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 신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추천한 이달의 책]

 

 <정치> 잿빛 시대 보랏빛 고운 꿈  김설이 외 지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최근 집단 폭행 사태로 발전한 한 재벌의 잘못된 자식 사랑이 사회적 문제가 됐지만 사실 우리에게 가족처럼 중요한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독재시절 포악한 물리력에 의해 부서진 가정이 한, 둘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 같은 가족의 이야기를 돌아다보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들은 비둘기처럼 온순한 어머니와 아내들이었지만 “독재의 칼날이 가족을 겨누었을 때 독수리가 되고, 매보다 무서운 투사가 되어”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싸웠고 이들의 치열하다 못해 “화려한 투쟁”이 결국 옥문을 열어냈다. 바로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로 상징되는 반독재민주화 가족운동이 그것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가정의 달을 맞아 때맞춰 펴낸  『잿빛시대 보랏빛 고운 꿈』은 “70, 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서의 가족운동”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그 어느 운동 못지않게 치열하게 싸웠으면서도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한 민주투사들인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내들의 투쟁을 생생하게 그려 주고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카네이션과 외식, 그리고 상품권으로 상업화되고 있는 가족의 모습에 대해 진정한 가족이란 어떤 것인가를 깨우치게 해 주는 죽비이다.

                                                 추천자|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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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경영> CEO, 고전에서 답을 찾다   유필화 지음/ 흐름출판

경제학자인 내가 인접 학문인 경영학 또는 기업 경영 자체를 바라볼 때 늘 드는 생각이 두 가지 있다. 첫째, 그것은 참으로 변화가 빠른 분야라는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들은 새로운 경영용어만 해도 벌써 여러 개가 생각난다. 벤치마킹, 다운사이징, 리엔지니어링, 아웃소싱, 6시그마, 블루오션 등등. 또한 이런 것들의 상당수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현상을 보면서 세월이 지나도 값어치가 떨어지지 않는 보편적인 경영이론이나 사상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둘째, 기업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고 그것이 만족시켜야 하는 고객도 사람이므로 결국 경영학은 사람에 관한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경영학은 빨리 변하는 듯하다고 했는데, 그것의 중심 테마인 사람도 과연 그만큼 달라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경영학자나 경영자는 경영 분야의 일시적인 유행어나 풍조에 빠지기보다는 인간 및 인간의 행동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솔직한 속마음이었다.

이 책은 우선 동서고금의 방대한 고전을 섭렵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경영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논의한다는 발상 자체가 신선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경영자들을 위한 시사점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용적이어서 경영자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추천자|정운찬(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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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세상을 깊게 보는 눈  한국탐사언론인회 지음 / (주)황금부엉이

메시지 전달이라는 중계 기능은 모든 미디어에 부여된 공통적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수의 독자나 시청자를 거느린다는 이유로 지난 수십 년간 미디어계의 왕좌를 누려온 매스미디어는 최근 문자, 소리, 영상 등 다채로운 내용을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비판이론가들은 매스미디어의 단순성ㆍ일률성을 탓하며, 기술찬양론자들은 막강한 기술의 영향력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하는데, 진실의 가치가 날로 퇴색되어 가는 탈(脫)진정성 시대에 올드미디어의 존재가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한국탐사언론인회 소속 기자들이 공동으로 펴낸 『세상을 깊게 보는 눈』에서는 심층 보도야말로 경박단소(輕薄短小) 시대의 맹점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임을 구체적 보도 사례들로 예증한다. 탐사 보도는 은폐된 사실을 까발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사실의 구슬들을 서사(敍事)라는 올실로 엮어내는 고유한 “탐사 논리”를 지녀야 함을 강조하면서.  

좋은 기자란 왜곡되고 소외된 삶의 질서를 발굴하려는 열정적 의지를 지닌 글쟁이 ‘인디애나 존스’여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키는 이 책은 정론의 사회적 중요성과 함께 “직업인으로서의 기자”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일반 독자층은 물론이요, 장래 기자되기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적극 권장할 만한 치열한 직업 의식의 결과물이라고 여겨진다.

                                                                              추천자|김문조(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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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나무의 죽음   차윤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숲은 생태계의 보물창고다. 숲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산소를 만들어 주고, 조용하고 깨끗한 안식처를 제공해 준다.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으로 되어 있는 우리에게 숲은 더욱 친근한 존재다. 더욱이 우리는 반세기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시뻘건 속살을 드러냈던 민둥산을 발을 들여 놓기 어려운 울창한 숲으로 바꿔 놓았다. 우리는 산업화와 조림 사업에 모두 성공한 찾아보기 어려운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울창한 숲을 어떻게 가꾸고 지켜갈 것인지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할 입장이다. 숲을 가꾸고 지키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숲에 대한 우리의 정확한 이해가 절실하다.

숲은 우리가 쉽게 알지 못하는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있다. 우선 숲은 겉모습과는 달리 치열한 생존 경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생존의 현장이다. 우뚝 솟은 나무에서 한 포기의 잡초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도 저절로 피어나고 자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 줄기 햇볕과 티끌만큼의 수분과 영양분이 삶과 죽음을 갈라 놓는다. 숲의 제왕인 거대한 나무도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예외일 수가 없다. 거대한 나무의 가지가 썩어가고, 껍질이 썩어간다. 아무리 건강한 제왕이라도 온갖 벌레와 이끼와 미생물의 집요한 공격을 영원히 견뎌내지는 못한다. 세월의 힘은 어쩔 수가 없다는 뜻이다. 거대한 나무가 선 채로 죽어버리기도 하는 곳이 바로 숲이다. 그렇다고 죽음이 모든 것의 종말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무의 죽음은 새로운 탄생의 시작일 뿐이다. 죽은 나무의 마지막 한 토막까지도 다른 생명의 번성을 위해 소중하게 재활용되는 것이 또한 숲에서 찾을 수 있는 환상적인 생명의 드라마다.                                             

추천자| 이덕환(서강대 화학ㆍ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