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판사봉, 의료원의
청진기, 학교의 칠판. 이 물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각각 그 기관을 쉽게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인 물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서관을 나타내는
상징물로는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 먼저
서가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서가는 꼭 도서관에서만
쓰는 물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령 많은
사람들은 책을 빽빽하게 꽂은 서가의 모습으로
주로 교수 연구실을 떠올린다. 그럼 잡지 서가는
어떨까? 도서관 말고 잡지 서가를 쓰는 곳은
거의 없으니까. 그런데 잡지 서가에 대해 일반인들이
떠올리는 곳은 연구소이다. TV 뉴스 따위를
통해 전문가(특히 경제, 경영 분야)의 견해를
듣는 장소의 배경이 신기하게도 거의 잡지
서가이기 때문이다(잡지(책)가 전문성을 나타내는
도구가 된다는 의미인데, 몰랐던 분은 오늘부터
TV 뉴스를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도서관 밖에서는 결코 쓰지 않는 목록함은
어떨까. 물론 도서관을 제외하고 어디서도
쓰지 않는 물품이지만, 지금은 도서관에서도
쓰지 않으므로 도서관의 상징물로 선정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고민 끝에 필자가 꼽은 도서관의
상징물은 북트럭이다. 생뚱맞은가? 사실 이거야말로
도서관에서만 쓰는 물품이고, 목록함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가능성도 없지 않겠는가.
멀리 미국에서도 북트럭이
도서관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들은 놀랍게도 북트럭을 스포츠로
승화시킨다. 지난 2005년 6월 26일,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도서관협회 연차총회 기간 중에 기발한
이벤트가 개최되었다. 이름하여 ‘북트럭 끌기
팀 세계선수권대회’(Book Cart Drill Team
World Championship)! 프로야구의 ‘월드시리즈’처럼
자국 내의 경기를 두고 꼭 ‘월드(World)’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고약한 습관은 일단 논외로
하자. 북트럭(Book Truck)이라고 부르고 북카트(Book
Cart)라고도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북트럭이란
용어를 더 자주 쓰니 일단 북트럭으로 통일하기로
한다. 그런데 도대체 ‘북트럭 끌기’가 무슨
의미일까?
짧게 설명하자면, 북트럭
끌기란 8~12명의 도서관 직원이 한 팀을 구성하여
아바(ABBA)의 ‘Dancing Queen’이나 빌리지
피플(Village People)의 ‘YMCA’ 같은 귀에
익은 경쾌한 음악에 맞춰 댄스 루틴에 따라
특별하게 장식한 북트럭을 행진하듯 끌고 가는
퍼포먼스이다. 루틴이란 일정한 동작 순서를
뜻하는데, 아래에 소개하는 ‘The MELSA Library
Reading Divas Book Cart Drill Team’이 공개한
루틴1)의 일부를 살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댄스 루틴>
선수들은 큰 원을 만들면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몸을 안쪽으로 향한다.
ㆍ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ㆍ 진행 방향으로 네 번 회전한다. ㆍ “대출하세요!”하고 외치며
책을 편다. ㆍ 책을 덮는다. ㆍ 오른쪽 사람에게 책을
건넨다. ㆍ “대출하세요!”하고 외친다. ㆍ 왼쪽 어깨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회전한다. ㆍ 오른손으로 책을 쥐고
원의 중앙을 향해 머리 위로 크게 쓸어내리는
동작을 한다. ㆍ 책을 찰랑찰랑 흔들며
원의 바깥을 향해 머리 위로 넘긴다. ㆍ 책을 찰랑찰랑 흔든다. ㆍ 진행 방향으로 얼굴을
돌린다. ㆍ 엄지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며
“쉬잇!”한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했듯이, 동영상을 한 편 보는 것이 이해가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영상은 제1회
북트럭 끌기 팀 세계선수권대회에 관한 내용이며
두 번째는 마린공공도서관 북트럭 끌기 팀의
퍼레이드를 촬영한 것이다.
동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jpFf1i1_g5I 동영상 보기 http://www.co.marin.ca.us/depts/lb/main/parade.wmv
이제 북트럭 끌기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되었을 것이다. 2005년의 제1회
북트럭 끌기 팀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Dewey
Decimal Dancers’나 ‘Cart Attack’과 같은
재치 있는 팀 명칭을 붙인 14개의 팀이 참가하여
갈고 닦은 실력을 뽐냈다.
경기 결과, 클레몽트 공공도서관의
‘Readin’ & Rollin’팀이 동상을 차지했으며
은상은 ‘Thousand Oaks Library Precision
Drill Team’이, 그리고 영예의 금상은 위스콘신-메디슨대학교
문헌정보학대학원의 ‘Dewey et al for my
Baby’팀이 수상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도서관계에서
북트럭 끌기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널리
행해지는 이벤트라는 점이다. 실제로 북트럭
끌기는 미국의 도서관에서 실시하는 중요한
행사의 하나이다(물론 모든 도서관이 북트럭
끌기를 하는 건 아니다). 도서관 사서, 직원,
학생 등으로 조직된 북트럭 끌기 팀은 지역
축제나 초등학교에서 순회공연을 하면서 도서관을
홍보하고 리터러시 증진에 기여하며, 내부적으로는
도서관 직원들의 사기와 팀워크를 고양하고
있다.
