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마케팅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필립 코틀러 교수의 “주식회사 대한민국 마케팅 답답해요” 라는 글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외국인들은 한국하면 북한을 떠올린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없고, 일반 미국인들은 한국을 잘 모른다. 오히려 개별 기업의 이미지가 국가 이미지를 넘어선다고 주장하는 그는, 삼성의 지능적이고 전략적인 마케팅 기법을 국가가 도입해야 한다고 처방하며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매력을 찾으라 한다. 우리의 매력은 무엇이며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해법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산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고 있는 60년대의 경제 개발, 그리고 80년대의 민주화와 90년대 시민 사회 세력의 폭발적 증가는 경제와 정치의 동시 발전으로 학계에서 회자된다. 연이은 90년대의 정보화는 기술 기반의 우수성은 물론이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실생활 이용 면에서 세계를 리드한다. 필자가 미국 학계에 발표한 2000년 총선에서의 낙선운동과 2002년 월드컵 개최 시 보여 주었던 젊은이들의 열기, ‘효선/미선 촛불시위’와 대선으로 이어진 경이적인 젊은이들의 사회 참여 결과가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한류의 성공 요인도 이와 같은 경이적인 성취감에서 오는 한국인들의 자신감의 발로이다. 필자는 이 모든 과거의 발전 경험과 성취감을 “국가적 자산(national capital)”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외국에 비쳐지는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어떻게 격상될 수 있을까? 그것 역시 우리의 국가적 자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뗄 레야 뗄 수 없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갖는 자산은 무엇일까? 친한국적인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가 부실한 미국 사회에서 ‘한국’하면 관심을 보일 단서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필자는 시라큐스대학 맥스웰 대학원에서 미국에 처음으로 한국 대사관을 만든 고 한표욱 대사의 이름을 딴 한미 현안에 관한 강좌를 개설하여 운영하면서, 그 강좌의 가장 충성스런 청중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국 용사들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미국 내의 친한국 여론 선도층이다. 전쟁의 이념적 배경이나 그들의 개인적인 동기에 관계없이, 그들은 한국이라면 최우선적으로 그들의 시간과 관심을 기울인다. 때문에 그들이 대한민국이 보유한 미국 내 국가적 자산이요, 한국의 이미지와 인지도를 확립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의 금광이다. 한국 정부 각 부처는 매년 참전용사들을 초청하여 한국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일종의 보은 행사인데 막대한 예산을 쓰지만, 대부분의 행사가 일회성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미국 내 우리의 국가적 자산인 참전용사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약 10만 명이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참전용사들의 평균연령은 76세이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다.

  필자가 접한 참전용사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그들이 생명을 희생하며 참전했던 전쟁에 관한 기록을 보전하는 일이다.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 (Forgotten War)”이 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목숨만큼이나 중시 여기는 전쟁의 기록을 한국이 체계적으로 관리해 줄 수 있다면 그들은 진심으로 감사히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손녀 손자들이 할아버지의 참전 기록을 쉽게 접하여 잊혀진 전쟁의 의미를 되살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그리고 경제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는 ‘정보화’라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국가적 자산을 기억해 내야 한다. 세계를 리드하는 첨단 정보기술을 이용해 디지털 기념관을 만들면, 그들이 보관해 온 전쟁에 관한 기록을 가장 체계적이며 가장 경제적으로 영구히 보존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일에 있어서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정보통신이 사회, 정치, 선거 등에 미치는 영향력을 연구하는 필자는 정보통신 기술을 ‘관계의 기술(relationship technology)’로 정의한다. 정보를 생산하고 전달하며 보관하는 기술은 인간과 조직의 관계를,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나아가서 인간과 역사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근본 동력이 되어 왔다. 미국 내 그들의 직계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관심을 보이는 대중을 상대로 한 디지털 기념관은 미국 내 한국의 위상과 인지도를 변화시키는 ‘관계의 기술’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네트워크의 폭발적 증가 법칙에 따라, 한국하면 북한이나 고작 떠올리던 미국인들의 인식 구조에 대한민국을 심을 수 있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필자는 미국에 살면서 뜬금없이 한국 전통문화의 단편을 보여 주는 CNN 방송의 광고를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정말 뜬금없다. 엄청난 국민의 세금을 들여 사는 광고 1분으로 과연 얼마나 미국인의 머리에 한국에 대한 관심을 심을 수 있을까?

  참전용사와 그의 가족, 친지, 친구 그리고 일반인들의 의식 속에 있는 한국에 대한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한국전쟁의 기록을 영구히 보전하며, 동시에 한국의 이미지와 인지도를 전 세계에 심을 수 있는 디지털 기념관을 만들자. 한국 참전 용사들의 기록도 함께 보관하자. 이일은 우리가 20세기 후반부를 맹렬히 살며 누적한 국내외적 ‘국가적 자산’을 활용할 때 매우 손쉽게, 그리고 경제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미첼 리스 전 미 국무부 정책실장의 말이 기억난다. 그는 한국인은 이라크 참전 등으로 미국의 국익을 위해 많은 기여를 했지만, 북한 또는 여자 골프 선수들로만 기억될 뿐 세계 경제 10위의 나라, 가장 디지털화 된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것을 미국인들이 대체적으로 모르고 있다며, “이제 얼마 후 미국 내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지금이라도 미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이들을 활용하면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동맹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과 미국의 참전용사에 대한 처우와 국가 이미지 제고에 관한 새로운 접근을 정부에 촉구해 본다.

    글|한종우ㆍ미 시라큐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