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서관  

  

  ‘The Most Beautiful Libraries in the World(Harry N. Abrams, 2003)’,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한길사, 2006)’과 같은 책들은 과거의 도서관들이 건물 그 자체로서 예술적 미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반면에 현대의 도서관은 어떠한가? 정형화된 도서관 건물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상식적인 기대 수준을 넘지 않는 실정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건축을 기술이나 예술로 보는 인식이 건축의 본래 뜻을 왜곡한다”면서 건축을 거대한 조각품쯤으로 바라보는 행태를 경계했지만, 사실 국외자들로서는 건축을 기술이나 예술로 여기는 관습을 쉽게 버리기 쉬운 일은 아니다.

  도서관이라 하면,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떠올리는 광경이 있다. 네모반듯한 건물에서 느껴지는 딱딱함, 관공서의 답답하고 권위적인 이미지, 인위적인 질서를 강요하는 듯한 내부 공간……. 건축물 자체는 그 기관의 용도를 규정하는 충분조건이 결코 아니다. 다만 수려한 건축물은 그 기관의 기능을 돋보이게 하는 필요조건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아름다운 도서관’에 대한 소개는 빈번했음을 고려하여 이 지면에서는 조금은 독특한 도서관들을 언급해 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지구를 지키는’ 도서관 건축물을 소재로 삼았다. 실은 “지구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도서관이란 게 정확한 표현이겠으나, 이들 도서관의 혜택을 누린 이용자들이 나중에 “지구를 지키는” 영웅으로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 가이젤도서관
http://libraries.ucsd.edu

  가이젤도서관(Geisel Library)은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UCSD)에 많은 책을 기증하고 리터러시 향상에 이바지한 그림책 작가 닥터 수스(Dr. Seuss; 본명은 Theodor Seuss Geisel)를 기리기 위해 1995년에 새롭게 붙인 이름이다. 리듬과 각운이 탁월한 닥터 수스의 책은 지금도 아이들의 읽기 연습을 위한 고전으로 쓰이고 있으며, ‘The Cat in the Hat(더 캣)’와 ‘How the Grinch Stole Christmas(그린치)’같은 작품은 각각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가이젤도서관은 그의 육필 원고, 스케치, 노트, 사진 등 8천 5백여 점의 각종 유품과 책을 소장한 닥터 수스 컬렉션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만화영화의 전투 로봇과 교신하는 관제탑처럼 생긴 가이젤도서관 건물은 미국 서부지역 대학의 주요 건축물을 설계한 바 있는 윌리엄 레오나드 페레이라(William Leonard Pereira)가 두 손으로 지식을 떠받드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1970년에 ‘Central Library’란 명칭으로 완공된 후 1992년 노후된 설비와 일부 시설의 리노베이션을 시행했다. 8층(실제는 7층)으로 구성된 타워는 지상으로부터 110피트 떨어져 있다. 1~2층은 서비스데스크와 직원 업무 공간으로, 4~8층은 서고와 학습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도서관은 UCSD 캠퍼스의 중앙에 배치되어 있으며, 대학뿐만 아니라 샌디에이고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워낙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다 보니 “책 무게 때문에 도서관이 침하하고 있다”, “3층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설계 과정에서 책 무게를 잘못 계산했기 때문이다”(실은 설계 당시 1층으로 부여된 층을 나중에 4층으로 명칭만 변경한 것일 뿐이다)는 따위의 캠퍼스 괴담(urban legend)을 얻는 식으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한편, 가이젤도서관을 형제처럼 쏙 빼닮은 도서관을 대서양 건너편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영국 노팅엄대의 교육학ㆍ전산학 도서관인 야노글리학습자원센터(Djanogly Learning Resource Centre)이다.

 

델프트공대 도서관
http://www.library.tudelft.nl

  네덜란드 헤이그의 남쪽에 위치한 인구 10만 남짓한 소도시 델프트(Delft)에는 이 나라의 대표적인 공과대학인 델프트공대가 있다. 이 대학은 꽃이 핀 풀밭에서 학생들과 교수들이 격의 없이 만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메카누(Mecanoo Architecten)사에 요청했다. 무릇 도서관이라 하면 책이 천장까지 닿을 듯이 길게 늘어선 모습을 떠올리지만, 건축사는 현대의 도서관이 책을 지하에 보관하는 대신 자료를 컴퓨터로 제공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델프트공대 도서관(Bibliotheek Technische Universiteit Delft)을 설계했다. 그 후 3년간의 공사를 거쳐 1998년에 전혀 새로운 건축 양식의 도서관이 탄생했다.

