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
D도서관이 개관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이다. 3층 종합자료관 밖에서
안을 기웃거리는 노인 한 분이 계셨다. 문
밖 복도에서 한참 안을 두리번거리며 살피시더니,
문을 살며시 열고 안을 들여다보신다. 안에
들어오시고 싶은 듯한데 무언가 어색한지 주저하신다.
한 직원이 나가서 “저기
어르신, 뭘 도와 드릴까요?” 하고 물으니,
“여기 구경 좀 해도 되나요?” 하신다. “물론이죠.
들어오셔서 구경하세요.” 하니 “아이구!
학생들 공부하는 곳인데, 내가 방해될까 봐.
내 잠깐만 구경하고 나올게요.” 하신다. 책도
보시며 천천히 이용하고 가시라고 권했지만,
못내 어색하신지 금세 휘 둘러보고 “구경
잘 했습니다.” 하고 문을 나서시고 만다.
<이야기 2>
D도서관을 처음 방문한 노인
한 분은 사서의 안내에 따라 회원 가입을 하시고
보고 싶은 책을 골라와 대출 신청을 하신다.
대출 처리를 하고 책을 드리자
대뜸 하시는 말. “얼마 내면 되죠?” 사서는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바로 웃으며 “책 빌려
보시는 것은 무료에요.” 하고 답하자, “아,
그래요? 너무 좋네요. 고마워요.” 하시며
살짝 머쓱한 웃음을 지으시며 나가신다.
노인에게는 열악한 도서관
서비스
앞의 <이야기>들은
단 몇 명의 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D도서관에서는 이런 노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우리 사회에서 공공도서관이 노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간 적이 거의 없음을 보여 준다.
특히 도서관을 학생들이 시험공부나 취업 공부를
하는 곳으로 여기고 있는 경향은 노인들이
공공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공공도서관은 누구나 정보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독서실(공부방)의
이미지’를 비롯하여, ‘관리 중심의 운영’
등으로 인해 다양한 계층이 정보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도서관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높아지고 있고, 정보 소외층으로 인식되어
있는 어린이나 주부 등에 대한 도서관 서비스가
비교적 활발히 펼쳐지고는 있다. 그러나 아직
노인에 대한 서비스는 열악한 실정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공공도서관의
역할
현재 우리 사회는 의료 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심각하게 낮은
출산율로 인해 고령화 인구의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급속히 고령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우리나라의 노인 비율이 2020년에는
OECD 평균치인 17.5%에 달하고, 2050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34.4%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고령화 사회로 진행됨에
따라 나이에 따른 계층 간의 정보 격차를 줄이는
것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정보의
평등권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공공도서관에서도 고령 인구의 정보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
미국의 경우, 1999년 UN이 ‘세계 노인의 해’를
선포한 것에 맞추어 미국도서관협회가 노인을
위한 도서관 서비스 지침을 마련하고, 도서관에서는
노인 서비스를 이 지침에 맞게 시행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지침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김선호, 2003:115).
① 노인 서비스는 도서관
전체의 계획, 예산, 그리고 서비스 프로그램에
통합되어야 한다.
② 노인은 도서관의 건물,
자료, 프로그램,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③ 노인은 모든 서비스에서
존중 받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
④ 노인의 경험과 전문 기술은
활용되어야 한다.
⑤ 노화에 관한 정보와 자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⑥ 노인의 요구에 적합한
도서관 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한다.
⑦ 노인 전문 지역 단체 및
기관과 상호 협동하여야 한다.
사회 구성원의 정보 격차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과 책임이 있는 공공도서관은
더 늦기 전에 노인들을 도서관으로 끌어들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노인들의
요구에 적합하고 노인들의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서비스를 다양하게 개발하여 제공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나 특정 계층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도서관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어떤 해답을
제시하려 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도서관인들과 함께 노인 서비스의 개념을 새롭게
모색하고, 고령화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적합한 서비스 개발에 대해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다음에 소개하는 두 사례는 D도서관에서
실행한 노인 서비스 사례이다.
D도서관의 새로운 노인 서비스
사례
1. 실버사랑 휴대폰 교육
- 노인의 요구에 적합한 도서관
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한다.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ㆍ발전하는
정보 기술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정보 기기들이
우리 삶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공공도서관에서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 인터넷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 외에도 다양한 정보 기기들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특히 휴대폰으로
제공되는 각종 서비스는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하고 있으며, 휴대폰은 이미 생활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노인들에게는 빠르게
확대, 변화되는 휴대폰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전화 걸고 받는 것만 할
줄 알지. KT에다 뭐냐 음….(KTF요? : 필자)
맞아! 그래 KTF 도 있지. 다 회사마다 다르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배우기 힘들어.
잘 사용할 줄 모르니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L노인, 65세)
D도서관은 이렇게 휴대폰
사용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노인들의 요구
사항을 받아 KTF와 협의하여 “실버사랑 휴대폰
교육”을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실시했다.
