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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이시영
지음 / 창비
이 글들은 시일까,
아니면 아주 짧은 산문일까. 이시영은
장르에 대한 질문에는 별로 괘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작품은
지극히 시적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작품은 지극히 산문적이다.
아예 신문기사나 소설의 한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 작품도 있다.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는 흔들림이
큰 시집이다. 그 흔들림은 장르적으로도
그렇고, 주제에 있어서도 그렇고,
어조에 있어서도 그렇다. 책은
산문과 시 사이에서 크게 흔들리고,
소소한 일상과 거대 담론에서
발췌한 주제에 있어서도 큰 편차를
드러내고, 잔잔한 어조와 분노하는
어조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드러낸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시인은 일단 큰 틀을
잡아놓지만, 그 안에 작은 격자들을
무수히 만들어 그 작은 틀 안에서
조금씩 움직인다. 그래서 이 시집은
어떤 모자이크 조각들을 무작위적으로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밑그림은
거대하지만, 그 밑그림을 구성하는
각각의 그림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그러나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은 뚜렷하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평화에 대한 관심.
가느다란 연필로 그린 듯한 스케치들을
대지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조용히,
그러나 꿋꿋하게 떠받치고 있다.
추천자|김정란(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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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데카르트의 비밀노트 아미르
D. 악젤 지음 / 김명주 옮김 /
한겨레출판
이 책은 추리소설처럼
읽히는 과학 교양서이다. 나는
이렇게 재미있는 과학 교양서를
읽어본 적이 없고, 이렇게 많은
역사적 식견과 과학적 지식을
담은 탐정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모든 추론의 발단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가
사후에 남긴 비밀노트이다. 이
노트는 라이프니츠의 필사본으로
일부만 전해 오고, 이 문서의
내용은 몇 차례의 우여곡절 끝에
최근에야 밝혀졌다. 라이프니츠가
그토록 데카르트의 유고를 찾아
헤매던 이유, 그 유고에 적힌
암호 같은 기호와 숫자, 그것을
해독한 라이프니츠가 남긴 비밀스런
메모 등의 의미를 풀어가면서
저자는 데카르트의 탄생과 죽음,
욕망과 편력, 사랑과 연애 등을
묘사하는 동시에 17세기 지성사의
흐름과 배후의 어두운 이면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합리주의의
대명사인 데카르트가 정다면체와
관련된 그리스 신비주의, 유대교의
신비주의 전통인 카발라, 연금술과
점성술을 신봉하던 당대의 장미십자가단
등과 맺고 있는 관계가 흥미진진하게
서술되고 있다. 대수학과 기하학의
결합, 분석기하학의 창시, 좌표계의
발명 등과 같은 데카르트의 수학적
업적은 현대 과학과 기술 속에
널리 구현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유고에 담긴 비밀이 밝혀질 때
데카르트는 현대 우주론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위상수학의 창시자로
재평가된다. 무더위를 전율과
감동으로 이기려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추천자|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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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오디오 마니아 바이블 황
준 지음 / 돋을새김
국내에 마니아급
오디오 애호가 수효가 대략 2-3만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하지만
오디오 기기에 관심과 열망을
품는 사람 수는 이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많다. 명료하게 파악되지
않는 미묘한 소리의 세계가 어떤
환상과 선망을 낳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0여 년간 오디오 기기
사이를 열정적으로 배회해온 한
건축가가 펴낸 이 책은 엄밀히
말해 마니아들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마니아의 세계를 궁금해 하는
일반인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볼
수 있다.
오디오 라이프를
담은 에세이풍의 내용이 절반가량,
각종 기기에 대한 실제적 설명이나
구사방법이 나머지를 채운다.
최대한 전문적인 내용을 배제하고,
기기에 대한 환상의 거품을 벗겨내고자
노력한 대목이 특징적인데, 그러다보니
진짜 마니아들에게는 다소 평이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로서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천자|김갑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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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우리문화박물지 이어령
지음 / 디자인하우스
모든 사물은
살아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물을
살아있는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건 사물을 보지 않고 그냥 스쳐지나
가기 때문이다. ‘이어령의 이미지+생각’이란
부제가 붙은 『우리 문화 박물지』는
우리와 함께 살아왔지만 우리가
그냥 스쳐지나 왔기에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사물들의 이야기다.
그것은 엿장수 가위이며, 거문고고,
돗자리며, 보자기다. 사물놀이이며,
비녀고, 떡이며, 맷돌이다.
이어령 선생은
예를 들면, 갓-머리의 언어, 골무-손가락의
투구, 논길-팽창주의를 거부하는
선, 다듬이-가장 평화로운 곤봉,
뒤주-집안의 작은 신전, 바구니-뽕도
따고 님도 보고, 바지-치수 없는
옷, 베갯모-우주와 사랑의 꿈,
화로-불들의 납골당 등과 같은
식으로 우리 사물 속에 우리의
마음을 읽어낸다. 이어령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밥 먹을 때
쓰는 젓가락 하나, 옷 입을 때
매는 옷고름 자락, 그리고 누워서
바라보는 대청마루의 서까래-한국인들이
사용해온 물건들 하나하나는 한국인의
마음이 담긴 별자리입니다. 한마디로
그것들은 서명되어 있지 않은
디자인이며 조각이며 책입니다.”
『우리 문화 박물지』는 이어령
선생의 매력이 분명한 살아나는
책이다.
추천자|
이주향(수원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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