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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저널 텍스트 학술논문 kor

성덕왕의 왕위 계승 과정 검토 = investigation into the process of King Seong-deok’s succession to the th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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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저자사항
성덕왕의 왕위 계승 과정 검토 = investigation into the process of King Seong-deok’s succession to the throne
배재훈
발행사항
부여군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15
형태사항
전자자료(Application)PDF62 p.
주기사항
반년간
수록자료: 한국전통문화연구 제16권 (201511--), p. 255-315 ISSN 2287-3546
분류기호
한국십진분류법-> 911.005
자료이용안내
국립중앙도서관내(디지털열람실 예약 후 이용)에서 이용이 가능합니다.

목차

[목차]

국문초록 Ⅰ. 성덕왕의 왕위 계승 과정에 대한 의문점 Ⅱ. 『삼국사기』 내 관련 기사의 검토 1. 효소왕 대의 정국 운영 2. 성덕왕의 즉위 과정 Ⅲ. 『삼국유사』 내 관련 기사의 검토 1. 「대산오만진신」 2. 「명주오대산보질도태자전기」 Ⅳ. 성덕왕의 왕위 계승 과정 복원 참고문헌 Abstar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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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내용/해제내용

[초록]

이 논문은 신라 중대 성덕왕의 왕위 계승 과정을 검토한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성덕왕은 효소왕의 동생으로, 신문왕과 신목왕후의 소생인 것으로 서술된 다. 그래서 형인 효소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자 그가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그의 왕위계승은 ‘국인(國人)’의 추대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그 는 효소왕의 생전에 태자로 책봉된 바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는 비정상적 방법에 의 한 왕위계승일 가능성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과 「명주오대산보질도태자전기(溟州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라는 성 덕왕의 왕위계승과 관련된 정황을 다룬 기록이 전하고 있다. 이 기록 속에는 오대산 신앙이 신라에 토착화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 효명태자와 정신(보질도, 보천)태자의 사적이 담겨 있다. 그런데 효명태자가 왕 이 되어 오대산에 세운 진여원(眞如院)은 성덕왕 4년(705)에 개창되었다. 따라서 효 명은 곧 성덕왕을 의미한다. 삼국유사 의 찬자인 일연은 이 때문에 위의 두 기록이 성덕왕 대의 역사적 사실 을 전하는 것이라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르면, 효명과 정신은 태자로서 오대산 지역에 유람을 왔다가 불교에 뜻을 두고 출가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훗 날 왕(효소왕)과 그 아우가 서로 왕위를 두고 싸우자 국인들은 이들을 폐위시키고, 오대산으로 대표를 보내 효명을 왕으로 옹립했다. 이로써 효소왕과 성덕왕은 각기 다른 어머니를 둔 배다른 형제가 되고, 성덕왕은 신문왕과 신목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적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는 성덕 왕이 왜 ‘국인’의 추대를 통해서 왕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된다. 그리고 이는 신라 중대의 왕권이 이미 효소왕 대에 이완하기 시작했으며, 성덕왕 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진골귀족들의 영향력이 커졌음을 보여준다. 성덕왕이 국인의 추대에 의해 왕이 된 사실은 그의 후계들에게는 하나의 약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후대의 공식 기록 속에 이와 관련된 기록들은 대부분 폐기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남겨진 정보는 성덕왕의 왕위 계승을 정당한 것으로, 그 사이의 불협화음은 없었던 것으로 조작된 채 유통되었을 것이다. 일연은 13세기까지 고려 사회에 남아 있던 효소왕 대와 관련된 기록들을 폭넓게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러한 기록들이『삼국사기』를 비롯한 정사 기록에 남겨지지 않은 효소왕 대의 정국과 성덕왕의 즉위 과정을 전하는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효소왕 대의 움직임에 대한 전승들을 수집하여 『삼국유사』에 기록하였다. 그중에서 「대산오만진신」과 「명주오대산보질도태자전기」는 비록 불교사와 관련된 분야로 치우치긴 하였지만, 성덕왕의 즉위 과정에 대한 기록으로 선택되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작업은 소략하고 건조한 서술로 끝을 맺은 『삼국사기』속에 기술된 당시의 정황을 이 두 기록으로 보충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했던 일연의 ‘유사(遺 事)’에 대한 지향을 드러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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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내용/해제내용