약 20명 정도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한
분, 한 분에게 친절하게 문자 사용법에 대해
교육을 진행했다. 반응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너무 좋은 거 있지. 젊은
사람들이 일대일로 차근차근 가르쳐 주니까
좋아요. 그 동안 문자 보내는 건 몰랐는데,
이제 보낼 수 있겠어. 사진 찍고 음악 듣는
것도 가르쳐 줬으면 좋겠는데…….”(K노인,
62세)
노인들의 요구에 기초한 휴대폰
교육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사실 노인들에게는
컴퓨터보다 휴대폰이 더 자주 쓰는 정보 기기이다.
그러나 이 휴대폰 사용법을 세심하고 친절하게
교육 받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배우고 싶지만 배울 곳이 없다 보니 노인들은
배우기를 포기하고 간단한 전화 기능만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D도서관에서는 이런 성과를
이어받아 올해에도 휴대폰 업체와 협의, 또는
도서관 자체적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여
휴대폰 교육을 실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도서관에서의 노인
서비스는 아직까지 노인들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실시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쉽게
실시할 수 있는 몇몇 서비스로 한정된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어 왔다(진주헌, 2005:95).
이제는 도서관도 노인들의 다양한 요구들을
수렴하여 그 요구에 적합한 서비스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2. 어르신 명예사서
- 노인의 경험과 전문 기술은
활용되어야 한다.
D도서관은 지난해 10월 중순,
‘2006 어르신일자리 박람회’에 도서관으로서는
최초로 부스를 설치하고 참가하였다. ‘어르신의
인생이 한 권의 책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도서관에 필요한 노인 인력을 채용하였다.
D도서관이 일자리 박람회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어르신의 삶이 곧 도서관이다’라는 또 다른
컨셉에 잘 나타나 있다.
흔히 노인들이 겪어온 삶에
대해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만큼 노인들은 기구한
사연을 안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오셨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백과사전보다 넓고
소설보다 깊은 ‘인생이라는 책’을 후배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예전과 달리 고학력 전문직 출신의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어, 그 분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혜는 사회적인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노인의 노동력(勞動力)은 더 이상
‘노동력(老動力)’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자원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D도서관에서는
노인들을 채용하기로 한 것이다.
‘어르신일자리 박람회’
당시 원래는 5명을 선발하려 하였는데, 예상을
뛰어넘어 450명이 넘는 많은 분들이 지원했다.
너무 많은 분들이 지원하셨기도 하지만, 정말
열정이 높으신 분들이 많아 여덟 분으로 늘려
채용하게 되었다. 이 분들은 현재 자신들의
경험과 능력을 살려 도서관에서 ‘명예사서’라는
이름으로 도서관 안내 및 이용 지도, 아이들에게
책 읽어 주기, 도서관 서가 정리, 자연체험학습장
안내 및 관리 등의 업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명예사서의 활동으로 도서관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다양한 연령층이 어울려 편안하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이야기 3>
어느 날 D도서관 입구에서
안내하는 명예사서께서 어린이 이용객에게
“어서 오세요.” 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
어린이는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 하다가 이제는
먼저 명예사서 할머니에게 인사를 한다. 50여
년의 세월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이야기 4>
할아버지 명예사서께서 한
사내아이를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 주고 있다.
그 아이는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그리워한다.
할머니의 품을 모르고 자란 또 다른 아이는
가끔 할머니 명예사서를 찾아와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라댄다. 도서관이야말로 세대
간의 커뮤니케이션 장애를 가장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는 소통 공간이며 ‘함께 사는
곳’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도서관
공공도서관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서비스가 이뤄지는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어린이나 학생들 중심으로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도서관협회의 「2006
한국도서관연감」의 ‘도서관 관련 주요 활동
현황’을 살펴보면 어린이, 청소년, 장애인
등에 대한 서비스는 기술되어 있지만, 노인에
대한 서비스 항목은 발견할 수가 없다.
정보화 사회가 더 가속화됨에
따라 노인들의 정보 격차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따라서 공공도서관은 지금부터라도
노인 서비스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를 통해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울려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핵가족화 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세대
간 갈등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서도 도서관은 모든 세대가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가운데 하나이다.
도서관에서만이라도 갓난아기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울려 이용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좋지 아니한가.
....................................................................................................................................................................................
[참고문헌] 문화일보.
2003. 28. '노인 비율이 2-5-년 세계 최고' 한국도서관협회,
『2006 한국도서관연감』 진주헌, 2005.
「공공도서관 노인 봉사프로그램의 인식에
관한 조사연구」. 전북대 석사 논문. 김선호.
2003. 「공공도서관의 노인 서비스 정책에
관한 연구」.〈한국도서관ㆍ정보학회지 제33권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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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우정ㆍ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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