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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모든 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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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저자사항
사랑합니다, 모든 분을!
운영자
발행사항
의정부 : 천주교의정부교구, 2015
형태사항
전자자료(Text)HTML
주기사항
계속갱신
분류기호
한국십진분류법-> 234.3
주제명
세월호   
자료이용안내
국립중앙도서관내(디지털열람실 예약 후 이용)에서 이용이 가능합니다.

초록내용/해제내용

[초록]

생각하기조차 고통스러운 일 년이 지나갔습니다. 어제는 사랑하는 아들 웅기의 사진을 보면서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의 사건을 뒤돌아보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지는 듯한 아픔이 아직도 하루에 몇 번씩, 아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제 가슴을 짓누르곤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약속되지 않은 이별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럽고 힘겨운지... 아직도 사랑하는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마지막을 함께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아주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평범한 아빠였습니다. 다른 아빠들처럼 그저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가장이었습니다. 가끔 아들 웅기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혼자 낄낄거리며 웃을 때면 “뭐가 그렇게 우습냐?”라는 말 한마디 툭 던지는 것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아빠였습니다.
그런데 2014년 4월 16일 이후 모든 것이 변해버렸습니다. 아들이 겪었을 두려움과 고통에 온전히 눈물을 쏟고 울음을 다 내뱉기도 전에 진상규명을 위해 모든 것을 내팽개친 채 뛰어다녀야 했고,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처구니없는 세상과 싸워야 했습니다.
얼마 전 개그맨 이경규 씨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생의 짐을 함부로 내려놓지 말라는 글이었습니다. 지리산을 올라갈 때 등에 진 배낭이 너무 무거워 벗어던지고 싶었지만 참고 정상까지 올라가 배낭을 열어보니 그 안에 먹을 것이 가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의 짐을 주셨지요. 바로 예수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입니다. 가난의 십자가, 헤어짐의 십자가, 사랑의 십자가, 고통의 십자가...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짐, 감당할 수 있는 짐만 주십니다.
저는 안산에서 팽목항을 거쳐 대전 월드컵 경기장까지 900킬로미터 도보순례를 하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워 포기하고 싶은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많은 이들이 304명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고통에 함께하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신 덕분에 중간에 주저앉지 않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도보순례를 이어가면서 수도 없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고통과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면서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내 마음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지극히 어지신 주님, 아들 웅기가 어둠 속에서 느꼈던 마지막 고통을 제게 나누어 주시고, 두려움과 고통 속에 흘리던 눈물로 저의 몸을 흠뻑 젖게 해주소서.’ ‘여인 중에 복되시며 사랑이 넘치는 성모님, 당신 앞에서 예수님이 모욕과 채찍과 창에 찔려 목숨을 다하는 모습을 보시고, 슬픔과 비통 속에서 흘리신 눈물을 저에게도 나눠주소서.’ 쉼 없이 간절히,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최종 도착지인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 다다랐을 때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가슴속에는 하느님의 영광이 가득 차 있고, 배낭 속에는 사랑이 넘쳐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지고 간 십자가는 분명 고통의 십자가, 원망의 십자가였는데, 그분과 또 사람들과 함께 끝까지 참고 견뎌내니까 하느님께서 또 다른 십자가, 곧 영광과 사랑의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고 십자가 도보순례를 마친 수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고향 땅에 있는 김성우 안토니오 할아버지 묘소였습니다. 그분은 103위 성인 중 한 분이십니다. 발걸음이 저도 모르게 그곳을 향했습니다. 웅기와 함께 장난치던 곳, 미사드리던 곳, 봉사하던 곳... 모든 것이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기도를 드리다가 할아버지 묘소의 비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는 천주교인이요.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고자 할 따름입니다”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순교하셨는데, 그 순교일이 바로 1841년 4월 29일이었습니다.
놀라움에 그만 저저앉고 말았습니다. 웅기가 제 품으로 돌아온 날이 4월 29일이었으니까요. 많은 이들의 기도와 할아버진의 기도로 4월 29일, 같은 날에 웅기가 제 품으로, 할아버지 품으로 또 주님 품으로 돌아와 영원히 머물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생각에 한없는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음 날 미사 중에 저는 또 한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웃는 모습으로 제대 뒤에 서있는 듯했습니다. 너무나 선명했습니다. 보고 싶어도 미안해서 사진조차 쳐다보기 힘들었는데, 온기가 느껴지는 듯해 유골함도 안아보기 어려웠는데, 가슴이 무너지고 목이 메어서 이름도 부르지 못했는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영광과 사랑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복되신 어머니, 보잘것없는 저에게 당신의 고통과 눈물에 조금이나마 함께하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세월호 사건은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라자로의 죽음을 보시고 “이 돌을 치워라”하시고 “라자로야, 나오너라”하신 예수님이 저희 유가족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의 무거운 돌을 치워주시리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돌을 치워주시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정의와 진실을 찾는 모든 이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도운 시몬과 베로니카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상처받고 고통당하고 있는 저희와 함께해 줄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신앙을 실천하고 증거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실 것이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두려움과 억울함을 견디며 진상규명을 위해 한 발 한 발 계속 나아갑니다. 이런 힘은 함께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합니다. 모든 분을 사랑합니다.” 아들 웅기가 자신의 휴대폰에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웅기는 그때 이미 죽음의 그늘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 가장 소중한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도보순례를 하면서 문득문득 생각했습니다. ‘내가 갑작스런 죽음 앞에 서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내 아들처럼 ‘사랑합니다. 모든 분을 사랑합니다.’ 이런 말을 남길 수 있을까?’ 부끄럽게도 못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지금에서야 반성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그들에게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을 얼마나 하고 살았는지를. 사랑하는 아들 웅기와 가족에게 그리고 지인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온 제가 후회스럽습니다. 사랑해야 할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살아온 제가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그런 저에게 웅기가 가만히 속삭이든 것 같습니다. ‘아빠, 지금도 늦지 않았어.’
사랑하는 아들은 저에게 너무나 많은 선물을 남기고 갔습니다. 철없는 아빠에게 하느님께 다가설 수 있는 방법과 사랑을 나눌 시간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주님을 만나야할 곳은 지금 내가 있는 바로 이곳이고, 보고 싶은 아들을 만나려면 사랑을 펼쳐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고 제 곁을 떠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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