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 서평  

 

 

책, 꽃만큼 아름답고 밥만큼 소중하다

: 한 교사의 학교도서관 40년 분투기

이혜화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7. 271p. ISBN 9788989420453. 10,000원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내야 하는 ‘작은 기적’ 이야기

  아무나 “나를 구원한 것은 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책 좀 읽었다고 해서 “나의 성장에서 책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내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를 키운 것 8할이 책이다”라는 말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수사가 아니다.

  그렇지만 살아오고 실천한 것을 보건대, 이혜화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극히 드문 경우에 든다. 그것을 어찌 알 수 있느냐고? ‘한 교사의 학교도서관 40년 분투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 꽃만큼 아름답고 밥만큼 소중하다”를 읽어보면 금세 알아차리게 된다.

  그의 삶은 신난했다. “조부모는 문맹자였고 부모는 인텔리였다. 부모는 두 분 다 내가 여덟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떴고 나는 문맹자인 조부모 손에 컸다”니, 지레짐작할 만하다. 그러니, 책밖에 도대체 무엇이 그를 보호하고 위안하고 격려할 수 있었겠는가. 스스로 말했듯 게걸스럽게 책을 읽어 나갔으리라. 그의 영혼이 등잔이었다면, 심지를 적셔 불꽃이 피워 오르게 한 기름은 바로 책이었던 것이다. 책 읽기는 그의 영혼을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고졸 학력임에도 고등학교 교사로 일할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책 읽기 덕택에 교사가 되었다고 해서 아무나 학교도서관 운동에 헌신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청소년 시절의 호사였다고 치부해 버리거나 입시 위주의 학교 현실에 쉽게 타협할 수도 있다. 그게 잘못되었다고 핀잔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학교 현장에 책 읽기를 뿌리내리려 노력하다 욕먹기 일쑤이다. 허나, 그는 달랐다. 책 읽기의 가치를 온몸으로 겪어본 교육자답게 자라나는 다음 세대가 책과 가까이할 수 있도록 애썼다. 이즈음 내가 자주 하는 말로 ‘독서후속세대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 있다. 나 혼자의 경험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다음 세대에 반드시 연결될 수 있도록 삶의 현장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는 이미 교육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교사가 단계를 밟아 교장까지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교장 가운데 학교도서관을 활성화하겠다고 나서는 이는 흔치 않다. 더욱이 인문계 고등학교 교장이라면 당장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 일쑤일 터이다. 하지만 그는 교장이 되자 다른 무엇보다 학교도서관에 정력을 집중했다. 후배 교사들도, 학부모들도, 학생들도 호응하지 않거나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밀고 나갔다. 왜 그랬을까? 거기에는 교육 현실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대안을 찾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입시지옥에 시달리며 경쟁의식만 키우는 아이들한테서 그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가 학교도서관을 세워 나가는 과정은 눈물겹도록 감동 깊다. 오죽했으면 스스로 “얘들 말로 쪽팔리는 경험”도 했다고 실토하겠는가. 그렇지만, 바로 그런 아픔을 이겨내었기에 그가 주창한 ‘슈퍼마켓 경영론’이 설득력 높아 보이는 것이리라. 학교도서관 이야기하다 갑자기 왜 슈퍼마켓이냐고? 성공하는 도서관을 만들려면 도서관을 생필품 매장처럼, 학생을 고객으로 모셔야 한다고 그는 목청을 높인다. 그만큼 도서관을 세우고 운영하는 교사들의 절박한 심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고객이 없으면 가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심정으로 도서관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을 왕으로 모시다 보면, 도서관을 운영하는 법도 바뀐다. ‘미끼상품’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나 잡지다. ‘신선한 채소’는 학생들의 감수성과 문제의식을 이해하는 책들이다. ‘이벤트’는 도서관에 오면 막대사탕을 주고 밤까지 남아 있으면 컵라면을 서비스하는 것이다.

  걱정이 앞설 수 있다. 학생들이 고만고만한 수준의 책만 읽고 말면 어찌하나 싶어서 말이다. 그러나 그의 살아있는 경험은 그런 염려를 그야말로 기우로 만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의 지적 욕구는 빠르게 향상”되었다. 문제는, 그이가 이제는 교장직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이다. 이를 어쩌나! 이혜화를 ‘복제’해서 학교 현장에 두루 보내고 싶건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비결이 있다. 이 땅의 교사들이 그의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제2의 이혜화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면 공교육도 살고 교사의 보람도 찾고, 학생들도 숨통이 트이는 새로운 지평이 분명 열릴 터이다.

이권우 | 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