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 서평  

 

세상을 바꾼 12권의 책

멜빈 브래그 지음 / 이원경 옮김. 랜덤하우스 코리아, 2007. ISBN 9788925507378. 19,800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신을 바꾼 책이 있다면 무슨 책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 사람이 살아온 만큼의 시간을 거슬러 대답할 수밖에 없다. 어린시절, 청소년 시절, 그리고 청년기, 중년, 노년일 때…. 자기가 어느 시점에서 어떤 인생의 시기를 지나고 있느냐에 따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책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면서 나이가 들고 죽음에 임하는 순간까지도 잊을 수 없는 책이 있다면, 아마 그 책이 나를 바꾸고 세계를 보는 눈이 되었던 책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 책은 현재나 미래가 아닌 과거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세상’은 영국을 가리킨다.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한마디 하자면, 이 책의 제목은 ‘세상을 바꾼’이 아니라 ‘영국을 바꾼’이 되어야 맞다. 영국 사람이 저술했을 뿐만 아니라 그 열두 권의 책 주인공들이 모두 영국 사람인 것을 감안하면, 책 제목에 ‘세상’이란 단어를 붙인 저자에게(원서의 제목을 살펴보니 “12 books that changed the world”였다) 지나친 ‘오바’가 아닌지 넌지시 묻고 싶다. 그 열두 권의 책이 영국도 바꾸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꿀 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로 붙였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영국이 서구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여성들이 진보적인 생각의 싹을 틔운 곳임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열두 권의 책 가운데 여성들의 의식적 각성을 촉구한 책이 두 권이나 들어가 있다. 사실 이 점이 참으로 놀랍다. 세상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반쪽인 여성을 바꾸고자 한 그 두 권의 책은 마리 스톱스의 《결혼 후의 사랑》(1918)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1792)다.

  《결혼 후의 사랑》은 사실 오늘날에도 유효한 가치를 지니는 책이다. 마리 스톱스는 결혼한 여자들이 과도한 출산, 육아와 가사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사랑이란 감정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는 데 문제를 제기한다. 당시 영국의 부인들은 오늘날처럼 한두 명의 자녀를 양육했던 것이 아니라 열 이상의 자녀를 낳고 기르며 사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 책을 둘러싼 당시의 반응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가리라 생각한다. 역사상 당대에 진보적이었던 책은 비난과 경멸의 화살을 맞고 처참한 결과로 끝나는 예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마리 스톱스도 여자였기에, 그리고 결혼한 여성이 부부의 성에 대해 당당하게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많은 남성들의 비웃음과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열두 권의 책을 연대순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215년 <마그나 카르타>(영국 대헌장), 1611년 <킹 제임스 성경>, 1623년 셰익스피어의 《제1작품집》, 1687년 뉴턴의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 1769년 리처드 아크라이트의 <아크라이트 방적기 특허 신청서>,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 1789년 윌리엄 윌버포스의 의회 연설인 《노예무역 폐지에 관하여》, 1792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 1839년ㆍ1844년ㆍ1855년 간 세 권에 걸친 마이클 패러데이의 《전기에 관한 실험 연구》,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1863년 영국사립학교가 만든 규칙이 기원이 된 《축구협회 규정집》, 1918년 마리 스톱스의 《결혼 후의 사랑》.

  1215년 지배 귀족층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 영국 대헌장을 필두로 1918년 마리 스톱스의 《결혼 후의 사랑》까지, 계몽과 혁명의 시대에 놓였던 근대 영국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그럼에도 ‘영국을 바꾼’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임은 분명하다. 그것은 소개하고 있는 책들이 모두 평등과 자유, 진보에 관한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를 찾기 위한 모험이고 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김자영 |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