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ㅣ 도서관 서비스의 세계화  

 

이제 박물관은 더 이상 유물을 전시하기만 하는 곳이 아니고, 도서관은 더 이상 고색창연한 책을 모아 놓기만 한 곳이 아니다. 창조력과 상상력을 자극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책임질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고, 창조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여가 교육의 장, 곧 놀이마당이다.

 

여가 사회의 도래

  2004년 7월 1일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주 5일 근무제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2007년 7월 1일부터는 100명 이상의 사업장으로까지 확대된다. 전국의 도로는 금요일 오후부터 정체되기 시작하고, 붐비던 토요일 오후의 시내는 한산해졌다. 여가를 중심으로 주간 시간 편성이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과 부모님,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일상생활이 실제로 획기적인 변화를 맞고 있는 것일까? 토요일과 일요일의 규칙적인 연속적 휴가는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을까?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하나

  국가청소년위원회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06년 11월 전국 초ㆍ중ㆍ고생 3,2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대전일보, 2007년 2월 14일자), 청소년들은 방과 후 여가 시간에 사교육을 받거나(57.9%), 집에서 무료하게 지내거나(15.9%) 아니면 게임을 하는 것(10.2%)으로 나타났다. 주 5일 수업제가 부분적으로 실시되고는 있지만 적합한 프로그램이 부족해서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바가 없다는 고학령 청소년들이 32.7%에 이른다.

  문제는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여가문화학회와 MBC가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2002: 43-65),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여행(36.6%), 스포츠(29.2%), 레저(25.6%) 등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여가 활동을 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휴식과 TV시청(44.5%)’으로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가 활동을 즐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시간이 없어서(45.1%)’ 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나 그 다음으로는 많은 직장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13.6%)’라고 응답했다. 직장인의 상당수가 주당 이틀 동안의 휴일을 부담스러워 한다.

  주 5일 근무제와 주 5일 수업제가 단계적으로 시행되고는 있지만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못 놀고, 청소년들은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못 논다.

  그래서일까? 때마침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과 환경친화적으로 복원된 청계천에는 연일연야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것이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 공원과 박물관에 사람이 넘쳐나는 현상이 우리 역사와 환경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다른 이유에서라면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적극적이고 동적인 여가 시간을 보냄으로써 창조력 향상과 웰빙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바람직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것이라면 시급히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DCMS/DfES 프로젝트

  외국의 사례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의 문화부와 교육부가 2003년 8월부터 2004년 3월까지 잉글랜드 전역의 12개 박물관을 대상으로 5만 파운드(약 9천만 원)에서 3십5만 파운드(약 6억 3천만 원) 사이의 재정을 지원하면서 실시한 전략적 지원 프로젝트(이하 DCMS/DfES 프로젝트)가 그것이다(Greenhill et al., 2004).

  424차례에 걸쳐서 박물관을 찾은 12,009명의 학생과 735명의 교사 그리고 1,458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연구 프로젝트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즉, 학생들을 인솔하고 박물관을 찾은 교사들 중에서 매우 만족(68%)하거나 만족(28%)한 교사가 전체의 96%에 달하고, 85%의 교사는 박물관 방문이 교과 과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학령의 학생은 ‘학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부하기 좋은 곳(86%)’이라고 생각했으며, 저학령의 학생은 ‘재미있고(83%) 영감이 떠오른다(91%)’고 응답했다. 여가 활동은 공교육을 보완하는 대안 교육일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무한경쟁 시대에 꼭 필요한 창조력과 상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원천이다.

  특히 지역 주민들에게 박물관은 지역 정체성을 확대하고 애향심을 키우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전체 12개의 DCMS/DfES 프로젝트 중 한 프로젝트에서는 옛 것과 새 것을 대비시킨 전시물을 보여 주었더니, 그 전시물을 본 지역 주민들이 ‘문화를 가로지르는 익숙하지 않은 것(오래된 것)과 친숙한 것(새로운 것)을 동시에 보고 나니, 익숙한 구세계와 새로운 신세계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밀려드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해서 급속하게 다인종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잉글랜드에서 꼭 필요한 사회적 가치를 체득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이처럼 여가 활동은 시민권을 확대하고 사회적 응집력을 높이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회적 소외를 극복하는 대안적 학습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는 것이다. 전체 DCMS/DfES 프로젝트는 약 20% 가량이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는데, 예를 들면 (장기 입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병원학교 학생, (영어를 배우는) 언어학교 학생, 일탈 청소년 등이 그들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박물관은 훌륭한 대안 학습의 장이었다.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연구에서 박물관이 창조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가와 교육의 장이었던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문제점으로 지적을 받는 것은 이러한 강점을 구조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력을 길러 주는 대영도서관의 프로그램

  그렇다면 도서관은 어떤가? 도서관도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대안 학습의 장이 된다는 점과 공교육의 교과 과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곳이라는 점은 굳이 조사연구를 할 필요도 없겠다. 다만 도서관의 경우 형식적인 학습과 연구에 좀 더 강조점을 두고 있어서 학생과 일반인들로부터 스스로 소원해 지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즉, 대안 학습이나 공교육 보완의 장으로서는 충분히 그 역할을 다하고 있으나, 여가 활동과 여가 교육의 장으로서는 아직도 미흡하다.

