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지킴이  

 

  저는 캐나다 몬트리올시에 위치한 영어권 대학인 콩코르디아 대학(Concordia University) 도서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5년 간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2001년 이민을 온 후, 도서관학 석사를 취득하고 사서가 된 경우입니다. 이 글을 통해 제가 콩코르디아에서 맡고 있는 업무, 그리고 외국에서 새로이 직장을 다니며 느끼는 소감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비록 이역만리에 떨어져 있지만 같은 분야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2년차 새내기 사서의 이야기를 들어 보시겠습니까?  
 

  제 직함은 일반 참고 사서이고, 주 업무는 참고질의 응답과 도서관 워크숍 진행입니다. 참고질의는 대면, 이메일, 채팅, 전화 등 다양한 창구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가장 흔히 받는 질문은 “I should write a term paper on something. How can I go about finding relevant books and articles?(이러저러한 주제에 관해서 리포트를 써야 하는데, 관련 책이나 자료를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이런 종류이지요. 워크숍은 도서관에 마련된 컴퓨터실에서 일반 학생 또는 특정 클라스(class)를 대상으로 진행합니다.

  참고질의든 워크숍이든 내용은 주로 도서관 카탈로그와 데이터베이스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것인데, 학사 수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을 할 때는 특히 “가르치는” 행위에 중점을 둡니다. 참고 사서는 “찾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찾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웠지요.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쌓은 교사로서의 경험이 한없는 도움이 되고 그 경력이 채용 과정에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질의와 워크숍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아 일을 하는데, 장서 개발과 폐기 과정을 돕거나 웹에 기반한 참고 문서를 개발하는 일을 주로 담당합니다.

  이 중 제가 가장 보람 있게 생각하는 업무는 대면을 통한 참고질의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인터뷰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여 이용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발견해 내는 과정이 참으로 어려우면서도 흥미를 돋웁니다. 이용자와 힘을 합쳐 작전을 짜고, 그를 통해 맞춤하니 알맞은 정보를 신속하게 찾도록 돕는 일이 재미있지요. 일을 시작한 초기에는 이 부분이 가장 어렵게 생각되기도 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저희 도서관 이용자들의 전공 분야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인문학, 사회학, 예술, 교육, 공학, 비즈니스 등의 전문 분야에 대한 도서관 자료들이 워낙 다양하고 방대하다 보니, 취직 초기에 한 달이 넘도록 받은 훈련이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특히 보람을 느끼는 또 다른 때는 소수민족 출신 사서로서 저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쓰임새가 있을 때입니다. 다문화 사회로 알려진 캐나다 대학들 중에서도 콩코르디아 대학만큼 비서구 출신 학생 비율이 높은 대학도 드물 듯합니다. 이런 학생들의 대부분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 특히 유학 초기에는 언어 장벽으로 인해 도서관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이런 학생들이 유독 저에게는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또한 도서관학을 공부하며 그들과 똑같은 경험을 거쳤으니 주류 백인 사서들에겐 없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지요. 공감의 폭이 더 넓은 것은 덤입니다. 다문화에 대한 이해, 소수민족과의 연대감… 이런 강점을 바탕으로 비영어권 유학생들이 캐나다 영어권 대학 도서관에서 겪는 어려움을 밝히고, 그 극복 대안을 마련하는 것을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 삼으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나고 자라지 않은 나라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이 늘 수월한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6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언어에 관한 것이지요. 이곳 몬트리올은 이중공용어 지역으로 참고 사서와 같은 대민 서비스 분야 종사자는 영어, 불어를 모두 잘 구사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저의 생존전략은 다른 것이 없고 그저 ‘최선을 다하고 그래도 안 되는 부분은 앞으로 발전시키면 된다’ 이렇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언어 장벽 이외에도 한국과 캐나다 사이의 크나큰 문화적 차이가 또 저에게 상당한 도전 과제를 주었습니다. 취업 후 초기에는 콩코르디아 사서들 중 저의 역할 모델이 되어 줄 수 있는 소수민족 출신 사서가 부재하다는 것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근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직장 생활이 편안합니다. 제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근원은 문화적 차이도 인종차별도 아니라, 이곳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다름을 늘 꼬아서 해석하고 재단했었던 제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지금 저는 주캐나다 한국인 사서로서 제 2의 정체성을 새로이 만들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새로운 정체성이 제 본래의 정체성과 평화롭게 공존하길 바라며, 그것이 제가 좋은 사서로 커 나가는 데 도움이 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사서로서 만 2년을 살아온 제 앞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는 듯합니다. 대부분의 캐나다 대학도서관 사서직은 교수직의 대우를 받는데, 그런 대우를 받는 만큼 외부에서 기대하는 바도 큽니다.

  먼저, 모든 사서들은 반드시 도서관학 석사 학위를 구비해야 하는데, 요즘 추세는 다른 전문 분야에서 가외로 석사나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입니다. 아예 석사나 박사를 마치고 도서관학과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고요. 석사 학위가 하나뿐인 사서들은 풀타임으로 일을 하며 바쁜 시간을 쪼개 다른 석사 학위를 따기도 합니다. 제 경우이기도 하지요.

  그 외에도 사서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저명한 저널에 기고하기를 기대 받기도 합니다. 이것은 어떤 전공 분야의 주제 사서가 되는 일을 넘어서는 일이지요. 제 동료 사서들을 보니 웹 2.0의 전문가, 오픈 엑세스 저널 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 사서 노조에 정통하신 분, 컨소시엄 경영에 대해 집중적으로 글 쓰시는 분 등이 계시네요. 새내기인 저는 요즘 한창 저의 블루 오션을 탐색 중입니다. 저의 배경과 관심사에 맞는 연구를 하고, 그 결과물을 통해 도서관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는 사서가 되길 바라니까요.

  저는 한국 내의 사서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IFLA 학회 참석을 계기로 만나게 된 한국 사서들을 통해 사서 커뮤니티에 속하는 중요한 웹 사이트, 발간물, 블로그 들을 알게 되면서 저의 이해를 조금씩 높여 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짧은 글을 통해서나마 여러 사서님들께 저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님들과 좀더 교유하며, 지식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나기 바라며 이 글을 줄입니다.

     글|권남수ㆍ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르디아 대학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