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사법연수원생들이
법원시보로 부임하여 재판부에서 2개월씩 지도를
받는다. 나는 내 재판부로 오는 연수생들에게
꼭 하나 물어보는 것이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친근해진 다음에 묻는데, “어떤 책을 읽었느냐?”가
그것이다. 우선 ‘죄와 벌’이나 ‘도덕경’,
‘레미제라블’을 완역판으로 읽어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본다. 대부분의 연수생은 그런
경험이 없다고 대답한다. 요사이 읽는 책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개는 현재의 베스트셀러인
얄팍한 책이거나 일본 소설이라고 답한다.
현대의 고전을 쓴 빅터 프랭클, 조셉 캠벨을
읽어 본 연수생은 거의 없었다. 몇 년 전 한
연수생이 스캇 펙을 읽고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가까운 가족 중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의과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여의사가
있다. 나는 그녀가 책을 충분히 읽지 못하는
것 같아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좋은 책을 선물하곤
하는데 그녀의 이야기가 가관이다. 자신도
책을 많이 읽지 못해서 걱정이지만 자기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기만한 독서가(!)가 없다는
것이다. 논술시험 준비를 위한 책을 빼 놓고는
지금까지 읽은 책이 불과 몇 권 안 된다는
친구들이 태반이라고 한다. 어떤 친구는 독서
대신에 텔레비전의 연속극에서 인생에 필요한
지혜를 배운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한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청년들의 의식선상에
아예 독서라는 것이 없는 셈이다.
독서는 삶의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
사람의 권리와 신체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업무를 담당할 새내기 법조인과
의사들의 수준이 이런 정도라니 정말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사법연수원이나 의과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업무상 지식과 기술에 불과한
것이고 진정으로 사람을 대할 때 필요한 지혜는
책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학생들이
학부에서 읽어야 하는 책 목록과 강의 준비하는
모습을 자세히 본 적이 있는데, 그 독서량과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의는 한마디로
하면 ‘독서 훈련’이었다. 정해진 책을 미리
읽고 강의 시간에 함께 토론하며, 강좌가 끝날
때 리포트를 쓰거나 시험을 봐서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시스템이다. 엄선된 여러 종류의
책을 읽으면서 젊은이들의 의식과 시야가 넓어지고,
지혜를 체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훈련을 치열하게
받은 사람과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경쟁을
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일상적인 차원에서는
차이가 드러나지 않지만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면,
즉 창조와 자유의 차원으로 나가면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고 보면 독서란 단순히
취미나 여가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독서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이다.
이는 자기 삶의 내면적 기초를 단단히 함과
동시에 넓은 시야와 상상력을 길러 외면적
경쟁력을 기르는 중요한 작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의 중요성과 효용을 알지 못하고 소홀히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책을 읽으면서 ‘솔개가
날아오르고 물고기가 뛰는 듯한(魚躍鳶飛)’
감동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험을 놓친 셈이다. 삶의 지혜는
자기 혼자 생각으로는 모두 얻을 수 없다.
뛰어난 선각자들이 삶의 과정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얻은 지혜의 진수를 모아 놓은 것이
책이며, 따라서 책을 읽는 것은 뛰어난 선배와
직접 대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정말 맞는 작가를 만난다면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는 수 백 년 전
사람일 수도 있고 우리와 동시대인일 수도
있으며, 외국인일 수도 있고 옆 동네 사람일
수도 있다.
나의 세 가지 꿈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책과
관련하여 두 가지 꿈을 꾸어 왔다.
첫째는 ‘동네마다 도서관’을
갖게 되는 꿈이다. 도서관은 여가 시간 활용을
위한 여분의 시설이 아니다. 도서관은 우리
삶의 기초를 놓는 귀한 자재를 모아 놓은 지혜의
창고이자, 이러한 삶의 지혜를 빌려 주는 최고급
은행이다. 도서관에 가 보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어린이 열람실에서 아이와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어 주는 엄마, 돋보기를 쓴
채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노인, 황홀한 표정으로
그림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학생, 철 지난
잡지를 여러 권 쌓아 놓은 채 졸고 있는 중년
남자, 신간 코너에서 찾고 있던 책이 남아
있는지 서둘러 살펴보는 청년… 모두 아름답고
풍성한 모습들이다. 돈을 찾는 은행이나 일반
관공서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모습 아닌가.