또한 지역 도서관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내성적인(quiet) 사서들’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데 북트럭 끌기의 본연의
목적이 있다. 그래서 前미국도서관협회장 사라
앤 롱(Sarah Ann Long)은 “도서관 직원들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 줄 스포츠 이벤트”라며,
“북트럭 끌기 게임은 도서관 직원들로 하여금
도서관 서비스를 큰 소리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하는 재미있고도 훌륭한 방법”이라고
추켜세운 바 있다.
북트럭 끌기 팀 세계선수권대회는
올해로 벌써 3회째를 맞아 미국도서관협회
연차총회의 특별행사 중의 하나로 2007년 6월
24일 오후 4시부터 워싱턴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었다.
휴스턴 페어뱅크스학교(Fairbanks
Independent School District)의 ‘The Book
Divas’팀이 금상을, 게티스버그대학의 ‘Gett
Down with Your Funky Shelf’팀이 은상을,
델라웨어 공공도서관의 ‘Delaware Diamonds’팀이
동상을 각각 차지했다. 2)
이 대회의 하이라이트를 편집한
동영상을 감상해 보자.
- Book Cart Drill Teams
at ALA 2007
동영상 보기 http://youtube.com/watch?v=CF03v3oxkJ0
북트럭 끌기는 퍼레이드 중심의
서양식 축제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우리나라에
이식해 보기에는 문화적 차이가 클 것이다.
다만, 너무나 정적인 우리 도서관계 행사에
이런 식의 역동적인 분위기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10여 년 전에 도서관문화비평가
이용훈은 어느 사석에서, 전국도서관대회와
같은 행사에서 도서관별로 팀을 구성해 책을
잔뜩 실은 북트럭을 빨리 운반하는 경기를
해 보면 재미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옛날 ‘명랑운동회’식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그는
경기에 사용할 북트럭은 반드시 자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북트럭을 갖고 올 것을 전제했다. 경기에
앞서 북트럭의 상태를 미리 점검해야 하므로,
북트럭을 비롯한 도서관 비품을 자관에서 대대적으로
보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전국도서관대회에서 꼭 발표회나 세미나만
하라는 법이 있는가? 아닌 게 아니라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전국도서관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모여 배구를 비롯한 운동경기를 즐기기도 했다.
그동안 도서관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사서들의 몸과 마음을 위축시켰지만,
사서들 스스로 패배주의에 빠져 자기 자신을
위축시킨 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인들에게 무릇 사서는 조신하고
엄숙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려 주고,
사서들에게는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새로운
놀이(?)문화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끝으로, 북트럭을 소재로
삼는 또 다른 색다른 이벤트를 구경해 보자.
북트럭 끌기 대회에서도 주제에 걸맞게 북트럭을
장식하기도 하지만, 사서 듀이(Dewey)가 주인공인
일일 도서관 만화 Unshelvedⓡ는 아예 ‘Pimp
My Bookcart’3) 라는 본격적인 북트럭 튜닝
콘테스트를 개최하고 나섰다. 지난해인 2006년의
주요 출품작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금상은
‘핑크 캐딜락(Pink Cadillac)’ 이라는 작품에
돌아갔다.
※ 덧붙이는 글 : 7/8월호에서
소개한 UCC 동영상과 관련하여 독자들의 적지
않은 호응을 받았다. 이에 본 지면을 빌어
몇 가지 동영상을 더 소개코자 한다.
- 도서관 도미노 (Library
Dominoes)
동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cwihz7iZlx0
- 도서관 댄스파티 (Library
Dance Party)
동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aA4rlFTL45U
- 80년대를 추억함 (Inspirational
80s Montage)
동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JsKEoyQit8c
- 난 사서를 싫어해 (I Don't
Like The New Librarian)
동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M_WETTpSjdU
- 까다로운 이용자 (Difficult
Customers)
동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z3Jud4b9ik0
- 도서관 의자 레이싱 (Library
chair racing)
동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tajI-ve8klI
-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stop
motion animation)
동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Mev7VzAdfrs
- 해리포터와 사서의 저주
(Harry Potter and the Curse of the Mad Librarian)
동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k95L9MdS8r8
...................................................................................................................................................................................
1) “The SIMPLE Routine
for the Parade is done!”, <http://thereadingdivas.blogspot.com/2007/01/simple-routine-for-parade-is-done.html> 2)
“Dewey Decimal Divas”,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2007/06/27, <http://www.csmonitor.com/2007/0627/p20s01-algn.html> 3)
“Pimp My Bookcart Contest”, <http://www.unshelved.com/PimpMyBookc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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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전창호ㆍ부산여대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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