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 한 나라의 과거를
보여 주는 곳이라면 도서관에서는 한 나라의
미래를 볼 수 있다.
새로운 천 년을 목전에 둔
1990년대 후반, 세계 문화계의 이목은 영국과
프랑스의 국립도서관 신관 건립 사업에 모아졌다.
양 국가의 자존심을 건 이 프로젝트에 영국은
22년 동안 5억1천1백만 파운드, 프랑스는 8년
동안 12억 유로라는 각각 1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문화대국을 자부하는
두 국가의 지적, 문화적 역량이 총 동원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96년 프랑스국립도서관
신관이 파리 13구에 먼저 문을 열었다. 그리고
1998년 영국국립도서관이 런던 북부 세인트판크라스
역 부근에 그 위용을 드러냈다. 두 도서관
모두 전 세계 지식 자원과 정보를 수집하고
관장하겠다는 야심에 찬 목표를 표방했음은
물론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이 경쟁이 21세기 지식정보사회로 진입하기
바로 직전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유사 이래 도서관은 인류의
지적, 정신적 기록문화를 수집, 제공, 보존,
전수하는 구심체이자 당대 문화 수준의 척도가
되어 왔다. 더구나 지식이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국력의 원천이 되는 21세기에 도서관은 지식의
습득과 공유는 물론, 또 다른 지식 창출을
위한 가장 중요한 사회 문화적 시설이다. 하물며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도서관의 중요성과
상징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때문에 국가
재정의 낭비, 허영과 오만함을 드러내는 무모한
시도라는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립도서관
확장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그들의
숨은 뜻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오늘날 첨단 정보통신 기술과
인터넷의 발달은 도서관의 전통적 개념과 역할에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다름 아닌 디지털
패러다임의 적극적인 수용과 역량 강화의 필요성이다.
2006년 8월, 전 세계 5천여 명의 도서관 종사자,
학자 등이 참석한 서울세계도서관정보대회(WLIC)와
60개국 국립도서관장이 참석한 ‘제33차 세계국립도서관장회의(CDNL)’의
화두도 단연 ‘디지털’이었다.
이미 유럽을 비롯한 미국,
호주, 일본 등 세계 주요 국립도서관들은 미래
지식 지형의 선점을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특히 ‘디지털 지식유산’을 둘러싼 각국의
패권 다툼은 소리 없는 전쟁터와 같다. 국가
단위 혹은 대륙별로 디지털 자원의 수집과
보존을 위한 첨단의 프로젝트와 디지털도서관
구축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도서관계뿐만
아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야후 등 세계적 인터넷 기업들도 합세하고
있다. 원하는 단어를 입력하면 수천 권에 달하는
책의 원문을 볼 수 있다는 ‘구글 북 서치’는
사실상의 초대형 디지털도서관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1994년
미국의 기록 유산을 제공하는 국가디지털도서관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래, ‘아메리칸 메모리’를
통해 희귀본 등 천 만 건이 넘는 자료들을
온라인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나아가 최근에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을 포함한 서구 문명의
지식 유산을 온라인상에서 통합하자는 ‘세계디지털도서관(World
Digital Library)’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유럽의 국립도서관들은 2010년까지
최소 600만 건의 자료를 제공하는 ‘유럽디지털도서관(TEL)’을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온라인 문화의 주도권마저
미국으로 넘길 수 없다는 유럽의 자존심과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일본국립국회도서관이 2002년 간사이관(關西館)
개관을 통해 디지털정보 서비스를 위한 거점을
마련했고, 중국국가도서관도 디지털도서관을
건립 중으로 2008년 초 개관 예정이다. 싱가포르국립도서관은
2005년 전면적인 도서관 리모델링을 통해,
지식으로 국민의 삶과 국가에 기여하겠다는
비전을 실천하고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도 2008년
말 개관을 목표로 우리나라 미래 디지털 자원의
핵심 종합정보센터가 될 국립디지털도서관
건립을 진행 중에 있다. 또한 디지털 유산의
수집과 보존 사업을 위하여 지식정보의 샘물과
같은 ‘오아시스(OASIS : Online Archiving
& Searching Internet Sources) ’프로젝트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지적 자산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질 전망이다. 왜냐하면
지식의 힘 바로 상상력의 힘이 자아 발전,
경제 성장, 사회 발전, 문화 창달로 이어지는
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이 경쟁에서 결코 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7년 황금돼지의 해, 우리가
꿈꾸는 상상력에 우리의 「부의 미래」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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