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반적으로 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도서관과
사서(교사)의 역할에 대해 의심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선들이 존재하다 보니 그런 인식과
시선들로 인해 상처받고 자괴감에 빠지는 사서(교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대학 후배를 만나
소주를 한잔 했습니다. 저는 대학도서관, 후배는
공공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니 술안주는 역시
도서관 얘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소하게는
유별난 도서관 손님으로 인해 당혹스러웠던
얘기부터 거창하게는 이 나라 도서관 정책에
이르기까지 때론 흥분하며 때론 웃으면서 얘기꽃을
피웠습니다.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다 후배는
올해부터 지방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기간제
사서교사로 일하게 된 또 다른 후배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형요! OO이가 요즘 많이
힘든가 봐요!”
“왜? 무슨 일 있대?”
“근무하는 학교의 선생들하고,
애들이 많이 힘들게 하는가 봐요!”
“음…”
사회 전반적으로 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도서관과
사서(교사)의 역할에 대해 의심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선들이 존재하다 보니 그런 인식과
시선들로 인해 상처받고 자괴감에 빠지는 사서(교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사서교사로 일을
시작한 대학 후배 역시 그런 이유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다음날 힘들어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OO이 오랜만이야! 잘 지내니?”
“아~ 선배 오랜만이에요.”
“별일 없지?”
“ ^^; 히이~~, 제가 힘들어
한다는 얘기 어디서 듣고 전화 하신 거죠?
그래도 아직까진 견딜 만해요!”
“어?! 아니, 그냥… 뭐…”
저는 제 마음을 읽어 버린
후배의 말에 당황하여 얼버무리면서도, 씩씩하게
웃으며 전화를 받는 후배가 무척이나 대견스러웠습니다.
저는 일말의 안도감을 느끼며 후배와 대화를
계속 이어 갔습니다.
“많이 힘들지?”
“일이야 제 전공이고, 또
재미있어서 괜찮은데요. 사람들 때문에 많이
힘들어요.”
“맞아! 나도 도서관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업무보다는 사람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여기 사람들은 저를 사서로도,
교사로도 안 봐요!”
후배는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얘기해 주었습니다.
학교 행정실장이 매주 월요일
교직원 회의 때마다 커피를 타라고 지시했던
얘기, 아이들에게 좀 더 친숙한 도서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환경 미화를 하고 있는데 한
선생이 ‘도서관에서 할 일이 없으니까 저런
쓸데없는 일에 힘을 쓴다’면서 면박을 주던
얘기, 몇몇 학생들이 자신을 아르바이트로
생각하고 계속해서 누나로 불렀던 얘기, 또
어떤 학생이 프린터를 해 주지 않는다며 거칠게
욕을 하고 간 얘기 등등… 듣고 있던 저 역시
상처받고,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일화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과 분노를
토해내던 후배는 사서교사에 대한 동료 교사와
학생들의 몰인식에 야속해 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선배, 제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사서 자격증이랑 교사 자격증을 들고 가서
일일이 보여 주고 싶었다니까요!”
저는 후배의 말에 순간 눈과
머리가 번쩍하며 이렇게 맞장구를 쳤습니다.
“맞아! 우리도 다른 전문직처럼
도서관에 사서 자격증을 걸어 두고 일 해야
돼!”
그렇게 후배와 통화를 마치고
나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우리는 도서관에 사서
자격증을 걸어 두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생활 속에서 병원,
약국, 미장원, 법률사무소, 세무사무소, 부동산사무소
등 이른바 ‘전문직’이 종사하는 일터를 종종
찾게 됩니다. 그곳에는 손님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사업자등록증’과 ‘영업허가서’,
그리고 해당 업종 관련 ‘자격증’을 벽면에
걸어 두고 있습니다.
‘자격증’이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그 분야에 종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격증을
일터에 걸어 둔다는 것은 손님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함이자,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서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공적, 사적으로 꽤
많은 도서관을 다녀봤지만 도서관에 사서 자격증을
걸어 두고 근무하는 사서는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후배와 통화를 하고 난 뒤 저는 제 사서 자격증의
행방(?)이 궁금해져 제 방 책상 서랍과 책장을
비롯해 집안의 이곳저곳을 뒤졌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의 사서 자격증은 취업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많은 서류들과 함께 묶어져 옷장 위 상자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서들이
사서 자격증을 취업 준비를 위한 구비서류로
사용하고, 취업을 하고 난 이후에는 집안 어딘가에
고이 모셔 두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사서 자격증을 도서관
이용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게시한다는 것이
괜한 자랑을 하는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고,
열심히 근무만 잘하면 됐지 꼭 그렇게까지
표시를 내가면서 일을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몰인식으로 인해 제 후배처럼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사서들이 많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우리
스스로 사서라는 존재를 당당히 드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사서 자격증을 도서관에
보기 좋게 걸어 두는 것이 우리 스스로 사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찾는 작은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제가 사서 자격증을
액자에 담아 도서관 이용자들이 볼 수 있도록
제 책상 한 쪽에 잘 모셔 놓자 도서관 아르바이트
학생부터 “아~, 도서관에서 일하려면 자격증이
있어야 되나 보죠?”라고 묻습니다. 아르바이트
학생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도서관 이용자들이
새롭다는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고, 그 중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서가 뭘 하는 사람인지
묻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저는 아주 신나하며 도서관과 사서의 역할을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사서의 역할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싶다면 수업 시간에 리포트
과제가 나왔을 때 일단 도서관에 와서 도움을
청해 보라고 덧붙여 줍니다.
사서 자격증을 게시하면서
일어난 이러한 일들은 개인적으로는 제가 사서임을
새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도서관 이용자
입장에서는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나아가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만일 대한민국 모든 사서들이 자신의
사서 자격증을 도서관 이용자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걸어 둔다면 몰인식으로 인한 도서관과
사서의 평가절하 현상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또 궁극적으로는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좀 더 긍정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서들에게 ‘당신의 사서
자격증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혹 집안 어딘가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다면
흔들어 깨우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장 내일부터라도
우리가 사서임을 커밍아웃하길 바랍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당당했을 때 비로소 다른
이들에게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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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ㅣ문동섭ㆍ대구산업정보대학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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