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사이에
당신이 들어올 빈자리는 없다!
이 책에 나오는
여자들은 모두 한 권의 책 또는
편지를 들고 있다. 시선은 글자에
꽂혀 있기도 하지만, 조금은 방만한
자세로 침대나 소파, 안락의자에
널브러져 있다. 옷매무새는 답답할
정도로 단정하게 입고 있거나
걸치고 있는 수준이거나 아예
벗은 상태까지 가지각색이다.
여자 아이에서 노파까지 연령대
역시 천차만별이다. 왕비나 귀족부인에서
하녀까지 신분과 계층을 불문하고
이 책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모두
한 권의 책을 손에 쥐고 있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자들에게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읽는
시대가 아닌 쓰는 시대)가 되기까지,
여자들에게 ‘자기만의 책’은
사치거나 불온한 일이었다. 여자들에게
책은 아주 위험한 물건이라 남자들은
그녀들의 손에 ‘실과 바늘’
또는 ‘재봉틀’을 선물하는 편이
나았다. 아주 극단적으로 여자가
책에 빠지면 보바리 부인처럼
파국을 맞았다.
이제야 감을
잡으셨는지? 책 읽는 여자가 위험한
이유는, 그녀에게는 자기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책
속에는 자기의 운명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고, 깊은
사고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책
때문에 여자들의 머릿속에서 독자적인
생각의 싹이 자라난다. 그러면
여자들은 대열에서 벗어나게 되고
때로는 도전하거나 반항하기까지
한다.
“여자는 책
읽는 남자를 사랑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남자는 책 읽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본문에서)
남자들은 책 읽는 여자, 다시
말해 생각할 줄 아는 여자를 상대하면
피곤해 한다. 남자들은 책과 같은
여자보다는 침대나 소파 같은
여자에게 더 끌린다. 그림을 통해
독서의 역사를 훑어 보건대, 하인이나
노예나 읽고 썼던 힘만이 우월했던
시대에 문자는 약한 자들의 소일거리일
뿐이었다.
그러나 바야흐로
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한 지금,
읽고 쓸 줄 모르면 살아가기조차
힘든 세상이 되었다. 이제 문자는
남자들이나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성과 계급에 관계없이
평등한 것이 되었다. 보바리 부인이
21세기를 살고 있다면, 그녀는
현실과 환상을 분별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여인으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연애소설에 빠져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녀는 책에 갇힌 여자일 뿐이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해야 한다. ‘책book’이
로고스를 의미한다면, 모든 지혜로운
자들은 당대에는 불온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책’과 ‘여자’라는
이중 코드를 잘 요리해낸 이 책은
독서의 역사, 문자의 역사, 여성해방의
역사를 동시에 말해 주고 있다.
아름다운 그림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자유로움과 책을 매개로
무언가에 빠져 있는 그녀들처럼
잠깐이나마 몽상의 시간을 선물한
네게 감사한다.
김자영
|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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