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 신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추천한 이달의 책]

 

<철학>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김서영 지음 / 은행나무

근대 과학은 중세까지 따로 놀던 수학과 자연학이 결합하면서 탄생했다. 최근에는 영화와 정신분석이 만나 서로 상승을 촉진하면서 인문학적 상상력의 범위를 새롭게 개척해 가고 있다. 이제 영화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적어도 이론의 영역에서는 영화 없는 정신분석이나 정신분석 없는 영화를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정신분석으로 읽는 영화’라는 제목을 붙일 만한 책들이 국내외에서 많이 출간되고 있는 사정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추천하는 책의 제목은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이다. 여기에는 정신분석의 범주로 영화를 재단한다기보다는 영화 속에서 정신분석을 맞이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영화 속에서 맞이하는 정신분석, 그것은 프로이트로 돌아가는 라캉의 이론과 프로이트를 떠나는 융의 이론을 다같이 지칭한다. 이 두 이론은 상호 배타적이어서 한 자리에 서기를 피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저자가 독특하게 정의하는 정신분석 속에서는 아무런 문제없이 어울리고 있다. 여기서 정신분석은 무의식 이론이자 욕망의 이론이되 무엇보다 치유의 이론이다. 저자는 영화와 더불어 가졌던 자신의 영적 치유의 체험 속에서 엄밀하고 딱딱한 정신분석의 언어를 극적인 감동이 넘치는 실존 분석의 언어로 옮기고 있다.

- 추천자 :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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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국굴기  가오다이 외 지음 / 공병호 감수 / 크레듀

 

21세기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중국뿐이라는 데에는 전문가들 사이에 별 이견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은 21세기 패권도전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근대 들어 세계의 패권국이었던 네덜란드, 영국, 미국을 비롯해 포르투갈과 스페인, 프랑스와 독일, 일본과 러시아라는 아홉 개의 근대시대의 강대국들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인가를 나름의 시각에서 분석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계몽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이 중국의 CCTV가 만든 야심적인 12부작 다큐멘터리 <대국굴기>이다.  
 이 시리즈는 국내에도 한 방송국을 통해 소개되어 화제를 몰고 온 바 있는데 이 시리즈의 핵심 내용을 한 권의 단행본으로 요약한 것이 바로 『대국굴기』라는 책이다. 이 책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내용을 책으로 풀어 쓴 만큼 쉽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우선 위에서 열거한 9개 강대국의 역사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쓴 책이라는 점에서 세계화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아야 할 훌륭한 교양서이다. 나아가 이 책은 9개 개별국가의 역사 이해를 넘어서 9개 나라의 사례 비교를 통해 무엇이 강대국이 되는 조건인가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장점이 있다.

- 추천자 :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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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1,2)  문명대, 안휘준 지음 / 돌베개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품은 그 아름다움을 느끼고 스미게 하는 특별한 향기를 지닌 무엇이다. 그중에서도 한국 최고의 예술품이라 하면 우리를 어떤 향기에 젖게 할까,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자태에서 스며 나온다. 한국의 시각적 전통예술을 회화, 공예, 조각, 건축으로 나눈 후 다시 시대와 분야 각도에서 세밀하게 작품을 골라나간 노고가 돋보이며, 기획자와 편집자의 꼼꼼한 배려로 글의 품격과 일관성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대상화 된 예술품들과 잘 만나고 있다.

그간 이와 유사한 서적들이 출판된 적이 있었지만 작품을 일반인에게 이해시키고 실제로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텍스트에 충분히 반영되었고, 도판의 깊이를 더해 그 자체로 작품 감상이 가능하도록 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이 책은 한국인으로서의 아름다움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좋은 책이다. 극히 소박한 사층사방탁자 하나에서 느낄 수 있는 절제와 여백의 공기가 중국, 일본과 비교해서 어떻게 다른지,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이 책과 더불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추천자 : 김춘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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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빅토르 위고의 유럽 방랑   빅토르 위고 지음 / 정장진 옮김 / 작가정신

‘레 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민주정을 열렬하게 옹호한 의원이기도 했다. 1851년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를 통해 제정을 수립하자 저항운동을 펼치다가 추방돼 19년이나 유럽 이곳저곳을 떠도는 방랑 생활을 해야 했다. 주로 부인이나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된 위고의 유럽방랑기는 그래서 여행이 갖는 마음 상처 치유의 힘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길지 않은 글을 통해 어느 나라 어느 지방에 갔을 때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글로 표현하고 있다. 더불어 신랄함을 잃지 않는다.

라 루프의 샤르트르 대성당에서 느낀 소감은 “오! 그처럼 커다란 돌더미를 가지고도 아주 형편없는 것들만을 만들어내는 오늘날의 가련한 건축가들, 각성해야 하리라!”이다. 그의 여정은 프랑스 남서부를 거쳐 스페인으로 갔다가 벨기에로 들어가 독일 라인강 주변과 룩셈부르크, 스위스로 이어진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그가 화가 못지않은 그림 솜씨로 그린 현장의 그림들이다. 대부분 스케치와 수묵화이지만 일급 화가의 그림에 전혀 뒤쳐지지 않는다. 위고가 개인적으로 겪어야 했던 고통 속에서 피어난 연꽃들이라고나 할까? 그의 글을 읽고 간간히 나오는 그의 그림들을 보며 부럽고 또 부러운 것은 사물 속으로 파고 드는 그의 통찰이다. 그것은 여행지 건물과 풍경에 대한 통찰이면서 삶에 대한 통찰이기에 흔히 볼 수 있는 기행문과는 격이 다르다.

 - 추천자 : 이한우(조선일보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