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계 이슈  

 

자유무역협정과 도서관 환경

  그동안 도서관에 대한 논의는 주로 시설, 장서, 인력을 중심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앞으로 도서관에 대한 이해에는 사회 환경, 특히 국제 사회 환경이라고 하는 부분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 같다. 이번 한미 간의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체결은 국제 사회 환경이 어떻게 도서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주로 농업이나 경제 영역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자유무역협정이 도서관 서비스와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게 된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도서관 서비스를 개방해야 하는지와 관련된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도서관과의 관련성은 도서관 서비스 자체와 관련된 논의보다는 저작권을 둘러싼 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어찌되었건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과정은 국제 사회 환경이 도서관 정책 및 도서관 서비스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인식시켰다.

  물론, 자유무역협정이 특별히 도서관을 둘러싼 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Globalization) 과정은 도서관을 둘러싼 사회 환경을 국제적 상황에 노출되게 하고 있다. 세계를 여행하고 온 이용자들은 국내의 도서관 및 도서관 서비스를 국제 사회의 기준과 비교하고 있으며, 온라인을 통하여 검색할 수 있는 수많은 세계 정보들은 국내 정보를 중심으로 서비스하는 도서관의 서비스 범위에 더 많은 과제들을 부여하고 있다. 이런 일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협정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도서관의 본원적 역할과 공공서비스에 대한 국가 개입의 범위, 향후 도서관 서비스의 방향과 내용 등 도서관 영역 전반에 걸친 다양하고도 폭넓은 문제를 검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유무역협정의 문화적 맥락

  문화 영역에 대한 공공서비스의 제공과 같은 사항은 한 사회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특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저작권은 그것이 저작권자의 배타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바, 여기에서 배타적 권리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합당한가 하는 문제는 단순히 산업적, 경제적, 법률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이해의 문제와 밀접히 관련된다.

  호주-미국 간 자유무역협정 체결 과정에서 제기된 공정한 이용(Fair use)과 공정한 활용(Fair dealing)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부분과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제기한다.  

  2005년 7월 호주 정부에 제출된 호주대학도서관 사서위원회(CAUL, Council of Australian University Librarians)의 의견서는 미국이 저작권 분야에서 요구하는 공정한 이용(Fair use)의 개념이 지나치게 저작권자의 권리만을 강조하고 소비자의 권리는 소홀히 다루므로, 이들의 권리 또한 보호하는 공정한 활용(Fair dealing)의 개념으로 저작권 문제가 접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 이러한 인식에 따라 호주대학도서관 사서위원회는 호주의 저작권법에 조문화되어 있는 공정한 활용(Fair dealing) 관련 조항이 미국의 공정한 이용(Fair use) 원칙 관련 조항으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A2K와 관련된 국제적 논의도 이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남미와 아프리카의 14개 국가들로 구성된 ‘Friends of Development’ 그룹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대표 발의로 A2K(Access to Knowledge Treaty)를 WIPO(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에 제안한 바 있다. 이 조약의 주요 내용은 개발도상국에서 공공의 목적(도서관, 학교, 기타 교육용 목적)으로 외국의 저작물을 사용할 경우 이에 대한 저작권 적용의 최소화 또는 유예를 요구하는 것이다.2)

  도서관 서비스는 무엇보다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중요한 영역이다. 한 사회의 발전 정도가 어느 단계인지,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국가가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이러한 과정에서 지식 정보에 대한 공공서비스 수준은 어느 단계에까지 와 있는지, 이를 확대하기 위한 국가와 시장의 역할은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지 등은 도서관 서비스와 관련된 공공정책의 주요 의제이며, 이러한 의제의 결정에는 산업적 측면과 함께 우리 사회의 문화적 특성이 중요하게 반영된다.3)

