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지킴이  

                            

 

  사서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오늘은 좀 편안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방석이 깔린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와 미래에 대한 커다랗고 무거운 숙제는 잠시 내려놓고 이런 부담 없는 자리에서 나의, 우리의 일상에 대해서만 잠시 돌아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상의 시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생각해 보려는 건데, 어쩌면 그런 평범함 속에서 사서로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린 도서관 안에서 언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었나?

 

<산재의 현장>

  현장 포착!

  도서관 정리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어이없게 상처가 많이 난다.

  직업병이니 산재니 하며 우리끼린 웃는데, 특히 덜렁대는 나는 자주 그러니까 웃을 일만은 아닌데--; 주로 다치는 내용은 책장에 손 베기, 정리실 북트럭 사이에 다리나 팔 찧기, 실수로 책 탑 쓰러뜨려 다치기 등등. 흐흐흐.

  오늘은 단골손님인 책장에 손 베기 되시겠다. 칼에 베는 것과는 또 다른, 이 아리한 고통~.

  나도 모르게 “으악~” 하고 소릴 질렀더니, 나머지 선생님들의 놀람과 더불어 터져 나오는 대사. “오늘 조심해. 이제 한 명 남았다.”

  날은 날인가보다. 연달아 줄부상이라니… ㅋㅋㅋ. 행운의 주인공, 인상을 찌푸린다.

  “아~ 왜 또 공포 분위기 조성하구 그래요?” 하며 펄쩍 뛴다.

  누가 책상 위 화분에서 이파리를 뜯어 저렇게 반창고 위에 올려 준다. 약초(?)로 탈바꿈한 화초 잎, 두 배로 빨리 낫는다는 어이없는 민간요법. 그리고 우린 다같이 “풉” 하고 웃어 버린다. 불쾌해 하지 않고 즐겁게 위기(?)를 극복해 나가 본다.

  그래도 하루에 다섯 번 이상 손 씻기! 책 먼지와의 싸움에서 밀리지 말기! 여기 저기서들 앓고 있는 알러지성 비염들도 조심하기! ^^

 

<습관>

  대학도서관에 다니고 있는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캠퍼스를 가로질러 출근을 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걸어가는데 저 앞의 어떤 학생이 오렌지색 T셔츠를 입고 가고 있다. 그리고 그 셔츠에 등번호가 “092”라고 프린트 되어 있고.

  순간 나도 모르게 “음 사람 주제번호군.” 이러고 있다.

  언젠가 어떤 선배 사서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때는 업무 자동화가 되기 전 시대라 저자 기호를 줄 때 일일이 테이블을 찾아 부여하던 때였고, 매일매일 그 작업을 반복하던 그분 뇌리 속엔 어느 순간 저자 기호표가 고스란히 입력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어느 순간 길을 가다가 보이는 간판이 죄다 ‘리재철’ 기호표로 자동 변환되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는… ㅋㅋㅋ. ‘금은보석 명보당’은 명45로 순간 자동 변환~

  어느 날 보니 모 사서의 휴지통에 책등 레이블이 떡 하니 붙어 있다.

  ‘음… 난 붙인 적 없는데….’

  그나저나 또 어느 순간 그 레이블에 찍힌 분류 번호와 저자 기호를 매직아이처럼 빤히 노려보고 있다. 00년대 일본문학이네, 이러면서.

  알 수 없다. 저 녀석이 언제부터 저런 걸 붙이고 있었는지는. 그래도 그렇지, 으이구~ 누가 도서관 휴지통 아니랄까봐~ 너까지 그러고 있냐?

 

<친절한 금자, 아니 사서 A씨>

  “저… 잠시만 들어가서 둘러보고 나오면 안 될까요?”

  “어디서 오셨는데요?”

  “저… 부산에서요. 시험 치러 왔어요….”

  수시모집 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멀리 부산에서 온 여고생 둘이 입구에서 머뭇대다 겨우 말을 꺼내 본다.

  사서 A는 정황을 확인 후 둘러보고 오라고 했다. 얼마 후 그들은 둘러보기를 마치고 이쪽으로 걸어온다.