  언덕 위에 튀어나온 오디토리엄은 마치 푸른 잔디밭에 앉아 있는 개구리를 연상시킨다. 고깔모자 형태의 이 공간은 4층으로 구성된 열람실로서 채광과 함께 소음을 차단하는 기능을 갖는다. 도서관의 잔디 언덕은 자유롭게 걷거나 어슬렁거릴 수 있어서 캠퍼스의 새로운 휴게 명소로 부상했다. 햇볕이 나면 일광욕을 위해 드러눕고 심지어는 눈이 쌓이는 날에는 스노보드를 즐기기도 한다. 대학도서관이라 하면 외관부터 정형적이고 권위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과감히 깨트려 주려는 설계 의도였을까?

 

미야기현도서관
http://www.pref.miyagi.jp/library/

  앞에서 소개한 도서관들이 주로 “지구를 지키는” 방위사령부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다면, 일본의 미야기현도서관(宮城縣圖書館)은 마치 외계에서 온 미확인 비행물체가 은밀히 착륙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200미터가 넘는 길쭉한 튜브 형태의 은빛으로 빛나는 외관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가 형(cigar形) UFO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미야기현도서관은 주민 누구나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생애학습의 거점시설을 목적으로 세계적인 건축가 하라 히로시(原廣司)가 “다양한 프레젠테이션 기능을 가지는 문화센터로서의 도서관”,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맞아들이는 공원으로서의 도서관”,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도서관”의 이념을 바탕으로 설계했다. 4년 동안 총 153억 엔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1998년 3월에 개관한 이 도서관은 연면적 18,100m²의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에 393석의 열람석과 150만 책의 수장 능력, 300여 대의 주차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기본적인 도서관 시설 외에도 어린이도서실, 아동자료연구ㆍ상담실, AV실, 전시실, 레스토랑, 그리고 장애인이나 고령자의 편의를 배려한 각종 시설을 구비하였으며, 특히 생애학습실, 지역정보 발신실, 다목적 홀 등을 설치하여 생애학습 지원시설로서 새로운 도서관상을 체현하였음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http://www.bibalex.org

  1974년 알렉산드리아대학교가 무스타파 알 아바디(Mustafa El-Abbadi) 교수를 중심으로 캠퍼스와 해안가 사이에 새로운 도서관의 건립 계획을 세우면서,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이집트 대통령과 영부인 수잔 무바라크(Suzan Mubarak) 여사는 이참에 역사책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현대에 재현하자고 주창했다. 그들의 호소는 국제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1998년 UNESCO의 후원으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재건을 위한 기구가 발족했고, 국제 현상 공모를 통해 노르웨이의 스노헤타(Snøhetta) 건축사사무소의 계획안을 선정하기에 이른다. 3억 5천만 달러의 예산은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오만 등 아랍 국가들뿐만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들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기업들이 분담했다.

  “세계로 향하는 이집트의 창, 이집트로 향하는 세계의 창”,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는 기관”, “학습, 관용, 대화, 이해를 위한 센터”를 목표로 2002년 10월에 개관한 신 알렉산드리아도서관(The Bibliotheca Alexandrina)은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터로 추정되는 곳에 건립하였다. 지름 160m 높이 33m의 원기둥형 건물로 지붕 전체가 자연광을 받을 수 있도록 유리창으로 시공했고 지중해를 향한 북쪽이 20°의 경사로 기울여져 있다.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한 원형(元型) 외관은 인류의 지식 전체를 상징한다.

  도서관, 천문과학센터, 박물관, 전시관, 오디토리엄, 회의장 등의 복합시설로 이루어진 85,405m² 면적의 11층 건물로서 최대 8백만  책의 수장 능력을 가진 이곳에는 매년 8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시애틀 중앙도서관
http://www.spl.org

  미국의 시애틀 중앙도서관(Seattle Central Library)은 시애틀시가 1998년부터 “모두를 위한 도서관(Library for all)”을 목표로 1억 6천만 달러를 투입해 2004년 5월에 개관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세리토스 공공도서관(Cerritos Library)과 더불어 선진국 공공도서관 신축의 모범 사례로 피인용 1순위를 다투는(?) 곳이다. 이 도서관은 네덜란드의 OMA와 미국의 LMN Architects의 두 회사가 공동으로 설계한 독특한 외관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도서관계와 건축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견학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외관도 중요하겠지만, OMA의 대표인 해체주의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는 외관보다 건물 내부의 설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는 도서관을 어느 공공시설보다도 변화의 속도가 빠른 건축물이라고 판단하고는 33,700m²의 면적 가운데 사무실, 회의실, 시청각실과 같은 곳은 확정적인 기능으로, 서고는 비확정적인 기능으로 구분했다. 그래서 서고 공간의 경우 계단을 두지 않고 바닥을 경사지게 하여 아예 층의 구분을 없앴는데, 이는 지식의 단절을 막고 장서의 증가와 자료 탐색의 편의성까지 고려한 의도로 볼 수 있다.

