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 전시회 안내  

 

 

※ 전시 기간 : 2007. 2. 14 ~ 4. 22            
※ 전시 장소 : 덕수궁미술관
※ 전시 작품 : 조각, 회화 105점(조각 55점, 회화 50점)
※ 주     최 : 국립현대미술관
※ 협     력 : 마리노 마리니 재단(피스토이아, 이탈리아),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
※ 전시 문의 : 02)2022-0617

 

인류의 비극 속에서 희망을 찾아 나서다 

“우리 시대는 비극적입니다.
나는 평온할 때조차도 그 평온함이 계속 유지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죠.
그렇기에 나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 속에는 비극에 대한 경고가 들어 있습니다.
이 비극적으로 전개되는 우리 시대에 대한 이야기 속에 말이죠."

                                                                                                                     - 마리노 마리니 -


  이탈리아의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1901~1980)는 헨리 무어와 함께 20세기 구상 조각을 대표하는 조각가이다.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경험하고 그러한 비극의 원인이 인간으로부터 초래되었다고 판단했던 마리노 마리니는 작품 속에 이러한 불안의 시기에 인류가 직면한 비극적 상황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현재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평생 마리노 마리니의 예술 세계를 알리는 데 진력을 다해온 부인 마리나 마리니 여사(94)가 설립한 마리노 마리니재단의 우호적인 협력에 힘입어 기획된 전시로, 전후 구상 조각계를 선도하였으며 기마상의 작가로 유명한 마리니의 조각 및 회화 작품을 국내 최초로 소개하는 전시이다.

  <마리노 마리니 : 기적을 기다리며>전은 불안과 고통의 20세기를 살며 자신이 통찰한 인간성과 이 시대가 드러내는 비극성을 작품을 통해 승화시켜낸 마리노 마리니의 작품 세계의 본령을 감상할 수 있도록 기마상, 초상, 포모나의 세 가지 주제로 크게 분류하였다.

  “기마상 조각”을 통해서는 불안과 고통의 세기인 20세기에 인간이 직면한 비극을, “초상 조각”을 통해서는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별적인 인간의 초상을 통해 구현된 시대의 초상을, 마지막으로 비극의 시대에도 여전히 자연이 갖는 치유의 힘을 믿고 그에 대한 신뢰를 드러낸 “포모나 연작”을 통해서는 기적을 기다려야 할 정도의 비극적 불안 속에도 희망의 싹은 여전히 존재함을 살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포모나, 1950년, 캔버스에 유화, 116x89cm, 마리노 마리니 재단 소장

화가로서 미술계에 입문한 마리니는 여러 해에 걸쳐 여인의 육체를 그려내거나 조각했다. 특히 ‘포모나’는 누드의 여인, 여신의 모습, 무용수 등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1950년에 그린 <포모나> 역시 매우 풍만한 육체미를 드러내고 있다. 뒷 배경의 강렬한 보색 대비는 작가가 제작 과정을 즐기면서 칠한 듯 명쾌하게 처리되어 있다. 검고 굵게 처리된 인체의 선은 배경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여인의 육체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수줍은 듯 고개를 돌린 여인의 모습은 고전적인 비너스의 계보에 그녀를 위치시킨다.

 

 

 회전목마, 1950년, 혼합기법, 60x50cm, 마리노 마리니 재단 소장

1950년에 그려진 <회전목마>의 배경과 말과 기수는 다양한 색들로 포개지고 겹쳐져서 통일감 있는 화면을 자아낸다. 격렬한 말과 기수의 모습은 마리니의 ‘기마상’이 이전의 정적인 구도에서 동적으로 나아감을 예측하게 한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보인다. 에트루리아 미술의 소박성과 단순성을 사랑했던 마리노 마리니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세상과 인간의 잔혹함에 경멸을 느낀 마리니는 ‘말’의 표현에서 자신의 심리를 드러낸다. 인간과의 조화를 유지하던 온순한 말의 이미지는 사라지게 되고, 인간에 대항하는 듯한 격렬한 동세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곧 격렬한 말과 이를 제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기수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말과 인간이 주종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기적, 1952년, 청동, 161x102x73cm, Leeum 삼성미술관 소장

마리니가 제작한 ‘말과 기수’는 초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마리니의 시대 인식을 단적으로 반영하는 테마로서의 기마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즉, 초기의 말이 기수와 조화로운 관계를 반영하여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면, 후기로 갈수록 조화로운 관계는 깨어져 더 이상 기수는 말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을 타고 있다고 표현하기 조차도 힘든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말과 기수는 이 험난하고 불안한 시대를 박차고 나아가 우주를 향한 비상의 기적을 꿈꾸게 되는데, 이러한 기적에의 열망을 담은 작품이 1952년 작 <기적>이다. 강렬한 동세의 말과 떨어질 듯한 기수의 비극적 절망, 그 속에 깃든 기적에의 기다림은 전후에 작가가 느낀 불확실함과 불안감을 투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