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9월이 되면 도서관은 술렁거린다. ‘독서의 달’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독서 기반시설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다. 물론 우리 도서관계도 그러한 사명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에, 9월이 되면 한 달 내내 다양한 독서 관련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이용자들이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그래서 독서의 기쁨과 생활 속 즐거움을 누리기를 바란다. 올해는 또 어떤 즐거움이 도서관을 가득 채울지 기대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 도서관 일꾼들은 더 많은 고생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어차피 도서관이라는 공공 서비스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치러야 하는 당연한 희생이자 직업적 기쁨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면 힘든 일도 자연스럽게 행복한 결과로 다가올 것이리라 믿는다.

  그러나 종종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는 과연 책을 읽고 있는가? 책 읽기의 즐거움에 푹 빠져 있는가?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하면 당연히 책을 많이 읽을 것이라 생각하고 부러워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과연 그럴까?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리 긍정적 답변을 들어본 것 같지가 않다. 왜 그럴까? 남의 독서 활동을 돕다 보니 정작 자신은 책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우리 자신이 책을 읽을 시간도 없고, 실제 책을 읽지도 않고 있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 보라고, 시간이 없더라도 책은 읽어야 한다고, 책 읽기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아느냐고, 책을 읽어야 세상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책을 읽어야 성공할 수 있고 인생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말 그렇다면 시간이 없는 우리 자신도 책을 읽어야 할 것이고, 그래서 행복한 인생,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어야 하고, 적어도 지금은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정말 그런가?

  얼마 전 한 인터넷 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한국도서관협회 회장이라고 하면 도서관 이야기를 하다가도 책과 책 읽기에 대해 묻는다. 도서관이 책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라서 그런 것 같다. 그 인터뷰에서도 책 읽기의 중요성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나는, 책은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텍스트는 읽는 사람의 정신과 마음, 열정 속에서 전혀 새롭고 다양한 모습으로 거듭나면서 무한히 확산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책을 읽는 것은 지루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누구에게나 열린 상상력으로 창조와 변화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결국 책 읽기는 스스로의 힘으로 창조적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능력을 길러 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책 읽기는 마치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 순식간에 수 천 미터 높이의 산을 오를 수는 있지만 그 때는 고산병을 각오해야 합니다. 준비가 제대로 안된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개인의 지식과 문화 역량은 한 순간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한 훈련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책 읽기는 가장 좋은 훈련입니다. 한 발 한 발 산을 오르지 않으면, 한 권 한 권 좋은 책을 읽지 않고서는 지식과 문화적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는 도서관을 통해 개개인은 물론 사회에 이 같은 책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그로 인해 진정한 진보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책무는 다른 사람뿐 아니라 우리 자신 한 사람 한 사람까지를 포함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책의 즐거움에 푹 빠져야 한다. 혹시 도서관에 있는 그 많은 좋은 책-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고 입수하고 정리해서 서가에 꽂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는가 -이 한 번도 이용되지 않고 있다면 우리라도 그 책들을 애정으로 보살펴야 한다. 한 번이라도 꺼내 보고, 조금씩이라도 읽고, 그 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고개도 끄덕여 보고, 그리고 혹시라도 그 책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책인데도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독자를 찾아 정성으로 소개도 해 보고 하면서 도서관 책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려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서관 사서가 되기 위해 공부할 때 늘 외우고 또 외웠던 ‘랑가나단 5법칙’을 다시금 떠올려 보자. 도서관에서 그 원칙이 제대로 살아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도 되돌아보자.

  다행히도 요즘 도서관이 사회적으로 큰 지지를 받고 있다. 「도서관법」 개정으로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정부의 도서관 정책을 총괄하는 실무기구로 도서관정보정책기획단이 활동 중이다. 지방자치단체나 민간 부문에서도 도서관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구체적으로 적지 않은 도서관이 새로 건립되고 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도서관이 점점 더 중요시되는 이유는 바로 책 읽기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책 읽기를 위한 사회적 시설이다. 그것을 국민들이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책을 통해 국민들을 만나려는 노력을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런데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기존의 도서관에 대해서는 그리 긍정적인 것 같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건 적지 않은 수의 도서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스스로 또 도서관을 만들고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왜 사람들은 공공의 비용으로 도서관을 건립, 운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자신들의 비용과 노력으로 작은 규모의 도서관을 만들고 직접 책을 사서 서가를 채우고 있을까? 왜 시민의 서재라고 하는 도서관, 그것도 수만, 수십 만 책을 가진 도서관들이 있음에도 굳이 그런 일을 하는지에 대해 도서관계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그동안 사람들이 도서관을 찾아오도록 얼마나 많은 애를 써 왔는가? 지금은 그간의 노력을 바탕으로 완전하게 국민들의 일상 속에서 사랑받는 도서관으로 뿌리내려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2%가 부족한 느낌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에 대한 답변은 우리들 속에 이미 있는 것이 아닐까?

  ‘독서의 달’이라고 해서 도서관 사람들은 더 바쁘다. 더 시간이 없다. 그래서 책을 더 못 읽는다. 정말 그렇다. 그러나 정말 그래야 할까? 무슨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조직하고 실행하느라 바쁜 것이 이용자들을 도서관으로 끌어오는 최선의 방법일까? 혹시 다른 방법은 없을까?

  도서관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하는 이유는 이용자들이 도서관에 와서 다른 기관과 구별되는  도서관의 강점인 좋은 책을 발견하고 읽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삶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일을 돕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모든 활동은 책 읽기를 돕는 것에 맞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서관 직원들이 모든 책 읽기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얼굴과 대화, 태도 등 모든 면에서 책 읽어 나타나는 즐거움이 그대로 드러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 책 읽기에는 지름길도 없고 간편한 방법도 없다. 앞서 말했듯이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것처럼 느리더라도 꾸준히, 지치지 않고 책 읽기라는 산을 오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오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 읽기가 몸에 배고 그 향기는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게 된다. 역시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보니 책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때, 굳이 별다른 행사가 없더라도 도서관 일꾼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용자의 귀한 발걸음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서라고 하는데, 그건 사서가 도서관 그 자체를 온전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도서관에 들어온 책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책 하나하나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그 책에 적합한 독자를 찾아 연결시켜 주려는 열정이 보여야 한다. 따라서 지금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도서관 사서와 직원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 거기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 한 달만이라도 도서관 사람들도 퇴근시간이 되면 일하던 자리를 떠나 이용자들과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다면, 9월 한 달은 도서관 개관 시간을 더 늦추고 각종 프로그램을 하지 말고, 이 한 달만이라도 각자 집에서 가족과 함께 텔레비전을 끄고 책을 읽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그래서 도서관이 6시에 문을 닫으면서 도서간 직원들도 이 한 달은 가족과 함께 책을 읽기 위해 일찍 퇴근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꿈꾸어 본다.

  앞선 인터뷰에서 몇 권의 책을 추천하기보다는 도서관을 통째로, 도서관에 있는 책 모두를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더 나아가 도서관보다 도서관 일꾼을 추천하고 싶다, 그 사람에게 가면 책의 향기가 난다, 같이 있기만 해도 책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정말 우리 도서관 사람들이 그런 도서관 일꾼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부터 책을 즐겨 읽어 보자. 집에도 책이 넘쳐나게 해 보자. 전공서적도 부지런히 사서 읽어 보자.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면 우리가 먼저 가 보면 좋지 않을까?

  ‘독서의 달’에 부질없는 생각을 해 봤다. 이 같은 공상도 책 읽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우리부터 책에서 길을 찾아보자.

    글|김태승ㆍ한국도서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