 

넴브로공공도서관 

  책으로 장식한 도서관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있는 넴브로 공공도서관(Biblioteca Comunale di Nembro)은 정말 도서관 건물을 수많은 책으로 꾸민 것처럼 보인다. 도서관 측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가 오면 책들이 젖지 않느냐”는 염려 섞인 질문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건물의 외벽은 가로 40㎝ 세로 40㎝ 크기의 붉게 구운 점토타일로 치장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베르가모(Bergamo)에 위치한 이 건물은 본디 1897년에 초등학교로 건립되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마을회관, 의료원 등으로 용도가 바뀌는 기구한 팔자를 보내다가 결국 주민들의 교육과 정보를 위한 도서관으로 재건축되었다. Studio Archea Associati에서 설계하였으며 2005년 1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개관하였다.

 

베를린자유대 언어학도서관
http://www.fu-berlin.de/bibliothek/philbib/

  런던시청사, 밀레니엄 브리지, 허스트미디어그룹 본사, 홍콩 상하이은행 본사 등을 설계하여 하이테크 건축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작품 목록에 최근 들어 도서관이 하나 추가되었다. 1997년에 설계하고 1천 8백만 유로의 공사비를 들여 2005년에 완공한 베를린자유대 언어학도서관(Philologische Bibliothek der Freien Universität Berlin)이 바로 그곳이다.

  연면적 6,290m²의 4층 건물은 기둥이 아닌 철제 프레임과 알루미늄 패널로 이루어진 곡면의 구조물이 하중을 지탱하는 트러스 구조로 지어졌다. 서가는 각층의 중앙에 두어 7십만여 책의 단행본과 8백여 종의 연속간행물을 배열하였으며, 그리고 열람 테이블은 바깥쪽으로 둥그렇게 배치하였다. 마치 인간의 두개골을 닮은 모습의 이 도서관은 이미 ‘베를린의 두뇌(Das Berlin Brain)’라는 별명을 얻었다.

 

은평구립도서관

  만약 한국에서 도서관답지 않은(?) 도서관 건물을 뽑는 투표가 있다면, 아마 당분간은 이 도서관이 가장 많은 득표를 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비단 글쓴이만의 판단은 아닐 것이다.

  건축비평가 전진삼은 국ㆍ공립 공공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과는 달리 기초자치단체의 도서관 건축이 “고전적 의미의 도서관에 내재된 천편일률적인 지식의 창고에서 일탈”하여 “주민의 커뮤니티 시설로서의 성격이 강화되며 탈권위적 지식의 분배가 일어나는 공간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하고,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은평구립도서관을 지목하기도 했다.

  서울시 불광근린공원 내에 계획된 도서관의 부지는 애당초 서향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건축가 곽재환은 저녁노을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아 이를 모티브로 하여 서향과 경사면이라는 불리한 환경을 극복했다. 은평구립도서관은 2001년에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2002년에는 서울시건축상 은상을 각각 수상했다.

 

세이케이대 정보도서관
http://www.seikei.ac.jp/university/library/

  세이케이대 정보도서관(成蹊大學情報圖書館)은 “지와 정보의 거점(知と情報の據点)”을 표방하며 2006년 9월에 새로운 건물로 개관했다. 연면적 11,956m²의 공간에 905석의 열람석과 50만여 책의 장서, 176대의 이용자용 컴퓨터를 보유한 지상 5층 지하 2층의 도서관으로서 대학 구성원은 물론이고 지역 사회의 무사시노(武藏野) 시민들에게도 시설과 자료를 개방하고 있다.

  도서관의 외관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건물 내부의 아트리움에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도 자랑거리로 삼을 만한 ‘플래닛(planet)’이라는 경이로운 구조물이 존재한다. 그룹 열람실 기능을 하는 5개의 플래닛은 수업 또는 그룹 스터디의 목적으로 이용이 가능한데, 임시 강의실로 쓰거나 도서관 자료를 이용해 관내에서 수업을 해야 하는 경우에 교수가 대실을 예약하고, 그밖에 예습 등의 그룹 스터디가 필요한 경우에는 학생들이 직접 이용 예약을 신청해야 한다.

  ‘마징가 Z’나 ‘독수리 오형제’처럼 지구를 지키는 주인공의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라는 대학 측의 세심한 배려일까? 애니메이션에나 그릴 수 있을 법한 공간을 현실로 재현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이러한 수단이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더욱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리라는 점에서 약간의 부러움도 생긴다.

    글|전창호ㆍ부산여대 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