[초록]

This treatise aims to examine the process of succession to the throne of King Seong-deok during the Mid-Period of Silla. It is described in the records of Samguksagi, revealing that King Seong-deok is a younger brother of King Hyo-so, and the son of King Sinmum and Queen Sinmok. Therefore, it is interpreted that it was possible for King Seong-deok to be enthroned because King Hyo-so died without leaving a son to carry on his name. However, he was enthroned by ‘Kook-in(國人)’. In addition, he was not formally appointed as a Crown prince when King Hyo-so was alive. This makes us speculate that his succession to the throne would be likely to be done in an unordinary way. ‘Daesanomanjjnshin(臺山五萬眞身)’ and ‘the biography of Crown Prince, Myeongjuodaesanbojildo(溟州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 addressing the circumstances related to King Seong-deok’s succession to the throne were transmitted in the records of Samgukyusa. The historic affairs of Crown prince, ‘Hyo-myeong’ and Crown Prince ‘Chǒng-sin(Bocheon, Bojildo)’, significantly affecting the indigenization of Odaesan faith in Silla, are contained in the records of Samgukyusa. At any rate, Crown Prince, Hyo-myeong became the king and established Jinyeowon(眞如院) in Odaesan, which was opened in the fourth year of King Seong-deok(705). Therefore, it is inferred that Hyo-myeong represents King Seong-deok himself. For this reason, the compiler of Samgukyusa, Il-yeon seems to have judged that two records above reveal the historical facts of the King Seong-deok’s time. According to Il-yeon, Crown Prince, Hyo-myeong and Crown prince Chǒng-sin turned to Buddhism and became Buddhist monks when they made a tour of Odaesan area. However, afterwards, when King Hyo-so and his younger brother fought against each other to take up the position of the king, Kook-in dethroned them, and sent a messenger to Odaesan to enthrone Hyo-myeong to the position of the king. This reveals that King Hyo-so and King Seong-deok were step-brothers with different mothers, and King Seong-deok was not a legitimate son between King Shinmun and Queen Shinmok. Therefore, the fact that King Seong-deok became the king through the recommendation of Kook-in could be explained, Furthermore, this shows that the kinship of Silla already began to be loose during the period of king Hyo-so, while, the influence of Jin-gol(眞骨) aristocracy became higher during the period of King Seong-deok. The enthronement of King Song-deok by Kook-in may have been a weakness for his successors. For this reason, most records in association with the official documents may have been discarded. In addition, information, which was left behind, may have been fabricated or distributed with the emphasis that King Seong-deok’s succession of king to the throne was legitimate and there was no dissonance for his enthronement. Il-yeon could discover a wide range of records for the period of King Hyo-so, left in the Koryo Society until the 13th century. Therefore, it would be possible for him to judge that these records convey the political situation of King Hyo-so, which was not preserved in official history, including Samguksagi and the enthronement process of King Seong-deok. Thus, Il-yeon collected historic affairs in relation to King Hyo-so that had been handed down and recorded them in Samgukyusa. However, ‘Daesanomanjishin’ and ‘The biography of Crown Prince, Myeongjudaesanbojildo’ are prone to be preponderant on the realms of Buddhism history. Nonetheless, they may have been selected as records for King Seong-Deok’s succession to the throne. Meanwhile, it is judged that the compensation of these two records regarding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s, described in Samguksagi, confined to the rough and arid description, reveals the aim of Il-yeon, who was willing to convey historical facts to the future generations, in relation to the history which has been handed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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