  이런 측면에서 자유무역협정은 도서관 서비스와 관련하여 다른 영역과는 달리 산업적, 경제적 측면보다는 역사적, 문화적 측면과 관련된 문제를 더욱 중요하게 제기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 대비되는 시각과 관점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의 문제를 보다 중요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도서관 서비스와 관련하여 자유무역협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전통과 가치가 국제 환경, 특히 국제 교역 환경에서는 대상국의 특수한 사회적 환경으로 상대화됨으로써 일정한 기준에 맞추어 표준화되어야 하는 것으로 ‘품목화’되어 다루어 진다는 것이다. 곧, 우리 사회는 도서관 서비스와 같은 공공서비스가 이러한 국제적 표준화 환경에 어떻게 조응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사전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타국의 기준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전 준비의 여부보다는 이러한 협정이 단순히 경제적 측면의 문제만이 아닌 문화적 측면의 문제라는 점이다.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도서관 서비스와 관련하여 그러한 문화적 관점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측면이 있다. 곧, 국가가 어느 정도까지 저작권자를 보호하고 어느 수준에서 공공적 활용의 범위를 설정해야 하는지,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라면 이러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일반 국민의 지식ㆍ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어떠한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하는지 등, 이제 도서관 서비스의 문제가 단순히 시설, 장서, 인력의 문제만이 아닌 산업적 환경과 문화적 가치의 유기적 결합이라고 하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두 가지 가능성 : 위기와 기회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도서관 영역을 둘러싸고 제기하는 문화적 측면의 과제는 크게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변화된 국제 사회 환경에서 도서관이 수행하여야 할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이는 저작권자의 권리보호에 대한 강조가 국제적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도서관이 어떠한 방식으로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공공서비스를 수행해야 하는지와 관련된 문제들을 제기한다. 특히, 모든 지식과 정보가 지적재산권자의 배타적 권리로 강화되고 산업화되는 환경 속에서 근대에 공공도서관이 수행했던 역할이 어떻게 지속 또는 변화되어야 하는지가 도서관을 둘러싼 매우 중요한 의제로 제기된다.

  둘째, 공정한 이용(Fair use)과 공정한 활용(Fair dealing)의 필요성이 동시에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 두 가지 요구를 어떻게 조화롭게 반영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언뜻 보기에 상호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문제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로 다른 대립적 가치의 충돌이 아니라 방법론의 미개발에 보다 중요한 방점이 찍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작권이 문제시되는 다양한 상황을 유형화 해 보면, 공정한 이용과 공정한 활용의 두 원칙은 상호 보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두 원칙을 적절히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 개발의 과제가 제기된다.

  셋째, 도서관 서비스와 관련된 문제이다. 자유무역협정은 도서관 서비스가 국내 환경뿐 아니라 국제적 환경과 기준에 노출되는 경향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미 정보화의 발달로 자료의 수집, 분류, 정리, 제공 등과 같은 전통적 도서관 서비스 기능은 정보산업 시장으로 이전되고 있다. 주제전문사서보다 포털 사이트나 특정 검색 사이트가 보다 전문화된 지식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은 종전과 같은 방식의 도서관 서비스의 내용, 수준, 방식이 향후 더 이상 사회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우려를 확대시킨다.

  자유무역협정이 촉발하는 이와 같은 도서관 서비스와 관련된 문제들은 단순히 우리 사회 도서관 서비스에 위기 상황만을 조성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무역협정은 도서관 서비스를 국내적 경쟁의 틀을 넘어 국제적 경쟁의 상황에 처하게 하는 동시에, 도서관의 역할 및 서비스에 대한 기존의 접근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따라서 자유무역협정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우리 사회에 위기로 작용할 수도 있고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는 이중적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것이 자유무역협정을 도서관 서비스와 관련하여 단순히 위협으로만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우리 사회의 도서관과 관련된 논의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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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저작권법 107조에 근거하고 있는 공정한 이용 원칙(Fair use doctrine)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의 이용이 가능한 경우를 비평, 논평, 뉴스 리포트, 교수(teaching), 학문(scholarship), 연구(research) 등의 경우로 열거하고 있음. 이외에 고려되는 기준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제시하였다: 이용의 성격이나 목적: 상업용인지 비영리적 교육목적인지? 저작물 자체의 성격이나 특성, 복사의 양, 저작물 시장이나 저작물의 가치에 미치는 영향.
  이에 비해 호주의 공정한 활용 원칙(Fair dealing doctrine)은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보다 강조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열거주의보다는 해석주의에 보다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2) A2K Treaty는 지적재산권 문제와 관련하여 2005년 일부 국가들과 학계, 비정부기구(NGO)들이 국제지적재산권기구(WIPO)에 제안한 조약이다. 개발도상국 정부와 학계, 비정부기구들은 2004년 지적재산권 문제와 관련하여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담은 국제조약의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이에 따라 2004년 8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WIPO에 A2K 조약 초안을 제안하였다. 2005년에는 보다 많은 비정부기관들과 각국 정부, 학계 전문가, 과학자, 경영자들이 이 조약에 대한 토론을 가졌으며, 2005년 일명 ‘Friends of Development’로 불리는 14개 국가가 국제지적재산권기구에 보완된 조약안을 제출하였다.
   ※ Friends of Development의 14개 국가 :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에콰도르, 이집트, 이란, 케냐, 페루, 시에라리온, 남아프리카 공화국, 탄자니아, 베네수엘라 

3)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해 왔던 국가의 역할이라든지, 개인의 권리보다는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했던 사회적 전통, 지식의 공유를 사회적 미덕으로 중요하게 접근하여 왔던 사회적 가치 등은 저작권에 대한 배타적 권리의 보호와 함께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문화적 가치이다.     

     글|김세훈ㆍ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