’ ‘능산리
사찰‘과 ’백제금동대향로‘, ‘돌과 나무에 새겨진 백제문화’의 세가지 주제로 전시하였다.
이를 통해 사비도성에 살았던 백제인의 일상과 정치행정, 종교의례에 관한 다양한
면모를 살펴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백제금동대향로 앞에는 많은 관람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향로는 향을 피워 나쁜 기운을 깨끗이 하기 위한 도구이다. 백제금동대향로
1993년 12월 능산리사지 발굴조사가 실시되면서 부여 능산리사찰의 공방터에서
출토 되었다고 한다.
 
뚜껑에는 하늘에서 날아온 봉황이 정상에 앉아있고 다섯 방향으로 쌓아올린 봉우리에는
인물들과 상상의 동물, 현실속의 동물을 묘사했다. 몸체는 연꽃 봉우리처럼 표현하였고
받침은 위로 비상하는 용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향로는 신선들이 산다는 신산을 표현한 박산향로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백제적인 요소를
담았으며 고대의 전통적인 세계관과 도가사상이 정교하게 표현되었다.
정교함과 섬세함의 극치를 이룬 향로를 만든 백제의 장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제 3전시실에는 백제의 불교문화를 전시했는데 백제인의 우수한 공예 제작 기술을
보여 주는 ‘불상’과 세계적인 건축 감각을 자랑했던 ‘사찰’ 을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금동불, 석불, 소조불,등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불상들을 전시하여 백제 장인의
예술혼으로 완성된 백제의 뛰어난 공예기술을 감상할 수 있다.
금동관음보살입상은 신체의 굴곡과 양감이 자연스럽고, 우아하고 세련된
조형성으로 백제 조각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준다.
 
제 4 전시실에는 기증으로 빛난 문화재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다. 박만식 교수를
비롯한 50여명의 뜻있는 기증자들의 아름다운 선택으로 백제토기등 350여점의
기증품이 전시되어 있다.
 
                      <맺    음    말>
 
올해 마지막 탐방이었던 이번 탐방도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닫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했다. 하늘빛 물빛 바람맛이 다른 이 아름다운 늦가을에
인문열차에 탑승할 수 있어 참 행복했다. 인문학 기행은 역사와 문학 자연과의 만남이
있지만 무엇보다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나의 삶을 재인식하면서 ‘나는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것인가? 를 고민해본다.
 
3월부터 배움도 깨달음도 길위에 있다는
<인문 열차 삶을 달리다>을 통해 많은 역사의 사연속에 숨겨진 인문적비의와
속살을 찾아 우리에게 삶의 소통구이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번 공주 부여 탐방을 통해 미로 처럼 한치앞 모르는
인간의 삶속에서 소용돌이 치며 흐르는 역사의 수레바퀴속에 눈물을
흘렸을 패자도 미소를 짓는 승자도 물처럼 흐르는 세월앞에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음을 느꼈다.
 
사소한것에 목숨걸지 않고 사고의 지평을 열어주고 삶의 윤활유가
되어주는 인문학 사랑과 탐방은 우리에게 삶의 자양분을 심어주니
내년에도 인문열차에 탑승하길 기대하며 더욱더 이사업이 건투하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수고하신 강사님께 감사드리며 관계기관여러분과
쌀쌀한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현장에서 진행하시느라 수고가 많은 진상훈 대표님
안우상 팀장님 그밖에 모든 진행요원 여러분들께 모두 감사
드립니다. 이번 탐방에 함께 동행하신 여러 선생님들 좋은
역사여행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내년에도 길위에서 좋은 인연으로 만나뵙기를 바라며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화이팅!

* 등록된 댓글 2개

  • 김옥란  |  2017-11-16 09:40:27

    소은자 샘반갑습니다.  
    웃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고 예뻤습니다. 
    좋아하는 역사탐방을 통해서 소중한 인연으로 
    만나서 저도 행복했습니다
    댓글을 달기가 쉽지 않은데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여건이 허락되는대로 자주 뵙기를 바래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소은자  |  2017-11-15 12:13:55

    낯선 길,,
    길 위에서 만난 인연이 소중함을 느낌니다.
    서로 다른 공간 서로 다른 삶의 모양에서 살다가 우연히 만난 인연이지만 각자의 삶속에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우물을 보게됩니다. 마르지 않는 우물, 그 우물을 지키기위해 치열하게 살고있지요.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전 졸필이라 올리신 글들이 부럽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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