오래 전에 미국 시애틀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가장 부러운 것이 도서관 시스템이었다. 내가
사는 집에서 차로 5분 이내에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세 군데나 있었다. 제일 큰 도서관은 시립도서관(city
library)이었고, 가장 작은 도서관은 문자
그대로 동네 도서관이었다. 전자는 2층 건물의
큰 규모였는데 책이 아주 많았고, 열람실도
널찍하여 사용하기 좋았다. 학교에 나가지
않는 날은 그 열람실에서 논문도 쓸 수 있었다.
후자는 열 평 남짓한 방 한 칸 정도의 규모로
가까워서 편리하였고, 동네의 자원봉사자들이
대출 업무를 담당하였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여러 사람들이 부지런히 도서관을 드나드는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정도로
도서관이 많이 생긴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게 되지 않을까. 요사이 가끔씩 도서관에
갈 때마다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데
도서관이 더 가까이, 더 편리하게 설치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크다. 관공서 청사를
공연히 크게 짓는 것보다는 동네마다 수시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도서관을 여러 개 짓는 것이
장래를 위한 진정한 투자일 것이다. 관청 예산의
극히 일부만이라도 돌리면 이러한 일이 당장
가능할 것이다. 동네마다 도서관이 있어서
주민들이 슈퍼마켓 가듯이 책을 만나러 가는
일이 일상화된다면 이것보다도 효율적인 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나의 두 번째 꿈은 모든 국민이
최소한 하나 이상의 독서클럽에 가입하는 것이다.
책을 혼자 읽는 것도 좋지만 마음에 맞는 사람들
몇 명이 같이 읽는 것도 의미가 큰 것 같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모여서 책을 선정하고,
읽고 토론하는 것은 평생의 과업인 독서에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다. 혼자 읽다가 지나친
중요한 부분을 찾을 수 있고, 어떤 부분은
집중적으로 토론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은 독서를 입체화하는 작업이 된다.
나는 그 동안 몇 차례 법원
내의 동료 법관들 사이에 독서클럽을 조직한
적이 있다. 대개 월 단위로 진행하였는데,
그때 읽은 책들은 혼자 읽은 책보다 훨씬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혼자는 절대로
고르지 않을 책을 다른 분이 선정하여 읽으면서
기대 밖의 이해를 하게 된 적도 있었다. 어느
명문 고등학교 동기회는 정식으로 독서클럽을
만들어 동기생끼리 함께 책을 읽어 오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동네 모임, 아파트 부녀회,
계와 같은 친목 모임, 나아가 가족 사이에서도
독서클럽을 만들 수 있다.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보다 깊은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군대나 심지어는 교도소에서도 이런 모임이
생겨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요사이 책에 관한
꿈이 한 가지 더 생겼다. 어느 일간 신문사가
‘거실에 서가를’ 설치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정말 반가운 일이다. 텔레비전 대신에
거실에 서가를 설치하여 가족들이 자연스레
책을 가까이 하자는 취지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여러 종류의 운동이 있었지만 이 운동만큼
의미 있는 것은 또 없을 듯하다. 이 운동은
소박하지만 그 뜻과 비전은 다른 사회운동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깊고 그윽하다. 우리
정신의 근본적 틀을 새로이 하자는 것으로
깊고 멀리 보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를 실제로
실천하는 가정에는 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에서 오프라 윈프리가
가끔씩 소개하는 좋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어느 도시에서는 한 달에 한 권의 양서를 선정하여
시민 전체가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부러웠다. ‘거실에 서가를’ 운동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도 책에 관한 범시민적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가슴이
설렌다. 책에 관한 여러 가지 운동이 일어나
우리 정신 문화에 대변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 나의 새로운 꿈이다.
이러한 꿈들이 과연 꿈에
그치는 것일까? 이런 꿈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은 결코 아니다. 나는 몇몇 국회의원에게
마을마다 도서관을 짓자는 꿈을 이야기하고
정책적으로 추진할 것을 권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은 표를 얻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지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만약 대통령이 이런
꿈을 갖고 있다면 국가 총 예산의 0.1%만 확보하더라도
많은 곳에 도서관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마을마다 도서관을
건립하겠다’는 정책을 내세우는 후보자가
나온다면 무조건 표를 던져 줄 텐데. 대통령의
꿈을 가진 사람은 이런 ‘참된 꿈’을 꾸지
못하는 것일까.
책에 관한 꿈만큼 실현이
가능하며 사회 발전의 근본적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우리의 생활 가까이에
우리 사회를 정말로 튼튼하게 할 수 있는 보물
같은 꿈이 놓여져 있는데 사람들이 보물을
알아보지 못해서 안타깝다. 결국 이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시민들이 이런 꿈을
더 이상 꾸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꿈을 꾸고, 그리하여 이 꿈들이 더 이상 꿈이
아닌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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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윤재윤ㆍ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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