  대영도서관의 경우, 2007년 3월 4일까지 ‘지도로 보는 영국 생활(London: A Life in Maps)’ 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며, 온라인 화랑에서는 학술논문 전시회(Feature), 문학ㆍ음악ㆍ사진ㆍ인쇄물 전시회(Showcase), 위대한 책 전시회(Turning the Pages), 대영도서관 보물전(15 Finest Treasures) 등을 열고 있다. 이 중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대영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 15가지 중에서 구텐베르크의 성서보다 70년 이상 앞섰다는 설명과 함께 한국의 『춘추경전집해』를 전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영도서관 스스로가 창조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가 활동의 장으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영도서관이 학습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학습 프로그램만 하더라도 언어와 문학ㆍ역사와 시민권ㆍ예술과 이미지ㆍ문화와 지식ㆍ창조적 연구ㆍ교사마당 등 다섯 가지에 이르고, 각각은 보통 대여섯 가지의 또 다른 하위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많다.

  교사마당(Teacher’s Area)의 경우는 역설적이게도 공교육 교사가 참여하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주제로 워크숍(Workshop)을 열기도 하고 일일학습(Study Days) 행사를 열어서 학생들이 독자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워크숍에는 연간 1만 명 정도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으며, 대영도서관을 직접 찾아 올 수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영도서관이 학생들을 찾아가서 워크숍을 열기도 한다. 찾아가는 도서관으로서 이동도서관이 있는 것처럼 찾아가는 사서로서 워크숍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다. 또한, 1명에서 20명 사이의 학생들이 교사와 부모의 허락을 받은 후 요청하면, 공교육 대신 대영도서관의 창조력 교사(a creative educator)로부터 일일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창조력 교사는 대영도서관의 각종 자료를 이용하여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학생의 창조력을 키워 주는 교육을 실시한다. 물론 점심식사는 대영도서관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이처럼 대영도서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학습 프로그램들은 창조력을 강조하고 있다. 대영도서관의 오래된 책과 그 책을 통한 연구에서 비롯되는 창조력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창조적 연구(Creative Research)’ 프로그램은 우리에게도 많은 함의를 던져 주고 있다. 현재는 모두 다섯 가지의 창조적 연구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데, 대영도서관의 각종 자료를 이용하여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연구를 한 전문가가 직접 진행한다. 일례로, 정원사학자(garden historian)인 리차드슨(Tim Richardson)은 ‘달콤한 유혹(Sweet Temptation)’이라는 제목으로 과자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강의를 통하여 연구 결과를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가 대영도서관의 자료를 이용하여 어떻게 독창적인 연구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는지 그 노하우를 전수한다. 창조적 연구 결과보다 창조적 연구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그야말로 물고기를 잡아서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 맛있는 물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공교육의 장에서 일정 부분 주입식 교육이 필요한 것처럼 도서관 같은 여가 교육의 장에서는 그것을 보완해 주는 창조력 교육이 이루어진다.

 

놀이마당이 되어야 할 도서관과 박물관

  잉글랜드의 문화부와 교육부가 공동으로 진행한 DCMS/DfES 프로젝트와 대영도서관의 사례에서 보듯이 박물관은 더 이상 유물을 전시하기만 하는 곳이 아니고, 도서관은 더 이상 고색창연한 책을 모아 놓기만 한 곳이 아니다. 창조력과 상상력을 자극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책임질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고, 창조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여가 교육의 장, 곧 놀이마당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외국의 사례를 어떻게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는 여가 교육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미술치료ㆍ음악치료ㆍ독서치료ㆍ드라마치료 등 각종 여가 치료 방법을 응용한 창조력 향상 교육이 우리 사교육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몇 해 전에는 명지대학교ㆍ숙명여자대학교ㆍ이화여자대학교 등의 평생교육원에서 학위 없이 진행하던 각종 여가 교육이 특수대학원으로 승격되어서 석사 과정으로 개설되기도 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경우에는 평생교육원 원장이 총장이 되었다. 여가 교육의 성공과 무관하지 않은 파격적 인사다.

  단순히 암기만 잘 하는 사람이 선진국을 모방해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래서 창조력과 상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데, 이것은 일이 아닌 여가에서, 그리고 반복 학습이 아닌 독창적인 아이디어에서 비롯된다. 우리 도서관이 나아갈 새로운 대안적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독서치료 방법은 독서 경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어린이들의 창조력 향상 프로그램으로 활용되고 있고, 모 대형서점에서는 독서 코칭과 독서 진단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우리 도서관에서 먼저 시도했어야 할 것이었다. 대영도서관의 사례에서 보듯이 도서관은 더 이상 독서실이 아니다. 각종 도서를 모아 놓은 하드웨어 뱅크에서, 기획 전시를 넘어 창조력과 상상력을 길러 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소프트웨어 뱅크이다.

  오늘날의 대영도서관이 있기까지는 카네기(Andrew Carnerie, 1835~1919)가 380개의 도서관에 재정을 지원하여 장서를 확충하고, 사재를 털어서 영국 전역에 2,800개의 도서관을 지었던 과거가 있었다(Roberts, 2004 : 55). 그런 측면에서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도서관이 여가 교육의 장이 되어서 공교육과 유기적인 보완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창조력과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놀이마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고, 선진국의 방향성이 이미 그 쪽으로 선회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 우리 가족은 춘천의 스키장, 애니메이션 박물관, 인형극장, 남이섬 등지를 헤매고 다니다가 나흘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전국의 도서관을 그렇게 헤매고 다닐 날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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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대전일보, 2007. 2. 14.
한국여가문화학회ㆍMBC. 『주5일 근무제 실시 이후 직장인 생활 변화에 대한 조사』. 2002. 여가문화연구센터.
Greenhill, Eilean Hooper, Jocelyn Dodd, Martin Philips, Ceri Jones, Jenny Woodward & Helen O'Riain. Inspiration, Identity, Learning: The Value of Museum. 2004. Research Centre for Museums and Galleries.
Roberts, Ken. The Leisure Industries. 2004. Palgrave.

     글|최석호ㆍ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