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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샤를마뉴의 帝國思想에 관한 硏究 : 宮廷學術院을 中心으로 = (A)study of charlemagne's imperial id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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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저자사항
샤를마뉴의 帝國思想에 관한 硏究 : 宮廷學術院을 中心으로 = (A)study of charlemagne's imperial ideology / 裵玉男
배옥남   
발행사항
서울: 檀國大學校, 1993
형태사항
iv,223p.; 26cm
주기사항
학위논문(박사) --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서양사전공, 1993
분류기호
한국십진분류법-> 928.03   듀이십진분류법-> 945.02
자료실 이용안내
국립중앙도서관(디지털열람실 예약 후 이용),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국립세종도서관, 협약도서관(공공, 대학, 전문/특수, 해외, 작은도서관) 내에서 이용이 가능합니다.

권별정보

권별정보 목록
편/권차 편제 저작자 발행년도 ISBN 청구기호 자료이용하는곳 자료상태
裵玉男 1993 DP928.03-배925ㅅ 디지털열람실 이용가능


本 論文은 샤를마뉴(Charlemagne)의 宮延學者들이 샤를마뉴, 즉 찰스 大帝(Charles the

Great)의 宮延學術院에서 카롤링朝의 帝國思想과 文化의 발전을 어떤 방향으로 主導해 왔는

가를 연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샤를마뉴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통치한다고 확신한 神政主義的인 군주였으며,

그에게 세속적인 통치권과 함께 교회를 통치할 권리와 의무도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샤를마뉴의 통치 체제는―한 정치적인 천재의 관리를 받고는 있었지만―여전히 원시적인 게

르만 王政이었던 것이다.

샤를마뉴는 엑크스-라-샤펠(Aix-la-Chapelle)에 있는 그의 궁정을 796년에 샤를마뉴 帝國과

文化발전의 半永久的인 基地로 삼았다. 샤를마뉴는 그의 가족, 성직자와 관료들, 宮內 하급

관리들, 그리고 샤를마뉴를 교회의 지도자적 지위로 끌어 올린 알퀸 같은 학자들도 宮延要

員에 포함시켰다. 794년에서 804년 사이에 샤를마뉴의 궁정학자들에 의해 씌여진 散文과 詩

는 古典的인 文學과 神學의 硏究뿐 아니라 '카리타스 caritas'에 대한 愛情에 의하여 맺어진

友情어린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現代 역사가들은 이 샤를마뉴의 朝臣들의 비공식적인 결합

을 궁정학술원이란 命名했다.

알퀸이 학술원을 이끌었고, 학술원 존재의 필요성에 대한 이유를 제시했다. 그는 학술원의

철학자와 철학자 왕인 샤를마뉴가 프랑크에서 '新아테네 new Athens'를 세울 것이라고 생

각했다. 이 '新아테네' 또는 엑크스-라-샤펠은 古典的 理性主義의 상징인 플라톤의 아테네

(Plato's Athens)를 능가할 것이라고 自負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완전무결한 철학적

진리의 지식으로써 프랑크인들을 敎化시켜 왔기 때문이다. 알퀸은 학술원을 신앙과 행동의

표준 규범에 근거를 둔 충실한 조직체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 敎父神學과 古典文

學의 분석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고전적, 기독교적인 카롤링朝의 綜合은 특기할 만한 뿌리가 없으며, 어떤 면에서 보

든지 사실상 고갈되어 버린 샘과 같이 보다 제한된 범주 안에서 위대한 것이 創出된 것이

다. 이러한 제한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인 한 현상으로써 그것은 가장 극심했던 暗黑期를 극

복했다. 따라서 사료에 근거하여 샤를마뉴 이전의 學問的 狀況과 학술원 학자들이 그들 시

대의 발전에 대하여 가졌던 태도와 견해를 고찰하였다.

794-796년 경에 알퀸은 샤를마뉴의 정복사업과 교회에 대한 그의 條例를 정당화 시키고 이

론적 토대의 초안을 작성했다. 특히 카롤링朝의 교회는 왕권과 同伴者的인 사회세력이며 중

개자이자 권위 부여자이며, 서방의 문화유산의 보존자로서 당시의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훌

륭한 업무를 수행하였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알퀸은 신성한 다윗 왕

권의 모델을 이러한 이론적 토대의 바탕으로 삼았다. 최고의 判官이요 軍事的 統師權者로써

샤를마뉴는 천년 왕국설에 의한 改宗의 임무를 띠고 활동에 임했던 교회와 기독교국 인민에

대해 평화를 보증하였다. 샤를마뉴의 異敎徒 國家들에 대한 정복과 그의 指令에 의한 征服

民들의 改宗, 교회의 성직자團에 대한 그의 통제, 그리고 異敎徒들에 대하여 그의 正統 基督

敎를 수호하는 것은 準帝國的 권력의 행사를 암시하였다. 또 샤를마뉴가 그의 帝國에 賦課

했던 평화는 샤를마뉴 정권에 대한 반역과 위협, 그리고 異敎가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을 의

미한다.

알퀸을 중심으로 한 학술원의 회원들은 798년 경에 이러한 권력을 완전하게 재조직했다. 그

러면서 그들은 샤를마뉴의 왕권에 대한 성직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세를 강조하였다. 800년에

교황 레오 3세가 샤를마뉴에서 帝位를 주도록 誘發한 로마에서의 攪亂은, 기독교 帝國에서

샤를마뉴만이 왕국과 교회를 적당히 調停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학술원의 믿음을

촉진시키는 契機가 되었다.

790년대 후반에 학술원의 학자들은 샤를마뉴의 帝國 지배이념을 발전시켜 나갔고 샤를마뉴

帝國의 존엄성에 대한 그들의 認識을 확대시키기 위해 점점 더 빈번히 古典文學, 특히 버질

의 敍事詩 Aeneid를 언급했다. 이와 같이 고전문학에서 차용했던 영웅적인 지도자에 대한

상세한 묘사나 이상 국가에 대한 기독교 定義 없이는 프랑크인들은 샤를마뉴의 지도력 아래

서 그들의 재기를 분명하게 하거나 정당화 하는 데 난처한 입장에 처했을런지도 모른다.

799년에 쓰여진 Karolus Magnus et Leo Papa와 같은 詩文에서 나타난 샤를마뉴는 '新로마

new Rome' 황제의 모습 그 자체였다. 서양세계의 경건한 영웅적인 지도자인 샤를마뉴는 종

교적이며 세속적인 계층의 首長이 되었으며, 그의 신앙심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의 帝國

을 지배하는 帝國的인 지위를 보장했다. 실제로 그는 경건하게 신의 律法을 집행하였고 西

方國家들에 帝國의 평화를 賦與하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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