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 신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추천한 이달의 책]

 

<문학> 꽃밭  최인호 글/ 김점선 그림 / 열림원

지난 10여 년 동안 최인호가 쓴 짧은 글에 화가 김점선이 그림을 보태 완성된 책이다. 그렇게 많은 글을 쓰고 책을 냈으면서도 매일 아침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라는 작가가 쓴 이 책 속의 글은 누군가의 인생에 새겨진 발자국이 내 발자국 같기도 하다는 공감을 자아내며 단상처럼 읽힌다. 지금 이 현대를 살아가며 중요하게 챙겨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들이 수많은 글들 사이사이에 스며 있다. 열정적인 젊음이 물러간 자리에 찾아든 중년의 삶에서 길어 올린 명상들이나 인류의 역사 속에서 깊은 뜻을 남기고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 보면 기실은 가까운 가족이나 벗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느끼게 하는 보편성과 만나게 된다.
거기에 김점선의 그림은 잊었던 시간들을 불러들이는 주술 같은 역할을 한다. 갑작스런 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 중에 그렸다는 김점선의 그림은 별나지도 튀지도 않으면서 이 책 속의 글들과 쌍을 이루며 인생을 말해 준다. 그리하여 글과 그림은 조화로운 꽃밭을 이루어 때로는 글이 그림 같고 그림이 글 같다. 독자의 대상을 딱히 정하지 않고 누구라도 읽어도 좋을 것 같은 책이다.

- 추천자 :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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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가 높이 산 한국의 문기  최준식 지음 / 소나무

상서로운 기운을 서기(瑞氣)라고 하고,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기운을 신기(神氣)라고 한다. 정기(正氣)라는 말도 있다.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크며, 지극히 바른 천지의 기운을 뜻한다. 이처럼 기(氣)가 붙는 말은 대부분 역동적인 긍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일본이 무(武)의 나라라면 한국은 문(文)의 나라였다. 일본은 무사가 모든 것을 장악한 나라였지만 조선은 문사(文士)가 모든 것을 장악한 나라였다. 무가 아니라 문을 장악한 사람에게 돈과 권력과 명예가 집중되었던 이상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그러나 왜 그리 문이 존중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연구가 별로 없었다.
저자는 이런 문의 문화를 문기(文氣)라고 표현한다. 흔히 『명사(明史)』나 『청사(淸史)』 등이 『조선왕조실록』보다 방대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중국의 두 역사서는 『조선왕조실록』의 언저리에도 오기 힘들다. 세계 최고의 『실록』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나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원동력은 모두 한민족의 문기인 것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표의문자 한자를 능숙하게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완벽한 표음문자인 한글을 만들어냈는데, 이 역시 문기의 소산이다. 특히 저자는 한글을 한민족의 문기가 갖는 특성을 종합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하나 더. 해방 후 한국이 정치와 경제 방면에서 세계가 놀라는 성취를 이룩한 것도 역시 문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간파하고 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문기로 보는 우리 역사’이다.

- 추천자 :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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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숫자의 이면을 귀신같이 읽는 힘, 통계센스  

                           가토쿠라 다카시 지음 / 김진홍 옮김 / 다산북스

나는 대학시절 은사이신 변형윤 선생님으로부터 통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 가운데 하나는 ‘통계로 거짓말 하는 법’(How to Lie with Statistics)이었고 또 하나는 ‘숫자의 마술’에 속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정부, 기업, 대학 등 다양한 기관들이 발표하는 통계는 경제나 사회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매우 편리한 도구다. 그러나 세상에 넘쳐나는 다양한 통계를 정확히 읽어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사람들의 성격이나 행동 패턴이 제각각이듯 통계도 부풀려지기 쉬운 것, 축소되기 쉬운 것, 변동폭이 큰 것, 변동폭이 작은 것 등 독특한 경향 또는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통계는 하나의 수치만을 보여주지만 그 수치를 해석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저자는 이 책이 우리들이 자주 접하는 다양한 경제통계와 사회통계를 통해 통계의 배경에 숨어 있는 진실을 밝히려고 씌었다고 했다. 또한 그는 각종 통계가 가지고 있는 패턴, 체감과 수치 간에 괴리가 발생하는 이슈, 통계나 각종 효과에 대한 거짓말을 명확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참으로 재미있는 통계 관련 에피소드가 매우 알기 쉽게 소개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통계수치인 평균값과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체감수치 간에는 왜 괴리가 생기는 것일까, 소비자 물가는 왜 상향하기 쉬운가, 18년만에 저팬 시리즈에서 우승한 2003년의 한신 타이거즈는 과연 일본경제를 불황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는가 등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 추천자 : 정운찬(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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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단절  쑨리핑 지음 / 김창경 옮김 / 산지니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역설적 현상은 중국 관련 서적에 대해서도 익히 적용되는 듯하다. “중국 알기”의 일차적 관심사는 급변하는 중국 사회의 현황일 터이지만, 지금까지 방대한 중국의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일상 등에 관한 박물학적 서적이 주종을 이루었을 뿐, 역동적 중국 현실에 대한 정치한 분석서는 흔치 않았다고 본다.
이 책은 성장일로의 중국 사회에서 날로 증폭되어 가는 빈부격차를 다룬 중국판 양극화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난 10여 년 간 추진되어 온 국가 주도형 개혁 정책이 소득간, 직업간, 지역간 불균형을 심화시킨 “발전 없는 성장”으로 귀결되었음을 예리하게 진단한다. 시장 메커니즘 및 소득 격차의 확대, 횡령과 수뢰, 국유자산의 대규모 분할 등으로 이전과는 판이한 방식으로 전개된 90년대 이후의 재산 축적 과정은 중국 사회를 유래 없는 내적 단절(斷絶)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이같이 어두운 실상을 저자는 도시화의 침체, 소득의 정체 및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로 생필품 소비단계에서 내구재 소비단계로의 이행이 순탄치 못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글쟁이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한다. 쑨리핑(孫立平) 교수는 동서양 학자들의 예지나 일상적 에피소드를 능란히 구사하며, 자칫 현학적 진술로 일관되기 쉬운 중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을 재미있게 들려준다. 세계 학술시장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중국 학문의 저력을 독서인들과 함께 널리 공유하고자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 추천자 : 김문조(고려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