  “저… 여쭤볼 게…”

  “네. 말씀하세요.”

  “학교 배지(badge) 같은 건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다.

  “아, 학생회관에 가시면 기념품점이 있어요. 배지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뭐도 있고 뭐도 있고…) 가이드도 아니고 약간은 오버인 듯도 하지만.

  인사하고 나가면서 자기들끼리 친절하다고 쑥덕댄다.

  사서 A는 안다. 사서의 친절증후군 덕분에 저런 바람직한 뒷담화가 얼마나 쾌감을 주는지~. 물론 그런 얕은 기쁨에 만족해서는 안 되겠지만 사서 A뿐 아니라 많은 사서들이 친절증후군에 시달린다.

  누군가 길을 물어올 때 가끔은 필요 이상으로 상세히 가르쳐 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은 없었나? 질문자의 정보 요구에 충실한 답변자가 되려는 습성이 예외 없이 드러난다.

  사서B는 택시기사와의 대화 중에 이런 말도 들었다고 한다.

  “손님은 실례지만 뭐하시는 분이세요?”

  “아… 네… 도서관에 있습니다.”

  “아, 그래요? 저는 텔레마케팅이나 비서 같은 일 하시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

  동승한 일행은 나중에 그랬다고 한다.

  “택시기사 묻는 말에 두 배로 상세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꼭 너희 도서관 이용자 대하듯.”

  선배 사서 C는 회의 시간에 정황 설명이 너무도 디테일하여 살짝 만연체라는 평가를 듣기도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모두 이해한다. 참고 사서를 오래한 그는 이용자를 대할 때 언제나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해 주던 참고 사서였다. 평생의 대이용자 태도가 몸에 밴 사서 C는 오늘도 습관처럼 친절하다. 심지어는 말도 안 되는 일로 항의하러 온 이용자에게조차 방긋 웃으며 상담자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최대의 무기인 저 정도의 친절을 갖추려면 얼마만큼의 도서관 내공을 가져야 할까?

 

<썰렁해도 귀여워>

  회식 때, 금강산으로 갈 직원 연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 태극기가 그려진 옷, 한국에서 발행된 책이나 신문도 안 된다는 금지된 아이템에 대해 누군가가 이야기한다. 딱 여기까지만 이야기했을 시점에서 바로 이런 반응이 나왔다.

  “어, 그럼 DDC는 되겠네?”

  마구 썰렁해 주신다.

  “병이야 병~”

  이렇게 놀려 본다. DDC를 가져가는 상상은 솔직히 쉽지 않다. 사서들 회식에서만 나올 수 있는 대사다(실은 사서들 회식에서도 DDC 얘긴 잘 안하지만^^;).  

  그래도 우리네 대화는 정겹다.

  누군가의 필요를 듣고 누군가를 배려하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고자 하는 사서들이 모인 도서관의 분위기에는 다른 곳과는 차별적인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자극적인 센스를 강요받지 않는 일의 특성상 우리에게 서로를 자극하는 기발한 센스는 부족할지라도, 물 흐르듯 세월 따라 사람을 배려하는 마인드는 조금씩 늘어난다.

  일반 직장 생활을 하다 도서관에 왔을 때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다.

  다른 일터와의 차별적인 이런 분위기가 여기에는 있다고. 모든 도서관 모든 사서에게 적용하는 건 어렵다 해도, 아마 ‘대략적’으론 ‘좋은 분위기’를 갖춘 곳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순간 살짝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본다.

  도서관은 좋은 곳인데. 때로 다이너믹하고, 때로 썰렁하고, 때로 훈훈한.

  이런 편린들을 모아 이 시점에서 도서관 중심의 드라마가 하나 나와 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다소 짧은 도서관 역사로 인한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미흡한 인식 개선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한데. 소재는 발굴하기 나름일 터, 누구 해 줄 사람 없나?

  일단은 오늘도 좀 더 기발한 소재 발굴(?)을 위해 도서관 안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상 같지만 실은 생각보다 괜찮은, 그런 풍경들을 만들어 가 보련다.

    글 | 이규연ㆍ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