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지난해 10월 18일 토요일, 나는 충북 제천으로 가는 노정을 잡고 승용차로 파주 자택을 떠났다. 학교도서관 워크숍에 강사로 초청을 받아 가는 길이었다. 오후 3시 10분에 시작되는 내 강의 시각에 대어 가기 위해 넉넉히 시간을 계산하고 출발하였다. 그러나 웬걸? 차가 밀리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겨우 한남대교로 하여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긴 했지만 길바닥은 끝 모를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길이 도무지 언제 뚫릴까 싶게 까마득했다.

 

악몽 같은 여정이었지만 고마웠던 초청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버스전용차로로는 신나게 달리는 버스가 있건만 나머지 차로는 구르는 시간보다 숫제 그냥 서 있는 시간이 더 많다. 피가 마르는 시간이었다. 결국 나는 운전 경력 16년에 처음으로 버스전용차로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단속에 걸려서 범칙금을 물고 면허 정지를 당하는 한이 있어도 강의에 지각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버스길로 들어서 2킬로쯤을 달렸다. 화끈거리는 낯에 철판을 깔고 얼마 후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섰지만, 여기도 별 수 없다.

  주최 측에 전화를 몇 번씩 걸어 하소연을 하고 덜 막히는 길을 안내받으며 기진맥진 강의 장소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예정보다 30여 분이나 지나간 시각이었다. 들어선 길로 강의를 하자니 제대로 될 턱이 있나, 횡설수설 죽을 쑤고 말았다. 지금도 생각하면 진땀이 난다. 나로서는 정말 다시는 당하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쨌든 이날의 악연(?)으로 연말까지 많은 초청장을 받았으니, 일컬어 ‘희망의 작은 도서관 개관식’이었다. 전교생의 수가 미처 세 자리에 못 미치는 이들 작은 시골 초등학교의 초청을 받고 한 군데도 참석은 못했지만, 나는 그 이름들만 보고도 순간적으로 황홀한 행복감을 맛보았다. 글사랑터, 지혜의 샘터, 금모래, 섶마리 숲속, 지혜의 등대, 죽뫼 반디, 갯벌의 꿈, 아라리, 솔향 글누리, 꿈초롱, 연꽃누리, 꿈자람터…… 아기자기한 도서관에 책의 향내가 아카시아처럼 진하게 풍길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그래도 그때 거기로 초청받아 다녀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겪은 끔찍한 여정이야말로 갖은 악조건 속에서 학교도서관을 만드는 이들이 겪는 고충에 견줄 만하고, 개관식 초청장을 받고 내가 느낀 황홀한 행복감은 우여곡절 끝에 개관식을 하면서 관계자들이 누리는 감격의 연장선상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땀으로 엮은 꿈의 도서관

  고양시 화수고등학교, 5년하고도 반이나 되는 세월을 학교장으로 있다가 퇴직한 학교이니 얼마나 애정이 크겠는가. 퇴직 후 2년 여 동안 피할 수 없는 사정으로 화수고에 갈 일이 서너 번은 되었는데 그 경우에도 굳이 외면한 곳은 학교도서관이었다. 내가 혼신의 정열과 애정으로 보살피던 곳이다 보니 그 곳의 변모가 나에게 혹 상처를 줄까 싶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부득이 화수고, 그것도 도서관에 갈 일이 생겼다. 졸저 「책, 꽃만큼 아름답고 밥만큼 소중하다」를 낸 끝에 모 TV 방송국에서 취재 요청을 하면서 꼭 화수고 도서관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것이다. 난색을 표하자 후임 학교장에게 사전 양해까지 구하고 나서 나를 압박했다. 결국 화수고에 갔고 도서관에서 인터뷰를 했다. 학교는 잘 관리되어 있었고, 더구나 도서관은 재단장을 하여 공간도 넓히고 시설도 정비하고 실내 장식도 깔끔하게 하였다. 솔직하게 말하라면 2년 동안 가장 와 보고 싶은 곳이 아니었던가. 이제껏 두려워했던 것이 기우였음을 확인하며 나는 기쁘고 고마웠다.

  인터뷰를 마치고 혼자가 되자 도서관을 만들면서 겪은 가지가지 일들이 떠올랐다. 장서를 확보하기 위하여 애쓰는 동안 오해와 비협조로 애달팠던 일이며, 1만 권 목표를 달성했을 때 부자가 된 기분에 마냥 흐뭇했던 기억, 그리고 학교의 명당자리인 교무실을 차지하기 위하여 행여 반발할까 조심스레 교사들을 설득하던 일이랑 독특한 설계로 도서실을 차려 놓고 자랑스레 개관식 테이프를 끊던 일…… 어찌 그뿐이랴. 장서를 갖추어 놓아도 모여들지 않는 학생들을 꾀느라고 막대사탕을 주던 일, 도서 동아리 ‘책이랑’이 만들어지고 동아리 신문 ‘책이랑’을 내어 각광받던 일, 온돌식 책사랑방을 꾸미고 주민독서반을 만들어 활동지 ‘꽃과 밥’을 해마다 내던 일. 가만히 그 추억들을 되새김하다 보면 옛날이 못내 그리워 울컥 슬픔까지 치밀어 오른다.

