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죽이라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범박하게 표현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경쟁과 갈등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따지고
보면, 이것만큼 비윤리적인 것이
없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희생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받들어 모시면
된다. 그런데 둘 사이에 경쟁과
갈등이 있다니, 고약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눈을 돌려
주위를 살펴볼라치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반목하는 장면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를
저주하는 아들이나, 아들을 모독하는
아버지는 의외로 흔하다.
굳이 경쟁과
갈등이 아니라도 아버지가 드리워
놓은 그림자를 이겨내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이들이 있다. 그
존재 자체가 아들에게 인생의
짐일 수밖에 없는 아버지가 있는
법이다. 이남희의 장편소설 <그
남자의 아들, 청년 우장춘>이
다루고 있는 주제도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이다. 무슨 그림자일까
싶어지는데, 그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가 우범선이라는
사실을 알면, 금세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역사 지식에 밝은 사람이라면
우범선이 누구인지 알 터이므로,
이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내용을
대강 짐작하게 된다. 허나, 현실적으로는
우장춘의 아버지가 우범선인 것을
처음 알고 나서 놀라는 사람이
많을 듯 싶다.
우범선이 도대체
누구이길래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이름을 떨친 우장춘을 짓눌렀을까.
우범선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적극 가담한 장교로, 일본 망명
중 암살당한 인물이다. 직접 시해했다는
설과 단지 도와주었다는 설로
분분하지만, 어찌하였든 민족
처지에서 보자면 매국노라는 평을
들을 만하다. 그런 이의 아들로
살았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어릴 적에는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다. 아버지가 비록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조선의 혁명지사라고
일본인들한테 존경을 받기까지
하는 듯했다. 아버지가 살해당한
이후 어머니는 우장춘을 대장부로
키우려 했다. 아버지처럼만 되라고
했던 것이다.
우장춘은 우범선과
일본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일본 우익들의 도움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더욱이 아버지의 진면목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정말 “공평무사하고
솔직 담대한” 분인 줄로만 알았다.
나이가 차면서 비로소 아버지를
알게 된다. 일본 유학생들 가운데
우장춘의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장춘을 좋게 볼 리
없다. 일은 연애 때문에 터진다.
유학 온 여학생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 암살을 지시한 장본인이었다.
그 자신도 친일의 혐의를 벗어나지
못한 주제에 우범선을 민족반역자로
단죄하고, 그런 사람의 자식과
인연을 맺을 수 없다고 했던 것이다.
사랑도 잃고, 아버지도 잃는 순간이다.
우장춘은 갈등하고
방황한다. 아버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그래서 어떻게 수용할지
알 수 없었기에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지사인가, 아니면 매국노인가.
명성황후 살해를 제안하고 직접
손에 피를 묻혔는가, 아니면 지원하거나
방조한 것인가. 아버지가 시해했다면
일본인들한테 능욕당한 것보다
낫다고 보아야 하는가. 매국노를
아버지로 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동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청년 우장춘은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우장춘은 고뇌
끝에 암흑의 터널을 빠져나온다.
“아버지는 애국충정이라는 열정은
있었으나 일본의 속셈을 알아차릴
이지는 없었다”고 평가한다.
근대를 이루기 위해 일본의 힘을
업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결심한다. “그러니
여기서 분명하게 선을 긋자. 아버지는
아버지, 나는 나다. 나의 인생은
아버지와는 별개다.” 그래서
해방된 조국에 돌아왔을 터이다.
“한 나라가 저 먹을 식량과 그
식량 종자를 자급자족한다는 게
그 나라 독립에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잘 아니, 그 동안
어머니의 나라를 위해 힘써 왔다면,
앞으로는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일하기 위해서 말이다.
우장춘은 궁극에
아버지를 이겨낸 것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진정 자유로워졌고,
그래서 행복했는지 말이다. 허나,
분명한 것은 있다. 아버지가
드리워 놓은 그늘에서 벗어나려
용맹정진 했고, 그 결과 그가
깊어지고 넓어졌다는 것 말이다.
무릇 모든 아들들에게
주어진 운명이 있으니, 바로 ‘아버지
이겨내기’이다. 그때 비로소
그 영혼이 성장하는 법이다. 임제선사가
말하지 않았던가.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아비를 만나면
아비를 죽이라고!
이권우
|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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