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무지렁이 농부
아버지, 평범하고 조용하며 알뜰한
어머니. 이들은 자식들에 대한
기대와 꿈으로 아이들 교육에
힘쓰는 어떤 자그만 농촌의 평범한
가족 모습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크고 자라는 데 있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일까. 그 사람의
인격과 성격, 특징을 이루는 데는
어떤 계기들이 작용하는 것일까.
마이클 더다는
그것이 바로 ‘책’이라고 말한다.
오픈 북, 말 그대로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이 책이란 물건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또 다른 문이 열리는 세상이다.
생계나 직업을 위해 필요한 기술이
아니면 별다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마이클 더다는 책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발견해 나간다.
마이클 더다는
현재 <워싱턴 포스트>에서
서평을 집필하고 있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서평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993년에는 그가
쓴 서평들이 ‘퓰리처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책 《오픈 북》은 2004년 ‘오하이오나
도서상’의 논픽션 부분에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마이클 더다가
《오픈 북》을 쓰게 된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우울하고 아이러니한
것을 좋아하는 자신의 성격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를 곰곰
생각하다가, 어린 소년이 책과
마주하며 생긴 이야기가 곧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되었다. 책의
마지막에는 마이클 더다가 읽은
책 목록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다. 주로 고전들이 많다.
마이클 더다의
《오픈 북》을 시로 쓴다면, 아마
장정일의 <삼중당 문고>라는
시에서 “삼중당 문고”라는 단어를
빼고 다른 책 제목을 대치하면
될 것이다. 더다에게는 ‘오픈
북’이 있고, 장정일에게는 ‘삼중당
문고’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는
어떤 책의 지도가 있을까. 더다의
책 목록표와 장정일의 삼중당
문고가 겹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책을 중심으로 내 이야기를
쓴다면 어떤 책들을 꼽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이 나를 키운 책이기 때문이다.
서정주 시인에게 8할의 바람이
있듯이, 우리들 각자는 무엇이
우리를 키운 것일까.
“열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 급우들이 신기해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
문고 ……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곡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 ……
교련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곁에 있던 삼중당 문고 ……
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을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당 문고 ……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히 끼고
나온 삼중당 문고 …… 삼성전자에서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
시 공부를 하면서 읽은 삼중당
문고 ……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 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
/ 너무 오래 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 /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 집채만해진 삼중당 문고 / 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 문고 / 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 / 그러나
나 죽으면 / 시커먼 배때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나가고 /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 붉은 흙 뒤집어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 장정일의
시, <삼중당 문고>
김자영 / 출판
편집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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