  한편, 학교도서관 활동상을 글로 쓰고 책으로 내는 바람에 언론 매체로부터 각광을 받게 되어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지 않다. 마치 학교장 혼자서 대단한 일을 이룩한 것처럼 비쳐지는 대목 때문이다. 알고 보면, 학교장의 뜻을 받아들여 준 교직원들이 있었고, 이해하고 협조한 학부모와 학생이 있었고, 예산 지원에 인색하지 않았던 상급청과 남몰래 도운  독지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마운 이들은 교과 수업을 하면서도 틈틈이 도서관 업무를 열성적으로 해준 독서교육부 선생님들이며, 몇 푼 안 되는 일급을 받으면서도 불평 없이 열성껏 일해 준 일용직 사서며, 전문가적 능력과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헌신적으로 수고해 준 사서교사 등이다.

  도대체 닫힌 교실에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심하게 말하자면 태산에서 흙 한 삼태기, 바다에서 물 한 바가지 퍼 올리는 것만큼 빈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태산 같은 지식이 쌓이고 바다 같은 정보가 넘쳐흐르는데 교사가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한정적이다. 그래서 나는, 교사가 정말 할 일은 독서교육이요, 학생들 각자가 책을 통해서 혹은 인터넷을 통해서 무한한 지식과 정보를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소장만으로도 빛을 내는 도서관

  캐나다 밴쿠버 지역으로 연수를 갔을 때, 시립도서관 두 군데와 UBC대학도서관 한 군데를 탐방했다. 신기한 것은 시립도서관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도서관조차 폐기 처분하는 헌 책을 내놓고 상시적으로 세일하고 있었다. 물론 책은 멀쩡했다. 우리는 도서관에 책을 한 번 들여 놓으면 마르고 닳도록 모셔 놓고 장서량 통계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들은 딴판이더라는 얘기다. 끊임없이 신간이 반입되면서 도서관은 활력을 얻는다. 일종의 신진대사다. 만약 도서관이 새 책은 들여오되 헌 책은 못 버리겠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먹기는 하되 배설을 하지 않아 체중만 늘리고 보자는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초ㆍ중ㆍ고 학교도서관은 신진대사의 회전 속도가 더욱 빨라야 한다. 어림잡아 대충 말하라면, 태반의 종이책이 10년을 넘기면 안 되고 디지털 자료라면 그 주기는 절반으로 단축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대학도서관이나 전문도서관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르다. 앞서 캐나다에선 대학도서관조차 폐기 도서 세일이 있더라고 했지만, 일정한 가치를 평가받은 것이라면 아무리 낡은 도서라도 소장할 도서관은 꼭 있어야 한다. 아니, 오히려 오래 전에 발간된 책이기에 희귀하고 그래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일이 있었다. 대학원 석ㆍ박사 과정에서 한국고전문학을 전공하던 때이다. 그때 나는 고소설 <최고운전>의 이본을 찾아 헤매고 있었는데, D대학 도서관에서 목록 카드를 뒤지던 끝에 <최고운전>을 찾아내고 쾌재를 불렀다. 학계에 보고된 <최고운전> 이본 중에는 이 대학 소장본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D대학 대학원생에게 이 책을 복사해 달라고 부탁하여 받아보았는데, <최고운전> 외에 합철된 또 하나의 고소설이 붙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윤인경전>이란 작품이었다. 그제까지는 이본으로서 <윤지경전>이란 이름의 한글본밖에 알려진 것이 없었는데 이 책은 뜻밖에도 한문본이었다. 자료를 놓고 연구해 보니 <윤인경전>은 참으로 희귀본이었다. 이 작품은 한문본이 원본이고 내용으로 보더라도 이 한문본이 최고의 선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희귀본이 어떻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더구나 이 대학의 국문과 모 교수는 고소설을 섭렵하고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한 바 있는데도 자기 학교 도서관에 있는 이 작품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문헌정보학상의 어이없는 실수 덕분이었다. 이 대학도서관의 사서가 고소설 <최고운전>을 역사인물인 고운 최치원의 전기로 보고 이를 역사류(990)로 분류한 것이었다. 문학류(800)만 찾던 그 교수는 당연히 이 작품을 찾아낼 수 없었을 터이다. 그리고 사서는 합철된 <윤인경전>조차 무시하여 카드에 적지를 않았으니 그것을 문학류로 분류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놓치고 만 셈이다. 이 일은 사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반증하는 사안이기도 하고, 찾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도서도 소장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이렇듯 도서관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소장 도서로 뜻밖의 기쁨을 안겨 주는 소중한 장소인 것이다.

     글|이혜화ㆍ전 화수고등학교 교장ㆍ「책, 꽃만큼 아름답고 밥만큼 소중하다」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